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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0-09-06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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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9월 06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사람이 저지르는 악한 일 그리고 은혜

본 문

이사야5:1-30

 

 오승주 목사

 

Ⅰ. 극상품 포도나무에 열리는 들포도

 

한국교회의 설교, 우리가 지난 수십 년간 들었던 패턴 중의 하나가 성경을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상징주의 해석이 한국교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구약이나 신약, 요한계시록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상징적으로만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자체를 믿지 않습니다. 성경 원문에 일어난 자체의 사건이라든지, 이것이 우리에게 교훈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그거는 상징적이라고 하면서 우리 상황에 맞추어서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매우 위험합니다. 되게 중요한 것이 뭐냐면 성경을 상징적으로 해석해야하는 부분도 충분히 있지만 성경 자체를 읽으면서 말씀들이 주어지는 사건과 하나님이 말씀을 주신 그대로 순종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을 있는 그대로 표현을 하면서 해석을 나누게 됩니다. 이사야서의 중요한 본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1-2절을 보겠습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_이사야5:1-2‘

 

기름진 산에 포도원을 지었습니다. 좋은 포도나무를 심은 것입니다. 포도즙을 짜는 술틀이 포도원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포도원이고 거기에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뭐가 맺었다구요? 들포도가 맺었다고 합니다. 들포도는 먹을 수 없는 버려야할 포도입니다. 망대도 세우고 포도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모든 환경을 갖춰놨지만 들포도를 맺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앙에 여러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라는 가장 대표적인 목적 중의 하나이며 또 하나는 우리 삶이 변화 되서 주의 복음을 우리의 삶으로도 전하고 입술로도 전하는 삶을 살아라. 이런 것들이 기독교의 중요한 명제 중에 하나입니다. 신약성경의 사도바울이나 초기의 많은 교부, 신앙의 선배들이 추구했던 신앙의 방향, 목적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신앙의 성숙함입니다. 성숙한 신앙.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성숙이라는 단어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가 되라고 늘 이야기를 하고 있고 우리가 경건의 훈련을 하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고 경건의 능력을 가지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그래서 빛과 소금이 되라고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성숙에 대한 도전을 많이 이야기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성숙을 두고 성숙한 신앙인이 되려고 애쓰고 있는가? 그렇지 않음을 우리는 많이 느낄 수 있습니다. 성숙하고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성숙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세 가지 정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현대사회의 반성경적인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자체가 예수님 시대에도 그랬고 구약에도 그랬고 신약에도 그랬고 어느 시대나 우리가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성숙한 삶을 추구하는데 우리를 방해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라는 것입니다. 사회 속에는 반성경적인 문화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구원과 상관없고 신앙과 상관없는 그들의 문화, 그것이 엄청난 유행이라던지, 세상의 발전하고 있는 경쟁사회, 그 안에서 꽃 피어나는 우리가 접하고 보고 듣고 하는 수많은 문화들이 우리가 성숙해지는 신앙생활을 가로막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희 아이가 이제 5살이어서 제가 아침마다 성경을 읽어주는데 성경을 읽어주는 시간은 즐거운 시간이 아닌 거 같습니다. 성경 읽어주는 것 해봤자 5분 정도 걸리는데 아빠 언제 끝나냐고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한 10절정도 읽는데 언제 끝나냐고 물어봅니다. 아이에게 헬로 카봇이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는 1시간을 보여줘도 아이에게 부족한 것입니다. 한 편만 보기로 약속했으니 이제 그만 보라고 하면 더 보여 달라고 울고 떼쓰곤 합니다. 이것이 아이들뿐만 일까요? 이미 우리도 현대사회의 문화에 익숙하고 젖어 들어서 적응해버렸기 때문에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하는데 보이지 않게 우리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개인적인 배경입니다. 개인적인 배경은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왜냐면 어렸을 때부터 형성된 어떤 성품, 삶의 기본적인 태도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문제를 마주했을 때 태도가 다릅니다. 문제? 그냥 지나가지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조금만 문제가 있어도 짜증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배경에 이해서 형성된 성품이나 삶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들인데 주로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하는데 그런 개인적인 배경들이 방해를 많이 합니다. 