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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0-02-16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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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6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유출병에 관한 정결법과 혈루증 여인의 믿음

본 문 :

레위기15:1-33

오승주 목사

 

. 유출병은 어떤 병인가?

- 유출(Discharge)이란 말 그대로 어떤 물질 등이 흐르거나 방출되어 밖으로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 몸에서 방출될 수 있는 것은 땀, , 고름, 대소변, 정액, 생리 등입니다. 고대 히브리인 들은 그 중에서 몸에서 필요하나 비정상적인 상태로 나가는 것을 유출이라 하였고 그러한 현상이 계속되는 병을 유출병이라 하였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이라는 것을 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어떤 결과, 목표, 응답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도록 한국교회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좋은 목표가 있으면 좋은 과정이라는 것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되기 위해서 이렇게 살아야지. 이런 목표가 있습니다. 인간은 동기부여에 따라 삶의 모양들이 달라지게 됩니다. 그런데 과도하게 어떤 결과나 목표에 집착을 하면 올바른 과정이 아닌 그릇된 과정들이 생기는 것을 보게 됩니다. 과도하게 어떤 결과나 목표를 위한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그 과정에 수단과 방법을 가르지 않거나 어떤 결과를 우해서 불법을 용납하거나 묵인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얻어내는 결과, 목표 이후의 삶이 무너지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목회자들이 큰 목표를 두고 교회를 했는데 그 목표가 이루어지고 나서 철저히 무너지는 것을 보았고 개인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신앙생활은 매일매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잘못된 목표를 세우고 살면 우리의 삶의 고통의 연속이 계속 찾아올 것입니다. 낭패와 실망을 당하기도 하고 그런 낭패와 실망을 당하는 삶이 반복되면 그릇된 길, 죽음의 길, 어둠의 길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조금씩 하나님이 빛을 비춰주는 것으로 나와야 나 뿐 아니라 가족들도 살 수 있을텐데. 자꾸 그릇된 길로 가는 것은 잘못된 목표, 잘못된 결과를 과도하게 집착해서 살게 되어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짜 신앙생활을 하면서 바라보아야 할 목표, 얻어야 하는 결과가 무엇일까요? 성경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삼위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진정으로 신앙생활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는데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우리가 살 길, 구원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보내주신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 다시 말해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 그 결과가 천국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향상 하나님과 연합을 바라보고 사모하고 그 연합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데 우리는 굉장히 연약 합니다. 우리가 연약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연약한 우리에게 규례를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연합할 수 있는 길을 주셨는데 이것이 규례들입니다. 오늘 마지막은 유출병에 대한 규례입니다. 유출은 어떤 물질이 흘러가는 것, 방출되어서 밖으로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 몸에서 방출될 수 있는 것을 무엇이 있나요? , , 콧물, , 여자들의 생리, 남자들의 정액, 상처가 나서 고름이 생겨서 나오기도 합니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몸에 필요하나 그것이 비정상적인 상태로 나가는 것을 유출이라고 하였고 그 현상이 지속되는 것을 유출병이라고 했습니다. 유출병의 대표적인 병이 신약성경 마태복음, 누가복음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혈루증을 앓은 여인입니다. 피가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흘러나오는 것. 이것을 유출병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이 배경을 가지고 본문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 유출법에 관한 정결법

- 남자의 유출과 유출병_레위기15:1-18

- 왜 성경은 유출병에 관하여 엄격한 가

- 여자의 유출_레위기15:19-33

- 유출병은 불결한 것인가 불쌍한 것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그의 몸에 유출병이 있으면 그 유출병으로 말미암아 부정한 자라_레위기15:2’

 

