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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0 주일예배

2017-12-10 주일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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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0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본 문 :

마가복음 7:31-37

오승주 목사

. 은혜가 사라지고 있는 사람들_이사야8:19-22

 

저에게도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라고 간절히 엎드려 간구하는 은혜가 있었습니다. 물론,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또 가정의 상황도 녹록치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그런 문제들을 해결 받도록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더 나은 환경을 바라고 기도를 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 앞에 가니 저는 개보다 못한 존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가 해결되거나 상황이 나아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나중에는 주님을 알고 싶었고, 천국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주일예배든, 금요철야든 수련회든 은혜 받는 곳에는 빠짐이 없었습니다. 아니 그걸로 설명이 다 되지 않습니다. 그때의 저는 너무 간절했고 너무 은혜를 받고 싶었습니다. 행여 갈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을 때는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군에 있을 때 6개월 예배를 드리지 못했는데 그때 저는 정말 벌을 받고 있다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저 은혜 받고 싶어요. 예배드리고 싶어요. 저는 은혜를 받아야 살 수 있어요.’ 그 어떤 것도 은혜를 대신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면 족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유가 많아지고, 논리적이게 되며, 더 이상 은혜를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모임에 가면 은혜를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모임이든 은혜보다는 더 대단한 것을 이야기해야 하는 분위기입니다. 행여 은혜를 이야기하면 목사님 은혜 타령은 그만 좀 하세요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주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를지니 그들이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 아침빛을 보지 못하고 이 땅으로 헤매며 곤고하며 굶주릴 것이라 그가 굶주릴 때에 격분하여 자기의 왕과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며 위를 쳐다보거나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뿐이리니 그들이 심한 흑암 가운데로 쫒겨 들어가리라_이사야8:19-22’

 

어떤 목사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분을 전도했는데 그분이 예배를 나오셨습니다. 그런데 예배 마치고 로비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보니 고객이 많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점쟁이들에게 제일 많이 찾아오는 손님이 권사라고 합니다. 예배당에 앉아있지만 진짜 영향은 다른 곳에서 받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사야 시대에도 그랬나봅니다. 사람들이 신접한 자, 마술사를 찾아갔습니다. 하나님께 구해야 할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와 점차 맞지 않자 무당과 마술사를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말씀을 들어도 그것이 너무 멀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인가요? 타락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말씀이 들리지 않고 은혜도 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들어도 변화될 생각도 없고, 고칠 생각도 없습니다. 돈 벌고, 성공하는 것이 더 좋기 때문입니다.

 

. 은혜를 받으셨나요?

 

1. 귀 먹고 말 더듬는 자_마가복음7:31-32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방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_마가복음7:31-32’

 

수로보니게 여인은 이스라엘입니다. 다시 말해, 교회입니다. 구원받은 우리입니다. 우리가 은혜 받지 못하면 세상은 흑암에서 빠져나올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역을 이야기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일관되게 은혜를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통로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고의적으로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만나십니다. 우리에게 보라는 것입니다.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은 지금도 엄청 많습니다. 너무 많습니다. 귀 먹었다는 말은 사람들의 말을 못 드는 사람인가요? 이사야에서 복음을 듣지 못한 백성들을 표현할 때 귀먹고 말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람으로 표현합니다. 흑암에 빠져 있는 자들을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사람이지요. 복음이 들리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귀먹고 말 못하고 눈까지 먼 사람이지요.

 

2. 예수님의 특이한 치료방법_마가복음7:33-34,마가복음15:16-20,이사야53:1-3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_마가복음7:33-34’

 

예수님께서 특이한 방법으로 그를 치료하십니다. 왜 그렇죠? 말을 해도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면 하나님이 이렇게 치유하십니다. 그의 양 귀에 손가락을 넣습니다. 그리고 침을 뱉어서 그의 혀에 손을 대십니다. 얼마나 더러운 방법인가요? 예수님께서 소경을 어떻게 치료하시지요? 침으로 흙을 반죽하여 눈에 붙이시지요. 아무리 귀가 먹어도, 아무리 말을 더듬어도 싫을 것 같습니다. 침을 뱉어서 그 손가락으로 혀를 만지는데 너무 싫을 것 같습니다. 꼭 이렇게 해야 합니까? 막 억울해합니다. 그런데 진짜 억울한 분은 누구신가요? 예수님 아니신가요?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갈대로 그이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_마가복음15:16-20’

 

우리는 억울해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더욱 그렇습니다. 주님이 우릴 위해 어떤 억울한 죽임을 당하셨는지 알아야 합니다.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십니다. 불쌍히 여기셨다는 뜻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듣지 못하고 말 못하는 우리는 하늘로부터만 치유가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은혜 아니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부지런해도 운 좋은 사람 못 당하잖아요. 그런데 아무리 수준 높고 부지런하고 운이 좋아도 진짜 못 당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은혜주기로 작정한 사람입니다. 은혜받기로 작정한 사람은 절대 무너지지 않습니다. 에바다라고 하셨습니다. 에바다는 열리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열려져라 라는 뜻입니다. 수동형입니다. 하나님이 열어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열수 있는 것이 아니란 뜻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붙잡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사는 방법이 은혜입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_이사야53:2-3’

 

