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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0-02-23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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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3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대 속죄일_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본 문 :

레위기16:1-34

오승주 목사

 

. 일 년에 딱 한번 드리는 대 속죄일

- 안식일 중의 안식일(레위기16:31)

- 대 속죄일이 끝나면 곧바로 초막절이 시작되었습니다.(레위기23:24)

 

속죄일을 하나님이 정해주셨는데 대 속죄일이라고 해서 일 년에 딱 하루, 우리나라 음력처럼 이스라엘에도 음력이 있는데 710. 실제로는 9-10월이 대 속죄일로 지켜지는 날입니다. 레위기16:31에 보니 대 속죄일을 안식일 중에 안식일이라고 표현을 했고 대 속죄일이 어떤 날이냐. 우리가 다 알 듯이 온 이스라엘백성들의 죄를 속할 수 있는 하루의 날을 하나님이 허락하셨습니다. 제사를 아무 때나 막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710일 하루 24시간 동안만 우리의 죄를 사할 수 있다고 대 속죄일을 정해주셨습니다. 구원을 아무 때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이 날만 죄를 사함 받을 수 있다고 정해주신 날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죄 사함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아닌가 싶습니다. 죄 사함이 없으면 우리는 천국에 갈 수가 없습니다. 죄가 있으면 하나님과 연합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거룩은 하나님 자체이십니다. 하나님의 본질이 거룩입니다. 그 거룩 앞에 갈 때 죄가 있으면 사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거룩과 죄는 공존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거룩은 거룩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은 범접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갈 때 죄가 있으면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죄가 있다는 말은 엄청난 일입니다. 그 죄를 성경은 육신의 죄뿐만 아니라 마음의 죄, 하나님을 떠난 죄(원죄) 그로 말미암은 모든 자범죄를 죄라고 하는데 죄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죄를 해결 받을 수 있는 날을 공식적으로 지정해주셨습니다. 이것이 대 속죄일입니다. 대 속죄일. 이 날 나팔을 불어 기념하게 하셨고 어떤 노동도 하지 말라고 하셨고 이 날은 하나님께 화제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곧 그 달 첫 날은 너희에게 쉬는 날이 될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어떤 노동도 하지 말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라_레위기23:23-25’

 

놀라운 것은 대 속죄일이 하루인데 속죄일이 끝나자마자 초막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초막절은 7일 동안 텐트를 치고 하나님 찬양하고 말씀을 듣고 교제하는 날입니다. 그 초막절이 구원의 감사와 감격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씀을 들어 돌이키고. 초막절을 왜 지키는가 했더니 초막절 앞에 단 하루 대 속죄일이 있습니다. 우리의 죄 문제가 해결되니 너무 감사해서 그것에 대해서 초막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 일주일이 중요합니다. 대 속죄일과 초막절은 같이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대 속죄일은 어떻게 보면 죄 사함을 받은 날 구원받은 날이라고 생각 할 수 있겠고 우리에게 현재 적용을 하자면 주일일수도 있습니다. 초막절은 우리의 삶입니다. 7일 동안 우리의 삶에서 말씀을 듣고 교제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죄 사함의 은혜를 나누는 날이 초막절인데 초막절을 알고 나니 우리의 일주일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다니면 주일에 교회 가는 것을 많이 생각하는데 성경은 주일날 예배드리고 은혜 받는 것 말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의 삶을 많이 다루고 계시는구나. 특히 구약에 우리의 일상을 굉장히 많이 다루고 계시는구나. 사실 저의 일주일의 삶은 세상의 것 탐하기 바쁘고 남 이야기하기 바쁘고 서로 비난하고 정죄하기 바쁜데 우리가 과연 일주일동안 성숙한 신앙인으로 죄 사함 받은 은혜로 찬송하고 은혜를 나누고 말씀을 기억하고 사모하고 살고 있는가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 하나님께서 베푸신 사랑, 대 속죄일

- 지성소에는 아무 때,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거룩한 임재가 있는 곳입니다.