번역이 잘못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유교사상이 강한 나라이기에 성경을 번역할 때 거북스러운 말을 부담스럽기 않게 번역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래도 너무 과하게 번역을 잘못된 부분입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몸은 히브리어 원어로는 성기를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해 이 남자의 성기에 유출병이 있다는 말은 단지 정액인가요? 고름 같은 것입니다. 남자의 성기에서 고름이 왜 나오지 생각을 해보다가 고름이 있어서 병이 된 것입니다. 제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남자의 성기에서 왜 고름이 나오는지 인터넷에 서 찾아보았습니다. 고름이 나오는 경우는 성병이 걸렸을 때 나옵니다. 성기에서 고름이 나오면 부정하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 성병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병은 어떻게 걸리나요? 무분별하게 성을 사용할 때, 그릇된 곳에서 사용할 때, 건강하게 사용하지 않을 때 성병이 걸립니다. 그 당시에는 비뇨기과가 없었습니다. 이 고름이 생겨 죽기도 하고 그 당시의 자료들을 찾아보니 너무 많은 사람들이 성병으로 죽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 이 고름이 흘렸던 남자가 눕는 자리에 누가 앉으면 그 사람도 부정하다고 합니다. 그 사람도 옷을 빨고 몸을 씻고 저녁까지 부정할 지니. 저녁까지 격리하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의자에 앉으면 그 안장도 부정하고 그 안장에 앉은 사람도 부정하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도 옷을 빨고 몸을 씻고 저녁까지 부정할 지니. 그 사람이 먹었던 질그릇은 깨버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무그릇은 씻어서 사용하라고 합니다. 그 말은 성병 걸린 사람이 모든 닿았던 것이 다른 닿으면 옷을 빨고 씻으라는 하나님이 정결법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부정한 사람과 접촉한 사람은 옷을 빨고 옷을 씻어야 한다는 말이 이 표현만 오늘 15장에만 10번 나왔습니다. 제가 성병에 걸리면 저와 접촉이 불가능하고 옷을 빨고 씻어야 하고 하루 종일 격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 정결예식을 강조하였습니다. 성병이 걸린 사람은 옷을 빨고 씻고 나서 일주일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격리가 되고 몸이 좀 나으면 집비둘기 2마리 산비둘기 2마리를 잡아서 하나는 속죄제, 하나는 번제를 드리게 하였습니다. 보통 번제, 속죄제물은 흠 없는 양이나 소나 이런 것이야 하는데 왜 비둘기였을까요? 제 해석으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성병에 걸려서 빈번한 제사를 드려야하기에 집비둘기, 산비둘기를 하시지 않았을까. 성경은 이 유출병에 대해서 엄격한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난잡한 성생활을 했을까? 그럴 수도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스라엘이 제사장의 직분을 가야할 가나안 땅. 그 가나안의 신화에 보니 바알신이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섬기는 대표적인 신이 바알이었습니다. 바알은 다산을 상징합니다. 바알은 누구의 아들이냐면 다간의 아들이었습니다. 다간은 비옥의 신, 풍요의 신이었습니다. 유프라데스 계곡에서 숭배하던 비옥의 신이 다간인데 그 다간의 아들이 바알입니다. 그래서 바알은 자연 신이라고 해서 자연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가나안 땅의 모든 사람들이 바알 신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가나안신화에 보니 바알 신상을 만들고 성직자가 있는데 그 사람들이 바알을 섬기는 방식이 순결한 처녀들, 부족의 딸들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 여자와 성직자가 신상 앞에서 성 교섭을 합니다. 그것이 제사입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고대 근동지방에 있었던 우상숭배의 현장이었습니다. 난잡한 성 관계를 바알 신상 앞에서 하는 것입니다. 많은 축복을 받으려고 다산의 축복, 풍요의 축복을 받으려고 얼마나 많은 부족들이 딸들을 바쳤을까요? 거기에 들어가서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예방차원에서 난잡한 성생활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여호수아나 출애굽기에서 공부하겠지만 가나안은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상을 상징합니다. 육신적으로 성관계를 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육신적으로 타락했어. 이런 개념이 아니라 가나안은 세상을 상징하는데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나요? 원래 하나님과 연합하다. 연합을 결혼으로 가르쳐주십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을 신부로,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실제 남편과 아내가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는 가정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 가정이라는 제도를 만들어서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신랑으로 맞이하여야 합니다. 교회는 신부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과 연합하던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멀어지고 우상과 배후의 귀신과 연합하는 것입니다. 지금 성경은 귀신과 연합하는 것을 성관계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밀접한 관계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과 결혼생활을 하는 것. 이것이 불신자 상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애굽에서 건진 받은 남자들에게 올바른 성의식을 심어줌과 동시에 영적인 메시지도 전달하고 계십니다. 성이라는 것이 제도 안에서 올바르게 사용하면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습니다. 제도권 안에서 성은 축복되고 만족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도를 떠나서 하나님을 떠나서 성을 잘못 사용하고 이상한 곳에 사용하면 재앙이 될 수 있습니다. 그 결과가 성병, 고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결혼해서 살면 축복이지만 우상과 연합하고 우상과 결혼해서 살면 재앙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여인의 피의 유출이 그의 불결기가 아닌데도 여러 날이 간다든지 그 유출이 그의 불결기를 지나도 계속되면 그 부정을 유출하는 모든 날 동안은 그 불결한 때와 같이 부정한즉_레위기15:25’