예수님은 별 볼일이 없게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무시하고 조롱했습니다. 침을 뱉으면서 말입니다. 예수님은 그 과정을 다 겪으셨습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고통과 아픔을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남편은 몰라줘도, 목사님은 몰라줘도, 심지어 부모님은 몰라줘도 예수님은 알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과정도 꽤나 특이합니다. 예수님께 인생을 맡기는 것이 구원 아닙니까? 예수님을 완전하게 신뢰하게 하십니다. 완전하게 무릎 꿇게 하십니다. 내 자아가 죽는 것입니다. 그것이 고통스럽습니까? 아니죠. 귀먹고 말 못하고 사는 것이 더 고통인 것을 아셔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고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삶 곧, 구원받지 못해 살아가는 삶이 진짜 고통스러운 삶입니다. 지옥을 향해서 가는 삶이 정말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십자가는 고통이 아닙니다.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침 뭍은 손가락이 내 귀와 내 혀를 만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입니다. 나는 잘 듣고 있는데, 나는 멀쩡하게 말도 잘하고 있는데요! 정말 그런가요? 은혜는 요즘처럼 내 할 일 다 하고 그저 교회 다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3.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_마가복음7:35,이사야55:1-3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_마가복음7:35’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서 말이 분명하여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들을 수 있고, 해야 할 말이 무엇인지 알기 시작합니다. 이 은혜가 얼마나 큰가요?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_이사야55:1-3’

 

하나님의 은혜가 값없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너무 귀하기 때문에 우리가 살 수 없어서 하나님이 저거 주시는 은혜입니다. 무엇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살 수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사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걸 깨닫고 주님 앞으로 갈 때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사야 시대의 사람들은 크게 착각했습니다. 점쟁이에게 찾아가고, 무당에게 찾아가서 돈을 지불하고 필요한 것을 얻어내는 것이 쉽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에게도 그렇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너무 화가 나셨지요. 내가 너희에게 주는 구원이 그런 것이냐? 내가 너희에게 베푼 은혜가 그런 것이냐? 너희의 귀가 열리고 말문이 풀리는 것은 은혜가 아니면 안 되는데 어찌 그것을 모르느냐.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모릅니다.

 

. 은혜의 공동체_마가복음7:36-37,이사야62:1-3

 

혹시 은혜를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럴 수 있습니다. 이사야 시대의 백성들이 그런 것처럼 우리도 그럴 수 있겠죠. 그것이 저주이고 재앙입니다. 마치 우리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은혜를 구하지 않는 삶이 저주가 아닌가요? 그것은 내가 무엇인가를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사야 시대의 백성들처럼 은혜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예배만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주일에 무엇인가를 더 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서 구원을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받은 구원이 어떤 구원인가 생각해보세요. 하나님께서 무얼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시는지 아세요? 모든 것을 다 주시고 싶어 하십니다. 그 통로가 은혜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은혜를 모릅니다. 귀가 멀고, 입이 막히고, 눈까지 멀어버린 것입니다. 저주 받은 삶 아닌가요. 천국도 못보고, 하나님의 음성도 못 듣고, 복음도 전하지 못하는 입이 저주인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삶 자체가 저주입니다. 우린 늘 생각합니다. 나중에, 나중에 내가 잘되면, 좀 넉넉해지면 하겠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그걸 원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귀신들린 자의 말을 듣고, 마술사에게 인생을 부탁하고 살게 되면서부터는 하나님과 관계가 완전하게 끊겨버렸습니다. 그런 삶은 빛이 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는 삶은 결코 세상에서 소금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미래도 없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사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고하실수록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하니 사람들이 심히 놀라 이르되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_마가복음7:36-37’

 

은혜 받은 사람은 예수님께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경고까지 하지만 더욱 널리 전파합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전도해라 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반응을 보십시오.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하는구나. 불신자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보고 왜 꽉 막힌 사람이라고,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이중적인 사람이라고 할까요? 착한 척 다하면서 뒤에서는 딴 짓 하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의 특징이 되어버렸습니다. 그것은 진짜 은혜 받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시온의 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_이사야62:1-3’

 

은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는 사람, 들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하나님 손의 왕관 삼으신다 하셨습니다. 그 말 뜻은 하나님의 손길이 닿는 곳에 우리를 사용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손으로 일하시잖아요. 구원하시는 일에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은혜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빛나게 합니다.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풀리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한 백성으로, 멋지고 존귀한 하나님의 손의 왕관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 은혜 받길 원합니다. 그러나 왜 이렇게 우리는 은혜에서 멀어지는 삶을 살고 있나요? 세상은 늘 우리에게 성공하라고, 더 나은 삶을 살라고 재촉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따라 살면 되는 줄 알고 그 길로 가지만 거기는 만족이 없습니다. 평안이 없습니다. 오히려 점쟁이를 찾아가고, 마술사를 찾아가서 길을 묻는 이사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되어버렸습니다. 은혜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몸은 예배당에 있지만 영향은 다른 곳에서 받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귀가 닫혔고 입이 열리지 않고, 눈이 먼 저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빛을 잃고 맛을 잃어버렸습니다. 어리석은 우리를 말씀으로 깨닫게 해주세요. 다시 은혜를 구합니다. 은혜를 간절히 사모합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을 때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깨닫습니다. 다시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 주님 손의 왕관이 되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