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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pel Letter. ' 약할 때 강함 되시네 '

Gospel Letter. ' 약할 때 강함 되시네 '

 

신앙생활은 참 어렵다고들 합니다. 맞습니다. 교회에 나와 보더니 쉽지 않겠다 싶어서 하나, 둘 교회를 떠나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분들을 봅니다. 어둠에 있던 사람들이 빛으로 나오기가 쉽지 않겠지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잘 안됩니다. 저렇게 고통스러운데 왜 신앙생활을 계속 할까?

 

 저는 개인적으로 목사가 된 후에 예수님을 믿는다는 의미에 대해 제대로 알기 시작했습니다. 부끄럽지만 사실입니다. 그전에는 나를 누르고, 감추고, 잘 보이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참 힘이 들었습니다. 남모르게 은밀한 죄도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남을 업신여기고, 비판하면서 살았습니다. 아이들에게 복음을 말하면서도 다른 방법들을 많이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께 제 연약함을 고백합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과 관계가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그랬더니 제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은밀한 죄와 싸우기 시작했고, 나를 드러내 빛으로 가고자 애쓰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권사님의 딸이 자기는 절대 시집을 안가겠다고 평소에 말하고 다녔습니다. 엄마가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딸이 엄마처럼 고생하지 않겠다고 시집을 거부하고 살았습니다. 노처녀가 다 되어갈 쯤에 갑자기 시집을 가겠다고 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 것입니다. 저 사람하고 살면 엄마같이 고생하는 것도 불사하겠다는 마음이지요.

 

사람들은 빛을 두려워합니다. 다 드러날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드러나야 합니다. 드러나야 고칠 수 있고, 치유 받을 수 있고,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빛으로 오신 것입니다. 기사에 보니 서울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일부가 심각한 마음의 병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들은 늘 감춥니다. 최고라서 감추고, 자존심 상해서 감춥니다. 그러나 문제는 감춘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라고 유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참 좋은 내용지만, 신앙생활에서는 그것이 틀린 이유가 있습니다. 감추고 숨기고 남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들이 예수님 앞에서도 똑같이 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당신에게 잘 보이길 원하지 않으십니다. 포장하길 원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손님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어둠에서 건지시기 위해 오신 빛이십니다.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이제 우리의 옷을 벗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내 속에 있는 어둠은 내 속에 빛이 들어오면 떠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바라보려 합니다. 이제 예수님과 동행하려고 애쓰렵니다. 목사여서 늘 그렇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지식적으로는 ‘함께’한다고, ‘인도’받는다고 했지만 실상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제 삶이 그 증거였습니다. 유혹에 약하고, 어둠의 일을 좋아했습니다. 남들에게는 성령충만한 척하고 살았지만, 내 가족들에게는 그러지 못하였던 제 삶이 곧 그 증거였습니다.

 

우리가 어둠에 당하는 것은 너무 몰라서도 아니고, 무지해서도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잘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너무 자만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바라보지도, 함께 하지도 않으려 합니다. 그 위대하신 이름을 말입니다.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_요한복음3:20-21’

 

 

 

 

_ 약함을 고백하는 믿음으로 살길, 오승주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