그 핵심적인 것이 무엇이냐면 상처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성경에서는 사도바울이 우리 속에 쓴 뿌리가 있다고 합니다. 상처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깊은 곳에 나도 모르게 나는 괜찮아요, 저는 뭐 상처 없다고 괜찮다고, 과거 다 해결했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영적으로 성숙하려고 할 때마다 방해하는 것들이 내 속에 내재되어 있는 상처들입니다. 상처가 만들어낸 성품과 기본적인 태도. 여러분 고난을 지나가려면, 성숙하려면 반드시 고난을 지나가야 되고 인내해야 되고 성숙하려면 어떤 과정을 지나가야 하는데 내 기본적인 태도가 그것을 지나갈 수 없는 태도라면 절대 극복할 수 없습니다. 내 성품이 늘 비관적이고 늘 낙심적이라면 어떻게 신앙이 성숙해져가는 연단을 지나갈 수 없습니다. 이것은 성품과 기본적인 태도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세 번째는 기독교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예? 신앙이 성숙해지는데 방해 하는 것이 기독교문화가 도움을 주지 왜 방해를 할까요? 잘못된 기독교 문화. 저는 지금 이것이 한국교회에 아주 중요한 것인데, 예를 들어 진지함을 쫓지 않는 교회 안의 문화입니다. 요즘 청소년, 대학생들이 교회 안에서 모임 같은 것을 하면 진지한 대화를 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을 같이 논하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교회를 위해서 헌신할까, 우리 인생을 어떻게 하면 성숙해서 축복 받을 수 있을까? 이런 이야기를 교회 안에서 하지 않습니다. 가벼운 문화, 예를 들어 교회 가서 무거운 이야기 하지 말라고 합니다. 신앙의 깊은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내 마음을 열어서 깊은 이야기, 발전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어른들도 진지한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피곤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지함을 쫓지 않는 어떤 가벼운 신앙, 가벼운 예배. 이것이 기독교 문화로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해 가는데 있어서 오히려 교회에서 조금 성숙해지려고 하면 혼자서 잘났다, 혼자서 신앙생활을 다한다고 비꼬고 방해합니다. 이 세 가지가 우리를 방해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 삶이 성숙해지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주제입니다. 가스펠교회의 성도님들에게 정말 중요합니다. 국부론으로 유명한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이라는 책을 보면 애덤 스미스 이전에는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동기, 이기심, 나를 위해 사는 것, 내 가족을 위해서 사는 것을 굉장히 나쁜 것으로만 생각을 했는데 그것을 애덤 스미스는 우리에게 있는 이기심은 신이 주신 축복이다, 내가 이기심을 위해서 살 때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 사회를 전반적으로 발전시킬 것이다 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것이 신앙과 맞물리지 않으면 완전한 이론은 아니지만 애덤 스미스가 예화를 들면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돈을 벌기 위해서 좋은 빵집을 차렸고 좋은 빵을 계속해서 만들어야 더 많은 돈을 버는데 좋은 빵을 만들면 사람들은 양질의 빵을 먹을 수 있고, 더 값싼 경쟁을 하기 때문에 값싼 빵도 먹을 수 있고, 그리고 빵집이 잘되면 더 많은 직원들이 여기서 일을 하고 돈도 받아갈 수 있다. 나를 위해서 일한 것 같지만 나는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 해서 이것을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 살았던 것들이 변질되지 않고 타락되지 않는 이유는 도덕감정론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 의해서 공감을 받으려고 하는 감정이 있다고 했습니다. 제3자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이 아니어도 사람들이 내가 돈을 많이 벌거나 훌륭한 삶을 살면 사람들에게 도덕적으로 훌륭해 보이고 또 남들 시선을 의식해서 베풀고 장학금도 내고 이런 것들이 다 애덤 스미스가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 책을 보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좋은 극상품의 포도열매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성숙한 삶을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성숙한 삶이 단지 교회 안에서나, 교회 공동체 안에서만이 아니라 여러분의 삶에서, 여러분의 직장과 가정에서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그 성숙함이 주는 어떤 성실함들,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삶들. 그전에는 내가 누구와 비교해서 내 직업이 부끄러운가, 내가 옛날에는 이랬는데 지금은 조금 어려운가 이렇게 비교해서 낙심하고 주저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공감받기 위해서 하나님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내 삶에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삶, 내가 속한 공동체와 내 아이들과 가족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삶은 결코 이기적인 삶이 아니다. 