- 중보자 제사장은 거룩해야 합니다. (레위기16:3-5)

- 제사장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법대로 백성들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레위기16:6-22)

- 제사를 끝내고 진영으로 돌아갈 때에도 거룩을 유지해야 합니다. (레위기16:23-28)

 

대 속죄일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시는 놀라운 사랑입니다. 기적의 날입니다. 이 날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온전히 제사만 드리는 날입니다. 일 년에 한번 죄 사함을 받고 끝나면 좋은데 매년 죄 사함의 날을 정해주셔서 지금이야 광야에 다 모여 있지만 나중에 가나안 땅에 흩어져서 살 때면 전국에서 이 날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 양을 들고 염소를 들고 모여들었던 날입니다. 우리는 매년 죄를 짓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도록 살 길을 매년 열어주셨습니다. 710일은 우리가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는 것처럼 지금도 유대인들에게 지켜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는 대 속죄일이 있나요? 없나요? 없습니다. 우리에게 대 속죄일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대속죄제에 재물이 되어주셨고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는 대 속죄일의 상징이 되어 주셨습니다. 구약의 대 속죄일은 그림자입니다. 예수님 오시는 것에 대한 그림자입니다. 대 속죄일에 대해서 내용을 살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아론의 두 아들이 여호와 앞에 나아가다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휘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 그리하여 죽지 않도록 하라 이는 내가 구름 가운데에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_레위기16:1-2’

 

대 속죄일을 말씀하시는데 시작이 아론의 두 아들이 죽는 것입니다. 아론의 두 아들이 죽고 나서 대 속죄일에 대해서 바로 가르쳐주십니다. 두 아들이 여호와 앞에 나아가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의아합니다. 타락하다가 범죄 하다가 죽은 것이 아니라 여호와 앞에 나아가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데 왜 죽이셨을까요? 자세히 보니 아들들이 등불도 마음대로 교체하고 등불을 껴는 재료도 자기 마음대로하고 하나님 앞으로 자기 마음대로 나아가고 싶을 때 나아갔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이 성막을 짓고 성막 안에 지성소를 만들어놓았습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입니다. 그 전에는 떨기나무에도 산꼭대기 시내 산에도 나타나셨는데 하나님이 성막을 만드시고 지성소를 만드시고 나서는 지성소에 임재를 하셨습니다. 지성소에 임재해서 일 년에 한 번, 딱 하루 대 속죄일에만 대제사장이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냥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대제사장도 자기의 죄 문제를 해결하고 들어가야 합니다. 자신의 죄가 있으면 죽기 때문에. 지성소에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가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아론의 두 아들들이 자기 마음대로 등불도 바꾸고 지성소도 마음대로 들어갔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이야기하나요? 예수님 믿는 것, 구원받은 것, 우리 마음대로 믿어서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뜨겁게 믿으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열심히 교회생활하면 구원받을 수 있나요? 아닙니다. 내 마음대로 생각대로 이렇게 믿으면 축복받을 거야. 라고 해서 최선을 다해서 하는데 구원과 상관없는 것입니다. 신앙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죄 사함은 정확하게 믿어야 합니다. 바르게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믿는 것입니다. 열심히 한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청교도 존 오웬 목사님께서 이렇게 이야기 하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고 연구하면서 그 영광을 찾고 그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서 애써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구원에 대하여 지혜로운 자들이 되는 것이다.’ 신앙은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신대로 믿어야 합니다. 정확하게. 지성소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합니다. 다른 것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헌금을 많이 했더니 바르게 살았는데 하나님이 구원하시겠지.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을 공부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지기까지 모든 믿음의 선배들이 원하고 바라던 것이었습니다.

