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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9-12-22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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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2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속죄제_죄에서 벗어나길 원하시는 하나님

본 문 :

레위기4:27-5:13

오승주 목사

 

. : 하타트(Hatat)

- 히브리어 : 하타_빗나가다(miss the way)

- 헬라어 : 하라르티아_죄를 범하다. 목표에서 벗어나다.

- 죄를 범함으로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범한다.

 

우리가 지금 현재 드리고 있는 기독교 예배 형태는 레위기 5대제사에 근간을 둡니다. 예배의 형식 안에 찬양이 있고 회개가 있고 설교가 있고 헌금이 있고 교제의 시간이 있는 것은 5대 제사에 근간을 둡니다. 5대 제사를 따로 배우고 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속죄일에 이 제사들을 한꺼번에 드렸습니다. 하나의 예배이기도 하고 그것에 근간에 두어서 믿음의 선조들이 지금 우리가 드리는 공예배의 형태들을 5대 제사의 근간을 두고 만들어놓았습니다. 그래서 예배 시간에 설교의 시간도 중요하지만 찬양으로 고백하거나 회개 기도를 하는 시간도 중요하며 전통교회는 다 있습니다. 그리고 찬양을 하거나 예물을 드리거나 교제까지 다 한 예배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왜 회개를 해야 할까요? 성경을 보면 회개에 대해서 많이 나옵니다. 예수님도 복음을 그냥 복음이 아닌 회개의 복음이라고 하고 회개한 자가 천국 복음을 받아들인다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회개에 대해서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 미국의 주류되는 교계들이 회개라는 단어를 쓰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약간 세속 주의적으로 방향을 뜬 교회들은 회개라는 단어들을 교회에서 빼버렸습니다. 발전하고 긍정의 힘을 가지고 더 나아가야지 우리가 매일 눈물 짜고 회개하고 죄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것이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 그들의 주장입니다. 한국에는 2000년대에 들어서 강타했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에서도 많은 목사님들이 회개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정말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회자의 양심으로는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공동체는 회개한 사람만 들어올 수 있습니다.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은 사람만 들어 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회개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당신이 정말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 할 거냐. 그럼 같이 신앙생활하자 이거지 하나님이 축복하실 거야 자녀가 잘 될 거야.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 회개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시는데 공동체 안에 회개 하지 않는, 죄가 그대로 있다는 것인데 죄가 그대로 있는 곳에는 하나님이 임재하지 않으십니다. 구약의 제사도 그랬습니다. 죄와 하나님은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죄인을 사랑하시지 죄와 같이 있지는 못하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죄 문제가 해결이 되면 죄 사함을 받으면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회개를 모르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많으면 그것이 예수님의 시대입니다. 예루살렘 성전 안에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성전 밖에서 사역을 많이 하셨습니다. 회개에 대해서 왜 강조 하냐면 성경에서 회개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왜 회개를 하라고 하는지 살펴봐야 하고 그 회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개념을 가지고 계셔야 합니다. 성경은 왜 회개에 대해서 가르치냐면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죄가 없으면 가르치실 이유가 없습니다. 죄가 없으면 회개도 필요 없고 용서도 필요 없고 사랑도 필요가 없습니다. 죄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회개를 가르쳤습니다. 죄가 과거에 예수님을 처음 믿었을 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죄는 히브리어로 하타트라고 하는데 뜻은 빗나가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영어로 miss the way. 원래 가야할 길에서 빗나간 형태입니다. 다윗이 시편에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길을 구부러지게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원래 가야할 길이 있는데 우리가 구부러뜨렸다는 것입니다. 악인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악인은 자기의 구부러진 길을 가며. 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헬라어는 하라르티아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죄를 범하다.’ 라는 뜻도 있지만 목표에서 벗어나다.’ 라는 뜻도 있습니다. 화살을 쏜다면 과녁에서 벗어나다. 라는 뜻도 있습니다. 원래 목표가 있는데 그곳에서 빗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죄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영어로 죄가 sin인데 이것은 죄의 본질을 설명합니다. 죄의 성품. 정확히 우리가 알고 있는 단어로는 원죄. sin 자체가 죄의 본질을 설명합니다. 죄는 죄를 짓게 만드는 것이 sin입니다. 그러면 죄를 짓는 것. 낱낱의 행실들은 sins입니다. 죄의 다양한 형태들. 우리가 죄를 지어서 죄인인가요? 아닙니다.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습니다. 이것이 틀리면 이단이 됩니다. 로마서 3장에 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_로마서3:10-18’

