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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0-07-12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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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2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예물을 드릴 수 있는 신앙과 삶

본 문 :

레위기27:1-25

오승주 목사

 

. 신앙을 증명하는 법

레위기의 결론 27장은 예물에 관한 것입니다. 이번 주는 서원예물에 관한 것이며 다음 주는 십일조, 헌금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 본문은 정말 많은 목회자들에게 헌금설교로 사용되는 본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내용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레위기 26장까지의 내용을 결론 짓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레위기 26장까지의 내용은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의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사는 것이 제사장 나라가 될 수 있고,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야할지를 하나하나 가르쳐주는 은혜의 장이 레위기 1장부터 26장까지의 내용입니다. 이런 삶을 두고 서원할 수 있느냐? 물어보는 것이 27장입니다. 그렇게 살기로 하나님 앞에서 결단할 수 있느냐? 그것이 27장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결단, 서원을 말로만 하지 말고 값을 매겨서 정확히 하자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저는 이것이 신앙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다 신앙이 있다고 하지만 신앙을 증명하면서 살사는 시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 예수 믿는다, 구원 받았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힘들기 때문에 신앙이라는 것을 숨기고 내가 신앙인이라는 것을 숨기고 예수 믿는 것을 숨기고 성령의 사람인 것을 숨기고 교회를 다니는 것도 숨기며 집사인지 장로인지도 숨기는 시대입니다. 이 말을 신앙을 증명하고 싶지 않고, 내 욕심대로 살고 싶고, 불신자처럼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신앙을 증명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많이 혼란스럽습니다. 저는 5-6월이 되면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라질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확산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금요일에 캘리포니아에 있는 친구와 통화했는데 캘리포니아에만 하루에 9천명이라는 사람이 확진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나라로 따지면 수만명이고 한 주에서만 9천명이라는 확진자가 나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정말 감사해야 합니다. 의료시설, 사회기관들, 수고하고 계시는 분들게 정말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들도 최선을 다해서 지키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교회가 코로나로 어려울 때 후원도 많이 하고 헌금도 많이 하고 방역수칙을 최선을 다해서 지키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소수의 이기심 많은 분들은 국가에서 하는 것 꼭 우리가 지켜야 돼?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런 몇 분들 때문에 확산이 된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숫자도 굉장히 미비합니다. 작년에 독감환자가 발생하는 숫자에 1/10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바이러스로 많은 목회자들이 할 말을 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다, 하나님의 재앙이다. 물론 하나님의 재앙, 하나님의 심판이 맞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을 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에게 벌한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마침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에 대해서 환경학자, 기후학자들은 계속해서 경고해왔습니다. 곧 이런 시대가 올 것이며, 곧 이런 위기가 올 것이다. 저는 그 인계점이 넘어서 터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 기후학자는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1900년대, 불과 한 세기 전에 인간이 지구라는 땅 덩어리에 차지하고 살고 있는 면적이 14%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2000년대가 되어 지구의 77%의 면적을 인간이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남극과 북극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 인간의 손이 뻗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그만큼 환경이 파괴되고 인간의 거주지가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인구가 늘어난 것이 아닌데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환경이 변화하고 기후가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환경학자들은 왜 바이러스가 지구에 왔냐라는 질문에 바이러스는 원래 지구에 존재했다고 답했습니다. 원래는 주로 동물들에게 머물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점차 동물들이 살 공간이 줄어들고 인간의 삶이 넓어지다보니 인간들에게 옮겨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환경학자의 이야기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는 우리가 우리에게 벌한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전염병은 우리가 우리에게 만들어 낸 것이다. 그래서 어떤 환경학자는 이 코로나는 지구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내놓은 백신이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코로나 전과 후로 많은 문명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많이 바뀌었습니다. 백신이 개발되어도 우리 속에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다시 예전과 같은 삶을 살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문명을 바꿀 만큼 바이러스가 강력한데 우리는 바이러스와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인간이 끝없는 욕심을 멈추지 않고 환경을 파괴하고 무분별하게 개발을 하는 것이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재앙입니다. 