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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9-11-24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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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4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레위기

본 문 :

레위기19:1-4

오승주 목사

 

. 구별된 삶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라_레위기19:2’

 

- 교회(신앙 공동체) 안에 파고드는 조급함과 자기중심의 무서움

그리고 잊어버리는 참된 예배: 레위기는 예배자가 되는 길

 

주중에 설교 뼈대를 정리하고 카톡방에 본문이랑 내용을 올리는데 많은 분들이 왜 1장부터 설교를 하지 않는지 질문을 하였다. 레위기를 이해해야 하는데, 창세기는 사람이나 사건 중심으로 기록되었고, 사복음서, 서신서는 예수님의 사역, 일정에 관한 내용이다. 레위기는 스토리가 있는 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관한 내용이 바로 나온다. 레위기의 전반적인 주제나 위치를 먼저 살펴보고 다음주부터 1장 번제의 설교를 시작하려고 한다.

레위기 설교를 예전부터 하고 싶었고 오래전부터 공부를 했었다. 레위기를 시작하는데 레위기 설교가 끝났을 때 쯤 우리의 마음과 정신의 변화를 기대한다. 레위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안식과 평안, 위로가 있을 것이다. 성도님들이 레위기 안으로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다. 레위기를 지금 읽기가 어려울 것이다. 소 각을 뜨고, 제사 지내고 비둘기를 자르는 내용이 바로 나온다. 설교를 듣고 나서 레위기를 읽으면 조금 더 잘 볼 수 있을 것 같다.

레위기의 주제는 거룩이다. 레위기에는 거룩이라는 단어가 정말 많이 나온다. 거룩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거룩은 구별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구별되다는 것에 대한 의미, 성경이 말하는 구별됨의 의미를 레위기 설교를 통해서 이해를 했으면 좋겠다. 막연하게 거룩, 구별됨을 이야기를 하는데 사실 거룩, 구별됨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절제된 생활의 유무와 도덕적인 개념으로 거룩을 많이 이해하고 있다.

우리 안에 신앙공동체가 참 많다. 신앙공동체인 교회 안에 조급함이 파고들고 있다. 빨리 해야 한다,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 파고든다. 사실 이것은 목적주의이다. 이런 목적이 필요하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목적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 매해마다 교회에 주어지는 목적이 무엇인가? 교회에 목적이 있는 플랑카드를 걸지 않는다. 왜냐면 그게 우리가 추구해야할 목적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러한 목적들이 우리에게 조급함을 만들어낸다. ‘안하면 안 돼, 얼른 해야 해이러한 목적이 생기면 많은 사람들이 붙는데 따라오지 못한 사람들은 소모품 같은 역할이 되어버린다. 예수님의 시대에도 이러한 일들이 있었다. 바리새인, 서기관들이 목적을 향해 따라갈 때 고아와 과부들은 소모품 취급을 받았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목적 삼은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저주하셨다. 다 무너질 것이다. 실제로 다 무너졌다. 여러분 영원한 것이 무엇입니까? 영원한 것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다른 것은 다 사라지는 것 입니다. 우리는 조급하게 다 가지고 가지만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목적에 갇혀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보지 못하게 된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것이라고 하시고 바리새인들에게 욕을 먹고 가난한 자들, 사마리아인, 고아들에게 가셨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과 친구가 되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연탄을 주고 쌀을 가져다주라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대로 이러한 사람들을 돕고 섬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이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 으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않았다면 목적을 정하고 목적을 위해서 살았을 것 같다. 교회를 개척하기 전에 영적으로 어려움이 있을 때 사복음서를 정말 많이 묵상했다. 그런데 정말 깜짝 놀랐는데, 내가 예수님과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 목적만을 위해 살아가면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나밖에 모르는 삶을 살게 되고 나 중심의 언어가 생기게 된다. 인간은 누가 맞고 누가 틀리다고 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평가하실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왜 이러한 사역을 하셨는지를 봐야한다. 교회에 조급함과 자기중심적인 것들이 들어와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예배를 놓치게 만들었다. 레위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배자가 되도록 길을 제시하는 성경이다. 신학자들이 레위기를 성경읽기의 암초다, 성경의 히말라야 산맥이다, 레위기를 그 어떤 수면제보다 발달된 수면제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레위기를 보면 무슨 말인지 모를 내용들이 나타난다. 이것이 왜 어렵나? 현대인들이 파악하기 힘든 난해한 주제들이 열거 되어있기 때문이다. 소를 잡아서 각을 뜨는 내용이 나오는데 우리는 이러한 것들과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목사님들이 레위기의 설교를 안 하기도 한다. 신학자들이 성경읽기의 암초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기독교신앙의 최고봉이다, 기독교 교리서 중에 최고의 교리서다, 최고의 예배서다 라고 이야기를 한다. 에베레스트 산이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최고의 산봉우리를 레위기라고 이야기를 한다. 레위기를 모르면 예배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이야기도 한다. 레위기는 원래 레위기에 이름이 없다. 원래 구약 성경 히브리어 성경은 감히 하님의 말씀에 이름을 붙일 수 없었던 시대이다.

