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2017-12-17 주일예배

2017-12-17 주일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2017-12-17 주일예배.hwp


음성 다운로드 http://bit.ly/2k6sclB


가스펠워십 다운로드 http://bit.ly/2j9zaW0




20171217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표적과 누룩을 주의하라

본 문 :

마가복음 8:11-21

오승주 목사

.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_마가복음8:1-10

 

오래전에 복음을 깨달았다고 하는 분의 간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한 시간이 넘도록 복음을 깨닫고 받은 응답에 대해 간증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간증은 저에게 이렇게 들렸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삶을 살게 되었다.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지식이 생겼다. 그리고 이 자리에 서 있게 된 것이 대견스럽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깨달았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 역시 그분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자신감 내지는 자존심도 필요합니다. 또 큰 사역을 위한 응답들도 필요합니다. 어떤 사명을 위해 흔들림 없는 목표와 전략을 세우고 전진해야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잠을 이룰 수 없는 고민의 내용이 있었습니다. 내가 여전히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죽어도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입니다. 저는 여전히 이기적이고, 여전히 남 이야기가 입에 가득하고, 여전히 세상의 것들을 좋아합니다. 그 뿐 아닙니다. 나도 모르게 은밀한 죄의 유혹을 탐할 때가 많습니다. 너무나도 잘 안 되는 내 모습을 보면 과연 복음을 깨달았나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신앙의 증거가 내가 거룩하게 되고, 내가 도덕적이 되고, 세상 기준으로 더 잘 살게 되고 잘 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또 많은 지식과 경험이 쌓여 남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그러는 동안 점점 예수님과 멀어지게 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응답이 자존심이 되고, 비교하는 도구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삶의 목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면 잃어버리는 게 되는 것은 예수님입니다. 더 이상 예수님을 경배하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 지에 대해 관심이 없게 됩니다. 내 기준과 판단이 생겨서 말씀이 들리지 않게 됩니다. 그 틀 안에서 기도를 하기 때문에 주님의 뜻과 관련 없는 기도생활을 하고 맙니다. 그런 삶은 결과적으로 주님과 상관없는 삶이 되어버립니다.

 

그 무렵에 또 큰 무리가 있어 먹을 것이 없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_마가복음8:1-3’

 

예수님께서 그들을 왜 불쌍히 여기셨나요? 그들이 멀리서 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멀리서 왔습니다. 오병이어는 유대인을 위한 메시지였다면, 칠병이어는 이방인을 위한 메시지입니다. 두 가지 사건은 떡과 물고기로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여기에서 떡과 물고기는 매우 중요한 상징이 있습니다. 떡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물고기 역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심을 상징합니다. 다시 말해 교회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신앙은 예수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신앙의 원리입니다. 우리가 여전히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목사님 이미 죄사함을 받았고 이미 구원받았지 않나요?’라고 묻습니다. 이미 구원받고 천국백성이 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권리입니까? 은혜입니까? 당연한 것인가요? 기적인가요? 그것이 종이 한 장 차이인데 우리 삶과 세상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사함으로 예수님을 경배하고 있습니까? 죄 사함에 대한 진정한 감사가 있습니까?

 

. 표적과 누룩을 주의하라.

 

1. 요나의 표적_마가복음8:11-12,요나4:1-4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_마가복음8:11-12’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님을 힐난합니다. 힐난은 맹렬한 비난입니다. 그러면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합니다. 맹렬하게 비난하면서 구한 표적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왜 예수님이 강하게 거절하셨을까요? 거절하시면서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_요나4:1-4’

 

요나의 표적을 왜 그들에게 언급하셨죠? 이스라엘은 앗수르를 엄청 싫어합니다. 그들이 너무 침략을 많이 했기 때문에 원수같이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앗수르의 도시인 니느웨로 가라니요? 그래서 요나는 강하게 거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강제로 물고기에게 잡혀 먹게 하여 니느웨로 보냅니다. 그런데 가서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저주를 퍼 붙습니다.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어야 하는 큰 성읍인데 요나는 겨우 하루 동안만 외쳤습니다. 그것도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는 무너지리라그가 전한 것이라고는 이 말이 전부입니다. 그럼에도 니느웨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요나가 하나님께 화를 냅니다. 보십시오. 그들이 회개한다고 하시 않았습니까?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오기 싫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를 깨닫게 하시려고 뜨거운 태양을 피해 나무 아래 앉아 있을 때 박넝쿨을 자라게 하셔서 시원하게 합니다. 그리고 다시 벌레를 통해 박넝쿨을 다 갉아먹게 합니다. 그랬더니 또 화를 냅니다. ‘박넝쿨 때문에 이렇게 좋아하고 화를 내거늘 어찌 니느웨에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십이만 명이랴.’ 무슨 말씀인가요? 지금 유대인들이 말하는 표적은 무엇인가요? 유대주의입니다. 철저한 민족주의입니다. 주님 나만 특별하다고 해줘요. 주님 나만 특별한 존재라고 말씀해주세요. 그것을 삼가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2.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_마가복음8:14-16,이사야2:6-9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그들에게 없더라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_마가복음8:14-16’

