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23 주일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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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_예레미야7:1-7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예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 사람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곳에 살게 하리라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며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 뒤를 따라 화를 자초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살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토록 준 땅에니라_예레미야7:1-7’
오늘 예레미야의 말씀은 요시야왕의 종교개혁을 포기한 여호야김왕이 통치하던 시절에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여호야김왕은 우상을 섬기고 타락했던 왕입니다. 그리고 바벨론에게 끔찍한 포로가 되는 바로 전 시대입니다.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느끼셨겠지만, 저는 굉장히 큰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신앙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그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 시대의 신앙은 성전, 곧 건물로서의 성전 중심이었습니다. 그들은 절기 때마다 제사를 거창하게 드렸고, 더 아름답고 화려하게 성전을 꾸몄습니다. 그런 것들이 자신들을 구원해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뒤로는 거짓과 우상숭배, 이방인과 고아, 과부를 압제하였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이중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걸 모르실리 없지요. 지난 주 말씀처럼 우리가 생각과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우리 역시 그 시대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봅니다. ‘이 땅의 교회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일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일까.’ 우리는 그렇게 찬양도 하고, 그렇게 말씀도 듣고 하지만, 우리의 삶은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죄라 하면 음란한 것이나, 거짓말이나 그런 것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미움이나 사랑하지 못한 것은 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지요? 자기중심적인 사고, 자기 자아가 그대로 있는 신앙생활을 여전히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성전 앞에서 예레미야가 말씀을 전해도 그들은 듣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얼마나 예배를 잘 드리는데, 우리가 지금 얼마나 헌금을 잘하고 있는데, 우리가 지금 얼마나 찬양을 잘하는데, 우리가 지금 얼마나 말씀을 잘 암송하고 있는데’ 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듣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가스펠 가족 여러분, 저 또한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그 음성이 들리지 않았을까 노심초사하였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씀을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 마음으로, 영혼으로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하겠습니다. 창립예배와 임직식을 앞두고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이 무언인지 찾아야 하겠습니다.
Ⅱ. 신념인가, 믿음인가
1. 우리가 갈 수 없는 길_요한복음13:36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입니다. 지금도 수제자이고 앞으로도 수제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계속해서 말씀을 보면서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굉장히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격도 매우 급하고 불의를 참지 못하며 그런 일에 앞장서는 유형의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 베드로가 발을 씻기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이상한 낌새를 차리고는 어디로 가시는지 묻는 것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_요한복음13:36’
예수님은 굉장히 냉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절대 내가 가는 길을 지금 따라올 수 없어.’ 오늘 본문 중에서 중요한 단어는 바로 지금이라는 단어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지금의 상태로는 자신의 길을 따라 올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아셨습니다. 베드로는 눈물을 글썽거렸을 것입니다. ‘내가 주님을 얼마나 잘 따랐는데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십니까?’ 사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모든 공생애 사역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보았고, 경험했습니다. 심지어 베드로는 예수님을 잡으러 온 자들의 귀를 칼로 자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을 위하여서는 목숨도 버릴 수 있다고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냉정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베드로의 지금의 상태를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아직 십자가를 체험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그는 십자가 신앙보다는 자신의 자아가 더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지만 여전히 십자가와 상관없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아무리 좋은 뜻을 가져도 아무리 그 마음이 간절해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을 저와 여러분에게 들려주시는 것입니다.
2. 베드로의 강한 신념_요한복음13:37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_요한복음13:37’
베드로의 대답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대한 의도나 의미를 묵상하지 않은 채 자기 중심적으로 한 대답입니다. 이처럼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과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가정을 위하여 변화된 새 삶을 살고 싶은데, 자신이 그렇게 살아지지 않아서 낙심하기도 하고 예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그런 분들이 많습니다. ‘왜 하나님은 내 마음을 몰라줄까? 왜 내 기도에 응답해주시지 않을까? 내가 성공하면 하나님께 더 잘 할 수 있는데, 내가 이 문제만 해결되면 진짜 제대로 할 수 있는데 왜 이 문제는 풀리지 않고 왜 성공은 어려울까?’ 여러분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여전히 십자가를 이해하지 못했고, 십자가가 우리 인생에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신앙을 믿음이라고 착각하고 열심히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건 믿음이 아니라 신념이었습니다.