하나님의 재앙이라는 것은 갑자기 하나님이 코로나를 터트려서 바이러스를 천국에서 이 땅에 터트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을 외면하고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원래 인간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만족하는 삶을 잃어버리고 작은 욕심들이 환경들을 파괴하고 기후변화를 가져다주고 바이러스의 시대를 맞이하게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성경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레위기는 하나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안식년을 지키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있었다면 안식년을 지킬 수 있었을 것인데 이스라엘 백성은 단 한 번도 안식년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역사가 바벨론 포로시대입니다. 바벨론 포로를 70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가 되기 전에 수백년 동안의 안식년을 계산해보니 딱 70번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정확하십니다. 하나님은 숫자적으로 완벽하십니다. 71년을 할 수도 있었는데 갑자기 고레스라는 왕이 나타나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너무 갑자기 고레스라는 왕이 나타나서 포로시대를 종식시켜버렸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안식년의 횟수를 다 지키셨기 때문입니다. 70년의 포로생활을 통해서 가나안 땅의 안식년을 정확하게 지켜 회복하셨습니다. 우리의 잘못으로 재앙이라는 것이 오는 것입니다. 땅이든, 영적인 것이든 하나님은 반드시 갚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다 지켜보고 계십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계수하고 값을 치루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다윗의 회개했지만 다윗은 죗값을 다 치뤘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정확하신 분이십니다. 지금의 상황을 보고 국가가 교회를 공격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게 보이기도 합니다. 정책이 너무 공정하지 않고 합리적이지 않아보이기에 정부를 욕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목사님들은 음모론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것은 포괄적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것과는 다른 부분입니다. 이것은 안전을 위해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국가, 사회가 교회에 대해서 좋게 보지 않습니다. 일반 시민, 국민들이 교회를 좋게 생각하나요? 교회가 차별금지법을 반대하고 왜 교회만 탄압하냐고 하면 교회를 보고 이기적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습니다. 그동안 교회가 이렇게 살아온 것입니다. 선한 영향력 하나 없이 빛과 소금으로 살지 못한 것입니다. 만약 기독교인들이 정치, 경제, 문화 현장, 사회 구석구석에 들어가서 정말 은혜의 사람,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았다면 이런 상황에 교회가 목소리를 내었을 때 그들이 교회를 지지해주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교회가 지난 수십 년간 성전건축 한답시고 부흥이라는 명목 하에 앞에서는 온갖 거룩한 척 다 해놓고 뒤에서는 그리스도인답게 빛과 소금답게 살았을까요? 많은 목회자들이 성스캔들에 휘둘리고 말뿐인 복음, 강력한 메시지가 있었지만 이면의 삶은 가난한자, 병든 자, 동성애자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목소리가 저들에게 달갑지 않게 들립니다. 이것은 마치 인간이 환경을 파괴하면서 수십 년간 살아와서 지금 전염병이 온 것과 같습니다. 영적인 것도 교회가 그동안 그렇게 살아서 그 결과로 우리에게 왔다고 생각합니다. 불신자들, 정사와 권세자들이 교회를 손가락질 할 때 한국 교회 몇 명의 그리스도인이 그동안 우리 그렇게 살지 않았어, 아니야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니야라고 변론할 때 그것을 들어줄만한 삶을 우리가 살았냐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주 정부방역지침을 생방송으로 봤습니다. 굉장히 슬펐습니다. 그리스도인 정치인, 공무원이 분명히 있을텐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분명히 곳곳에 있었을텐데 우리는 지난 시간 우리의 욕심을 따라 살면서 성경을 잃어버렸고 성경을 잃어버린 우리는 그 은혜를 잃어버린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도 잃어버리고 산 것입니다. 신앙은 증명하고 살아야 합니다. 신앙을 증명해내지 못하면 그것은 신앙인이 아닙니다. 내 안에 생명이 있으면 증명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내 안에 욕심, 화가 있으면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인간은 감출 수 없습니다. 만약에 우리 안에 신앙이 있고 구속의 은혜가 있다면 구원의 은혜가 있다면 그것을 증명하며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그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줍니다. 서원 예물을 드리라고 했는데 오늘 읽은 본문은 사람을 드릴 때, 가축을 드릴 때, 집을 드릴 때로 볼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 서원을 하게 될까요? 레위기 26장까지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가나안 땅에 가서 하나님 앞에서 이런 삶을 살아야지라는 마음의 결단, 은혜, 감동이 있을 것입니다. 애굽에서 나를 출애굽 시켜서 억만 죄악 가운데서, 평생 노예로 살아야 될 우리가 가나안 땅에서 땅도 주시고 기업도 주시고 나라도 건설하고 성전도 짓고 내가 주의 복음을 이웃나라들에게 전할 수 있는 축복된 삶을 약속해 주셨기에 하나님 그 일에 나를 좀 사용해주세요 내 제물을 사용해주세요 하며 드리는 것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내 가축을 드리는 것은 내 통장을 드리는 것입니다. 집을 드리는 것은 내 환경, 내 삶을 다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라는 것입니다. 27장을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너희 다 서원해라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26장까지 레위기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아서 내 인생을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라고 서원하는 사람들에게 확인하시는 메시지입니다. 서원하는 사람들에게 서원으로 그치지 말고 값을 매기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값을 왜 메기냐? 다들 서원하겠다고 하지만 막상 인간의 욕심, 상태를 종합해서 보셨을 때 서원하지 않을 확률이 높기에 돈으로 환산해서 값을 매겨놓은 것입니다. 혹시 인생을 드리지 못하고 생명을 드리지 못할 때 값으로 드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무르려면 1/5을 추가해서 내면 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가 서원을 너무 하고 싶은데 돈이 없으면 제사장에게 가서 값을 매겨달라고 이야기를 하면 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형편에 맡게 정해준 것을 똑같이 받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내용이 오늘의 내용입니다.

