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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0-03-01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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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1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본 문 :

레위기 17:1-16

오승주 목사

 

. : 얼마나 중요한가요?

성경에만 418, 레위기80번 나오는 단어:

 

우리의 몸에는 혈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혈관이 눈에 드러나기도 하고 드러나지 않기도 합니다. 혈관은 피가 다니는 길입니다. 혈관의 길이가 약 9,500km라고 합니다. 우리의 몸에 이렇게 긴 혈관이 사방으로 펴져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매초마다 묵은 피와 새로운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 입니다. 매초마다 1500만개 이상의 세포가 태어나고 죽고 있습니다. 이것이 생명의 역사이며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피가 우리의 몸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기독교 신앙에 피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예전에 로마 시대 때는 기독교를 오해했다. 기독교인들이 계속 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기 때문에 피를 잡아먹는다고 생각을 하기도 했다. 성경에 피라는 단어가 418, 레위기에는 80번 이상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서 가르쳐주시는 기본적인 공식이 있는데 이것은 피는 곧 생명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럼 또 다른 공식이 성립이 되는데 피가 흘리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주신 공식입니다. 레위기에서 피 흘리면 끊어진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람도, 짐승도 피 흘리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레위기 17장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 하나님이 원하시는 피는 어떤 피 인가요?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_레위기17:11’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어떤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 하였나니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것의 피인즉 그 피를 먹는 모든 자는 끊어지리라_레위기17:14’

 

피가 생명과 일체이기에 피를 흘리면 안 됩니다. 이는 살인을 하지 말아야 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피를 흘리게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피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인데, 성경은 죽음을 피 흘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의 삯은 피 흘림이라는 공식이 성립이 됩니다. 성경은 죽음에 대해 두 가지를 말하고 있는데, 성경은 피 흘림이 죽음이며 죄의 삯이 죽음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죄에 대한 보응을 받으려면 죽어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죄를 씻으려면 피를 흘려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씻으려면 피를 흘려야 하며 죽어야 하는 것이 공식입니다. 기독교에서 왜 그렇게 피를 중요하게 이야기를 하나? 죄를 씻고 싶은가? 그럼 피를 흘려라. 죄에 대한 분명한 댓가를 지불하고 싶으면 그럼 누군가는 죽어야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피 흘림은 죽어야 함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누구나 다 죽어야 함을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너가 죽기 싫으면 대신해서 누구라도 죽어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죄 지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죽는 것은 완전 절망입니다.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는 절망적인 심판만 남아있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가 있을까요? 영원히 살 수 있는 인간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인간은 모두가 죄인이기에 한 사람도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죽음은 피흘림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삯은 피흘림입니다.

- 죄를 씻고 싶은 가? 그러면 피흘려야 합니다. 피를 흘리는 것은 죽음을 뜻합니다.

 

먼저 회막 문으로 끌고 가서 여호와의 성막 앞에서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지 아니하는 자는 피 흘린 자로 여길 것이라 그가 피를 흘렸은즉 자기 백성 중에 끊어지리라_레위기17:4’

 

지금 하나님께서는 그냥 피 흘린 것도 죄인데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지 않는 자는 피 흘린 자로 여긴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는 죽은 자로 여긴다는 말입니다. 구원 받은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죽음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육신적인 죽음이 있고 영혼의 죽음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지 않는 자는 백성 중에 끊어진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생명이 피에 있음으로 피가 죄를 속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기를 통해서 짐승의 피로 대체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죽어야 하는데 우리가 끊어져야 하는데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는데, 그래서 하나님께서 짐승의 피로 대체해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구약 성경을 보면 피가 강을 이루어 흐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 속죄일에 얼마나 많은 짐승을 잡았냐면 피가 강이 되어 흐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무엇을 상징하고 있을까요? 사람이 하루에 짓는 죄는 평균적으로 몇 가지가 있을까요? 평균이 없습니다. 행동으로 짓는 죄는 몇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생각으로, 마음으로 무의식적으로 짓는 죄는 너무나 많습니다.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큰 죄를 범했습니다. 남을 미워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목장에 가서 나 대신 죽을 짐승을 찾아서 제사장에게 가서 제사를 드립니다. 그러면 피를 흘립니다. 제사장이 당신의 죄는 이 양의 피 때문에 용서 받았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죄가 해결 받은 줄 알고 집에 돌아옵니다. 집에 돌아왔는데 갑자기 미워하는 사람, 죽이고 싶은 사람이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또 가야 합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대충 다섯 번 죄를 짓는다고 생각을 해도 하루에 짐승을 다섯 마리씩 잡아야 합니다. 하루에 다섯 번만 죄를 지어도 짐승을 하루에 다섯 마리씩 죽여야 하는데 1365일에는 얼마나 많은 짐승을 잡아야 할까요? 레위기에서 기록하고 있는 제사는 피를 눈으로 직접 보는 제사였습니다. 제사장들의 몸에는 피투성이였을 것이며 제사 지내는 곳에 가면 짐승의 울음소리가 가득했을 것입니다. 짐승을 태우는 냄새는 역겨운 냄새가 났을 것입니다. 가장 가기 싫은 곳 제일 더러운 곳이 짐승을 잡아 제사 하는 곳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를 지내는 곳에 가기 싫었을 것입니다. 이는 인간의 죄가 그만큼 역겹고 더럽고 지독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구약입니다. 구약은 이렇게 내내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런데 짐승의 피는 어쩔 수 없는 약점이 있습니다. 죄를 지을 때마다 짐승을 잡는 것이 보통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흠이 없는 짐승을 잡아도 사람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중에 마음으로는 계속 죄를 지으면서 겉으로는 짐승을 잡아 제사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제사를 받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짐승의 피는 아무리 많이 흘려도 결국 완전하게 우리를 구출하지는 못합니다. 완전히 사하지 못하고 완전히 씻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 제일 가기 싫은 곳, 제일 더러운 곳이 여호와의 제단이었습니다: 그만큼 인간의 죄가 많았습니다.