그 삶이 주는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래서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반드시 우리는 컨설팅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우리 교회 장로님들에게 컨설팅을 받고 목회자와 교역자들에게 도움을 받아서라도 우리 삶이 지금 성숙으로 나아가는데, 하나님 앞에 좋은 포도열매가 되도록 나아가는데 방해되는 것이 있다면 점검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늘 원망하고 불평하고 환경 탓하고 사람 탓하고 비난하고 우리의 입술은 늘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고, 늘 안 된다는 이야기만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고백,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내가 주님이 주신 은혜들을 감사하며 사는 찬송하면서 사는 삶이 아니라 성숙하지 않기 때문에 늘 단단한 음식을 먹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살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 백성에게는 거룩한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사명이죠. 사명은 유일하게 우리의 목숨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걸고 순교하는 것 사명입니다. 나라와 가족을 위해서 목숨을 내던진 사람들. 목숨보다 더 귀한 가치가 있을 때. 내 인생을 드려서. 순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의 복음을 전하다가 내가 이 신앙을 굽히지 않기 위해서, 우상을 섬기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굽히지 않기 위해서 순교했던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 사명이 있기 때문에. 그 사명은 우리 삶을 거룩한 비전으로 이끌어 갑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사명이 있어야 합니다. 사명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사명이 어디서 나오냐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옵니다. 사단, 악한 영, 어둠의 세력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는 일을 계속합니다. 보이지 않게 모든 것을 다 동원해서 그렇게 하는 것 입니다. 관계를 깨는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소유물을 다 가져도 영혼구원을 받지 못하면 완전한 실패라는 것을 사단은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사명도 남유다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헛된 사명으로 바꿔버립니다. 오늘 8절에 보니까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이야기냐면 하나님이 주신 너희는 나의 포도원이야, 내 뜻대로 열매를 맺어야 해, 너희는 나를 통해서 해야 될 일이 있어. 그것을 다 빼앗아가고 세상의 사단이 주는 사명, 악한 영들이 주는 사명으로 다시 채워지는 것입니다. 거기에 엄청난 이기심이 동원 되어서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렇게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소원, 마음, 은혜, 예배에서 점차 멀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떠나서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하나님이 주신 자유는 참된 자유라고 이야기를 했으면 마귀가 아담과 하와에게 준 자유는 가짜 자유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여러분 큰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가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선장이 이야기를 합니다. 바다에 절대 뛰어들면 안되며 배 안에서 안전수칙을 잘 지키고 있어야 우리가 좋은 여행을 할 수 있고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 바다에는 상어가 득실거리고 너무 깊고 위험합니다. 배 안에서 룰을 지키고 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그 룰이 너무 싫어서 저항을 했습니다. 답답해요, 싫어요, 짜증나요. 왜 선장 마음대로야, 나는 자유를 위해서 바다에 뛰어들 거야. 바다에 뛰어들면 어떻게 되나요? 그것이 자유라고 마귀는 우리 인간들에게 속삭였습니다. 하나님을 악한 통치자, 우리를 억압하는 통치자로 둔갑시켜 버렸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고 나면 진짜 자유를 맛볼 거야라고 우리를 속삭였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진짜 자유 같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진짜 자유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율법, 경건, 예배에서 벗어나니까 마음껏 술 먹고 마음껏 흥청망청 살고 내 입술에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사는 것이 좋은 것인 줄 알고 진짜 자유라고 생각했습니다. 광야에서 예수님에게 사탄이 시험을 합니다. 첫 번째 시험은 돌을 보여주며 떡이 되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슨 시험인줄 아십니까? 네가 지금 인간세계에 왔는데 너는 이 돌을 떡이 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을 알아. 사단이 예수님에게 떡으로 굶주린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먹여주면 너는 유명한 사람이 될 거야. 네가 하나님이 될 거야. 똑같은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를 속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다고,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그때 예수님이 바로 반박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 여러분 떡으로 빵으로 우리 인생이 채워집니까? 하나님 말씀으로만 영원한 구원, 천국에 갈 수 있는데 자꾸 목사님들이나 기독교 문화에서 빵, 떡으로 천국을 희미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성경을 자꾸 상징적으로 해석해서 천국이나 구원 이런 것을 중요하지 않게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저지르는 악한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바랬던 공의와 정의. 우리가 성숙한 삶은 공의와 정의로운 삶인데 그것이 7절에 나와 있습니다.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_이사야5:7’