. 예물을 드릴 수 있는 신앙과 삶

- 예물을 드리려면_레위기27:1-25

: 사람으로 서원할 때

: 가축으로 드릴 때

: 무를 때

: 집을 드릴 때

: 가난한 자의 예물

 

사실 주님 저를 받아주세요라고 하는데 제 목숨이 하나님께 어떤 쓸모가 있을까요? 저는 예수님을 처음 믿고 주님, 제 인생을 주님께 드리겠습니다, 제 인생은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 마음대로 사용해주세요라는 서원을 많이 했습니다. 주님 마음대로 사용해달라고 하지만 마음대로 사용하시려고 하면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합니다. 제가 대학 때 인도에 단기선교를 다녀왔습니다. 밤에 선교사님께서 메시지를 주시면서 혹시 이 땅에 오실 신학생이 있으면 서원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주님 여기만 아니면 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국의 망콴마을도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주님 뜻대로 사용해주세요라고 해놓고 막상 주님께서 뜻대로 사용하시려고 하시면 거절합니다. 실제로는 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주님이 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값을 매겨 놓으셨습니다. 그것을 증명하며 살라고 하십니다. 정말 인생을 나에게 맡겼나? 그럼 증명하라고 하십니다. 무엇으로 증명할 것인가? 레위기 시대에는 성전에서 사용하고 있는 헌물로 드리는 돈으로 값을 매겨 놓으셨습니다. 평생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일까요? 서원만 하지 말고 이렇게 살라는 것입니다. 말로만 그렇게 서원하지 말고 실제로 그렇게 살라는 것입니다. 서원을 할 때는 감정적으로 하면 안됩니다. 오늘 본문은 서원을 하라는 말이 아니라 서원을 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나는 주님의 종입니다, 주를 위해서 살겠습니다라고 제가 서원을 했는데 삶이 그렇지 않다면 증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서원하고 고백했는데 제 삶이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으면 증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놀랍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것을 증명해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의 역사를 겪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서원을 다 들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 받아내셨습니다. 그렇게 살게 하셨습니다. 포로가 되고 고난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구속사를 설명할 수 있는 민족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저는 너무도 확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서원하고 다 잊어버리고 내 마음대로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내 삶에 고난이 찾아오고 어려움이 찾아온 것을 원망하고 불평했었는데, 알고보니 하나님께서 서원을 다 기억하시고 저를 돌이키시려는 것이고 제 인생을 통해서 서원한 것들에 대한 값을 매기시고 받으려고 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축복입니다. 룻기에 보면 보아스라는 인물이 나타납니다. 과부가 된 룻이 시어머니가 믿는 하나님을 자신도 믿겠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 뒤의 장면에 룻이 보아스의 땅에서 이삭줍기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을 유심히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보아스의 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밭에서 농작을 짓고 이삭을 다 거두어들이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들을 위해서 이삭을 다 줍기 말고 남겨두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보아스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보아스의 밭에는 어려운 사람들, 룻과 같은 과부들이 와서 이삭을 주웠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하나도 남기지 말고 다 모아서 우리가 선교해야지, 교회 세워야지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독교 신앙을 전면 성경을 통해서 확인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아스가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갚아주셨습니다. 룻과 결혼한 보아스는 언약의 대열,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이것이 신앙을 증명하는 삶입니다. 