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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5 주일예배


2018-03-25 주일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2018-03-25 주일예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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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325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잎만 무성한 예루살렘

본 문 :

마가복음 11:12-25

오승주 목사

 

.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_마가복음11:12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_마가복음11:12’

 

예수님이 시장하셨다는 표현이 단지 육신적인 시장함만을 말씀하셨을까요? 단지 무화과나무 열매를 먹으러 감람산으로 가셨을까요? 예루살렘성전이 있는 곳의 맞은편으로 말입니다. 예수님은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성전을 바라보고 우셨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네가 평화의 때를 알았으면 좋았을 뻔 했구나.’ 지금 예수님은 이 땅의 백성들의 영혼을 보고 마음 아파 우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무서운 영적인 질병은 바로 무감각입니다. 영혼이 병들어 죽어가고 있음에도 교회가 무감각하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목사들이 그렇다면 어떻게 될까요? 예수님은 예루살렘성전의 실상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무화과나무로 가신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기도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과연 교회가 이 땅의 어려움을 해결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교회로 우리가 모일 이유가 있을까? 특히, 마음이 힘들어 괴로워하는 자들을 살피지 않으면 되겠는가? 우리의 꿈은 복음의 불모지인 선교지에,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꿈을 꿔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교회 바닥에 엎드려 기도해야 하는 제목이 무엇일까요. 이번에 우리가 새벽에 모여서 기도해야 할 기도제목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저는 솔직하게 크게 착각하고 있었음을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타락한 예루살렘성전을 보고 손가락질하면서 저는 되게 깨끗한 척 아니 되게 바른 척했습니다. 그러나 제 삶에도 어느 순간 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졌음을 몰랐습니다. 은혜가 사라지고 있었는데 감각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부자다, 가난하다, 크다, 작다, 직업이 어떻다는 것을 논하기 시작할 때 영적인 감각을 잃어버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교회도 하나님의 소원이, 하나님의 임재가 없으면 그저 그런 인생이거나 그저 그런 공동체가 되어버립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시는 그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봐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작은 삶에서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대학생들에게 부탁했습니다. 대학생들이 무엇을 꿈꿔야 합니까? 좋은 직장을 꿈꿔야 합니까? 부자가 되는 것을 꿈꿔야 합니까? 그네들은 대단한 문화를 논하고, 대화를 하면 수준이 높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분위기가 좋은 곳에서 수준 높은 대화를 하면 그것이 멋짐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젊은이라면 망콴마을이나 네우라니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고, 어린 아이들에게 믿음을 가르치는 꿈을 꾸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으로 가슴 뛰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무화과나무는 예루살렘성전

 

1.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_마가복음11:13-14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_마가복음11:13-14’

 

예수님께서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에 가셨는데 열매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분명 열매 맺는 시기가 아니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이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그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다시는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왜 잎사귀가 무성한 무화과나무가 조금만 기다리면 열매를 맺을 건데 그걸 두고 저주를 하셨을까요?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기다릴 시간이 없으셨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세월과 우리의 세월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 않으면 촛대가 옮겨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세월은 구속의 세월입니다. 구원의 세월입니다.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기다려줄 시간이 없으셨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무화과나무가 상징하는 것은 예루살렘성전을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타락한 예루살렘성전_마가복음11:15-18,이사야56:5-8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_마가복음11:15-18’

무화과나무 사건의 사이에 있는 샌드위치 형식의 이야기입니다. 잎만 무성하지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처럼 예루살렘성전은 모양만 화려하지 열매가 없었었습니다. 어떤 열매인가요? 성전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요? 교회가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가요? 왜 로마의 속국이 되었는지도 모르고 여전히 종교지도자들은 타락했고, 백성들은 고난 속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예루살렘성전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그 당시 제사를 지내기 위해 제사의 종류에 따라 예물을 준비해왔습니다. 그런데 그걸 받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종교지도자들이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준비한 곳에서 바꿔오라는 것이지요. 거기서 시세 차익을 가지고 이익을 얻습니다. 강도의 소굴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가지고 돈 잔치를 벌였으니 예수님이 그 장사치들을 엎어버리고 화를 내셨습니다.

원래 성전은 이런 모습이어야 합니다.

 

내가 내 집에서, 내 성 안에서 아들이나 딸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그들에게 주며 영원한 이름을 주어 끊어지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 또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이스라엘의 쫓겨난 자를 모으시는 주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미 모은 백성 외에 또 모아 그에게 속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_이사야56:5-8’

 

성전은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께 예배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백성들의 죄를 사해주는 곳입니다. 더 나아가 고통 받는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곳입니다. 고통 받는 자들이 와서 하나님과 연합하는 곳입니다. 이방인들이 와서 기도하는 곳입니다. 교회가 그런 곳입니다. 우리의 교회가 그런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사명을 잃어버리고 완전하게 타락한 예루살렘성전은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와 같았습니다. 이것은 교회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습을 보기도 해야 합니다. 잎만 무성하면 그것이 좋은 줄 압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말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고 간증하는 것을 들어보면 잎만 무성한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열매는 하나도 없습니다. 구원도 없고, 죄사함도 없고, 복음을 전하는 것도 없습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지키는 마음도 없습니다. 그저 부자로 사는 것을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잘사는 것과 축복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가난해도 축복되게 살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지금 착각을 해도 너무 많이 착각을 했습니다.

