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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4-04-14 주일예배

4월 14일 주일예배
본문: 창세기6:22-7:1
제목: [노아2] 순종으로 이룬 구원
찬송: 442장(저 장미꽃 위에 이슬)
찬양: 나의 하나님(예람워쉽)

1. 노아가 의로웠던 이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_창세기6:5’

• 우리는 너무나도 악해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셔야 했으며 그분은 너무나도 자애로우셔서 기꺼이 죽으셨습니다. 
•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죄에서 건짐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 뿐이라는 것을 아는 일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_창세기6:8’

• 노아가 의로워서 구원 받은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의로워진 것입니다. 의로움은 예수님 안에 있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_창세기6:9’

•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의인이 될 수 있고, 당대에 완전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동행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은혜를 받을 때 부터입니다. 
• 그 확신이 있을때라야 우리는 이 세상에서 믿음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_스가랴3:4,9’

• 스가랴의 말씀을 보십시요. 여호수아, 예수아, 예수 다 같은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죄악을 제거해버리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셨는데, 그 아름다운 옷을 입어서 죄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옷이 됩니다. 더러운 옷을 벗어고 예수님이라는 아름다운 옷을 입을 때 이 땅의 죄악은 하루에 제거됩니다. 단번에 제거 됩니다. 
• 복음을 한문장으로 말하면 바로 ‘나를 대신하신 예수’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의로움입니다. 
• 노아가 의로웠던 유일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_로마서4:5’

•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것이 곧 그 믿음만이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믿음에 대한 우리의 올바른 이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_사도행전16:28-31’

• 간수에게 ‘믿으라’ 는 바울의 대답은 아마도 성경에서 구원 받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장 단순하고 솔직한 설명일 것입니다. 
• 충분히 단순하게 들입니다. 그저 믿으라. 하지만 이것이 전부일까요?
•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정신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믿음일까요? 아마 우리 나라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를 믿는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이것은 이들의 삶에 어떠한 차이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이들은 이순신이 거북선으로 명량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는 사실을 믿는 것처럼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의미한 전부일까요?
• 분명 아닙니다.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는 심지어 귀신들도 이렇게 믿고 떤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천국에서 귀신들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 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_야고보서2:19’

• 우리의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의식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믿는 믿음이라면 우리는 천국에 입성할 수 없을 것입니다. 
• 성경적인 믿음은 의지적인 측면이 역시 포함됩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라는 단어 안에는 반드시 회개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즉, 회개와 믿음은 하나의 동전과 같습니다. 
• 믿음은 회개를 동반합니다. 회개는 행동입니다. 예수님이 죽고 사셨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 삶의 방향이 변경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삶의 방향이 변경된 것을 회개라고 합니다. 죄를 향하는 우리의 삶이, 어둠을 향하는 우리의 인생이 이제 의를 향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방향이 새롭게 생겨난 것입니다. 이것을 회개하고 합니다. 
• 그래서 단순히 의식적으로 믿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회개라는 행동을 반드시 동반합니다. 오늘 본문에 대표적으로 나온 것이 바로 노아입니다. 노아는 은혜를 받았는데 그래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는데 그리고 무엇을 했나요? 바로 하나님께서 구원을 위해 방주를 지으라 하신 것에 순종해서 120년동안 방주를 ‘지었습니다.’ 
• 히브리서에 나온 믿음의 사람들을 보십시요. 아브라함은 그의 집을 ‘떠났다.’ 야곱은 그의 손자들을 ‘축복했다.’ 모세는 고난을 받기로 ‘선택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을 ‘돌았다.’   
• 히브리어에는 믿음이라는 명사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오로지 믿음을 나타내는 행동만 있었고 히브리서 기자가 그 행동을 믿음이라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_창세기7:1’

• 성경적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인 되심과 그분이 십자가 위에서 이미 다 이루신 사역을 향해 새로운 자세를 취하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믿음은 정신적 동의로 시작하지만 만일 정신적 동의가 순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이것은 아직 ‘믿음’이 아닙니다.
• 회심은 의식의 완성이 아니라 관계의 시작입니다. 의식의 확신은 정확한 말과 기억을 기초로 합니다. 관계의 확신은 회개와 믿음이라는 현재의 자세를 기초로 합니다. 