우리는 하나니 말씀대로 살면 서원하고 살면 희생되는 것 같고 손해 보는 것 같은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레위기 말씀을 순종해서 살면 이스라엘 백성이 실패할 것 같은데 오히려 인간의 욕심을 따라 세속의 법칙을 따라 성공법칙을 따라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했습니다. 이 말씀에 순종해서 살았던 보아스와 같은 구약의 몇 인물은 영원한 구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가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레위기를 마무리하시면서 우리에게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단순히 헌금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서원할 수 있는 사람인가? 이 말씀입니다. 너희가 레위기 1-26장까지 말씀을 듣고 이해를 했는가? 이 말씀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레위기 26장까지의 이야기가 구속사 이야기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억만 죄악 가운데 우리는 죄 속에서 전혀 천국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구속사를 이해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죄악 속에서 살다가 지옥 가야되는 우리를 내가 너희를 건지겠다, 내가 너희를 살리겠다, 내가 너희에게 길을 열어주겠다, 구속의 길, 구원의 길, 천국 갈 수 있는 길, 죄에서 건짐 받는 길 내가 너희를 살리겠다라는 말씀이 레위기 1-26장까지의 말씀인데 이것을 이해했냐고 확인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해했다면 서원하게 될 거라는 내용입니다. 너희 인생을 하나님께 바치게 될 거라는 것입니다. 너희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살게 될 거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입니다. 이 구속사를 깨닫고 하나님을 나의 구원자라고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믿고 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을 정말 믿는다면 서원을 할텐데 너희가 연약하기에 너희가 한 서원까지 감당하지 못하기에 값으로 매겨놓으시겠다는 것입니다.

 

- 예물 드림은 법으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그 은혜에 감사하여 예물을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법으로 드렸다면 가난한 자에 대한 예물 법을 이렇게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속의 은혜, 십자가의 은혜, 억만 죄악 가운데서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우리가 천국을 갈 수 있는 신분의 변화, 예수님을 믿어서 우리에게 천국소망이 생겼는데 그 은혜에 감사해서 예물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 구원의 깊은 은혜가 있냐고 질문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약의 고린도후서에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 구원의 깊은 은혜가 있다면_고린도후서8:1-15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그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그가 이미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하게 하라 하였노라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고자 함이로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일에 관하여 나의 뜻을 알리노니 이 일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너희가 일 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이제는 하던 일을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완성하되 있는 대로 하라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균등하게 하려 함이니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기록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_고린도후서8:1-15‘

 

지금 사도 바울이 마게도냐 교회 성도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드린 예물, 헌신, 교회를 향한 모든 충성들이 은혜를 증명하는 것이다. 이것은 헌금해라, 충성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 안에 정말 구원의 은혜가 있느냐, 정말 예수님이 가난하게 되어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를 살려주셨는데 그것을 너희가 정말 깨달았다면 너희가 드리는 이 예물, 헌신은 다른 사람에게 증명이 될 거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에 굉장히 중요한 원리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것을 놓칠 때가 참 많습니다.