 

여인의 피의 유출은 생리를 말합니다. 성경은 여인의 생리를 부정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면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왜 부정하다고 하시냐. 모든 여자가 하는 생리를. 이 본문은 하나님이 우리 여자들을 보호하려는 마음도 있습니다. 히브리 사회는 모계사회입니다. 유대인 사회는 철저히 모계사회입니다. 모계사회가 좋은 것 같지만 좋은 것이 아닙니다. 여자들이 일을 많이 하는 사회입니다. 권위의식이 있는 히브리인들은 집에 가면 손 하나 까딱하지 않습니다. 장작 패는 것도. 못 박는 것도. 생리하는 기간에 일을 하면 약해진 신체에 감염이 되고 상처가 나면 위험할 것입니다. 그래서 고대 근동지방에 수많은 여인들이 아이를 낳고 죽기도 하고. 역사 기록에 보니 불결한 감염 문제 때문에. 산부인과가 없으니 무언가 감염이 되면 너무 많은 여인들이 죽었습니다. 생리를 하는 기간에는 일주일동안 쉬어라 라고 법을 정했습니다. 그래서 남자들에게 부정한 때야. 이때에는 성관계도 하면 안 돼. 그 전에는 무식하기에 욕구를 풀려도 아무 때나 성관계를 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여인들이 죽기도 하고 감염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법으로 지정하셨습니다. 지금은 의료기술이 발달해서 하루에 생리휴가를 주는데 아주 잘 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 그것도 지키시는 것이고 생리기간이 끝났는데 계속되는 것은 정상적인 생리가 아니라 자궁출혈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접촉 된 것도 문제가 되고 옷도 빨아야 하고 목욕도 해서 저녁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이것에 대해서 까다롭게 이야기하셨습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한다고 15장 마지막 절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히지 않도록 부정에서 죽지 않기 위해서 이런 법을 제정하셨다고 합니다. 부정하면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우리는 거룩해야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거룩은 영적인 거룩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교회가 실수하는 것은 영적인 거룩만 가르쳤습니다. 교회 가서 뜨겁게 기도하고 성령이 임하면 그것이 거룩하네. 성경 많이 알고 있어. 그럼 거룩하네. 이렇게 영적인 분야만 거룩하다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거룩은 생활 전반에 걸쳐서 우리의 사회 문화 속에서 우리의 모든 삶 가운데 거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공동체 거룩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 거룩해야 합니다. 가정이 거룩해야 가정은 행복할 수 있고 태어난 자녀들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거룩은 육신, 삶의 행동 말까지도 적용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을 회복하고 나서 40년 동안 광야에서 거룩이 회복되고 나서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그들의 힘은 막강했습니다. 거룩으로 무장했기 때문에. 가나안 땅의 사람들이 반할정도로. 저들과 하나님은 함께 하시는 구나. 저들은 우리와 다르구나. 저들의 삶은 무언가 다르구나. 우리는 사람들이 많이 죽어나가고 타락하고 번잡하고 지저분한데 저들은 축복되었지. 거룩은 힘입니다. 기독교인에게 교회에게 거룩은 막강한 능력이자 파워입니다. 교회는 거룩해야 합니다. 거룩을 잃어버리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목사는 거룩해야 합니다. 이 거룩을 잘못 이해하면 안 됩니다. 신앙의 내용이나 본질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신앙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 환경도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환경의 변화도 있어야 합니다. 매일 술을 드시면 매일 술에 취해 있으면 어떻게 성경을 읽고 어떻게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술을 매일 먹는 환경을 바꿔야겠지요? 광주에 있을 때 심방을 많이 갑니다. 어떤 집은 신발을 벗고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이 분이 청소를 했는데 청소가 안 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집이 더러우면 집에서 안식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집에 왔을 때 짜증이 납니다. 그러면 환경이 내 정신과 마음에 영향을 줍니다. 예를 드는 것입니다. 신앙은 환경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죠?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리에 가지 않으면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방을 가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 많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저는 주님을 너무 사랑하는데 저는 복음이 너무 좋은데요 저는 예배가 너무 좋은데요.’ ‘그럼 예배드리러 오세요.’ ‘그런데 너무 피곤해서요.’ 그 때 하는 말이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당신의 믿음이 옛날에는 살아있는지도 몰라도 지금은 죽은 믿음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의 환경도 바꾸는 것입니다. 왜 성경이 안 읽어지지? 환경의 문제입니다. 신앙생활을 잘하기 위해서는 환경의 변화도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시고 언약을 주시고 정결법으로 환경개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성생활하면 안 되는 거야. 함으로 만지는 거 아니야. 다 가르쳐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삶에 거룩이 회복되어야 신앙생할을 하는 저와 여러분에게 파워가 됩니다. 하나님이 진짜 함께 하시는 구나. 그러나 우리는 말만 살아서 복음 이야기하고 예수 믿으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마음이 변하고 말과 행동도 변화됩니다. 매일 욕을 하는 분들은, 차타고 운전하면서 욕하는 분들은 계속 그 삶이 반복되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바꿔야 합니다. 그것이 바뀌지 않으면 그런 환경 속에서 내 영혼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오늘 영상에서 본 것처럼 바뀌어야 합니다.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님이 마약하고 이혼하고. 완전히 실패한 상황인데 좋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과정입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어 점차 단란한 과정을 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환경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이 유출병은 성경에서 불결하다. 부정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유출병에 걸린 저희를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주셨습니다. 우리가 유출병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은 아시는 것입니다. 유출병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둘기를 잡아서 제사를 드리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이 거룩한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데 거룩한 삶이라는 것은 건강한 삶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삶이 건강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연합해서 살아가는 것 진짜 어렵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유출병 같은 삶을 계속 사는 것입니다. 이 유출병이 어떤 병이냐. 오늘 본문은 정액을 흐려야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정액을 흘리면 부정하다고 역설적인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여자의 유출로 인해 부정할 수도 있고 어떤 면에서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축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몸이,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과 연합했을 때에는 의의 무기가 될 수 있고 우리의 몸이 우상과 연합해서 살면 사단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몸이지만 똑같은 정액이고 똑같은 피지만 하나님과 연합했을 때에는 축복의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이고 귀신과 연합하면 악한 일의 도구가 됩니다. 같은 돈이어도 의인이 쓰면서 좋은 돈입니다. 그러나 사기꾼이 돈을 악하게 쓰면 어둠의 돈이 됩니다. 의의 병기가 되냐. 어둠의 병기가 되냐.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 법이 신약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 혈루증 여인의 마음