3. 오랜 순종으로 이룬 구원

• 많은 사람이 구원이 초기 움직임을 경험하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면 자신의 이전 방식으로 돌아갑니다. 이런 사람은 모든 초기의 흥분에도 불구하고 애당초 실제로는 구원을 받지 않았습니다.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_누가복음8:13’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_히브리서6:11’

• 레위기 제사법에는 일년에 한번, 유대인 아버지들은 그의 가족을 대표해 속죄제물을 바칩니다. 제물을 바치는 순간이 올때 아버지는 자신의 손을 제물된 양의 머리에 얹고 제상장은 양의 목을 땁니다. 양의 머리에 손을 얹는 것은 그 가족의 죄악이 제물의 머리로 옮겨짐을 상징합니다. 양이 피를 흘릴 때, 그 가족의 죄악은 제거됩니다. 
• 믿음은 우리의 손을 제물되신 예수님의 머리 위에 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때, 로마서4:5에 보면 우리의 믿음은 의로 여김을 받습니다. 
• 그래서 자신이 구원받았는지 알려면 우리의 손, 즉 천국을 향한 우리의 소망이 현재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를 봐야 합니다. 
•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자세를 취하기로 결정한 바를 기억하느냐가 아니라 지금 그 자세를 취하고 있느냐입니다. 여러분이 그 순간을 기억하고 그것이 매우 분명하다면 좋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사실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어떠한 경우든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그 손을 어린양의 머리에 얹고 있느냐 이기 때문입니다. 

[한번 받은 구원은 영원한 구원 이라는 말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번 받은 구원은 영원한 따름 이라는 말 역시 사실이다_웨인 그루뎀]
• 예수님을 여러분의 마음에 영접하는 기도를 올려드리는 것, 심지어 그것이 감정의 소란과 종교적 열정을 동반한다 해도 그것이 당신이 구원받았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끝까지 그 믿음 안에서 견디는 것이 증거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구원은 그리스도를 향한 회개와 믿음의 자세이며 여러분이 회심할 때 그 자세를 취하고 평생 동안 그것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_요한일서3:6’

• 구원하는 믿음은 끝까지 인내하는 것만으로만 아니라 그것이 마음속에서 만들어내는 거침없는 특정한 변화들로 자신을 증명합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고백한 것도 그렇습니다. 구원받은 자들 안에서 구원에 속한 것을 보았고 따라서 이들에게 타락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음을 확신했다는 것입니다. 그 좋은 것이 바로  구원의 확신에 대한 두가지 증거입니다. 

1) 하나님을 향한 사랑
• 이 새롭고 살아 있는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입니다. 상대적으로 죄는 모종의 공허함, 심지어는 끔찍함을 띠기 시작하죠. 하나님의 선하심과 위엄이 마음 속에 가득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영적 취향이 바뀌었다는 말입니다. 그 어떤 종교적인 열심을 뛰어넘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해 자라나는 갈망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하고 싶은 간절한 소망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 모든 삶은 그것에 맞춰 바뀌게 됩니다. 

2) 영혼을 향한 사랑
• 너무 당연하겠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곧장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연결되어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마음이 곧 그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받은 구원받은 사람이 당연히 또다른 죄인을 사랑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영혼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조건적인 잘해줌이 아닙니다. 우리는 인간적인 친절함, 젠틀함을 영혼을 위한 사랑이라고 하는데 결코 그것과 같을 수 없습니다. 영혼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영혼이 구원받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내 인격을 위해 좋은 관계를 맺는 것과 다릅니다.
 
• 이처럼 노아가 구원받았다는 증거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다. 그래서 노아는 하나님을 누구보다 사랑했기 때문에 의롭고 경건하다는 평가를 받게 된 것이고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120년 동안 방주를 실제로 만드는 삶의 자세를 가진 것입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_히브리서11:7’

•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믿음을 가지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의롭게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는 믿음이시길 축복합니다. 그 믿음은 정신적인 믿음이 아니라 실제 삶의 믿음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에 도달하도록 행함이 있는 온전한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가지는 삶이 될 것입니다. 노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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