 

좋은 포도열매는 공의와 정의입니다. 이 땅에 공의와 정의는 예수님을 믿고 변화된 삶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적인 공의와 정의는. 도대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타락했는지 오늘 세 가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화 있을진저라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Ⅱ. 화 있을진저_사람이 저지르는 악한 일

 

-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반드시 화 있을진저_이사야5:5-10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귀에 말씀하시되 정녕히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크고 아름다울지라도 거주할 자가 없을 것이며 열흘 갈이 포도원에 겨우 포도주 한 바트가 나겠고 한 호멜의 종자를 뿌려도 간신히 한 에바가 나리라 하시도다_이사야5:5-10’

 

홀로 거주하다. 이것은 그냥 홀로 거주하다가 아닙니다. 가옥에 가옥을 잇고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이 없도록. 이 말은 인간들끼리 똘똘 뭉치자는 것입니다. 인간들끼리 똘똘 뭉쳐서 홀로 거주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자.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준 것이 뭐가 있냐. 하나님 맨날 우리보고 이거 하지 말라, 저거 하지 말라,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명령만 하시지. 우리끼리 똘똘 뭉쳐서 잘 살아보자. 마치 바벨론 왕국을 세운 니므롯 왕처럼. 그는 바벨탑을 세웠습니다. 하나님께 처음으로 대적한 왕이었습니다. 노아의 4대손 아닙니까.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홍수를 경험한 세대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쉽게 대적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니므롯이 처음으로 하나님을 대항해서 만든 것이 바벨탑입니다. 그리고 그가 바벨론이라는 나라를 세웠습니다. 니므롯에 대한 이야기는 기회가 되면 하겠지만 아주 악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떠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귀에 말씀하시되 정녕히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크고 아름다울지라도 거주할 자가 없을 것이며 열흘 갈이 포도원에 겨우 포도주 한 바트가 나겠고 한 호멜의 종자를 뿌려도 간신히 한 에바가 나리라 하시도다_이사야5:9-10’

 

하나님이 저주하시는데 포도원에 겨우 포도주 한 바트가 나겠다. 요즘으로 말하면 큰 포도원에 포도주 밖에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저주입니다. 지금 그런 말입니다. 한 호멜. 예를 들어 많은 씨앗을 뿌려도 한 에바. 한 움큼 밖에 못 얻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열매가 점차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독립하려고 바다에 뛰어드는 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상어가 득실대는 넓은 바다에 선장의 말이 듣기 싫고 귀찮고 안전수칙을 지키기 싫다고 뛰어드는 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자꾸 떠나서 우리끼리 똘똘 뭉쳐보자, 인간끼리 똘똘 뭉쳐보자. 화 있을진저.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는 삶. 여러분 혹시 성공하려고 잘 살려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진다면 그것은 굉장히 위험한 삶의 신호라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또 하나님께서 화 있을진저라고 이야기하십니다.  

 

- 독주와 포도주에 취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_이사야5:11-17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독주를 마시며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보지 아니하는도다 그러므로 내 백성이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사로잡힐 것이요 그들의 귀한 자는 굶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라 그러므로 스올이 욕심을 크게 내어 한량 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 중에서 즐거워하는 자가 거기에 빠질 것이라 여느 사람은 구푸리고 존귀한 자는 낮아지고 오만한 자의 눈도 낮아질 것이로되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정의로우시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일컬음을 받으시리니 그 때에는 어린 양들이 자기 초장에 있는 것 같이 풀을 먹을 것이요 유리하는 자들이 부자의 버려진 밭에서 먹으리라_이사야5:11-17’

 

아침저녁으로 술을 마신다는 것입니다. 많은 열매들로 인해서, 풍요로운 삶이어서 늘 파티를 열고 그 파티를 위해서는 수금, 비파, 소고, 피리, 포도주까지도 준비하는데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자는 화 있을진저. 우리가 예배를 준비할 때 매주 있는 예배이니까 그럴 수 있지만 생일파티를 준비하는 것처럼 준비하십니까?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일 년에 한 번 가는 여행 간다, 해외여행 간다. 준비 어떻게 하죠? 옷, 수영복 챙기고 사진 어떻게 찍을지 계획 다 세워서 하지만 하나님의 일에는 그렇게 준비하지 않습니다. 관심도 없습니다. 다 준비합니다. 집들이 한다고 집에 친구들 초대하면 음식 장만하고 청소합니다. 그런데 집에 심방가면 준비도 안하고 예배드린다고 해도 관심도 없습니다. 이것은 비단 비유뿐만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관심. 무엇으로? 늘 술 먹고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짜 술이기도 하며 상징적으로는 우리가 추구하던 성공에 취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아닌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에 취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술이기도 합니다. 아침저녁으로 독주에 취해서 사는 것입니다. 맨날 연회를 열고 파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굉장히 행복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과거도 미래도 없고 술 취해 있으면 괴로운 일이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괴로운 일이 사라지나요. 제가 지난번에 다른 교회 남자 집사님 상담요청이 와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다니던 직장에서 나오게 되고 나오면서 받았던 돈을 투자해서 다 잃어버렸다. 6-7개월을 괴로우니깐 매일 술만 먹었다고 합니다. 술 먹으면 돈이 생기나요? 직장이 복직이 되나요? 정신 차리세요 집사님. 하나님이 어려움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친밀한 관계를 회복하시려고 어려움을 주신 것 아닙니까. 다시 집사님에게 새로운 삶을 주시려고 어려움을 주신 것이 아닙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시고 술부터 끊으세요. 그것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술 먹고 있으면 지옥이 없습니까? 술 먹고 있으면 천국이 없고 마귀가 역사 안합니까? 나만 취해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삶으로 마귀는 계속 취하게 만듭니다. 취하지 마세요. 그 무엇에도 취해서는 안 됩니다. 그 무엇에도 현혹 되서는 안 됩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되어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 백성이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사로잡힐 것이요 그들의 귀한 자는 굶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라_이사야5:13’

