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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0-02-02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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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2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아이를 낳은 여인의 규례

본 문 :

레위기12:1-8

오승주 목사

 

. 규례 : 하나님이 열어주신 살길

 

보통 레위기 설교를 하고 묵상하니 규례라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규례라는 단어를 들으면 속이 답답하고 어렵게 느껴지고 속박되는 것같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저는 레위기를 읽으면서 많이 느꼈습니다. 예전에는 레위기를 읽으면 듣기 싫다. 하라는 것이 많고 하지 말라는 것이 많고. 답답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이런 마음입니다. 자유롭게 편안하게 살면 되지 왜 규례를 중요하게 여기나.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규례라는 것이 없으면 신앙생활을 떠나서도 규례가 없으면 인생이 편하고 자유로울까요? 오히려 인생은 어렵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규례는 우리의 삶에 다 있습니다. 가정에도 질서라는 것이 있고 국가에도 법과 질서가 있습니다. 요즘 인문학에서 인성을 강조하는데 인성은 인문학적으로 중요한 단어인데. 인성의 한 파트를 이야기하면 동물들은 욕구가 생기면 다 합니다. 인간이 인성을 갖춘 존재라는 것은 욕구가 생기지만 바로 욕구를 바로 하지 않습니다. 사회적인 제도나 룰을 통해서 욕구를 분출을 합니다. 인성이 좋다는 말은 식욕이 있는데 아무거나 막 먹지 않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정당하게 먹는 것입니다. 성욕이 있다면 아무 곳이나 성욕을 분출하면 성범죄자 될 것입니다. 부부사이에 하나님이 정해주신. 이것이 인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규례가 우리에게 없으면 인간은 짐승처럼 되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규례들이 사회곳곳에 다 있습니다. 그래서 교육이라는 것을 받습니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가면서 규례들을 배웁니다. 건강한 규례가 있는 나라가 건강한 나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육을 받음으로써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규례들을 배우는 것입니다. 성경 읽을 시간이 꼭 필요한가요? 오늘처럼 공동체가 모여서 정해진 시간에 예배를 드리는 것이 꼭 필요한가? 요즘 인터넷에 좋은 메시지가 돌아다니는데 그냥 집에서 좋은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 됐지. 형식을 갖춰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그뿐인가. 이런 규례들도 있지만 우리의 삶의 크고 작은 규례들이 없다면 우리는 짐승처럼 살아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이런 규례들을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규례들을 배우는 것이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지금 중국에서 발병한 전염병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가 규례를 지키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죠.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4천 년 전에 레위기서를 통해서 규례를 다 정해 주셨습니다. 정결법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 아이를 낳은 여인의 규례

- 성경이 얼마나 과학적인가요?

- 정결기한의 규례 안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_40,80,할례의 규례

- 에덴동산의 선악과는 지금도 우리 삶에 존재합니다.

: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선택하며 살아야 합니다.

- 정결기한이 찬 후 정결의식을 통해 정결하게 될 것입니다.

: 십자가 보혈이 아니면 정결하게 될 수 없습니다.

 

성경이 얼마나 과학적인지 아세요? 비행기를 타고 입국할 때 특히 선진국인 경우 짐승과 접촉한 적이 있나 라고 물어봅니다. 선진국일수록 음식물, 짐승에 대해서 굉장히 엄격합니다. 바이러스가 무섭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세요? 가축과 가까이 한 적이 있는가? 라는 질문이 1세기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전에는 이런 질문이 없었습니다. 경우 세계적으로 1세기밖에 되지 않는 질문입니다. 오늘 아이를 낳은 산모에 대한 규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얼마나 놀라운 규례인지 모릅니다. 불과 1세기 전만 해도 병원 분만실에서 산모가 아이를 낳는데 여섯 명 중에 한 명 산모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 원인을 밝히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병원들이 산모가 아이를 낳고 죽고 난 후 시체를 24시간 안에 해부해야 하는 원칙이 있습니다. 어떤 한 의사가 도대체 산모가 왜 죽는가? 그 원인을 유심히 알아보고자 관찰을 했는데 의사들이 수술을 하고 피 묻은 손, 피 묻은 가운을 입고 와서 아기를 또 받는단 말이에요. 그래서 의사들로 하여금 해부를 하고 시체를 만지고 나서 손을 씻게 하고 새 가운으로 입고했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 달 후에 6분의 1이 아니라 40분의 1, 그 다음 달에 80분의 1일로 줄어들었습니다. 그 당시 의사 문화가 가운에 피를 많이 묻히고 의사가 실력 있는 의사입니다. 손을 위생적으로 씻지 않고 하루에 몇 건했어. 기본적인 위생조차 관리가 되지 않을 때가 불과 1세기 전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4천 년 전 레위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먹을 만한 짐승이 죽은 때에 그 주검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그것을 먹는 자는 그 옷을 빨 것이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그 주검을 옮기는 자도 그의 옷을 빨 것이요 저녁까지 부정하리라_레위기11:39-40’

