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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찬양예배

2018-11-30 금요찬양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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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30일 가스펠교회 금요찬양예배

제 목 :

(소요리문답강해37) 그리스도인의 죽음

본 문 :

요한복음5:28-29

임대영 목사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_요한복음5:28-29’

 

37문 신자들이 죽을 때에, 그리스도인에게서 얻는 은덕이 무엇인가?

: 그들이 죽을 때 신자들의 영혼이 온전한 거룩에 이르고, 즉시 영광에 진입하며,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들의 몸이 부활할 때까지 무덤에서 안식하는 것이다.

 

 

. 피조물로서 인간의 본성

죽음에 대한 성경의 교리들을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이원적인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인간에게는 본질적으로 두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는 육체이고 또 하나는 영혼입니다. 이 두가지 요소가 모두 있어야 살아있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단순히 육체와 영혼이 서로 분리되는 사건에 해당하는 단어입니다. 인간이 죽을 때 육체는 먼지로 돌아가고 부패하게 됩니다.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_사도행전13:36’

 

신자이든 불신자이든지 모든 인간에게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누구나 죽으면 그 육신은 썩음을 당해 부패하고 흙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육체적인 죽음에 있어서는 신자와 불신자 간에는 어떤 차이점도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큰 차이점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자는 죽음이 있은 후 영혼이 거룩해져서 즉시 영광에 들어가지만 반면에 불신자의 영혼은 즉시 지옥의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_누가복음23:43’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_누가복음16:19-31’

 

우리는 죽을 때 자신의 최종적 상태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죽기전과 동일 한 상태에 머무는 것도 아닙니다. 소요리문답에서는 그것을 죽음의 중간상태라고 합니다. 인간의 죽음은 현재 상태와 그의 최종적 상태 사이에 중간에 위치하게 됩니다. 중간 상태가 육체와 관련될때는 신자와 불신자들에게 동일하지만, 영혼과 관련될때는 전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죽음에서 신자의 육체가 주께 속하여 영생의 부활까지 보존되고, 불신자의 육체는 주께 속하지 않으며 정죄의 부활때까지만 보존됩니다. 이러한 신자의 중간상태는 육체를 가진 유령이 아니라 전혀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의 상태입니다.

 

. 거절되어야 할 잘못된 관점들

 

죽음과 관련하여 잘못된 관점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영혼 수면설입니다. 그것은 죽음 이후, 부활에 이르기 전까지 영혼의 어떤 의식적인 실존도 없다고 가르칩니다. 성경은 신자들의 죽음을 잠이라고 묘사합니다. 잠과 신자의 죽음은 매우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죽은 육체는 잠자는 육체와 유사합니다. 잠자는 사람은 마치 죽은 것 같고, 죽은 사람은 단지 잠에 빠진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에 대하여 의식이 없습니다. 물론 인간이 잠을 잘때도 그 시간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 의식할 수 없습니다. 잠자는 사람이 꿈을 꾸는 것처럼 잠든 영혼도 의식이 있습니다. 신자들이 죽은 이후에도 영혼은 의식적으로 행동합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영혼 수면설은 잘 못된 교리입니다.

 

두 번째는 연옥교리입니다. 카톨릭교회에서 주장하는 연옥교리 또한 비성경적인 교리입니다. 카톨릭교회의 교훈에 따르면 보통 신자가 죽으면 중간적 처소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곳은 천국도 지옥도 아닌 곳입니다. 이곳에서 신자들이 자신들의 여죄를 정화하기 위해서 그들의 죄에 대하여 일시적인 고난을 받는 장소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곳에 오래 머물고, 어떤 사람은 잠시 머문다고 합니다. 하지만 타인을 위한 기도, 타인을 위한 선행, 여전히 지상에 있는 사람들이 드리는 헌물과 같은 것으로 그 고통을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연옥교리는 완전히 성경에 위배됩니다. 왜나면 그리스도만이 자기 백성을 대신하여 모든 고난을 당하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절대 이러한 교리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죽음과 부활은 완전한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과 헌물, 선생으로 더 채워야 하는 그런 부족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는 완전한 것입니다. 그래서 연옥교리는 성경과 완전히 반대되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 육체의 중요성

 

오늘날 구원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 만큼 육체에 대해 평가절하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육체를 쉽게 하찮게 생각하는 시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마치 영혼이 궁극적인 문제 인 것처럼 그리고 육체는 하나님의 구원에 있어서 어떤 부분도 차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 통상적인 일이 되었습니다. 신앙교육서에서는 죽음에서조차 육체를 망각하지 않고 다시 인식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신자는 육체가 여전히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단지 영혼만 돌아보고 육체는 망각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_요한복음5:28-29’

 

잠자는 것은 육체입니다. 하지만 그 잠은 위대한 날까지 뿐입니다. 재림의 날까지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중간 상태가 마치 신자의 최종적이며 완전한 희망인 것처럼 생각하기에 이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중간상태는 그의 궁극적인 소망에 못 미치는 것으로 말하였습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_고린도후서5:1-8‘

 

바울은 중간상태를 옷을 입지 않은 것, 옷을 벗은 것과 같다고 하며 육체를 떠나 중간상태에서 주와 함께 있기를 소망하였으나, 그의 큰 갈망은 부활의 때에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키운바 되기를 덧입는 것이다. 신자의 큰 열망도 중간상태 그 자체가 아니라, 위대한 마지막 상태를 위한 계단으로서 중간상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_로마서8:23’

 

. 죽음에 대한 질문

 

죽음에 관하여 가장 많은 질문이 있다면 이것인 것 같습니다. 죽음이 죄의 삯이라면, 이미 죄를 용서받은 신자들이 왜 죽어야 하는 가? 입니다.

 

죽음 그 자체는 언젠가 신자에 대한 모든 능력을 상실할 것입니다. 그리고 신자들은 죽음에서 영원히 해방되는 시간표가 찾아옵니다. 심지어 신자들에 관하여는 죽음이 그 쏘는 것을 상실하였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신자가 그리스도에게 속하였다면 죽음이 그를 상하게 할 수 없습니다. 죽음이 우리의 원수이며 우리가 이로 인하여 떨지라도, 하나님께서 이것을 선하게 사용하실 것을 성경은 확신하고 있습니다. 신자들이 경험하는 다른 모든 악처럼, 죽음도 성화의 수단인 것입니다. 인간은 본질상 허물과 죄로 인하여 죽었습니다. 인간이 죄를 범하자 죽음이 모든 인간에게 임하였습니다. 그래서 죽음이 숨을 멈추면서 시작되는 무엇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죽음은 인간이 죄를 짓기 시작했을때부터 시작된 것이며 육체와 영혼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구덩이에 던져질째 그 모습을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구원하시는 은혜를 통해 죽음에서 몇 사람을 선택하고 이끌어 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영혼의 중생을 죽음으로부터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_요일3:14’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을 죽음의 능력으로부터 이끌어내신 것과 같이 마지막날에 그분이 우리의 육체를 죽음의 능력으로부터 건져 내실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과 달리, 육체가 아직 죽음의 능력으로부터 건져냄을 입지 못한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영광스러운 마지막날을 기다리고,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삶이야 말로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인생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사모하고, 마지막날까지 하나님을 섬기고 찬양하는 백성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그분의 섭리입니다.

 

하나님 자녀의 죽음은 참된 복을 누리는 시작임을 알고 우리 인생을 하나님께 기쁨이 되도록 힘써 주님을 사모하고 예배하는 하나님 자녀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마지막날 영혼과 육신의 부활의 참여할 때 기쁨으로 참여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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