 

술 흥청망청 먹고 있으면, 취해 있으면 하나님 말씀을 안 읽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 준비하지 안하고, 공부도 안하고 미래준비도 안합니다. 영적으로 완전 무지해져서 다 사로잡히게 됩니다. 누구에게요? 바벨론, 앗수르에게. 여러분 우리나라가 일본에 침략을 당했을 때 우리 독립투사들이 끝까지 정신을 차리고 역사를 지키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싸우지 않았다면, 일본이 주는 좋은 것들, 문화들 흥청망청 다 받아드리고 살았다면 지금 우리도 일본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닌가요? 공산주의자들이 사주해서 우리나라를 전체 공산주의로 만들려고 할 때 깨어있는 사람들, 하나님을 믿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공부하고 깨어서 무슨 일인지 확인하지 않으면 우리는 거기 넘어가게 됩니다. 지식이 없어서. 하나님도 말씀하십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서,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도다. 굶주립니다. 흥청망청 살아보세요. 나중에 영적으로 굶주려서 어둠의 세력들에게 다 빼앗기게 됩니다. 

 

-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끄는 자는 화 있을진저_이사야5:18-25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 수레 줄로 함 같이 죄악을 끄는 자는 화 있을진저 그들이 이르기를 그는 자기의 일을 속속히 이루어 우리에게 보게 할 것이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는 자기의 계획을 속히 이루어 우리가 알게 할 것이라 하는도다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잘 빚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뇌물로 말미암아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에게서 그 공의를 빼앗는도다 이로 말미암아 불꽃이 그루터기를 삼킴 같이, 마른 풀이 불 속에 떨어짐 같이 그들의 뿌리가 썩겠고 꽃이 티끌처럼 날리리니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멸시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노를 발하시고 그들 위에 손을 들어 그들을 치신지라 산들은 진동하며 그들의 시체는 거리 가운데에 분토 같이 되었도다 그럴지라도 그의 노가 돌아서지 아니하였고 그의 손이 여전히 펼쳐져 있느니라_이사야5:18-25’

 