 

아론이 성소에 들어오려면 수송아지를 속죄제물로 삼고 숫양을 번제물로 삼고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세마포 속바지를 몸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쓸지니 이것들은 거룩한 옷이라 물로 그의 몸을 씻고 입을 것이며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서 속죄제물로 삼기 위하여 숫염소 두 마리와 번제물로 삼기 위하여 숫양 한 마리를 가져갈지니라_레위기16:3-5‘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무엇을 했는지 기록하고 있는데 자신의 거룩을 위해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제사장이 이스라엘백성들의 죄를 중보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제사장의 일을 감당하기 전에 먼저 제사장 자신이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사하는 속죄제를 먼저 드리지 않으면 백성들을 섬길 수 없습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해야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제사를 드리기 전에 몸을 씻고 세마포 옷을 입습니다. 세마포 옷은 제사를 드릴 때 공식적으로 입은 옷 같은 것입니다. 머리부터 속옷까지 전부 다 갈아입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위해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자기의 죄가 해결되지 않으면 중보자로 살 수 없습니다. 백성들의 죄 문제를 해결해주는 제사장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먼저 살펴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너무 남이야기를 함부로 합니다. 사실 확인도 없이 남에 대해서 함부로 이야기합니다. 남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그런 삶을 살았기에 그렇게 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것은 다 감춥니다. 그래서 이 나라가 문제가 많은 것이 아닌가요?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입니다. 이것이 죄인의 모습니다. 복음은 삶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그런데 자꾸 선생님처럼 가르치려고 합니다. 내가 먼저 회개하고 내가 먼저 내 삶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목회자, 중직자, 리더들로 인해서 교회가 병드는 것입니다. 교역자들이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으면 교회는 병드는 것입니다. 장로님들이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으면 자녀들도 찬양하지 않을 것입니다. 권사님들이 눈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으면 자녀들한테서 더 이상 기도를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어른들이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는 공동체를 만들지 않으면 교회와 성도를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 자녀들은 더 이상 교회에 있을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선교도 해야 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전략도 짜야 하지만 시편134에 다윗이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시온에서 복을 주시는데 어떻게 복을 받나요? 하나님 앞에 나아가 두 손을 들어 여호와의 이름을 송축할 때. 우리는 종교가 아니기 때문에 목회자가 은혜를 받아야 은혜로 적셔있어야 우리가 은혜 받는 교회가 아니면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세상에 복을 주시는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제사장이 먼저 거룩하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섬길 수 없습니다.

레위기16:6-22에 보니 제사장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법대로 백성들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정해주신 법대로.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자세히 설명을 하셨습니까. 염소는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의 죄 문제를 해결 받는데 제사장들이 어떻게 그 부분을 섬겼냐면 하나님이 정해주신 법대로 디테일하게 죄를 사하도록 제사법을 만들어놓으셨는지. 제사는 아무한테나 아무렇게나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열심히 한다고 죄가 사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대로 해야만 합니다. 제사법의 중요한 축은 속죄제가 번제를 드리게 했습니다. 속죄제는 죄를 실제로 사함받기 위해서 하는 것이 속죄제입니다. 속죄제가 끝나면 태워서 드리는 번제는 온전히 헌신을 상징합니다. 번제의 오늘날의 의미는 예배를 이야기합니다. 온전히 나를 태워 드리는 예배. 그 말은 속죄제는 죄 사함입니다. 십자가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 십자가가 예배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적용할 수 있겠죠. 주일날 예배드리면서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죄 사함 받고 새 힘을 얻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번제가 되어야 합니다. 일주일동안 예배자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죄 사함을 받는 대 속죄일에 드려야하는 두 가지 제사법이었습니다. 죄 사함이 예배로 연결될 때 열매를 맺습니다. 대 속죄일이 오늘날에는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곧, 대 속죄일 그 자체이십니다. 십자가의 피가 대 속죄일의 제사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십자가와 예배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십자가의 보혈의 피가 없으면 예배가 없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반드시 온전히 주 앞에 삶을 드려 예배하는 헌신으로 연결이 되어야 합니다. 마치 대 속죄일과 초막절이 연결된 것처럼 속죄제와 번제가 연결된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일주일, 우리의 인생 전체를 헌신을 요구하십니다. 이 제사가 끝나고 나서 진영으로 돌아갈 때에도 규례를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제사 끝났으면 대충 옷벗어놓고 내 진영으로 돌아가면 될 텐데 하나님은 그것도 세마포 옷을 벗고 또 목욕을 하고 진영에 돌아가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을 정하셨습니다. 제사를 끝내고 진영으로 돌아갈 때에도 함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거룩을 유지해야 합니다. 속죄제사를 드리고 자기의 삶의 터전으로 돌아갈 때에도 하나님은 엄격하게 룰을 정해주셨습니다. 구원파들이 구원받으면 모든 것이 끝났다. 잘못된 신앙관을 가르킵니다. 구원의 확신을 주기위해서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것이 모든 것이 맞지만 진짜 구원을 받았다면 우리가 돌아갈 삶의 터전들, 가정, 교회, 공동체들, 여기에서의 삶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꾸 이분화해서 가스펠 예배는 거룩한데 가정은 문제가 많고 세상은 살기 싫고. 옳지 않은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진영에 돌아가서도 거룩을 유지하길 원하십니다. 진짜 예수님을 믿는다면 진짜 죄 사함을 받았다면 그 감사와 기쁨이 공동체에 전달이 되어야 합니다. 죄 사함을 받고 나서 자기의 삶에서 죄사함 받은 은혜들이 전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대 속죄일에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태도가 무엇인지 마무리로 정리하려고 합니다.