 

이것이 죄의 길입니다. 파멸의 길입니다. 평강의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망각하고 사는 길, 죄인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보면 죄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물고기를 물속에서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물을 떠나면 죽습니다. 아이큐가 높아도 물고기가 예뻐도 물을 떠나면 죽게 되어있습니다. 나무도 땅에 뿌리를 박고 살아야 합니다. 땅에 뿌리를 내려야 물도 햇빛도 거름이 필요합니다. 나무는 땅에서 살아야하고 물고기는 물속에서 살아야합니다. 뽑힌 나무는 거름을 주면 더 빨리 썩습니다. 햇빛을 주면 더 빨리 마릅니다. 나무는 땅에 뿌리를 박고 살아야 하고 물고기는 물속에서 살아야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우리를 영적인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영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데 영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말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단 마귀의 유혹으로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입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났기에 사망에 이릅니다. 물고기가 잘못한 것은 물을 떠난 것입니다. 물고기가 평상시에 좋은 일을 했다.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물을 떠나면 죽는 것입니다. 나무가 땅에서 뽑히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과 죄는 인간 사이의 분리를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분리되어있는 것이 죄입니다. 죄에 대해서 잘 모르면 자꾸 우리가 나쁜 짓을 했다. 거짓말을 했다. 이런 것으로 죄를 설명합니다. 이것은 다음 주에 설명할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분리 상태를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분리된 순간부터 불안하고 초조하고 공허하고. 무엇으로 채우려고 살아갑니다. 영적인 눈이 어두워져서 육신의 존재가 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 죄의 결과는 사망입니다. 인간이 죽는다는 표현도 있지만 영원한 죽음을 뜻합니다. 사망. 한번 죽으면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천국에 입성하지 못하고 영원한 지옥에 영원히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만드는 죄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 무지합니다. 죄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 쉽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대로 살아야 하는데 그것에서 빗나갑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단한 존재인줄로 착각합니다. 이것이 죄가 주는 유혹입니다. 원래 인간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사단이 유혹한 것이 너도 하나님처럼 될 거야. 우리는 착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처럼 될 거야 라고 했는데 우리는 하나님처럼 될 거야 라는 착각 속에 살다가 영원한 지옥 속에 가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대로 살지 않고 그것에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 있는데 이것에서 벗어난 것을 이야기합니다. 이 결과가 영원한 죽음입니다. 이것을 사람들이 망각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우리가 영원히 살 것이라는 생각이 드나봅니다. 얼마 전에 슬픈 기사가 있었습니다. 토요일에 결혼을 했는데 인천공항을 가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그 자리에서 즉사를 했습니다. 그 기사를 보면 슬픕니다. 우리는 언제 어떻게 하나님 앞에 불러갈지 모르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이것을 망각하도록 만듭니다.

 

. 속죄제

- 제사장(3:1-12), 온회중(3:13-21), 족장(3:22-26), 평민(3:27-35)

- 속죄제는 하나님의 율법을 어겼을 때 즉 부지중에, 무의식중에 짓는 죄

- 속죄제는 어떻게 드리나?

 

오늘 속죄제는 조금 다른데 다른 제사들 소제나 화목제는 의무제사는 아닙니다. 그러나 속죄제는 의무제사입니다.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제사. 이것은 꼭 해야 하는 것입니다. 속건제하고 헷갈릴 수 있습니다. 속건제는 히브리어로 아삼 이라는 말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내가 알고 저지르는 범죄. 내가 저것을 훔쳐야지. 내가 이웃을 속여야지. 라고 하는 것들. 속건제이고 오늘 속죄제는 내가 불가항력적으로 지을 수밖에 없는 죄. 내 속에 죄가 있으니까. 예를 들어서 인간의 연약함으로 인간의 부지중에 지은 죄. 예를 들어서 미움 같은 것. 어제 운전하는데 엄청 막히는데 도로를 끼어든 사람들이 있으면 순간적으로 욱하게 됩니다. 나중에는 깨닫습니다. 내가 저 사람을 왜 저주했을까. 그래서 이 속죄제는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죄를 용서받는 속건제하고는 색깔이 다릅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였으되_레위기4:2’