하나님이 지금 화 있을진저라고 하는 사람들이 누굽니까. 죄악을 끄는 자들입니다. 거짓으로 끈을 삼아서 죄악으로 끄는 자. 여러분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작더라도 부족하더라도 한 영혼을 살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내 삶을 성실하게 살아서 누군가에 주의 복음을 전하는 삶이 빛된 삶을 조금이라도 사는 것이 낫지 죄악을 끄는 삶이 되면 될까요. 남을 시험 들게 만들고 하나님 믿지 못하도록 만드는 죄악을 끄는 삶. 나만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 가족들, 내 자녀들 예수님 믿지 못하도록 만드는 죄악을 끄는 삶. 화 있을진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그렇다는 것입니다. 자기들만 안 믿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들끼리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켜 버리고 흥청망청 파티하고, 독주마시면서 성공에 취해서 사는 동안에 죄악을 끌고 들어오는 것이다. 죄악을 끌고 들어오면 반드시 오는 것이 음란, 부정, 부패입니다. 하나님의 사명, 거룩하고 빛 된 소명이 다 사라졌습니다. 죄악을 끄는 삶 화 있을진저. 저는 화 있을진저의 삶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저희 가스펠교회 오시는 가족들을 화 있을진저로 내몰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입 바른 소리도 할 수 있고 기분 좋게 설교도 할 수 있고 사역도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화 있을진저로 신앙생활을 내몰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삶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으로 성숙의 길로 가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힘듭니다. 목회하는 저도 힘듭니다. 왜요? 여러분을 늘 꼬셔야 되고, 밀어줘야 되며, 저도 그 길로 가야하기에 쉽지는 않습니다. 쉬운 목회는 그냥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목회하는 것이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두렵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화 있을진저에서 벗어나서 성숙으로 가는, 극상품 포도열매로 가는 길에 우리에게 주신 것이 무엇이냐면 은혜입니다. 은혜는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엄청난 에너지와 같습니다. 놀랍습니다. 어떻게 저 사람이 변했지? 어떻게 내가 이런 말을 하고 행동을 하지?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은혜입니다. 은혜가 끼치는 영향은 엄청납니다. 옛 어른들이, 부흥 강사들이 은혜를 보고 원자폭탄이라고 했습니다. 핵폭탄 같다는 것이다. 이 은혜가 임하는 것을 말릴 수가 없습니다. 은혜 안에 거하라고 사도바울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 안에, 말씀의 은혜 안에 거하라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성숙을 목적 삼아서 가는데 방해하는 것들이 세 가지였다면 성숙한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 우리가 반대로 어떤 결과를 낳냐면, 미성숙하면 자신의 감정, 환경, 상처에 지배를 받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말씀처럼 악을 선하다 하고 선을 악하다 흑암을 광명으로 삼고 광명을 흑암으로 삼고. 무슨 말이냐면 내가 이 땅에서 하나님이 보여주신 선명한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성숙하지 못하면 분별도 하지 못하고 내가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지, 내가 어느 길로 가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인지 구분도 되지 않는 아주 어린아이와 같은 한 살 두 살 세 살 네 살 미성숙한 존재로 계속 살면 자신의 상처, 감정에 지배를 받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신앙의 성숙을 위해서 끊임없이 도전하라고 하며 싸우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사도바울은 싸우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은혜로 신앙이 성숙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은혜로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봐야 합니다. 

 

Ⅲ. 하나님의 은혜

 

- 은혜로 눈이 열리면_이사야5:26-30

 

‘또 그가 기치를 세우시고 먼 나라들을 불러 땅 끝에서부터 자기에게로 오게 하실 것이라 보라 그들이 빨리 달려올 것이로되 그 중에 곤핍하여 넘어지는 자도 없을 것이며 조는 자나 자는 자도 없을 것이며 그들의 허리띠는 풀리지 아니하며 그들의 들메끈은 끊어지지 아니하며 그들의 화살은 날카롭고 모든 활은 당겨졌으며 그들의 말굽은 부싯돌 같고 병거 바퀴는 회오리바람 같을 것이며 그들의 부르짖음은 암사자 같을 것이요 그들의 소리지름은 어린 사자들과 같을 것이라 그들이 부르짖으며 먹이를 움켜 가져가 버려도 건질 자가 없으리로다 그 날에 그들이 바다 물결 소리 같이 백성을 향하여 부르짖으리니 사람이 그 땅을 바라보면 흑암과 고난이 있고 빛은 구름에 가려서 어두우리라_이사야5:26-30’

 

누가요? 우리 삶에 어떤 고난, 악함, 흥청망청 살고 독주를 마시며 살고 죄악을 끌고 살면 하나님께서 기치를 세워서 먼 나라에서 부터 앗수르와 바벨론을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빨리 오고 넘어지는 자도 없다고 합니다. 암사자 같이 부르짖으며 와서 먹이를 움켜 가져가서 건질 자가 없을 정도로 강력한 어려움이 그들에게 임하게 된다고 합니다. 30절은 무슨 말인가요. 

 

‘그 날에 그들이 바다 물결 소리 같이 백성을 향하여 부르짖으리니 사람이 그 땅을 바라보면 흑암과 고난이 있고 빛은 구름에 가려서 어두우리라_이사야5:30’

 

무슨 말인가요? 바벨론의 포로가 된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이 소리를 부르짖는다고 합니다. 사람이 그 땅을 바라보면 그 전에 포도원이었던 파티하고 집을 탄탄히 지어서 가옥과 가옥을 지어서 똘똘 뭉쳐서 잘 살아보자고 하던 죄악을 부정하고 부패하던 삶을 살던 그들이 땅을 보니 흑암과 고난, 빛은 구름이 가려서 어두운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 이것을 봐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정신 차리지 않고 세상의 흐름에, 문화에 빠져, 내 감정에 취해서, 내 이기심에 취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않고 말씀을 공부하지 않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도다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성숙을 추구하지 않으면 우리의 눈은 어두워지고 곧 그런 미래가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은 머지않아 교회를 떠날 것이며 동성애, 마약등 보이지 않는 수많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들이 곧 생길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봐야 합니다. 어떻게 볼 수 있나요? 어떤 눈으로 봐야 하나요? 흑암과 고난만 있고 빛이 구름에 가려진 우리의 미래를 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길 원하십니다. 그것을 봐야 어떻게 살아야하고 똑바로 정신을 차리고 신앙생활을 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 자녀들, 다음세대를 위해서,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교회가 정신을 차려야겠다. 그것을 봐야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고 그대로 끝나면 안 됩니다.