 

그들은 전에 음란하게 섬기던 숫염소에게 다시 제사하지 말 것이니라_레위기17:7’

 

나중에는 이 제사가 타락해서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인지 숫염소에게 제사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죄 사함의 제물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제물만 가능했습니다. 주로 황소, 암소, 양이나 염소들이 허락하신 제물이었는데, 제물들은 흠이 없는 존재여야 했습니다. 완벽한 사람의 눈으로 보아도 틀림없이 완벽한 짐승이라야 하나님이 인간을 대신해서 피를 흘릴 수 있는 속죄양이 된다고 지정해주셨습니다. 양 한 마리를 잡아도 아무것이나 잡을 수 없었습니다. 부자들이나 가능한 이야기였지 일반서민들에게는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나중에는 타락해서 흠 없는 양만 파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죄사함의 제물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제물만 가능합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_호세아6:6’

 

율법에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_히브리서9:22’

 

하나님께서는 한 번 죽음으로 영원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피를 찾으셨습니다. 단순히 죄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죄 짓는 마음까지 치료할 수 있는 피를 찾으셨습니다. 그래야만 인간이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인간을 천국으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정해놓은 절대적인 조건이 있으셨는데 이것이 바로 사람의 피였습니다. 짐승의 피가 아니었습니다. 또 하나의 조건은 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죄 없는 사람의 피가 있을 수 있나요? 이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찾으셨습니다. 천하 세상에 이러한 피를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이 아니더라도 피가 다 똑같은 피가 아닙니다. 피도 아무 피나 줄 수 없고 주고받을 수 없고 똑같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피는 죄 없는 인간의 피 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직접 인간이 되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우리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마리아에게 태어나서 우리와 똑같은 혈육을 가지고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분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무슨 죄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찾던 피, 여러 가지 조건에 완전히 충족되는 분,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이 찾던 피요, 하나님이 찾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저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 당시 십자가에 죽인다는 말은 노예들이나 반역자들을 처형할 때 사는 사형 방법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이 죄인이라도 사람으로 대접하려고 존중을 했습니다. 절대 십자가에 죽이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 죽인다는 말은 아예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최악의 사형선고였습니다. 거기다 못을 박았습니다. 피를 완전히 쏟게 되었습니다. 산 채로 죽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약속하셨습니다. 내 아들 예수야 네가 인류를 위하여 죽어준다면 너의 피를 두고 약속하마, 너의 피 때문에 모든 사람의 죄를 무조건 용서해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으므로 예수님을 믿겠다고 십자가를 붙들기만 하면 그 사람의 죄는 무조건, 영원히, 완전히 용서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이 말하는 복음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피는 죄 없는 사람의 피입니다.