 

여호와께서 인간을 창조하고 주신 목적들. 계명들 하나라도 그릇 범하며. 이것이 죄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10개 중에 7-8개 정도 지키면 나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라도 범하면 그것은 죄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에 대해서는 완전한 죄 사함을 원하십니다. 천국에 흠 있는 사람이 갈 수 있나요? 없습니다. 천국에 죄가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도록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보는 대로 살아가는 죄. 이것이 죄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_레위기4:13’

 

부지는 나도 모르게 짓는 죄입니다. 인간 본인 스스로 알지 못하고 무의식중에 짓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무의식중에 짓습니다. 인간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죄입니다. 음욕, 탐욕, 미움, 살인충동. 이런 것들이 다 부지중에 지은 죄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내가 높아지려고 하는 것. 나를 드러내려고 하는 것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_로마서3:23’

 

이 죄는 빠져나갈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 속죄제를 이야기하면서 제일 먼저 속죄제를 드려야 할 사람을 제사장부터 온 회중, 족장, 평민 모든 사람을 계층별로 이 속죄제를 드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은 속죄제를 드릴 때 가장 큰 짐승을 잡습니다. 영적인 지도자들이 짓는 죄가 가장 큽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지도자가 짓는 죄가 끼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제사장이 먼저 드리게 했습니다. 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자기의 죄를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 그렇기 않으면 지성소에 들어가서 바로 즉사합니다. 지성소 안에는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었고 지성소는 하나님이 임재 하셔서 하나님과 대화하는 곳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 지성소입니다. 그 지성소를 휘장으로 가려놓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제사법을 보면 제사장의 발목에 방울을 달고 줄을 묶습니다. 제사장이 혹시 회개하지 않고 속죄제를 드리지 않고 들어가면 즉사하니까. 죄인이 하나님이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즉사하면 소리가 나지 않으면 줄을 잡아 당겼습니다. 지성소는 거룩한 곳입니다. 그 지성소의 휘장을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휘장에 찢어졌습니다. 우리가 직접 그 거룩한 곳을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범한 죄를 깨달으면 회중은 수송아지를 속죄제로 드릴지니 그것을 회막 앞으로 끌어다가_레위기4:14’

 