 

. 와이크라_레위기1:1,출애굽기19:5-6,히브리서10:1,레위기11:45-46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_레위기1:1’

 

와이크라: 70역을 통해 레위인에 속한 것이란 이름이 지어졌다.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성막을 짓는 과정이다.

-레위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성막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책이다.

-예배의 원형

 

와이크라 라는 것이 무엇이냐면 문장의 제일 앞에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와이크라는 그리고 그가 부르셨다라는 의미이다. 왜 그리고가 들어가냐면 출애굽기 다음에 나오는 성경에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출애굽기와 레위기는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출애굽기는 성막 짓는 훈련을 기록하고 있다. 성막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함을 의미한다. 사실 이스라엘의 백성들 전체의 숫자가 늦어도 2주안에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요셉이 가나안까지 가서 아버지 야곱을 장사하고 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바로 못 들어가게 하셨나? 애굽에서 하나님을 알지 못한 상태로 나왔고 믿음으로 출애굽 한 것이 아니었다. 바로 가나안으로 들어가면 7우상들이 있는 가나안에서 더 우상을 섬기면서 살아갔을 것이다. 섬기는 우상만 달랐지 똑같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보낼 때 제사장의 나라로 사명을 감당하도록 보내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기존의 정신구조를 버리고 새로운 정신구조를 갖추도록 가르치신 것이다. 출애굽기는 생태계와 같은 것이다. 하나님 중심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설명하셨다. 성막을 지어놓고 무슨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서가 레위기이다. 레위기가 이해가 되어야 출애굽기를 이해할 수 있다. 레위기를 설명하는 신약의 성경이 히브리서이다. 레위기를 읽는 동안에 히브리서와 출애굽기를 같이 읽으면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전 세계를 정복할 때 헬라 문화가 전 세계에 퍼지고 있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볼 때 성경이 굉장히 중요한데 히브리어로 되어 있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다니는 각 나라마다 유대인들이 흩어져 있는데 2세가 되고 3세가 되니까 히브리어를 다 잊어버렸다. 알렉산더 대왕이 알렉산드리아에 아주 유명한 신학자 70명을 모아서 성경을 번역하는 작업을 시켰다. 그래서 그 헬라어 성경을 70인역이라고 한다. 제목이 없는 성경을 보며 신학자들이 성경에 제목을 붙였다. 이러한 레위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제사를 가르치셨다. 레위기의 시작은 5대 제사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그리고 왜 이런 제사를 지내야하는지 의미가 설명되어 있다. 레위기는 이러한 3단계 구조로 되어 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배를 모르고 살아간다면 큰 일이 나게 되는 것이다. 과거의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하는 데 그것이 예배이다. 예배는 우리의 삶에 주인이 바뀌는 것이다. 예배에 대한 철저한 율법을 가르쳐주신 것이 레위기, 신명기, 민수기이다. 율법에 대해서 듣기만 해도 깝깝하다. 위에서 지시를 하기만 해도 답답하다. 율법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_히브리서10:1’

 