 

성경이 비과학적인가요? 이미 성경은 4천 년 전에 손을 씻는 법을, 옷 갈아입는 법을 가르쳐주시고 시체를 만진 손으로 거룩한 성물을 만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4천 년 전에 이미 정결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경이 비과학적인가요? 1세기 전에 손 씻는 법도 모르는 사람이 1세기 전에 성경을 비과학적이라고 했습니다. 전쟁으로 죽는 사람보다 감염으로 죽은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사람이 많이 죽었다고 하지만은 한 해에 독감으로 죽는 사람들, 바이러스로 죽는 사람들이 어마한 인구입니다. 레위기에 하나님은 손을 씻으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손을 씻는 일이 얼마나 간단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네팔에 가보시면 알지만 손을 씻지 않습니다. 일하고 와서 안 좋은 것을 만지고 와서 그대로 밥을 먹습니다. 레위기13:46에 부정한 시체를 진영 밖으로 격리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은 레위기에 격리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감염되면 최고의 치료법은 격리입니다. 우리나라는 예전에 국도 같이 먹고 밥도 같이 먹고 전염병에 취약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몇 번의 경험들을 통해서 손도 잘 씻고 소독도 잘하고 밥도 따로 먹는 문화가 생겼습니다. 이것을 4천 년 전에 레위기에 정결법을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비과학적입니까? 오늘 산모가 아이를 낳는 규례는 40일간에 정결기한을 두라고 합니다. 그리고 여자아이를 낳으면 80일간의 정결기한을 두라고 합니다. 40일의 의미는 예수님이 40일간 금식을 하셨습니다. 고난을 상징하고 인내를 상징하고 하나님 앞으로 내 마음을 돌이키는 연단의 과정을 상징합니다. 40일이 끝나고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40일의 의미는 우리나라도 아이가 태어나면 금줄을 달아서 아기를 낳았으니 아이를 보호해야 해. 외부인은 들어오지 못하여 보호를 하였습니다.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자가 왜 80일일까요? 아무도 신학자들이 밝히지 못합니다. 모두가 추론해서 그 당시에 유대사회에서 국가 인구를 셀 때도 여자아이는 세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시대에 여자아이를 낳았기에 산모의 슬픔을 아시고 격리 시간을 길게 하시는 것이 아닌가. 이 때 말씀도 묵상하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도 묵상하도록 하나님이 주셨지 않나. 이 당시에 아이를 낳으면 큰 출혈이 있습니다. 이 출혈을 부정하다고 성경에는 말하고 있습니다. 피를 쏟는 것은 부정한 일이며 죽음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서 죄인인 상태인데 피가 오염되었다고 성경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흠 없는 비둘기를 잡아서 피를 쏟게 하십니다. 우리의 죄를 이것으로 전가를 시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피를 쏟으셨습니다. 양 손, 발등에 못을 박아서 피를 쏟고 다 안 쏟아지니 옆구리에 창으로 찌릅니다. 죽었나 안 죽었나 확인하기 위해서 창을 찌른 것 같지만 하나님은 제사법에 의해서 온 몸의 피를 다 쏟게 하셨습니다. 십자가 밑에 예수님의 피가 흥건하게 다 적시도록. 그 보혈의 피가 우리의 죄를 담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월경할 때나 부정할 때에는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지도 만지지도 못하게 하였습니다.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하나님과 연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남자아이의 할례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할례는 아이의 정결함. 포경수술도 있지만 이 남자아이는 내 백성이야 상징적으로. 그래서 다른 이방남자가 유대인의 여자를 얻으려면 반드시 할례를 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40일 혹은 80일 동안에 정결기한을 두었습니다. 피가 깨끗해지고 나면은 정결예식을 드리게 했습니다. 이것이 번제와 속죄제 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설교를 준비하면서 레위기서는 구약의 율법서 중에 최고의 정점에 있는 율법서입니다. 레위기를 읽으면서 다 답답함을 느낄 만큼 레위기서는 율법 중의 율법이라고 합니다. 