그 죄를 깨달으면 바로 속죄제를 드리라고 합니다. 죄가 깨달아지나요? . 깨달아집니다. 누가요?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죄가 깨달아집니다. 죄책감이라는 것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죄에 대해서 언제 가르치기 시작하셨나요? 출애굽하고 나서입니다. 출애굽 전에 애굽에서 노예생활 할 때에는 하나님이 죄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애굽의 사람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똑 같은 죄인이었습니다. 이들이 죄를 알고 죄를 지었다.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자. 이렇게 하였나요? 부지중에 하나님이 모세를 세워서 양의 피를 바르게 하시고 강제로 끄집어 내셨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성막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게 하면서 죄에 대해서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회개하면서 살아야 되고. 죄가 무엇이다.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구원받고 나서 구원받았으니까 내 맘대로 살아도 돼. 잘못된 것입니다. 행함을 행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교회를 보세요. 예수님을 영접하고 어떻게 사는지 살펴보세요. 죄를 깨달으면 내가 왜 저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가졌지? 여러 가지 죄가 깨달아지면 바로 속죄제라고 드리라고 합니다. 속죄제를 드리지 않으면 죄가 쌓이게 됩니다. 죄책감을 무시하기 시작하면 양심에 화임 맞음 상태가 됩니다. 악인이 되는 것입니다. 아동 성 범죄 하는 사람들. 죄를 가지고 돈을 버는 사람들. 죄를 계속해서 짓다보면 이익이 생기게 되고 죄를 계속해서 짓는 상태를 교만, 오만이라고 하는데 오만하고 교만하면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습니다. 저도 죄를 지었을 때에 목사님의 말씀이 들이지 않았고 가족들이 해주는 충고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의 음성이 들리지 않으면 영적으로 교만하고 오만한 상태가 됩니다. 솔로몬이 고백했습니다. 들리지 않았다. 너희는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 날 죽음을 맞이하는데 너무 원통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인간에게 하나님이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이것이 속죄제입니다. 창세기 315절에 여자의 후손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이 길을 여셨습니다. 이 여자는 처녀입니다. 예수님이 동정녀에서 나시지 않으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 안 됩니다. 죄가 그대로 자녀들에게 전달됩니다. 우리는 태어나면 죄인으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그래서 있는 힘을 다해서 열방과 나라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죄는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살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냐면 요셉을 애굽에 총리로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은혜를 다 까먹고 400년을 노예 생활을 하게 하였습니다. 400년 노예생활을 끝내고 모세를 세워서 출애굽하고 가나안으로 바로 보내지 않고 광야에서 성막 짓는 방법을 출애굽기를 통해서 가르치시고 레위기를 통해서 예배를 가르쳤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도구로 삼아 우리에게 너희들이 살길은 피 제사 밖에 없어. 너희들이 살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 밖에 없어. 라고 구약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제사의 형식 그리고 이 제사를 드리는 중심.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목사님, 믿음이 중요합니까? 행함이 중요합니까? 라고 이야기하는데 행함과 믿음은 하나입니다. 사랑하는데 행함이 없고 행함이 없는데 사랑이 없습니까? 부모님을 공경하면 행함이 따라가게 되어있습니다. 행하면 중심이 있기에 행함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이분법으로 나누는데 믿음과 행함은 하나입니다. 영과 육신은 나눌 수 없습니다. 내 몸이 죄의 현장에 있으면 마음도 죄 속에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중심이 병들면 몸이 선한 곳에 있어도 몸은 병든 사람입니다. 하나입니다. 믿음과 행함이 어떻게 나눠질 수 있나요? 사울 왕이 전쟁을 하다가 지게 생겼는데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는 율법을 가지고 와서 제사를 빨리 드려야 되겠는데 제사장이 오는데 오래 걸리니 자기가 드렸습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내가 너를 버렸노라. 하나님을 예배하고 회개의 삶을 디테일하게 배울 것인데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펴고 무릎 꿇고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이 행위입니까? 하나님에 대한 마음의 중심입니다. 이런 이스라엘 역사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에게 설명하십니다. 십자가의 사건이 하나님의 완벽한 형식입니다. 제도입니다. 구약의 예언대로 그대로 말씀대로 하셨습니다. 구약의 예언대로 그대로 말씀대로 하셨습니다. 하나도 생략한 것이 없으십니다. 못에 박히고 창에 찔림을 당하고 침을 뱉음을 당하셨습니다. 굴욕을 당하셨고 성전 밖에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어떻게 신앙이 과정이 생략될 수 있나요? 그럼 속죄제는 어떻게 드리나요?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의 허물이 되었으면 그가 범한 죄로 말미암아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릴지니_레위기4:3’

 

흠이 없는 동물로. 예수님은 흠이 없으십니다. 이 흠은 죄입니다. 모든 인간은 흠이 있는데 흠이 없는 예수님만. 다시 말해서 죄의 삯은 사망인데 그 죄를 전가해서 죄가 단번에 끝나는 레위기 마지막은 단번제사로 끝납니다. 예수님이 단번에 이 복잡한 모든 제사들을 하나로 통합해서 끝낼 것이다. 이것이 레위기의 결론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제사 지낼 필요가 없습니다. 속건제, 속죄제가 필요가 없습니다. ?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예수님을 믿냐. 예수님만 흠이 없으십니다. 동정녀 마리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완전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기에.

 

그 수송아지를 회막 문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그 수송아지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_레위기4:4’

 

회막 입구에서 동물을 죽이고 머리에 안수하고.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죽지 않으면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반드시 죽으셔야 합니다. 그냥 죽이시는 것이 아니라 그 머리에 안수하고. 우리의 죄를 전가한다는 것입니다.