 

어떤 사람이 죄를 지었습니다. 그 사람이 양을 끌고 제사장 앞에가서 죄를 자복합니다. 제사장님, 제가 이웃에게 있는 소 한 마리가 너무 탐이 나서 몰래 훔쳤습니다. 그러면 소를 훔친 사람이 똑같이 소를 가지고 가서 제사를 지내고 구약의 법대로 4마리 더해서 갚아야 합니다. 그렇게 죄를 고백하고 그 사람이 소를 죽이고 제사장이 그 피를 받아서 제사를 지내고 피를 단 제단 주변에 다 뿌리고 그 피가 마르고 나서 그릇에 담아서 제단에 쏟습니다.그렇게 소를 죽이면서 소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하면서 결국 무슨 말을 하는 것일까요? 너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어야 한다. 내가 안죽으려면 너가 죽어야 해. 우리가 지금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이렇게 말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대신 죽어주세요. 라고 하고 예수님 머리에 손을 얹고 다 뒤집어 씌운 것입니다. 내가 과거에 범한 죄도, 내 조상이 범한 죄도 뒤집어 씌우고 내가 오늘 범한 죄도 뒤집어 씌우고 내가 내일 범할 죄도 뒤집어 씌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나요? 예수님께서는 대신 죽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십자기이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피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믿는다, 붙잡는다는 것은 내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진짜 죽는다라는 것이 아닙니다. 목숨을 자살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붙들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구약의 제사법이 주는 메시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내려가서 400년동안 종살이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해내시려고 모세를 보내는데 애굽 왕 바로가 말을 듣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9가지의 재앙을 내리셨는데도 말을 듣지 않기에 마지막 재앙 애굽에 있는 모든 장자를 죽이려고 결정 하십니다. 그런데 당시 애굽 사람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같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해주셨습니다. 양을 잡아 문설주와 인방에 새빨갛게 바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문설주는 세로로 가로지르는 기둥이고 인방은 가로로 가로지르는 기둥입니다. 문 전체의 기둥에 다 바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만 밖에 나와서 우슬초로 문턱에 피를 바르고 집 안에 숨죽이고 있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 밤에 천사가 피가 발려있지 않은 집에 들어가 모든 장자를 다 죽였습니다. 피를 발라놓은 문설주 뒤에만 숨어있으면 아무리 천사가 칼을 들고 다니는 밤이라도 안전했습니다. 십자가가 바로 이것입니다. 피를 바르고 십자가 뒤에 숨으면 천하가 흔들려도 걱정이 없습니다. 아무도 죄인이라고 우리를 끌고 갈 사람도 없고 지옥에 던질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를 죽일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하늘나라, 천국까지 아무 탈 없이 갈 수 있는 십자가입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를 영원토록 안전하게 보호해 주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피 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예수님의 피 때문에 우리는 완전히 용서함을 받게 됩니다.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입니다. 육신으로는 죽지만 죄 값으로 죽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우리는 인간의 존재 양식으로 다 죽음을 맞이하지만 우리에게 죽음은 없습니다. ? 예수님께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육신이 죽는 것은 하나님 나라,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입니다. 진짜 죽음, 우리의 영혼이 죽는 죽음, 죄 때문에 지옥 가는 죽음은 더 이상 우리에게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죽음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죽음을 죽음으로 보지 않게 됩니다. 천국을 믿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영원에 접속되어서 사는 것입니다.

 

. 날마다 죄를 처리하고 살고 계시나요?

 

우리는 매일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 죄를 어떻게 처리하고 사십니까?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_마태복음26:27-28’

 

피를 마시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죄를 어떻게 처리하고 사십니까? 집에서 밥을 먹고 나면 음식물이 나옵니다. 이것을 처리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의 하수구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병들고 온갖 악취가 나고 곰팡이가 피고 질병이 생길 것입니다. 죄를 어떻게 처리하고 사시나요? 음식물 쓰레기는 매일 버리고 계시지 않나요? 죄를 처리하지 않고 남겨놓으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가 우리를 죽입니다. 심지어 죄는 우리의 육체까지 죽입니다. 이 무서운 죄, 알고도 짓고 모르고도 짓고 매일 수십 번, 수백 번씩 지으면서 사는 죄를 어떻게 처리하면서 살고 계십니까? 죄를 처리하지 않고 산지 오래되지 않으셨습니까. 죄를 처리하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육체에 쌓여있고 영혼에 쌓이게 됩니다. 매일 죄를 쌓아놓고 살면서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립니다. 그런데 잊어버리는 것을 마음에 위안 삼고 날마다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마음과 영혼은 매일매일 병들어 가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미움이 가득해지고 마음의 분노를 삭히지 못하고 흉악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어버립니다. 가질 것을 다 가진 부자가 되었는데 더 가지고 싶어서 밤낮 없이 씨름하는 무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죄를 처리하지 않고 날마다 죄를 쌓아놓고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증세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죽이고 있는 증세가 나타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마음이, 육신이 죽고 있다는 증세가 나타는 것입니다. 악독함으로 비방함으로 정죄함으로 미움으로 시기함으로 쾌락함으로 탐심으로 탐욕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매일 쌓아놓고 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죄를 처리하지 않고 살면 인격이 점점 망가져 갑니다. 스스로는 의로운 줄 알고 살지만 죄가 속에 가득해서 하나님께서는 그 의로움, 제사는 받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꼭 예수님 믿으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제가 교회 교인 숫자 늘리려고 복음 전하고 목회하고 개척한 것이 아닙니다. 그럴 것 같으면 욕심내서 했으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헌금을 걷었을 것입니다. 헌금시간도 없습니다. 그거 욕심내서 했을 것 같았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닙니다. 한번도 그것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질문 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날마다 죄를 덮어놓고 살아가면 안 됩니다. 이 죄가 우리를 죽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 수가 없습니다. 결코 하늘의 기쁨을 맛보고 살 수가 없습니다. 결코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죄가 계속 쌓여있으면.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고 싶으십니까? 우리 죄를 완전히 씻겨 주시는 분, 우리 죄를 무조건 씻겨 주시는 분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무거운 죄를 평생동안 쌓아놓고 하나님 앞에 섰다고 생각을 해보세요.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인데 죽음 이후에는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진짜 중요한 문제는 심판입니다. 죄를 쌓아놓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죽음 이후에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그런데 그토록 하나님이 미워하는 죄를 평생 쌓아놓고 뒤집어쓰고 하나님 앞에 설 자신이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을 과신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약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나약한 인간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설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믿어야 합니다.