 

-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_이사야4:3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 중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_이사야4:3’

 

하나님이 이야기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 남아있고, 머물러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그 더러움을 씻겨주시고 그 피를 청결하게 해주시고 초막을 지어주셔서 영광을 위에 두시고 그 영광이 떠나가지 않게 덮개를 덮어주시겠다. 우리가 그냥 미래만 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미래를 바꾸고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은혜를 사모하는 자리로 가야 합니다. 우리 미래는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인간이 바꿀 수 있지 않습니다. 인류 역사, 하나님 손에 없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인이 잘해서 나라가 변화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보수, 진보가 정권을 잡아도 이 나라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싸워야 합니다. 저도 싸우고 있습니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하고 우리가 동성애를 조장하고 우리 아이들에게 잘못된 문화들을 조장하는 것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나라 민족의 미래가 하나님의 손에 있다고 믿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예루살렘 안에 남아있는 자, 생존한 자들은 거룩했다고 합니다. 예루살렘 안에 숨어있는 것이 아니라 거룩했다고 합니다. 거룩한 사람들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없습니다. 거룩한 사람이 없습니다. 거룩이 무엇인가요? 거룩한 삶이 무엇인가요? 은혜 받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잖아요. 정확하게 예수님 믿고 변화된 삶, 가정도 정상화가 되고 내 삶도 정상화가 된 삶입니다. 신천지는 은혜 받으면 이혼하라 하고 가족을 다 팽개치고 가정에서 나오라고 합니다. 나 혼자 구원 받아야지 가르칩니다. 가정 파탄내고 미래 파탄내고 대학생 학자금 다 헌금하게 만듭니다. 이게 사이비입니다. 예수 믿으면 가장 지극히 정상이 됩니다. 모든 사람이 봤을 때 가정을 살리고 내 주변을 화목하게 만들고 따뜻하게 만들고 위로하고 사랑하고 섬깁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나요? 내 안에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해줍니다. 은혜는 어떻게 받습니까? 많은 분들이 질문을 합니다. 요한복음 15장 1-12절을 통해서 은혜는 이렇게 받는 것이라고 설명하려고 합니다.

 

- 은혜는 어떻게 받나요?_요한복음15:1-12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_요한복음15:1-12’

 