베드로의 지금 상태는 믿음이 아니라 신념입니다. 여전히 그는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해방하고,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란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가시는 자리에 지금 가지 못하는 것은 베드로가 예수님에 대하여 기대하는 것이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위의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독립시키고 왕이 되어 가난과 병마들을 다 이겨낼 메시아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 베드로는 갈 수 없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런 기대를 가졌기에 예수님께서 죽으시면 그런 그의 모든 기대도 다 없어지기에 예수님은 자기가 목숨을 바쳐서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베드로는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 오지 못할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베드로의 신념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다들 자기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정의가 있고, 하나님의 일이란 이런 것이라는 결론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결코 죽으면 안 되는 분이라는 결론을 가진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그렇게 하나님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이신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것에 자기 육신과 자아를 순종한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신념을 가지고 계십니까? 저는 제가 사역하면서 너무 큰 오류를 범했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잘 보이기 위해 제가 사역하는 사람들을 제 마음에 들게 바꾸려고 했던 것입니다. 너희들은 내 제자들이니까 이렇게 살아야 해, 그것은 은연중에 내 가족에게도 적용되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런 신념이 제 삶에도 적용되었다는 것입니다.
3. 교만 혹은 낙심의 길_요한복음13:38
그렇게 확신에 차서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무서운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_요한복음13:38’
네가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 할 것이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것은 베드로 생애의 최대 실패였고 좌절이었습니다. 그렇게 기고만장했던 베드로 자신으로서는 끝장이다라고 생각할 만한 일이었겠지요. 그래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알고도 디베랴 바다로 고기 잡으러 돌아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는데도 말입니다.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신앙생활이었는지, 자기 자아가 강했는지 아시겠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를 다시 택하여 쓰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아마 베드로와 우리에게 예수님은 꼭 가르치고 싶으셨던 것이 있으셨습니다.
첫째는 아무리 큰 신념을 가지고 자신의 결심, 자신의 주장을 의지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게 하셔서 의지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다시 오셔서 모든 것을 할 능력이 되어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념은 교만과 낙심의 길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그것은 신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닌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거나, 신앙을 포기하는데 그것의 이유를 이제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겉모양으로 많이 판단했었습니다. 저분은 기도를 많이 하시네, 저분은 은혜를 많이 받으시네, 그런데 의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왜 저렇게 표독스럽게 하실까? 왜 저렇게 연약한 성도를 돌보지 못할까? 왜 저렇게 자기중심이 강할까? 그것이 교만이고 낙심입니다. 오늘 말씀을 깨닫고 보니 그것은 십자가 신앙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도대체 무엇인데 베드로가 아직은 갈 수 없다고 하셨을까요?
십자가의 핵심은 용서와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려고 하는 사람까지도 사랑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십자가는 온 세상의 모든 사람의 죄를 예수님이 대신 지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에게 용서를 베푸신 것이 십자가이고 그 용서를 베푸신 사랑이 십자가입니다. 그 길을 갈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그 길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예수님이 가신 자리인 십자가는 복음이 죽어야 복음이 전해지는 세계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처럼 다들 밀알을 지키려고만 하니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길을 신념으로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그 길은 자기중심, 자기 자랑으로는 절대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 길은 가장 아름다운 길이요, 생명의 길입니다. 저는 그 길을 가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크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가장 낮아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길을 보게 되면 낮아집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알면 믿음의 자리로 가게 됩니다.