 

.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 대 속죄일은 자기를 대면하는 날입니다. 이 때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 외국인, 나그네는 3가지(금식, 금욕, 회개기도)를 해야 합니다. (레위기16:29-34)

- 대 속죄일은 십자가 사건이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히브리서13:1, 7:27,31, 9:7,12-14,18-22, 10:1-3)

- 구원받았다는 말은 변함없는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대 속죄일은 일 년에 하루 24시간 주신 날인데 29절에 보니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일곱째 달 곧 그 달 십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든지 그리하라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를 정결하게 하리니 너희의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 이는 너희에게 안식일 중의 안식일인즉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영원히 지킬 규례라_레위기16:29-31’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가 여러 번 반복해서 나와 있습니다. 스스로 괴롭게 한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금식을 이야기합니다. 금욕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 속죄일에 세 가지를 반드시 하게 하셨습니다. 금식과 금욕과 회개기도였습니다. 굉장히 중요한데 24시간 안에 모든 사람의 죄를 속해야 하는데 줄이 서있을 것입니다. 염소 들고 성소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법대로 규례대로 이 사람의 죄를 염소 위에 얹어 안수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 하루 종일이 하는데 제사를 드리는 성도의 입장에서는 제사 드리는 것은 겨우 몇 분입니다. 나머지 시간은 금식하고 금욕하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대 속죄일 하루 24시간. 제사만 드리고 끝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날 온전히 24시간 집중해서 금식 금욕하라는 말은 그 제사 드리는 일에 십자가의 사건을 바라보는 일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괴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죄 사함을 받는 일이 간단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일년동안 죄를 회개하고 삶을 되돌아보고 죄 사한다는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하고 메시야를 묵상하고 우리의 죄 사함에 대한 감사함을 가지고 하루를 금식하고 금욕하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온전히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집중은 중요합니다. 집중하지 않으면 제대로 알 수 없고 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공부든. 운동이든. 모든 분야에 집중은 중요합니다. 집중해야 제대로 알 수 있고 내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자동차 운전면허를 따더라도 기초를 배울 때 집중해야 합니다. 운동도 기초를 배울 때 집중을 해야 합니다. 요리를 하더라도 집중해야 하고 공부를 해도 .집중해야 합니다. 학생들이 학원에 매일 가도 성격이 늘지 않는 것은 집중을 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집중해야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것이 이해가 되고 내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기초를 갖추기 위해서 일정기간 집중해야 하고 집중을 통해서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집중은 꼭 해야 합니다. 집중 하지 않으면 무엇이든지 대충입니다. 알 수가 없습니다. 1년에 한 번 대 속죄일에, 일 년 한번 죄 사함을 받기 위해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구원의 날에 축복의 날에 우리가 집중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래서 금식, 금욕, 기도를 명령하셨습니다. 온종일 하나님께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지금 한국교회의 문제는 집중이 없습니다. 너무 분주하고. 주일날 예배드리고 후다닥 왔다가 후다닥 가고. 주일 날 하나님께 집중을 하고 계시나요? 집중하지 못하면 우리의 영혼이 살지 않습니다. 세상의 일도, 사업도, 공부도 집중을 해야 성공할 수 있는데 죄 사함 받는 구원받아야 하는, 죄 사함 받아 천국에 입성해야 하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 영적인 집중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주일, 삶 속에서 묵상하는 시간,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새 힘을 받는 묵상의 시간 집중하고 계시나요? 