율법은 장차 올 그림자의 형상이라고 설명을 하고 있다. 율법대로 드리는 제사로는 우리를 온전히 할 수 없다고 한다. 우리가 지금 드리고 있는 공예배 이것도 그림자라고 생각한다. 진짜는 무엇인가? 우리의 삶속에 계시는 하나님, 우리의 마음에 계시는 하나님이 진짜이다. 진짜는 내 안에 계시는 성전, 내 삶,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삶이 성전이다. 그럼 대체 왜 율법을 주셨나? 율법은 우리에게 분별하라고 주신 것이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기 위해서 주셨다. 부정함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인간은 죄악에 있기 때문에 분별하지 못하게 되었다. 분별해야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는데 율법의 정확한 위치는 분별하기 위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 출애굽기에서 명령하셔서 성막을 지었는데, 레위기에서는 성막에서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레위기 강해를 하게 되는 이유가 있다. 지금이 승부처이고 결단의 시작이라고 생각을 한다. 대학생들이 교회개척의 소식을 듣고 많이 온다. 그런데 많은 대학생들이 교회를 떠난다. 왜 떠나갔는지 이유를 들어보면 이해가 되지만 충격이 되고 실망이 되는 것이 자신의 전문성을 키워줄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다. 자신을 도와줄 전문인, 장로님의 도움이 없어서 그것을 쫓아서 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수긍이 되면서 솔직히 실망이 된다. 인턴쉽이나 전문성을 키워주는 것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교회를 나오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의 목적이 전문성을 위해서 나오는 것이 밑바탕에 깔려있음을 느껴져서 씁쓸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하나님이 제일 먼저 가르치신 것이 예배이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성공해야 하는 전략을 가르치시지 않았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데 전문성이 없어서 실력이 없어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_출애굽기19:5-6‘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20일정도 걸쳐서 레위기를 주셨다. 이것을 조건적 언약, 시내산 언약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하나님께서 조건을 거셨다.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말을 잘 지키면-’이라는 조건부 언약을 제시하셨다. 오늘 이 출애굽기의 말씀은 신약에도 인용이 된 말씀이다. 레위기서는 부제목으로 조건적 언약이라고도 한다. 하나님 편에서의 조건적 언약이 레위기이다.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레위기의 조건을 지켜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성경 전체적으로 조건을 제시하시면서 조건을 지켜야 될 수 있다는 것이 레위기서이다. 거룩이랑 구별됨이 조금 의미가 다르다. 구별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주일에 입으려고 넥타이, 셔츠, 양말을 구별해 놨다. 구별은 따로 빼서 준비해 놓은 것을 이야기한다.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따로 챙겨놓은 것이 구별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별하셨다.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우리를 따로 구별해 놓으셨고 챙기신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거룩이다.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예배를 명령하셨나? 우리가 구별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및 행위가 예배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명령하셨는데 그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자녀를 키우면 알 수 있는데, 아들은 구별된 존재이다. 다른 존재들과 다른 것이 자녀의 존재이다. 하나님이 보실 때 우리는 완전 구별된 자이다. 구별된 자를 위해 준비를 하기도 한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어다_출애굽기19:5-6’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조건적 언약(시내산 언약)

-레위기의 주제는 구별됨(거룩을 향하는 것)

-구별됨을 위한 방법(행위)가 곧 예배

 

거룩하다는 표현이 152, 불결이라는 표현 132회가 나온다. 거룩이라는 표현을 설명하기 위해서 300회에 가까운 거룩을 설명하는 내용이 나온다. 신약에서 레위기를 100회가 넘게 인용을 했다. 성경에서 레위기가 차지하는 위치가 아주 중요하다.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_레위기11:44-45’

 

-거룩의 참된 내용과 의미: 거룩의 대상, 거룩한 제사장, 거룩한 백성, 거룩한 땅, 거룩한 주

 

레위기에서는 5가지의 거룩을 설명한다. 첫째, 거룩의 대상, 둘째, 거룩한 제사장, 셋째, 거룩한 백성, 넷째, 거룩한 땅, 다섯째, 거룩한 주님을 설명한다. 먼저, 거룩의 대상은 하나님이다. 하나님만이 거룩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거룩하지 않으면 인간은 하나님을 믿을 수 가 없다. 기준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목사는 거룩을 제시할 수 있는 인격이나 기준이 될 수 없다. 신앙의 기준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어야 한다. 두 번째는 거룩한 제사장이 나오는데 제사장은 레위 족속이다. 레위 족속은 특권이 있었다. 레위 족속이 가지고 있는 특권은 생활의 염려는 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각 지파에서 십분의 일을 모아서 주도록 하였다. 전적으로 생활의 염려를 하지 않고 제사만 섬기는 일의 특권이 제사장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특권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특권은 무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신약에 와서는 만인제사장설을 이야기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특권에는 책임이 따른다. 목사는 성직자여야한다고 생각한다. 성도들은 술, 담배에서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미국에서는 같이 술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교회도 있다. 우리나라는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하러 왔는데 고된 농사 일을 하고 다들 술 먹고 잠을 자고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았다. 이러한 시대에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해야 하기에 금욕을 시킨 것이다. 성경적으로 담배에 대한 내용은 없다. 일찍 천국을 가는 것 밖에 없다. 그런데 목사가 성도들이 시험들 일을 하면 안 된다. 목사는 절제를 하며 책임을 다해야 한다. 세 번째가 거룩한 백성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구별하셨다. 죄 가운데 그냥 두지 않으셨다. 사랑하기에 죄에서, 어둠에서 구별시키신다. 인간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고난도 주시고 시험도 주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가나안에 그대로 들어갔으면 전과 같이 계속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광야에서 훈련을 시키셨다. 네 번째가 거룩한 땅이다. 성경에서 땅을 이야기 많이 한다. 우상숭배가 어떻게 땅을 더럽히는지 이야기를 한다. 땅에도 안식이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인간의 이기심에 땅을 계속 굴리고 땅에 영양분이 떨어지면 땅이 죽는데 거기에 화학비료를 넣고 그 음식을 얻어낸다. 성경은 일반적인 땅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우리의 인생을 땅에 비유해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6일간 일하고 주일날 우리는 우리의 삶을 멈추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삶이 필요하다. 성공을 향해 목적을 위해 이익을 위해 휘말려 가면 병들게 되고 놓치게 되는 것들이 많아지게 된다. 결국은 만족을 하지 못하고 살게 되는 것이다. 다섯 번째는 예수님을 설명한다. 예수님을 믿어야지만 거룩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_레위기19:1-4,마가복음10:4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너희는 헛된 것들에게로 향하지 말며 너희를 위하여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_레위기19:1-4’

