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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3 주일예배

2017-07-23 주일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2017-07-23 주일예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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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3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내 마음에 주신 것

본 문 :

느헤미야 2:11-20

박영성 목사(미국 주님이 함께하는 교회)

 

저는 사역을 하면서 렘넌트들이 말씀을 잘 알고 있지만 실제 삶에서는 힘들어 하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개인화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복음이 내것이 되어야 하는데 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 모습을 봅니다. ‘너는 복음이 네게 힘이 되느냐. 사역을 하면서 복음의 힘으로 하느냐.’ 그래서 증인으로 서기 위해 발버둥을 칩니다. 한 교회에서 리더로 섬기던 렘넌트가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하며 교회만 떠나는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을 져버리는 것을 봤습니다.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나서도 자신이 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성공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실제 힘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미국에 가보니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되어야 하는데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자신의 정체성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속한 그룹에서 자신을 그곳에 맞춰가려 합니다. 그것이 지속되다보면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게 됩니다. 교회에서 삶과, 가정에서 삶, 학교에서 삶이 전부 다르게 살아 갑니다. 어떤 렘넌트들은 삶이 거짓말로 쌓여있기도 합니다. 나중에는 자신이 어떻게 말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게 됩니다.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을 숨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답이 된다고는 하는데 나의 해답이 되지 않고 실제 삶에서는 힘든 것입니다.

 

제가 아들을 낳고 나니 하나님이 많은 부분들을 깨닫게 하십니다.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게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기대고 의지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과 만나기 어렵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나님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사역을 하면서 느끼는 점은 렘넌트들이 교회를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요즘 미주에서는 사역하는 분들이 공통된 주제로 가지고 있는 것이 교회화입니다. 완벽한 교회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제가 교회를 세워갈 수 있도록 믿음 주세요.’라고 기도하는 렘넌트들을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렘넌트들이 교회화 되지 않는 이유는 중 하나는 세상의 각인입니다. 일주일간 세상에 있으면서 내가 보는 모든 것들이 생각, 영혼에 각인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불신자처럼 살아갑니다. 가치관, 기준이 불신자처럼 각인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내 중심, 물질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거기에 감각을 갖지 않으면 그 중심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세상의 각인은 계속해서 몰려 옵니다. 우리는 이것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주는 마리화나가 합법화되었고 배달서비스도 생겨났습니다. 북가주에는 마리화나 gym(체육관)이 생겨났습니다. 교사를 하는 렘넌트에게 들어보면 아이들이 쉬는시간에 마리화나를 하고 와서 멍해 있기도 하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사도행전 16장이 기억이 났습니다. 귀신들린 여종이 있고 주인들이 이를 통해 이익을 얻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귀신을 쫒아내니 주인들은 자신들에게 손해가 생겨 바울에게 화를 냈습니다. 청소년들을 돈으로 보고 마약을 합법화하는 것을 보면 그와 같습니다. 렘넌트들을 그곳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오늘 본문의 느헤미야가 동일한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70년간 포로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느헤미야를 통해 성벽을 재건하십니다. 하지만 100년뒤에 성벽이 무너졌습니다. 느헤미야는 훼파된 성벽을 보고 눈물을 흘렷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주위로 성벽이 있는데 훼파된것있습니다. 성벽이 무너지면 외부의 공격이 와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무너지게 됩니다. 저희가 한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이 부분입니다.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_느헤미야1:3’

 

성벽은 영적인 보호막의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벽에는 성문이 있고 들어오고 나가는 것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문과 성벽이 굳건해야 합니다. 에베소서6장에는 전부 방어기재를 이야기 합니다. 공격기재는 단하나입니다. 지금 사탄의 공격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영적인 보호막인 성벽이 무너지면, 사탄의 공격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예전에 저는 여자분들이 귀걸이를 하고 있으면 타락한 줄 알았습니다. 중매를 하면 귀를 보고 있었습니다. 무서운 것은 그것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디서 들어온지 모르게 각인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세상의 가치관,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옛것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가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게 우리의 각인입니다. 지금은 각인전쟁을 해야 합니다. 항상 이런 감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렘넌트들에게 음악을 듣지 말고 영화를 보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왜 만들었는지 감각을 가지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지만 그 때 그 내용이 나에게 각인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성벽이 무너지니 무엇이 나가고 들어오는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우리를 비웃어 이르되 너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 하기로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 하였느니라_느헤미야2:19-20‘

 

영적인 대적은 이를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지도 못하는데 대적들은 느헤미야가 무엇을 하려하는지 먼저 알고 있습니다. 호론사람과 암몬사람은 성벽을 재건하는 것을 계속해서 방해합니다. 성벽이 있으면 성전이 지속될 수 있습니다. 성전예배가 지속될 수 있습니다. 성벽이 무너지면 하나님과 예배가 되지 않습니다. 점점 예배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것이 들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와 내 삶의 성공 사이에 계속해서 갈등이 오게 됩니다. 그리고 점점 세상의 가치관이 이기게 됩니다. 예배는 다음주에 오면 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이 세상의 기준입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이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성전예배가 무너지면 그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성벽이 없으면 내 안에 무엇이 들어오고 나가는지 알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무너지고 멀어지기 시작하면 현실이 더 커지고 문제가 더 커지게 됩니다. 제가 미국에 가기 전 현장의 전도제자가 되도록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영어가 되지 않아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햄버거 하나를 시키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처음 2년은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점점 예배가 되지 않고 현실 문제가 커 보였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언어를 하는데 2, 3년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계속 눈물이 났습니다. 현실이 커지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졌습니다.