 

그 제사장이 손가락에 그 피를 찍어 여호와 앞 곧 성소의 휘장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_레위기4:6’

 

성소 휘장에 동물의 피를 7번을 뿌렸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죽으셔서 피를 흘리실 때 휘장이 완전히 찢어졌습니다. 7이라는 숫자는 유대인들에게 완전 숫자입니다.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가 휘장을 찢을 것이라는 것을.

 

제사장은 또 그 피를 여호와 앞 곧 회막 안 향단 뿔들에 바르고 그 송아지의 피 전부를 회막 문 앞 번제단 밑에 쏟을 것이며_레위기4:7’

 

그리고 이 피를 손가락에 찍어서 향단 뿔에 찍었습니다. 향단 뿔은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피가 아니면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도 듣지 않으십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에 바리새인들이 기도했는데 예수님이 너희 누구냐 라고 했습니다. 교회도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내 기도하기 바쁘고 내 자랑하기 바쁘고. 예수님의 보혈의 피가 아니면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은혜와 감사함으로 드리는 고백을 받으십니다. 그리고 짐승을 태워 죽이는 번제단에 피를 뿌렸습니다. 큰 짐승일수록 피가 얼마나 많이 나오겠습니까. 제사를 한 명이 드리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번제단 밑에 피를 계속 부으니 피가 질퍽질퍽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흘리신 보혈의 피를 상징합니다. 그 흘린 피가 우리의 삶을 적실 때 우리는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제사 드리면서 피가 발에 밟힙니다. 잊을 수 있을까요? 피가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속죄제의 마지막은 특이합니다.

 

그 수송아지의 가죽과 그 모든 고기와 그것의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과 똥 곧 그 송아지의 전체를 진영 바깥 재 버리는 곳인 정결한 곳으로 가져다가 불로 나무 위에서 사르되 곧 재 버리는 곳에서 불사를지니라_레위기4:11-12’

 

속죄제의 결론은 진영 밖입니다. 나머지 짐승을 진영 밖, 성막 밖, 재를 버리는 곳에서 태워서 버린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나아가자_히브리서13:11-15’

 

우리의 인생은 전부 진영 밖에 있습니다. 성문 안에 들어갈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천국에 입성할 수 없는 죄인들입니다. 그 곳으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피를 다 받으시고 하나님께 귀한 것을 드리고 예수님은 이 땅에서 인간 세상에서 죽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전 안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 밖에서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우리를 상징합니다. 죄인인 우리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십자가의 치욕을 기억하고 진영 밖으로 나가자고 합니다.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 당시에 타락한 종교지도자는 성전 안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보고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했습니다. 회개가 없으니까. 영원한 도성은 천국. 우리가 돌아갈 본향. 예수님은 그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있는 바리새인들은 천국에 입성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입성 할 때 천국 밖에서의 죄가 다 해결 받아야 합니다. 죄가 도말되어야 합니다. 죄가 다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공동체 밖에서 진영 밖에서 죄가 도말되어야 공동체 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죄가 있으면 거룩하신 하나님 보좌 앞으로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우리의 삶이 적셔져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회개입니다.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 죄에서 벗어나길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함이라_고린도후서5:21‘

 

우리가 하나님의 의가 될 수 있나요?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도록 해달라고 기도하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합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죄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거룩이고 성화입니다. 거룩과 성화는 인간이 도덕적으로 깨끗해야한다는 목표점이 아닙니다. 내 공로가 아닌 예수의 공로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를 힘입고 사는 것입니다. 회개는 내가 어제 죄를 지었는데 오늘 안 짓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모든 사역은 우리를 죄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죄에서 벗어나야 천국에 입성할 수 있으니까. 당신이 창조하신 원래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으니까.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로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_로마서5:21’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합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왜 죄가 왕 노릇하나요? 우리가 죄를 흠모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죄에 대해서 살아있기 때문에 죄가 왕 노릇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죄에 대해서 내가 죽기에 죄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은혜가 왕 노릇을 하면 나는 그 은혜를 사모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은혜가 왕 노릇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가 왕 노릇한다는 것은 나는 겉으로는 교회 다니고 열심히 살지만 은밀한 곳에서 늘 죄를 흠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_로마서6:20-23’

 