그 레위기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정한 것이 있고 부정한 것이 있다고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선택하라고 합니다. 막 살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정한 것이 있고 부정한 게 있으니 선택하면서 살라고 합니다. 아무거나 잡아먹고 아무거나 만지면 안 된다고. 이것은 부정한 것이고 부정한 것을 먹으면 감염이 되고 위험하다고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바다 생물 중에 지느러미가 없고 비닐이 없는 것을 먹으면 기생충이 많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정한 것, 부정한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레위기서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선택권을 주시는 것입니다. 먹으면 감염되고 안 되고 이것을 가르쳐주시면서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순종을 선택할래? 불순종을 선택할래? 산모가 아이를 낳고 돌아다니면 위험합니다. 저희 교회도 아이를 낳으면 50일 넘어서 교회에 오라고 합니다. 그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참지 못하고 내 욕구대로 욕망대로 한다면 하나님이 정한 기한을 하지 못하면 성소 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제가 많이 질문 받는 것 중 하나는 왜 하나님이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만들어놓았냐는 것입니다. 없으면 자유롭게 편하게 살 텐데. 왜 규례를 만들어서 정한 것, 부정한 것을 구별해서 살라고 하느냐 라고 합니다. 선악과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규례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거나 다 먹게 됩니다. 아무거나 먹고 시체를 만지고 만진 손으로 음식을 먹고 그렇게 살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는 거룩한 존재로서의 삶이 아니라 짐승과 똑같은 삶을 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규례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오늘 날도 똑같습니다. 오늘 날 에덴동산의 선악과는 지금도 우리의 삶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죄악투성이 입니다. 아무거나 먹으면 그 결과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쾌락을 함부로 만지고 먹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내 몸도 병들고 내 마음도 병들게 됩니다. 영의 양식이 아니면 내 마음은 낙심, 실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도 에덴동산 선악과가 존재합니다. 선택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인격을 주시고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우리를 존엄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행동양식이 있어야 합니다. 법과 질서가 있어야 하고 우리가 스스로 사고하고 생각하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짐승처럼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선택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살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살 것인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묵상을 하면서 시작해야 할까. 아니면 내 유익을 위해서 살아야 할까? 이것을 결정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지금도 에덴동산에 선악과가 있습니다. 매일 우리는 선택하고 살아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여인이 임신하여 남자를 낳으면 그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곧 월경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 여덟째 날에는 그 아이의 포피를 벨 것이요 그 여인은 아직도 삼십삼 일을 지내야 산혈이 깨끗하리니 정결하게 되는 기한이 차기 전에는 성물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 것이며_레위기12:1-4‘

 