Ⅲ. 이 길을 갈 수 있을까요?_요한복음14:15,21,23,26-27,
요한복음15:4-5,9-11,19,요한복음16:13,사도행전1:8
우리가 이 길을 갈 수 있을까요? 저는 제가 하나님 앞에 엎드릴 때 마다 이 질문을 합니다. 그것은 제 힘으로, 제 의지로, 제 마음만으로 갈 수 없는 길이란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크고 넓은 길을 가려고 합니다. 모두가 자기 자아를 위해, 자기의 꿈과 비전을 위해 갑니다. 그러나 정말 예수님이 가신 이 길을 가고 싶습니다. 왜냐면 저는 보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십자가를 보았습니다. 저 같은 못나고 미련한 사람이 그 은혜로 새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말할 수 없는 죄가 많았습니다. 남들이 술, 담배 안 핀다고 착하다 했지만 그것은 사실 죄가 아닙니다. 저는 정말 죄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사랑은 그 죄를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바라보게 해주셨습니다. 여러분, 이 길을 가야만 우리 가정도 살리게 되고, 우리 교회도 살게 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사는 길입니다. 어떻게 이 길을 갈 수 있을까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리라_요한복음14:15’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_요한복음14: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_요한복음14:23’
이 길을 가는 방법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신념으로 막혀 있습니다. 내 의와 내 자아로 막혔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이 필요하나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두려워서 제사는 잘 드리고 성전을 화려하게 꾸미나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상을 섬기고, 죄를 짓고, 자기 욕망을 위해 남을 압제 합니다. 가룟 유다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놀라운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_요한복음14:26-27’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_요한복음15:4-5’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_요한복음15:9-11’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신신당부하셨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_요한복음16:13’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_사도행전1:8’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기다리라고 엄하게 당부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목격하였지만 성령이 임하여 예수님이 주님이 되셔야 예수님의 증인된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십자가를 통과해야만 합니다. 베드로는 이 말을 잘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왜냐면 예수님께서 수많은 기적을 행한 것을 보았고 체험했지만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과 승천을 목격했던 제자들이 얼마나 흥분했을까요? 빨리 가서 말하고 싶은데 예수님은 기다리라고만 하셨습니다.
저는 오늘 우리교회가 좀 더 기다리길 바랍니다. 좀 더 기다리길 원합니다. 십자가의 용서와 사랑으로 내 자신이 변화될 때까지입니다. 목사님 저를 못 믿으십니까? 아닙니다.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가정을 살리고, 이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 교회가 되려면 기다려야 합니다. 무엇을 기다려야 합니까? 내가 죽고 성령이 내안에 살 때까지 기다려야합니다. 우리가 악하다고 이기적이고 더럽다고 좌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심을 믿고 성령의 역사를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를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을 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성령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말입니다.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에 진심으로 깨달음이 있길 원합니다. 십자가가 용서와 사랑이라면 우리가 그 길을 갈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 길은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갈 수 있는 길입니다. 베드로가 훗날 성령을 받고 어떤 일이 그의 인생에 일어났는지 우리는 알지요. 거짓을 버리고, 성령 하나님이 내 안에서 역사하시도록 함께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때 회개의 영을 부어주실 것이고, 용서와 사랑의 영이 우리 안에 역사 할 것입니다.
✔ 주님 성령을 부어주세요. 우리의 마음은 간절합니다. 주님의 뜻대로 살고 싶고, 주님이 가신 사랑과 용서의 길 곧 십자가의 길 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의 욕심과 동기, 야망이 더 컸음을 고백합니다. 실제로는 세상의 유혹과 세상이 주는 달콤한 열매를 바라보고 그 길을 가고자 했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회개의 영을 부어주세요. 우리의 신념과 의지로 바꿀 수 없사오니 은혜를 부어 부세요. 성령으로 충만하게 해주세요. 그리하여 정말 변화받길 원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인생이 되길 원합니다. 십자가의 길을 가길 원합니다. 무너진 우리의 가정을 살리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세우며, 세상에 은혜와 축복의 통로로 살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