미국에 일어난 운동이 성령 운동입니다. 성령 운동은 회개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일어난 성령운동은 은사주의와 연결되어있습니다. 은사는 좋은 것입니다. 은사를 개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 은사. 그런데 그 성령운동의 끝은 은사주의인데 그 은사주의가 우리 인간의 성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너 개발해서 사업성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려. 이것을 위해서 성령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회개가 없는 성령운동.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내가 와이프를 사랑하는데 와이프가 나를 사랑하니 이것이것 해줄 거야. 이것과 같은 것입니다. 악한 것입니다. 장로님께 인사드리고 무언가 얻어내려고 하는 이면의 목적이 있으면 악한 것입니다. 성령운동이 이렇게 흘러갔습니다. 이것이 한국을 강타했습니다. 그래서 회개가 사라졌습니다. 진짜 성령운동이 아니기 때문에 회개가 사라졌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_요한일서1:9-10'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이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죠. 영접입니다. 가족들 전도할 때 영접해야 해. 영접 안하면 지옥 가. 이런 식으로 하는데 저는 그렇게 영접시킨 사람이 신앙생활 제대로 한 사람이 몇 명 없습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면 내가 그 사람에게 복음. 내 안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감사하고 감격해서 그 고백들이 영향을 끼치는 것이지 영접해. 이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한 가지 해결하지 못한 과제가 있습니다. 부흥입니다. 한 가지 풀지 못한 과제. 부흥이 무엇인지는 이론적으로 압니다. 부흥운동이 역사적으로 많았습니다. 우리나라에도 70년대에 회개운동으로 죄를 고백하고 자백하고 타락하지 않겠다. 세상과 손잡지 않겠다.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살겠다. 이것이 너 이렇게 살아. 메시지를 들어서 그런 건가요? 아닙니다. 성령이 임하여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저는 아직 이것을 경험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성령의 역사를 갈급합니다. 레위기를 공부하면서 왜 성령의 역사가 그 불같은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을까를 레위기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가스에 불이 들어오게 하려면 밸브를 열고 다 단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나님의 말씀하신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짐작으로 어디서 들은 것으로 복음을 지식적으로만 전해 들었습니다. 이 말의 결론은 우리의 삶에 그대로 죄가 있다는 것입니다. 죄가 있으면 결코 성령께서 함께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성령에 내 안에 오셔서 역사하고 싶은데 더러움이 있기에 죄의 주인인 마귀가 내 안에서 주인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죄가 그대로 있으니까 사망이 그대로 주인 노릇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짊어지라고 합니다. 고난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죄에서 자유하다는 것은 죄가 더 이상 나에게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은혜가 왕 노릇을 하고 있으니까. 성령께서 역사하셔야 죄에서 승리할 수 있고 성령께서 임하셔야 가정에 변화가 일어날 수 있고 이 땅에 어둠이 사라질 수 있고 성령께서 임하셔야 교회들이 진정한 참된 부흥을 맛볼 수 있는데 더 이상 성령을 사모하지 않습니다. ? 회개를 하기 싫거든요. 의도적으로 그러한 경향이 있습니다. 왜 회개를 매일 해야 하나요? 우리는 매일 성령이 필요하고 예수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매일 죄가 우리를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어보세요. 로마서만 읽어보아도 답이 나옵니다. 개인마다 교회 공동체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럴 때에 구원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죄에서 자유하면서 오는 것이 감사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기쁨입니다. 내가 죄에서 자유하게 되었구나.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로 죄에서 상관없는 존재가 되었구나. 돈이 내 인생의 주인 노릇한다면 늘 돈의 노예가 되어 살겠죠. 그런데 돈보다 큰 것을 가지고 있으면 돈에 대해서 자유 할 것입니다. 그 자유가 감사입니다. 기쁨입니다. 요즘 기쁨이 상실한 시대입니다. 구원의 기쁨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성령의 체험이 없으니까. 죄 사함의 기쁨을 모르니까. 회개 없는데 어떻게 구원의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을 수 있을까요? 십자가에서 흐리신 보혈이 회개를 통해서 내 삶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런 속죄제가 회복되길 원합니다. 내 삶이 죄에서 자유하게 되면 우리를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사용하십니다.

 

 

문의 / 윤덕현 전도사 010.9899.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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