정결하게 되는 기한이 차지 않으면 성물을 만지지도 못하고 제사도 못 드리는 것입니다. 정결하게 되는 기간 40일 혹은 80일은 우리의 삶의 여정가운데 우리의 옛 사람을 처리하는 연단과 시련을 상징합니다. 심지어 예수님도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하셨습니다. 정결하게 되는 기간, 연단을 통해 주님께 우리의 마음이 향하도록 하는 기간입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내 마음을 돌이키는 시간입니다. 아이를 낳고 40일 동안 집에 있으면서 많은 생각들을 할 것입니다. 그 정결기한이 끝나자마자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요? 40일 동안 연단을 받고 시련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있지만 우리의 삶을 거룩하게 하고 우리의 삶을 정결하게 하고 깨끗하게 할 분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그리스도의 피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40일 동안 연단을 해도 제사를 드리지 않으면 우리는 새롭게 태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정결기한과 정결예식을 아이를 낳은 산모에게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정결의식은 무엇일까요? 40일 혹은 80일이 지나고 제사를 드렸는데 이 제사가 그냥 번제와 속죄제인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정말 많이 감사하고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나면 다 죽어야 합니다. 아들을 낳으나 딸을 낳으나 다 소망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노예였습니다. 그래서 자녀를 낳아도 기쁨이 없었습니다. 아이도 노예로 살아야 하니까 슬퍼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제 그러지 않아도 된단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기 때문에 제사를 드리면 된단다. 너희 아이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단다. 그래서 우리가 아이가 태어나서 이 아이를 40일 동안 보호하고 처음 교호에 나와 축복기도를 받고 유아세례를 받는 것은 엄청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비둘기라도 잡아서 양 살 돈이 없으면 비둘기라도 잡아서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너희가 아무리 해도 안 되지. 우리는 늘 세상에서 실패하고 실수하고 넘어지고 좌절합니다. 낙심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정결의식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아이를 낳고 낙심한 상태에 정결 의식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정결의식이 무엇인가요? 십자가 보혈의 은혜입니다. 이 정결의식을 드리면 된단다. 괜찮아. 이 말 인 것입니다.

 

여자를 낳으면 그는 두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월경할 때와 같을 것이며 산혈이 깨끗하게 됨은 육십육 일을 지내야 하리라 아들이나 딸이나 정결하게 되는 기한이 차면 그 여인은 번제를 위하여 일 년 된 어린 양을 가져가고 속죄제를 위하여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회막 문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여호와 앞에 드려서 그 여인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리하면 산혈이 깨끗하리라 이는 아들이나 딸을 생산한 여인에게 대한 규례니라 그 여인이 어린 양을 바치기에 힘이 미치지 못하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져다가 하나는 번제물로, 하나는 속죄제물로 삼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가 정결하리라_레위기12:5-8’

 

. 정결의식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 기독교는 행함의 자랑의 종교가 아닙니다.

- 기독교는 연약한 인간이 계속되는 실패 속에서도 다시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올 수 있는 은혜의 복음입니다.

 

이 정결의식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오늘 찬송가 28장을 같이 불렀는데 한량없이 자비하심 측량할 길 없도다. 하나님의 품을 떠나 죄에 빠진 우리를 예수 구원하시려고 보혈 흘려주셨네. 우리의 맘은 연약하여 범죄 하기 쉬우니 하나님이 받으시고 천국 인을 치소서. 복음을 가졌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서 예수님처럼 되자 라는 말이 좋은 말이지만 잘못하면 스스로 신이 되어서 완벽하고 그 완벽함을 가지고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고 그러는 동안 하나님의 품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교만하고 오만해져서 시편 131편 말씀처럼. 그래서 하나님의 품에서 멀어지면 어느 순간부터 깨끗한 척해야 하고 은혜 받은 척해야 하고. 많은 영적인 지도자들이 처음부터 그랬을까요? 처음에는 얼마나 신실했는데요.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그 은혜가 좋아서 감사하며 찬송하며 주어진 사명을 겸손함으로 감당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마음에 교만함, 오만함이 찾아들어오고. 내가 우리 가정 복음화 시켰어. 내가 이 교회를 부흥 시켰어. 그 순간부터 은혜가 사라집니다. 은혜를 하찮은 기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혼란한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잘못하면 인간이 스스로 노력해서 거룩해 질 수 있고 완전해질 수 있는 것처럼 들리는데 이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행함을 자랑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을 믿고 이 만큼 변화되었다고 자랑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연약한 인간이 계속되는 실패 속에서 다시 십자가 앞으로 나올 수 있는 은혜의 복음입니다. 계속되는 실패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회복할 수 있다는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이 복음입니다. 우리는 계속 되는 실패를 경험합니다. 아이를 낳는 것과 같은.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_히브리서12:28-29‘