 

. 신앙생활의 기준은 은혜입니다.

 

- 누가복음7:36-50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_누가복음7:36-50‘

오늘 함께 불렀던 찬송의 스토리가 나타납니다. 이 당시 향유 한 병은 수십 명을 먹일 수 있는 엄청 값비싼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발에 부으니 많은 사람들이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특히 시몬 베드로가 속으로 저 여자가 미쳤구나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속마음을 아시고 시몬에게 네가 나에게 할 말이 있구나라고 하시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설명을 하시는 것입니다. 나에게 빚 진자가 있는데 한 명은 5억을 빚졌고 한 명은 나에게 5천만원을 빚졌는데 내가 둘 다 갚을 능력이 없어서 다 탕감해 주었다. 누가 더 나를 사랑하겠느냐? 베드로가 이야기를 합니다. 당연히 5억을 빚진자가 더 사랑할 것입니다. 그렇다. 이 여자가 나를 더 사랑하는도다. 우리는 예수님께 어떤 빚을 지고 있나요? 구원의 감사함이 있으신가요? 오늘 이 말은 만약에 여러분이 나는 죄인이 아니야, 지옥이 믿겨지지 않는다면 이 설교는 지우셔도 됩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지옥에 가야할 내 인생, 억만 죄악 가운데 헤어나오지 못한 내 인생이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로 구원 받았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 말씀이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 우리에게 죄 사함의 은혜가 크면 더 크게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도 드리고 가축도 드리고 내 인생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값을 매겨서 너 이거 갚았어? 안 갚았어? 이러려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 서원한 것을 하나님이 다 받아주시려고 값을 매겨놓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지 이제 조금 깨닫습니다. 내가 고등학교 때 주님 당신을 위해서 살겠습니다라고 서원을 한 후 다 잊어버리고 내 욕심대로 살았던 내 인생에 고난을 주셔서 돌이켜서 하나님을 위해서 살 수 있는 인생으로 나를 연단하시고 만들어 가시는 것을 다 값을 매겨서 받으신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 축복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향유옥합을 주님께 드린 마리아는 왜 예수님의 발을 씻기고 자신의 머리로 발을 닦았을까요? 자신의 죄가 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받은 것은 무엇인가요? 하나님 앞에 서원하고 재물도 드리고 가축도 드리고 집도 다 드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는 혜택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교회를 위해 충성하고 헌신하고 말씀대로 충성해서 살면 바보 같고 병신 같고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삶이지 않나요? 정말 그런가요? 우리가 그렇게 못 살았기 때문에 교회가 욕을 먹고 있고 우리가 그렇게 못 살았기 때문에 지금 이런 재앙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으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대로 살았으면 우리는 지금 엄청난 축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아닌가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값은 구원입니다. 이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가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우리 인생이 죄 사함 받은 인생, 죄 사함 받은 자의 인생, 다시 말해서 세상의 빛과 소금과 같은 인생이어야 합니다. 그런자가 우리 사회에 기독교인으로 몇 명이나 있을까요? 그 은혜가 감사해서 그 은혜가 가슴 벅차서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우리는 막달라 마리아가 어떻게 살았는지 예상할 수 있습니다.

 

- 마태복음22:37-3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_마태복음22:37-38‘

 

왜 하나님만 사랑해야 하나요? 왜 이렇게 기독교는 좁고 보수적이고 편협하나요? 아닙니다. 누구나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억만 죄악 가운데서 구원 받아서 천국에 가는데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나요?

 

- 잠언1:29-33, 3:1-10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니라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_잠언1:29-33‘

 

기독교인이 똑똑하지 말란 말은 아니지만, 세상 적으로 눈이 밝은 기독교인들이 교회를 함부로 이야기하고 예배를 함부로 이야기하고 성경을 함부로 난도질 하는데 그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자기 행위에 열매를 먹으리라. 하나님께서 계수하시고 다 갚으신다고 하십니다.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_잠언3:1-10‘

 

-우리는 무엇을 서원하고 살아가야 할까요?