어쩌면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이 집중이 아닌가. 너무 집중이 없습니다. 그래서 분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청년, 대학생들이 너무 헷갈려 합니다. 그들의 삶에 집중이 없습니다. 어수선하고 분주하고 복잡하고. 그런데 중요한 것은 무엇에 집중하느냐 입니다. 무엇에 집중해야 하나요? 대 속죄일에 집중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십자가의 사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집중입니다. 이 날만큼은 죄사함 받는 제사에 다시 말해 오실 메시야에 대해서 잊지 말라고 대 속죄일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매년마다 바쁜 삶속에서 일 년에 한번이라도 오실 메시야에 대해서 집중하라고 구원자를 보낼 텐데 그가 죄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죄악을 해결할거라고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_히브리서3:1’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깊이 생각하라는 것이 집중입니다.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_히브리서7:27’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자기를 드려 죄 문제를 해결하셨다는 것입니다. 대 속죄일이 더 이상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번제사라고 합니다. 신약 적 용어로. 십자가에서 한 번에 대 속죄일의 사건을 종료시켰습니다.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_히브리서9:7

 

둘째 장막은 지성소를 의미합니다. 피 없이는 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_히브리서9:12-14’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구약의 제사로도 구약시대 사람들은 오실 메시야 그림자를 붙잡고 신앙생활을 했는데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삶을 변화시킬 수 없겠냐는 말입니다.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_히브리서9:22’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습니다.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_히브리서10:1-3’

 

구약의 제사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제사가 완벽하지 않지만 왜 매년 대 속죄일을 지키게 하셨냐. 이 죄를 기억하게 하려고. 우리 주일예배도 그렇습니다. 매번 똑같은 말씀인 것 같고 똑같은 형식의 예배 인 것 같은데 왜 매번 드리나요? 죄를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 십자가의 사건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겪으면서 우리가 31명될 때까지 우리나라 안전해. 안일한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하루에 200명씩 늘어서. 어제 대구에 친구들이 많습니다. 대구교회들은 일제히 인터넷예배로. 교회에 모이지 못한다고 합니다. 제 친한 친구 중에 전화 와서 울었습니다. 왜 우는가 했더니 그 동안 자기가 너무 예배가 쉬웠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예배드리는 것 고민이라도 한 적 있냐는 것입니다. 그냥 교회 가고 교회 안 가고 여행가고 예배 빠지는 것 또한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바이러스가 무언인데 강제로 예배를 못 드리게 되는 상황이 되니까 하나님 앞에 너무 죄송하다는 것입니다. 예배를 그동안 어떻게 드리고 있었나. 이런 생각을 하니 진짜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은 어제 코로나바이러스 가지고 방송을 했더니 댓글에 인터넷예배를 2주간 드리는데 너무 좋았다고 합니다. 그거 회개한다고 댓글이 달렸습니다. 신천지가 나쁜 것 맞고 중국에서 벌어진 사건도 맞고 정부가 잘못 대응하고 있는 것도 맞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럴 때 자녀들과 함께 예배도 드려보시고 우리의 신앙도 점검하고 우리가 진짜 선교지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는지 확인도 해보고 예배를 사모한 마음으로 드리고 있었는지도 돌아보고.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가 우리에게 있었는지. 위기의 시대에 크리스천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구원의 감격과 감사가 우리에게 있었는지.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일곱째 달 곧 그 달 십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든지 그리하라_레위기16:29’