 

우리의 죄악을 태우는 소멸시키는 불. 은혜를 받을 때.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_로마서12:1-2’

 

어떻게 마음을 새롭게 될 수 있죠? 하나님 앞에 산제사로 영적예배를 드릴 때 그 은혜가 임할 때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 질 수 있습니다. 마음이 새로워지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정결예식의 규례는 바로 하나님께 은혜를 받는 시간을 이야기합니다. 십자가는 저 멀리 예수님을 처음 믿었을 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늘, 지금, 실패가운데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이 십자가의 은혜, 이 규례가 우리의 삶에 있어야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자가의 은혜를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낙심되지. 고통스럽지. 이 정결의식으로 나오면 너희는 살 길이 있어. 살길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의 실패의 마음을 적시는 시간, 은혜가 내 영혼에 와서 실패하고 낙심한 마음을 적셔서 다시 회복하고 다시 주님을 바라보고 다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런 힘을 주는 은혜의 시간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성경 읽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읽고 기도하는 것은 40일의 정결기한입니다.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해야겠죠? 그러나 진짜 은혜는 무엇이냐면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음성이 내 마음과 내 삶에 들어와서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고 내 죄악들을 태우고 하나님을 향하는 마음으로 다시 회복하는. 지금 우리가 한국교회가 위기라는 말은 재산이 없어서, 건물이 없어서 위기 아니고 이 은혜가 소멸되고 있어서 위기라는 것입니다. 부정한 것을 만지고 그것으로 인해 우리가 죽게 되는. 그런 우리를 살리는 시간. 무엇으로 살릴 수 있나요? 은혜가 아니면. 이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규례로 있어야 합니다. 일주일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시간이 없다면 그냥 우리는 종교인입니다. 무엇인가가 우리의 마음을 강팍하게 만들고 우리의 마음을 변질되게 만들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향하는 마음을 빼앗아가고 있는 강팍. 이번에 주일학교 수련회에 갔더니 아이들이 기도시간에 기도를 하는데 이것은 교회에서 분명히 기도해주셔서 그래. 강팍한 마음이 녹을 리가 없어. 우리의 아이들이 기도를 하고 찬양을 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니 강팍한 마음이 교회의 중직자들의 기도로 녹았구나. 이것이 느껴졌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은혜가 와 닿는 시간.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규례가 없으면 세상에서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규례가 있어야 우리가 구별되어 살 수 있고 거룩한 존재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죄악 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새 힘을 얻는 그 시간이 있느냐. 하나님의 음성 듣는 시간이 사라졌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 한단다. 너는 내 아들이야. 괜찮아. 힘내. 아가서 말씀처럼 일어서서 나와 함께 가자. 그 음성을 듣는 시간이 사라졌습니다. 그 음성이 귀찮게 들리고 듣기 싫은 잔소리로 들리는 이것이 병든 마음의 상태이겠죠. 자녀들이 짐승 죽은 것 만지고 더러운 것 만지고 더러운 그 손으로 집에서 와서 밥 먹고 얼굴만지고 하면 좋겠어요? 손 씻으라고 하죠. 이것이 하나님이 자녀를 향한 끔직한 사랑이죠. 아이들이 얼마다 듣기 싫어합니까. 이빨 닦으라. 손 씻으라는 말 듣기 싫죠. 커서 알죠. 건강하게 자란 것은 부모님이 우리에게 규례를 만들어주셔서. 하나님도 똑같습니다. 우리를 어둠의 죄악가운데 건져내신 것이 규례입니다. 우리를 건지시는데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가 우리를 구별되어 벗어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은혜의 규례가 우리의 삶에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교회에는 이 은혜의 규례가 있어야 합니다. 이 은혜의 규례가 사라지면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은혜를 사모하고 은혜를 받으십시다.

 

문의 / 윤덕현 전도사 010.9899.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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