 

3. 뿌리째 마른 무화과나무_마가복음11:20-21,이사야52:1-2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_마가복음11:20-21’

 

성전을 다녀오고 제자들이 무화과나무를 다시 보니 뿌리째 말라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여전히 감각이 없습니다. 안타까운 마음도, 슬픈 마음도 없습니다. 우리는 슬퍼해야 합니다. 저들의 신음소리를 듣고 슬퍼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버렸습니까? 인생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정해져있으나 그것은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우리의 시간으로는 언제 어떻게 인생이 끝날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월을 아끼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뿌리가 마르는 것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잎사귀가 무성하지만 뿌리가 마르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상처, 인간관계 이런 것들로 세월을 보낼 때가 많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뿌리가 마르면 인생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시길 바랍니다. 큰 일 같아 보이지만, 사실 지나고 보면 별일들이 아닙니다. 아버지를 용서하고 자녀를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교회는 그런 곳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핍박하고 모질게 해도 또 세상을 용서하고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뿌리가 말라버리면 그럴 수 없습니다. 그것이 열매인데 뿌리가 말라버리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 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라 너는 티끌을 털어 버릴지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앉을지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_이사야52:1-2’

 

잘못하면 우리 교회들도 그럴 수 있습니다. 뿌리가 말라버리면 끝입니다.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티끌을 버리고 일어나 앉아야 합니다.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옷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옷을, 그 은혜의 옷을, 사랑의 옷을, 용서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할 수 없습니다. 죄에 대해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 하나님을 믿으라_마가복음11:22-25,이사야52:11-53:6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로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을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_마가복음11:22-25’

 

예루살렘 성전은 무엇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바로 제자들의 마음입니다. 곧 우리의 마음입니다. 이해가 되시는가요? 예루살렘성전은 지금은 우리의 교회 곧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깊게 생각해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라는 영어 성경으로 보면(영어성경이 원어를 가장 잘 번역했기 때문에) ‘Have faith in GOD’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믿음 안에 있는 것입니다. 산을 옮긴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진짜 산을 옮기는 믿음인가요? 앞으로 임할 재앙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감람산에 서 계십니다. 겟세마네가 바로 감람산입니다. 주님은 여기에서 마지막으로 기도하고 순종으로 십자가의 길을 가십니다. 산더러 바다에 던져진다는 것은 곧 임박 할 재앙을 말씀합니다. 정확하게 예루살렘성전이 AD70년에 완전 무너집니다. 히브리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사건입니다. 만신창이가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네가 평화의 때를 알았으면 좋았을 뻔 했구나. 다시 말해 우리는 심판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은 반드시 기도와 연결이 됩니다.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막연하게 기도하는 것인가요? 무엇을 기도해야 합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두고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는 신음하는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기름을 짜내다)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라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_이사야53:4-6’

 

우리의 뿌리가 마르지 않아야 합니다. 잎사귀만 무성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가는 우리에게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복음의 뜨거운 눈물입니다. 주님의 그 사랑이 가슴 벅차야 합니다. 그래서 미래가 아니라 지금 우리 삶에서 예수님을 전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순교자의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은 그런 사람들을 조롱하지만 우리는 주의 순결한 신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이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장사치 같은 마음이 있다면 지금 돌이켜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기도입니다. 함께 이 교회 바닥에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가슴 뛰는 기도제목이 있습니까? ‘나는 못한다, 부족하다, 나 같은 것은하고 살 수 있습니다. 아니면 세상의 것에 사로잡혀 그것을 모르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두 가지다 똑같습니다. 그저 그런 인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이루고 계시다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이 복음을 위해 쓰임 받도록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주십니다. 그 은혜가 용서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기도할 때 우리 마음이 변화되어 감사와 찬송이 나올 때 바로 용서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될 때 우리는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용서가 곧 복음을 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십자가는 용서의 상징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용서할 수 있습니까?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용서가 회복됩니다. 용서가 회복될 때 진짜 평안하고 감사가 되어집니다. 용서는 이 땅을 두고 가슴 아파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영혼들을 두고 마음 아파하는 것입니다. 저 선교지를 두고 가슴 아파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곧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주를 향한 사랑이 나의 말엔 주가 주신 진리로 나의 눈에 주의 눈물 채워주소서 내 입술에 찬양의 향기가 두 손에는 주를 닮은 섬김이 나의 삶에 주의 흔적 남게 하소서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히 함께 하리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에게 순교자의 삶을 사는 이에게 조롱하는 소리와 세상 유혹 속에도 주의 순결한 신부가 되리라 내 생명 주님께 드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