 

레위기의 끝장에 가면 단번제사가 나오는데, 이것이 예수님을 상징한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다.

(시각장애인 아빠가 영상을 혼자 키우는 영상)

 

사실 자녀들은 잘 알지 못한다. 부모가 어떤 희생을 해서 키우는지 이해를 하지 못한다. 언제 이해를 하냐면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그 자리에 갈 때 이해를 한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신 것 같다. 부모가 얼마나 자녀를 사랑하는지 모른다. 성경에서 왜 부모를 경외하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의 그림자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셨다. 창세전에 택했다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우리의 생김새나 우리의 능력, 성격 이런 거 안보시고 택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택하셨다는 것이다. 이 말의 깊은 의미는 우리가 다 똑같다는 것이다. 왜 교회에서 서로를 정죄하고 그러는지 알 수 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나면 복음을 알고 나면 우리의 신앙은 조금 달라져야 한다. 우리는 세상에서 다 다르다. 그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다 같은 존재이며 다 귀하며 특별하다. 이 부분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신학자들이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좋아하는 기적은 철이고, 신학은 동이고, 설교는 은이고 금은 사랑이라고 이야기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이야기 한다. 옛날에 레위기를 읽고 나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졌다.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니까 정말 많이 울었던 것 같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예배를 가르치실까? 번제를 드릴 때 직접 각을 뜨도록 명령하신다. 눈물을 흘리는 소를 보면서 직접 하라고 명령하셨다. 왜 그렇게까지 시킬까? 그런데 우리는 지금 예수님을 직접 믿는가? 극장처럼 대신으로 신앙생활하고 있지 않은가? 예수님은 내가 직접 경험해야 한다. 내가 믿고 내가 경험한 하나님이어야 한다. 소를 잡고 각을 뜨면 트라우마가 생길 것 같다. 소를 직접 잡으면 소가 우는 것을 보고 있으면 완전 각인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시키셨나? 경험하라는 것이다. 잊지 말라는 것이다. 너희가 이 예배법, 제사법이 아니면 이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 율법을 통해서 깨닫고 사랑으로 가라는 것이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_마가복음10:45’

 

예수님의 사랑을 모르면 신앙의 신자도 모르는 것이다. 레위기 서 공부를 하면서 부모님이 생각이 났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부끄러웠다. 어머님이 일하시다가 숙제를 가지고 학교로 오셨다. 아이들이 그것을 보고 할머니 오셨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때 우리 엄마라고 이야기를 못했다. 그것이 어머니의 장례 때 생각이 났다.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서 그렇게 사셨다. 언제 부모님에 대한 존경이 생겼냐면 철이 들고 어머니 아버지가 나를 사랑한다고 느꼈을 때 무시하지 못했다. 교회에서 왜 우리가 봉사하고 찬양하고 예배하는가? 구원받았으면 천국에 가는 것 다 확정되었다. 우리의 신학에 의하면. 구원 받았으니까 막사는 것? 많은 젊은이들이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신앙생활을 목회를 열심히 하냐고 물어본다. 성공하려고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깨달아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나니까 열심히 하게 되었다. 레위기에서 크게는 거룩, 구별됨을 이야기하면서 안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를 한다. 은혜는 철과 같다. 철이 들고 나면 아 내가 철이 없었구나라고 생각을 할 수 있다. 우리 안에 있는 죄, 상처, 상처로 나타나는 삶들을, 조급하게 사는 자기 중심적인 삶들을 치유받기를 원합니다. 가스펠 교회의 매년 주제는 똑같다.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하는 삶이 구별된 삶이다.

 

 

문의 / 윤덕현 전도사 010.9899.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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