- 유출병에 걸린 죄인들 : 무엇이 진짜 이 시대를 악하게 하는 유출인가?

- 정결법 : 혈루증 여인의 믿음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_마가복음7:20-23’

 

신약에 와서 예수님의 유출에 대한 해석은 우리의 마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생활로 가르쳤지만 신약에 와서는 마음의 변질을 가리키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우상을 사랑하고. 마음의 음란을 이야기하셨습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합니다. 제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오늘 마가복음의 본문에 나오는 음란,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속임, 음탕, 질투, 비방, 교만, 우매함 중에 나는 몇 개가 있을까. 다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은연중에 삶으로 흘려 나오고 세상을 이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세상이 왜 변질되고 부정과 부패가 가득하나요? 다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이 아닙니까. 정치인들 보세요. 표 받으러 올 때는 굽신 굽신 최선을 다해서 청결하게, 정직하게. 국회 의원되어서 변질됩니다. 그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들을 더럽게 만듭니다. 사람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 자연재해도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서 나오는 더러운 것들. 레위기에 따르면 그런 사람은 다 부정하다고 합니다. 이런 부정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이런 부정에서 한 여인을 선택하셨습니다. 그 여인이 혈루증을 앓는 여인입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_마가복음5:25-29’

 

혈루증 앓은 여인은 12년을 앓았습니다. 이 혈루증은 피가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12년 동안 피가 불규칙적으로 흘러나왔습니다. 고대 히브리 사회에서 생리할 때에는 엄청 부정하다고 생각을 하는데 어떤 생활을 했을까요? 이 지역사회에서 매도당했을 것입니다. 거의 나병환자 취급을 받았을 것입니다. 생활을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7일 동안 모든 것을 멈춰야 하는데 아무것도 만지지 못하고 밥도 잘 못 먹었을 것이고. 이 여자는 늘 위축되어 고립되어 혼자 살았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벗어나려고 수많은 의사를 찾아갔는데 괴로움밖에 없었습니다. 치료를 받을 수 없어서. 도리어 이 병이 커졌습니다. 이 혈루증 여인은 우리를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사는 죄인을 상징합니다. 저와 여러분을 이야기합니다. 마음의 혈루증을 가지고 있는, 계속해서 죄가 쏟아져 나오는, 그런 죄인의 삶을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수많은 의원들도 찾아가보지만 해결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던 차에 이 여인의 귀에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예수라는 사람이 죄인들과 밥도 먹고 죄인들을 고쳐주고 죄 사함 받게 해준데. 그가 메시야래. 그가 그리스도래. 이 여인이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예수님이 우리의 마을을 지나간데. 이 여인이 예수님을 만지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만지만 예수님도 부정 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나가는데 그 무리들 사이로 들어가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도 부정했을 것입니다. 자기 몸에서 능력이 빠져나간 것을 아시고 그 여인을 치료하셨습니다. 오늘 성경에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하나님이 이 혈루증 여인에게 믿음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옷을 만지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옷을 만지고 치료를 받았습니다. 혈루 근원이 말랐다고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정해지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죄를 예수님이 다 짊어지셨습니다. 이 여인의 재앙과 같은 저주와 같은 혈루증을 예수님에게 건져버렸습니다. 