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Gospel Letter. ' 왜 지쳤을까? '

Gospel Letter. ' 왜 지쳤을까? '

이번 주는 말씀을 듣는데 ‘내가 참 많이 지쳐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는 자립을 하고도 어려운 선교지를 도울 만큼 성장하였고, 제가 살아가는 환경은 뭐하나 부족한 것 없이 안정적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날마다 하나님과 친밀한 시간도 가질 만큼 그 어느 시기보다 영적으로 참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묵상하는데 제 안에 은밀한 욕심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남들보다 더 의로워야 해, 남들보다 더 잘되어야 해, 남들보다 더 사역을 잘해야 해, 남들에게 인정받아야 해’ 이런 욕심들은 저의 시선을 하나님이 아닌 죄를 향하게 만듭니다. 저의 죄는 미워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 정죄하는 마음, 시기하는 마음, 낙심하고 분노하는 마음입니다. 마음이 병들어 죄를 짓고 있다는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_야고보서1:15’

모든 죄는 욕심에서 시작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욕심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는 죄를 짓게 만듭니다. 아담이 그랬고,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죄는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바리새인처럼, 사데교회처럼 겉으로는 살아있지만 실상은 죽은 상태로 인생을 살게 됩니다. 바리새인처럼 교회도 잘 다니고, 가정도 행복한 것 같은데 죽은 상태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데교회처럼 교회가 성장하고, 사역도 열심히 하지만 죄를 짓고 있다면 그것은 죽은 상태입니다. 그때부터 이상하게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듣지 않습니다. 멀어집니다. 저는 그것이 몹시 두렵습니다.

우리 인생이 힘든 것은 고통스러운 환경 때문이 결코 아닙니다. 욕심 때문입니다. 어려운 환경에 처했을 때 울며불며 기도해도 내가 평안하지 않은 이유는 말씀이 들리지 않는 욕심 때문입니다. 환경으로밖에는 기쁠 일이 없으니 오직 환경에만 집착하게 됩니다. 그러니 말씀이 뚫고 들어갈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환경만 조금 어려워져도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어떻게 이렇게 하실 수 있냐?’라고 분통을 터트립니다.

믿음의 사람은 나를 괴롭히는 세력이 있어도 결코 ‘저 세력을 물리쳐주옵소서’ 하는 식의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남편의 사업이 망해도 ‘내 잘못입니다. 내가 너무 돈을 좋아해서 이 남편을 만났습니다.’ 내 자녀가 잘못된 길을 가도 ‘내 잘못입니다. 내 욕심으로 내 자녀를 마음대로 하려고 해서 그렇습니다.’ 하고 회개하며 기도합니다. 그것이 말씀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기도입니다.

어제는 교회 바닥에 엎드려 기도하였습니다. 특별한 기도제목 때문이 아닙니다. 단지, 은혜를 받고 싶었을 뿐입니다. 저는 언제쯤 하나님으로만 기뻐하고, 하나님으로만 감사하며, 하나님으로만 만족하고 살 수 있을까요?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_베드로전서1:23’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말씀은 제 안에 있는 욕심을 발견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제 눈으로 똑똑히 보도록, 인정하도록 믿음의 용기도 주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잘못된 욕심이 아닌 거룩한 욕심을 가지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축복된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왜 지치는지 이유를 모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영혼이 지쳤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받고 계시나요? 우리는 항상 이 질문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_주의 종에게 은혜를 주옵소서, 오승주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