 

영원은 끝이 없는 영원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_히브리서10:19-25’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말세가 올수록. 더 큰 바이러스들이 올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불신앙의 바이러스, 서로 미워하는 바이러스, 부모를 원망하는 바이러스,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바이러스 , 악독하게 하는 바이러스. 그런 것들이 유출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시기가 올 것입니다. 그런 바이러스들이 십자가의 흐르는 보혈의 피로 인한 죄 사함을 뺏어갑니다. 모이기를 폐한다는 말은 공동체를 이야기합니다.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교회가 무너지면 십자가의 복음 이야기를 어디서 할 수 있습니까. 죄 사함을 어디서 받습니까. 대 속죄일이 없어지면 대 속죄일이 사라지면 어디에서 내 죄를 해결 받을 수 있나요? 십자가의 복음이 사라지면 어디서 구원을 받을 수 있나요?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가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고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고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예배를 이야기합니다. 십자가의 구원의 은혜가 있는 예배. 죄사함의 은혜가 있는 예배. 가스펠교회의 예배가 십자가 보혈의 은혜를 지키기를 예배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가 있는 예배여야 합니다. 이스라엘백성뿐 아니라 대 속죄일에 이스라엘에 있는 외국인들, 나그네들 그들에게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예배에 오면 죄 사함을 받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십자가의 복음이 있는 예배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은혜가 없으면 지키지 못합니다. 그 은혜가 없으면 우리의 예배가 뜨거운 산 예배, 구원의 감사가 있는 대 속죄일의 예배가 없으면 초막절이라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대 속죄일이 사라지면 자녀들은 어디서 이 복음을 들을 수 있나요? 그래서 사랑하고 서로 선행을 격려해야 합니다. 우리 공동체는 사랑하고 선행해야 합니다. 정죄하면 안 됩니다. 공동체가 무너지면 예배가 무너지면 십자가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을 공간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대 속죄일은 레위기의 핵심메세지입니다. 이것을 규례로 만들어놓으셨습니다. 신앙은 즉흥적인 감정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았다는 말은 변함없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질되지 않도록 굳게 붙잡아야 하고 서로 돌아보아 격려해서 함께 그 마음이 잃지 않도록 돕고 섬기는 것이 교회의 공동체입니다. 나 혼자 잘 한다고 이 시대를 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준이 있으면 있는 대로, 수준이 없으면 없는 대로 엘리트는 엘리트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 십자가의 구원의 은혜를 지켜야 합니다. 제사장도 똑같이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로 속죄제를, 번제를 드려야 합니다. 목사가 죄 사함의 은혜가 없으면 공동체는 무너집니다. 우리는 실수를 많이 합니다. 진짜 실수는 죄입니다. 일류의 실수는 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대 속죄일. 여러분의 대 속죄일이 있잖아요.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을 예배하는 이 시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예배이고 삶에서 묵상의 시간입니다. 날마다 늘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구원의 감사와 감격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잊어버리면 우리의 자녀들에게 전해줄 수 없습니다. 나그네들에게, 이웃들에게 말해줄 수 없습니다. 감격이 없는데 어떻게 말해줄 수 있나요. 공동체가 이것을 잊어버리면 예배에 나오는 새신자들이, 새가족들이 어디서 복음을 들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예배는 늘 똑같습니다.

 

문의 / 윤덕현 전도사 010.9899.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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