포도나무가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하셨는데 예수님은 자기가 진짜 포도나무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 보고 가지라고 하셨는데 가지는 헬라어로 클레마라고 합니다. 클레마는 큰 가지가 아니라 어린 가지라고 합니다. 젖가지라고 합니다. 아주 연약한 가지를 이야기 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는 가지라고 하셨는데 접붙인 것입니다. 연약한 가지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이 연약한 가지로 붙였는데 열매를 맺을 때까지 열매를 맺으려고 하는 가지는 깨끗하게 해서 더 좋은 열매를 맺게 하시며 열매를 맺지 않으려는 가지는 가지치기를 해서 잘라버린다고 합니다. 살아남지 못하는 것이다. 가치치기를 했는데 이 가지가 살아남지 못하고 열매를 안 맺으면 죽은 가지가 됩니다. 가지치기를 했는데 그걸 극복하고 살아남으면 좋은 열매를 맺는 포도나무가 됩니다. 왜 가지치기를 하나요? 극상품의 포도를 맺기 위함입니다. 무슨 말인가요? 우리보고 성숙하라는 것입니다. 성숙하라는 것과 은혜가 무슨 상관관계가 있나? 여러분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십니까? 서먹서먹하십니까? 하나님과의 평상시 관계가 서먹서먹하다면 내가 고난당할 때 하나님을 찾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하고 기도하는 것이 어색하다면 우리가 고난당하고 어려움을 지나갈 때 부탁도 하지 못합니다. 충분한 기도가 있는 사람은 생의 어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이 그를 보살피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예전 어른 목사님들이 기도의 단을 쌓는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기도를 저축하는 것입니다. 저는 기도가 돈, 물건도 아니고 저축한다는 게 이상했습니다. 그게 아니라 하나님하고 서먹서먹하지 않은 겁니다. 주님이 내 안에 주님이 있다는 말, 주님이 내 안에 있다는 말은 주님과 서먹서먹하지 않는 관계라는 겁니다. 여러분 기도가 서먹서먹하다? 이미 하나님하고 관계가 좋은 관계가 아닌 겁니다. 서먹서먹한 가지는 잘라버립니다. 여러분 서먹서먹하다? 부부사이, 교역자 팀도 서먹서먹하면 안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전도사님들하고 친해지려고 엄청 노력합니다. 성도님들하고 친해져야하는데 그건 어떻게 해야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서먹서먹해지면 안 됩니다. 내가 목사님께 어려울 때 기도부탁하고 도와주세요해야 하는데 관계가 서먹서먹하면 부탁하기 어렵습니다. 도움을 받아야하는데 관계가 서먹서먹한데 어떻게 도움을 받을 수 있나요. 하나님과 서먹서먹하지 않도록 충분한 기도가 평상시의 삶에 있어야 합니다. 기도생활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공감해주시는 것 속에 우리가 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너 잘 안다, 너 힘들고 어렵지 내가 널 위로해줄게. 여러분이 예배를 드릴 때마다 하나님과 친하기 때문에 저 말씀이 진짜 하나님의 음성 같고 한 마디, 한 마디가 나를 위로하심으로 들려야 합니다. 그 친밀함 속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그것이 잘 되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은 신앙의 성숙을 위해서 싸우라고 하는 것 중에 제일 첫 번째로 영의 양식을 먹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말씀입니다. 왜 이것이 중요하냐면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는 것이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핵심이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오늘 요한복음 15장에도 내 말이 너희 안에 있고 너희가 내 계명을 지키면 너희는 나와 함께하고 있는 거야. 무슨 말인가요? 포도나무에서 나오는 영양분, 광합성 작용에서 받아 뿌리에서 부터 오는 영양분이 가지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가지가 살 수 있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데 그 영양분이 차단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차단되어 있으면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하면 가지는 자라지 못합니다. 그러면 잘라지고 밖에 불에 태워져 버립니다. 하나님의 우리에게 공급해주시는 영양분이 말씀입니다. 남유다가 왜 바벨론의 포로가 됐는가?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말씀 공급이 끊겨졌습니다. 말씀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생각과 내 영에 충만하게 임했을 때 거기서 뭐가 나오죠? 내 말이 나오고 내 기도가 나오고 변화된 삶이 나옵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하나님 말씀이 담겨있지 않고 세상에 죄악 된 유혹들이 담겨져 있다면. 남유다가 그랬습니다. 불법, 죄악을 줄로 끌어당겨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모으고 저 돈을 뺏어올까? 이런 것이 마음에 있으면 그런 열매를 맺게 됩니다. 우리의 입술의 고백은 마음에 있는 것들이 나옵니다. 그렇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읽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온 상태에서 서먹서먹하지 않기 위해서 기도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너무 너무 중요합니다. 충분하게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담겨지고 충분히 기도하는 것을 보고 성경은 은혜라고 이야기 합니다. 포도원의 주인은 하나님, 포도나무는 예수님. 우리는 어디에 붙어 있어야 하는가? 예수님과의 연합, 하나님과의 관계. 거기에 붙어서 어린 가지가 접붙여서 정확히 뭘 해야 하는가?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영양분을 공급받고 그 가지와 친밀한 교제를 해야 합니다. 그게 은혜 받는 것입니다. 그때 거짓 자유, 거짓 확신에서 벗어나고 하나님의 은혜로 점차 내 삶이 새로워지고 변화되고 굵은 가지가 되고 열매를 맺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내 삶이 하나님께 붙어서 살아나게 됩니다. 성숙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그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저는 가스펠교회 성도님들이 극상품의 포도열매를 맺기 원합니다.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연합할 때 하나님과 관계를 가질 때 우리 인생 반드시 극상품의 포도열매가 됩니다. 이것을 오해하지 마세요. 극상품의 포도열매가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거룩해지는 것, 세상에 복음의 영향을 끼치는 것,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하기 위해서임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관계. 그래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때 요구하시는 말씀들이 많은데 그게 싫어서 거짓 자유를 찾아서 바다에 뛰어드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남유다 같이 사람이 저지르는 악한 일을 범하지 않고 우리의 삶이 은혜를 향해서 수정되고 조금 어렵고 힘든 일이 있어서도 은혜를 향해서 방향을 틀고 은혜를 사모하며 가는 가스펠교회 성도님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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