그리고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 누룩은 무엇입니까? 누룩은 이스트 즉, 발효제입니다. 누룩으로 떡도 부풀게 만들어 먹기도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절기 중에 유월절 무교절에 하나님께서는 한 가지 명령을 하셨습니다. 누룩을 넣은 빵을 절대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죠? 유월절에는 다른 것으로 구원할 수 없다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에서 떡은 바로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니 제자들이 우리에게는 떡이 없는데 누룩을 왜 주의해야 하나? 그렇게 육신적으로만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자신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떡 이야기가 계속 해서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 배는 믿음의 공동체가 아닙니까? 이 배에 예수님 한분이면 족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유대에서도 이방에서도 오병이어와 칠병이어를 베푸셨는데 제자들이 그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오병이어든 칠병이어든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이 죽어야 우리 모두에게 떡으로 오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주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리셨음은 그들에게 동방풍속이 가득하며 그들이 블레셋 사람들 같이 점을 치며 이방인과 더불어 손을 잡아 언약하였음이라 그 땅에는 은금이 가득하고 보화가 무한하며 그 땅에는 마필이 가득하고 병거가 무수하며 그 땅에는 우상도 가득하므로 그들이 자기 손으로 짓고 자기 손가락으로 만든 것을 경배하여 천한 자도 절하며 귀한 자도 굴복하오니 그들을 용서하지 마옵소서_이사야2:6-9’

 

누룩은 우리를 굉장히 유혹합니다. 헤롯의 누룩은 타락한 권력의 유혹들이겠지요. 바리새인들의 누룩은 유대주의라는 엄청난 사상일 수도 있습니다. 모두 우리를 부풀게 하는 것들입니다. 은금이 가득하고 보화가 무한하며 마필이 가득하고 병거가 무수합니다. 우상도 가득합니다. 천한 자도 귀한 자도 절하고 굴복합니다. 이렇게 부풀면 본질을 잊게 됩니다. 예수님을 잊게 됩니다. 전에 받은 은혜도 잊게 됩니다. 그걸 주의해야 합니다.

 

3.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_마가복음8:17-21,이사야2:10-11,17-22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을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_마가복음8:17-21’

 

제자들은 수군거렸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 생각에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랬지 않습니까? 그들은 엄청난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니느웨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지금 예수님이 이방에서 은혜를 베풀고 있는 모습이 너무 못마땅합니다. 그것은 분명 편견입니다. 자기들은 맞다고 생각하는 편견입니다. 예수님은 그 편견을 깨기 위해 지금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편견을 깨셨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거룩을 무너뜨리고 말구유에 죄인의 모습 곧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저주의 상징인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누구를 위해서인가요? 바로 죄인입니다.

 

너희는 바위 틈에 들어가며 진토에 숨어 여호와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라 그 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_이사야2:10-11’

 

우리는 하나님의 위엄과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는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감히 하나님의 빛 앞에 아무도 나갈 수 가 없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가요? 작은 질병 하나에, 작은 사건 사고 하나에도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그걸 깨달아야 합니다.

그 날에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요 우상들은 온전히 없어질 것이며 사람들이 암혈과 토굴로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땅을 진동시키시려고 일어나실 때에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할 것이라 사람이 자기를 위하여 경배하려고 만들었던 은 우상과 금 우상을 그 날에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지고 암혈과 험악한 바위 틈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땅을 진동시키려고 일어나실 때에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리라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_이사야2:17-22

 

그런데 우리가 어느 순간 바리새인이 되었는가 보십시오. 저는 고등학교 때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랬는데 그 20년 동안 받은 은혜보다 내가 한 일을 먼저 생각합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정말 나쁜 목사입니다. 이 복음을 나는 깨달았는데 저 사람은 깨닫지 못할 거라 생각합니다. 정말 나쁘지 않습니까? 그 말은 나는 깨달을 만한 사람이고 저 사람은 불가능하다는 편견 때문입니다.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도 우리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걸 저는 인정합니다.

 

. 신앙의 증거, 예배_갈라디아서6:12-18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 뿐이라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할례나 무할례나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_갈라디아서6:12-18

 

갈라디아교회에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가지고 계속 논쟁이 됩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정확하게 지적했습니다. 너희가 정말 복음을 위해 할례를 하느냐? 아니지 않느냐? 할례를 통해 너희가 특별한 사람인 것을, 유대인인 것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냐? 육체를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 맞습니다. 우리는 늘 그런 틀에 갇히기 쉽습니다. 그런 편견이 쌓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놓고도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그 은혜가 아닌 내 행위가 나옵니다. 복음이 권리입니까? 아니면 은혜인가? 당연한 것입니까? 아니면 기적 같은 일인가요?

복음은 저 멀리서 온 이방인에게 전해져야 할 놀라운 소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은혜가 있는 사람에게만 그 일을 맡기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예배가 은혜의 예배이길 원합니다. 교회는 예배가 모든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가 은혜의 주님 앞에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 이름이 높아지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은혜가 흘러가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모든 행사, 모든 모임이 전부 우리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을 주의해야합니다. 항상 멀리서 온 사람들 즉, 새신자와 불신자를 생각해야 합니다. 어찌하든지 복음이 그들에게 전해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번 크리스마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진짜 실력은 유대인들처럼 오랫동안 지킨 관습, 율법이 아니라 십자가의 사랑과 그 은혜입니다. 정말 표적과 누룩을 주의하여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는 늘 표적과 누룩을 찾습니다. 나만 특별한 존재라는 표적, 예수님이 아닌 세상의 것들로 부풀려지게 하는 누룩, 구원의 은혜를 잊어버리게 만드는 편견의 누룩입니다. 누룩을 넣지 않는 떡을 먹어야 하는 유월절, 무교절처럼 오직 예수님만 우리의 떡이 되심을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은혜로만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고, 살아갈 수 있으며, 고침 받을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 은혜로만 우리가 저 멀리서 온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줄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죄인됨을 날마다 깨달아 날마다 예수님을 의지하는 은혜가 있길 원합니다. 표적과 누룩으로 인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신앙인이 되지 않길 원합니다. 우리를 감싸고 있는 어둠의 표적과 누룩이 걷혀 예수님을 보길, 은혜를 받길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