 

성벽을 재건해야 합니다. 무너진 성벽을 보며 가슴아파 해야 합니다. 복음의 비밀을 듣고 알지만 개인화되지 않는 것은 이 공격 때문입니다. 아는것과 믿는 것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성이 황폐화되면 개인이 무너집니다. 미국에는 가정이 다 무너져 있습니다. 교회는 계속해서 버려지고 문을 닫고 있습니다. 유럽교회의 뒤를 따라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의 큰 교회의 지교회를 가봤는데 300명이 모이고 힘이 있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지역의 작은 교회 10개가 무너졌습니다. 수평이동만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벽이 훼파되니, 교회가 갈등하고 가정이 무너져버리고, 후대가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어느 도시에 경제가 어려워서 자녀를 팔아버린 기사를 보았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개줄로 묶어 키웠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가정을 돈으로 지킬수 있습니까? 성벽이 재건되어야 가정, 교회, 후대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교회를 세워가는 것은 단순히 교회가 완성되는 것으로 끝나지않습니다. 개인의 가정이 살아 나게 됩니다. 후대가 살아났게 됩니다.

 

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내 마음에 주신 것을 내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밤에 일어나 몇몇 사람과 함께 나갈새 내가 탄 짐승 외에는 다른 짐승이 없더라_느헤미야2:12’

 

훼파된 성격을 보면서 여러 가지 반응이 있을수 있습니다. 안타까워하고, 좀 잘하지, 왜 저렇게 됬지 무감각하게 반응하기도 합니다. 사회 구조, 경제 구조를 전부 바꿔야해 라고 반응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정체성입니다. 내가 누구냐에 따라서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느혜미야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기도하는 사람이 었습니다. 그는 수일 동안 슬퍼하고 기도하였습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_느헤미야1:4’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심이 없사오리이까 하니_느헤이먀2:3’

 

왕이 걱정 가득한 느헤미야에게 질문합니다. 그때 느헤미야는 짧은 시간에 기도 합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언약이 분명했습니다. 하나님과 통하는 자였습니다.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_느헤미야2:4’

 

삶 구석구석 묵상할수 있는 비밀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성벽을 재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 기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역을 하다보면 기대도 있고, 그 때문에 실망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도 제목을 바꿨습니다. 하나님의 시간표를 헤알리도록 인도해주세요. 하나님의 눈물을 가진 느헤미야를 하나님께서는 사용하셨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눈물이 납니까? 여러분들의 눈물의 이유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백성들이 무너져가는 현장을 보면서 느헤미야는 애통해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나님의 눈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낙사스왕의 술 맡은 관원장이 느헤미야였습니다. 왕의 가장 최측근이였습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 신뢰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에게 부족한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는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성벽을 재건하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알린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쓰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내 마음에 주신 것을 내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밤에 일어나 몇몇 사람과 함께 나갈새 내가 탄 짐승 외에는 다른 짐승이 없더라 그 밤에 골짜기 문으로 나가서 용정으로 분문에 이르는 동안에 보니 예루살렘 성벽이 다 무너졌고 성문은 불탔더라_느헤미야2:12-13‘

 

방백들은 내가 어디 갔었으며 무엇을 하였는지 알지 못하였고 나도 그 일을 유다 사람들에게나 제사장들에게나 귀족들에게나 방백들에게나 그 외에 일하는 자들에게 알리지 아니하다가_느헤미야2:16’

 

이미 페르시아 왕에게 허락을 맡고 총독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려고 몸부림친것입니다. , 물질, 성공 중심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을 위해서 손해를 보아라. 경제적 손해가 아닌, 내 미래, 경제를 위해서가 아닌 예배의 자리로 가보아라. 타협하지 않고 영적인 투자를 해라. 내 인생의 손해를 조금보고 영적인 투자를 해라.

 

그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_느헤미야3:1’

 

성전건축의 시작을 양문 건축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왜 양문 건축으로 시작했을가요? 양문은 하나님께 제사드릴 물품들이 다니는 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대 양문을 통해서 종려나무를 밝고 들어 가셨습니다. 양문은 예배로 시작했다는 의미입니다. 성벽 재건을 위해서 양문부터 건축한것입니다. 그리스도로 시작해서 그리스도로 마무리 하는 것입니다. 성벽은 영적싸움과 상관이 있습니다. 싸움은 성벽이 중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싸움의 방어기재입니다. 그 싸움의 시작은 양문 건축으로 시작해야합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_빌립보서1:6’

 

처음과 끝은 양문으로부터, 그리스도로부터 시작해야합니다. 내 각인을 지켜야합니다. 뿌리, 체질을 바꾸기 위해서 양문으로, 그리스도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로 시작해서 은혜로 마무리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