전가시켰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죄를 우리의 마음에서 나오는 죄를 건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부정을 가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부정을 해결하실 수 있고 우리 마음의 유출병, 육신의 유출병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제가 찬송가 272장을 불렀습니다. 272장은 좋아하는 찬송입니다. 제가 교역자가 되고 목사가 되고 괴로운 시절을 3-4년을 보냈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운 시절을 3-4년을 보냈습니다. 기도가 안 되는 상태. 기도하면 된다는 것을 아는데 기도가 안 나옵니다. 예배당에서 예배드리고 있는데 혼자 고립되어있는 것 같았습니다. 멍합니다. 너무 괴로웠습니다.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제어가 안 될 때. 그럴 때 기도도 안 되고 성경 읽기도 싫으니까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272장을 만났습니다. 이 찬송을 부르는데 얼마나 눈물을 많이 흘렀는지 모릅니다.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예수께로 나갑니다. 낭패와 실망 당한 뒤에 예수께로 나갑니다. 그렇지. 예수님께서는 내가 낭패와 실망 당할 것을 알고 계시는구나. 실망한 이 몸 힘을 얻고. 예수님께로 가서 실망한 이 몸이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의 길을 벗어나서. 이 찬송을 부르는데 이 혈루증 여인의 마음이지 않았을까. 우리의 마음에 계속 실망할 일이 생깁니다. 육신이 얼마나 연약한지. 사실 육신보다 연약한 것은 마음입니다. 육신은 보호라도 하지요. 아프면 병원이라도 가죠. 허약하면 보약이라도 지어먹죠. 마음은 보살피지 않습니다. 세상에 살면서 이 마음이 계속 우상에게 빼앗깁니다. 오늘 유출병에 걸린 여인에게 유출병에 걸린 저희에게 길을 제시해주셨습니다. 비둘기가지고 제사 지내라는 것입니다. 어디서나 예배당이 아니더라도 어디서나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악독, 미움은 계속 생기는 것입니다. 그 때마다 어디서나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답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으면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아야 우리 안의 영원한 기쁨이 회복이 되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아야 십자가의 은혜를 주시고 예수님을 붙잡아야 우리가 복 받을 말씀을 주시고 예수님을 붙잡아야 영혼한 집을 바라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무엇인가요? 오늘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대단한 삶을 살 수 있나요? 성경은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는 것. 거기에 구원이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는 것. 여러분의 집에서, 직장에서, 마음에 괴롭고 힘들 때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는 것. 예수님의 옷자락을 왜 붙잡으라고 하나요? 왜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아야 살 수 있나요? 우리가 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하고 도움을 구할 때 바지가락이라도 붙잡자나요. 예수님에 대한 사모함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 앞으로 당당히 나갈 수 없었던 혈루증 여인이 그래서 그냥 주님의 옷자락을 만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렇게 가까이 사모하는 마음으로 매일매일 예수님을 붙잡을 때 우리의 마음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편안함을 주시고 기쁨을 주시고 은혜를 주신다는 사실. 부정한 흐름이 우리의 마음에서 멈추고 우리의 마음에서 하나님 은혜의 생수가 흘러나오는, 우리의 삶이 매일매일 신앙생활을 할 때 가능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세상과 연합하여 살았던 우리가, 죄악과 연합하여 살았던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연합하여 살기 위해서 매일 옷자락을 붙잡는 신앙이 회복하기를 축복합니다.

 

문의 / 윤덕현 전도사 010.9899.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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