 

은혜입니다. 은혜의 값을 하나님께서 매기십니다. 은혜를 서원하고 살아야 합니다. 구원의 은혜를 서원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서원하고 살라는 말은 우리가 구원의 은혜, 내 인생이 구속사와 연결이 되고 내 인생이 구속사에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서원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가서 집을 드리고 가축을 드리고 인생을 드린 것은 가나안 땅에서 하실 하나님의 구속사의 역사, 오실 메시야 그리스도에 대해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평안하게 하시고 지켜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음 판에 새기라고 하신 은혜, 인자하심과 사랑하심을 내동댕이 쳐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갚을 다 매기셔서 다 받아내셨습니다. 고난의 역경, 고난의 인생, 하나님을 떠나 포로 된 인생을 통해서 다 받아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속사를 설명하셨습니다. 신앙은 우리의 은혜를 증명하고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의 갚을 매기신다고 합니다. 우리가 은혜를 서원해야 하는데 은혜 받고 살겠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구원의 은혜를 전하며 살겠습니다라고 결단하는데 그 값을 하나님께서 다 매기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을 무엇으로 세상에 증명할 수 있을까요? 왜 증명하며 살라고 하실까요? 증명하면서 살아야 우리가 이 세상에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지러운 세상, 혼란한 세상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해주고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은혜가 소멸되는 삶을 경계해야 합니다. 한국교회, 한국사회, 세계는 감정의 화해, 용서, 회복에 대해서 반대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혼자 살기 편하기 때문에, 감정소비가 싫기 때문에 애완견하고 살기도 하고 또 저 사람과 상대도 하기 싫다고 피하면서 살기도 합니다. 이것을 통해서 시대의 트렌드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반대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은혜로 말미암아 감정이 변화를 겪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도 은혜 받는 것, 내 마음이 변화되는 것을 싫어합니다. 히브리서에 그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 마음대로 살고 있는 마음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변화되는 마음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짜증이 나는데 짜증이 안 나는 마음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 자체를 피곤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냥 내 마음대로, 감정대로, 되는대로 살거라고 시대는 이야기를 합니다. 성경은 은혜를 받으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삶에 은혜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있나요? 안식일, 주일은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려고 만들어 놓으신 법입니다. 예배의 자리에 오면 진짜 싫어도 예배를 드리고 나면 마음이 새롭게 됩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마음을 고쳐먹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도 싫어합니다. 그것을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은혜가 소멸되는 삶을 경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신앙을 증명하면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아니면 우리의 욕심을 제어할 수 없고 은혜가 아니면 우리의 죄를 막아줄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소원은 은혜여야 합니다. 누가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누가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걸었나요? 누가 죄악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누가 복음을 전하려고 남의 발을 씻기고 그럴 수 있나요? 누가 그렇게 증명하는 삶을 살 수 있나요? 은혜 받은 자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가난한 자에게 가서 같이 밥을 먹고 더러운 발을 씻겨주고 누가 그렇게 할 수 있나요?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은혜가 소멸되면 자존심 상해서 하지 못합니다. 내 사회적 지위를 생각해서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복음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영광은 사라지게 됩니다. 사랑, 용서 다 사라집니다. 그것에 대한 열매는 우리가 먹어야 하며 우리의 자녀들이 그 재앙을 마주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아침마다 저녁마다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를 받고나면 가정을 지킬 수 있고, 은혜를 받으면 죄로부터 내 몸과 마음을 지킬 수 있고 은혜를 받으면 가난하고 병든 자들이 내 눈에 들어오게 되고 그들을 섬기면서 살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됩니다. 그들의 발을 씻겨줄 수 있습니다. 그들의 발을 씻겨줘야 우리가 진리를 수호할 때 세상이 초대교회처럼 저들이 진짜 그리스도인이야, 저들은 지금 핍박을 받고 있는 거야 라고 교회를 인정해주지 않을까요?

 

문의 / 윤덕현 전도사 010.9899.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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