 

- 죄는 우리의 영혼을 죽입니다. 죄사함의 시간을 가지십시오.

- 우리 죄를 무조건 씻겨 주시는 분, 우리 죄를 완전히 씻겨 주시는 분, 우리 죄를 영원히 씻겨 주시는 분, 예수님을 믿으세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이번 주에 예배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배를 고민하다가 우리가 어떤 예배를 드리고 있나? 우리가 진짜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고 있나? 하나님 앞에 산제사로 예배를 드리고 있나? 우리가 죄 문제를 회개하는 죄 사함의 기쁨이 있는 예배를 드리고 있나? 거기에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십자가의 피를 붙잡을 때, 우리의 죄를 회개할 때, 오직 예수를 붙잡을 때 거기에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임재하십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성령을 기대하지 않고 십자가를 붙잡지 않고 기능을 붙잡고 전문성을 붙잡고 조직을 붙잡고 돈을 붙잡고 재물을 붙잡고 경험을 붙잡고 살아가지 십자가를 붙잡고 않고 산지 오래되지 않았나요. 그 말은 우리가 내 영혼이 살고 내 영혼이 변화되고 새 삶이 되겠다는 소망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에 성령이 임재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의 예배에 성령이 임재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 가운데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고 회개하고 감사해서 기뻐 뛰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이유가 없습니다. 무엇이 없으니까 그럴까요? 그리스도의 피를 붙잡는 예배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예배가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붙잡아야 합니다. 날마다 회개하는 삶을 사셔야 합니다. 날마다 죄를 처리하면서 사셔야 합니다. 우리 아이에게 죄를 짓지 마, 남편에게 당신 똑바로 살아야 해 라고 말하기 이전에 교회가 세상을 향해 손가락질하기 이전에 교회부터 회개해야 합니다. 다시 구원의 감격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때는 십자가 앞에 나아가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십자가 앞에 나아가기만 하면 세상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으로 찬송하고 감사했는데, 지금은 뭐 좀 안해주신다고 하나님 원망하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래서 다른 것도 잘 되지 않습니다. 그때는 가진 것이 없었고 그렇게 삶이 어려웠는데, 시스템도 없었는데, 기쁨으로 가득했습니다. 모두가 다 새가족부였고 모두가 다 교사였고 모두가 다 봉사했습니다. 그냥 다 은혜 받으면서 섬겼습니다. 왜요? 십자가의 은혜가 가득했고 십자가의 은혜를 붙잡으면서 살았습니다. 길거리 다니면서 찬송 부르고 학교 가서 찬송 부르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다시 뜨겁게 기도하고 싶고 다시 뜨겁게 예배하고 싶은 우리의 마음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인 변화를 얻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회개할 때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보혈의 피가 우리의 삶에 없다면, 우리의 예배에 없다면 성령의 임재가 있을까요? 다시 교회에 뜨거운 부흥이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다시 우리의 마음에 예수 보혈의 피가 차고 넘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다시 우리는 뜨거운 예수쟁이가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게 우리가 교회가 이 땅을 섬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선교지를 섬길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다시 하나님을 바라볼 때 은혜가 흘러가게 됩니다. 우리가 영원히 사는 것은 십자가의 보혈의 피로만 가능합니다. 매일 그 피로 죄 사함 받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매일 여러분의 영혼이 기뻐하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십자가를 붙잡는 시간이 있기를 원합니다.

 

 

문의 / 윤덕현 전도사 010.9899.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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