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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5 주일예배

2017-02-05 주일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2017-02-05 주일예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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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5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칼을 칼집에 꽂으라

본 문 :

요한복음 18:1-11

오승주 목사

. 우리가 승리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리가 승리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한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하나님 임재연습’(로렌스형제)입니다. 이 책이 여러분의 겨울잠을 깨우길 소망합니다. 신앙생활에 승리하는 방법을 정확하게 제시하고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흔히,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주신 것인지 정확하게 확인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무엇일까요? 경제, 가정, 자녀 또는 행복 이런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바라보고 붙잡고 사느라 정작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반대로 고통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통이 생기면 내 안에 존재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내 안에, 내 앞에 계십니다.

제가 정말 위기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관념적인 존재로 믿는 것입니다. 내 안에 실존하시는 하나님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책의 기록, 우리 영혼의 느낌, 날마다 변덕스럽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경건의 감정, 개인적인 영적성찰 같은 것으로만 하나님을 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내버려둔 채 어리석은 논쟁에 몰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 왕으로, 주인으로 늘 계시는 것을 우리는 날마다 깨어서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늘 대화하는 것을 귀히 여겨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의 기도입니다. 그런 것들은 어떤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일상적이어야 합니다. 로렌스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 머물기 우해 수많은 방법들을 동원하여 고되게 수고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보다는 모든 것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 일상의 모든 임무를 수행하면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나타내는 것, 심령으로 하나님과 교제함으로써 하나님을 계속 생각하는 것이 더 단순하고 직접적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매우 똑똑해야 한다고, 매우 훌륭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똑똑하지 않아도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지한 자세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시도해보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 인생의 승리의 방법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지 못하도록 모든 것을 다 동원하여 가로막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본질은 하나님 자체입니다. 오늘은 본문은 베드로를 중심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다음 주에는 빌라도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3년이나 추종했음에도 베드로는 여전히 인간적이었습니다. 그가 인격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성되기 전 즉 성령이 그 안에 오시기 전의 상태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그럴 수 있습니다. 열심히 교회를 다니고, 열심히 성경도 읽고, 열심히 봉사활동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칼을 칼집에 꽂으라.

 

1. 예수님이 가고자 하시는 길_요한복음18:4-9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이르시되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섰더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니라 하실 때에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신대 그들이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가 그니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 하시니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_요한복음18:4-9’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고자 하셨습니다. 모든 준비를 마치시고 스스로 걸어 나가셨습니다. 전혀 두려움이나 갈등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잡으러 온 자들이 그 예수님의 위엄 앞에 모두 엎드렸습니다. 상식적으로 그럴 수 있나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신 것입니다. 독생자 아들을 십자가에 즉, 죽음에 내어주셨다는 것이 믿어지십니까? 예수님은 그 길을 가고자 하셨습니다. 이유는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임마누엘로 오셨다 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안에 거하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은혜와 진리를 충만하게 해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그 길은 오직 십자가뿐입니다.

아기가 많이 아플 때 제가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팠습니다. 대신 아프면 좋겠다. 정말 하나님 제가 대신 아프게 해주세요.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독생자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다니요. 그 사랑은 정말 놀라울 뿐입니다. 그 십자가 사랑을 체험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사랑을 체험하지 못하면 신앙은 늘 정체가 됩니다. 저는 새가족 과정이나 금요예배와 같은 시간이 그런 시간이길 소망하고 있습니다. 새가족들에게 사역자들이 일대일로 붙어 십자가 사랑을 체험하도록 간증하고 또 정확한 복음메시지를 전달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바나바가 바울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많은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그리고 리더들이 그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 생각하고 미션홈을 섬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가스펠 가족들 모두가 예수님이 그리스도 되심을 믿고 그 십자가 사랑을 체험하길 바랍니다.

우리가 얼마나 연약합니까? 얼마나 죄투성입니까? 십자가 사랑이 믿어지니 그때도 그냥 변론하지 않고 주님 제가 이렇습니다. 오늘도 십자가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기도하게 됩니다. 순간순간 생각합니다. 사람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워하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때 십자가를 생각합니다. 나 같은 죄인도 살리신 그 사랑인데 이 사람도 살아야 할 것 아닌가? 그래서 미워하는 마음이 아닌 사랑하는 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해줍니다. 십자가 사랑이 체험 되면 우리 삶이 그 중심으로 바뀌게 됩니다. 감사가 나오지요. 찬송이 나오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 길을 가고자 하셨습니다. 그 길을 가시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말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있는가? 고통이 있더라도, 병에 걸리더라도 그 길을 갈 수 있는가?

 

2. 베드로의 신앙수준_요한복음18:10,25-27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_요한복음18:10’

 

베드로는 예수님을 엄청 좋아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보호하고 지키려고 칼을 꺼내들었습니다. 예수님을 좋아하는 것과 믿는 것은 다른 말입니다. 베드로는 십자가의 길이 두려웠습니다. 보통 교회를 다니는 것과 믿는 것을 혼동합니다. 그 증거가 우리 삶에서 칼을 의존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베드로가 칼을 사용하자 그것을 말리면서 예수님께서 칼을 가지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면 충분한데 문제를 만나면 칼이 떠오릅니다.

제가 경제적으로 정말 어려울 때가 있었습니다. 심지어 전화비를 내지 못해 전화가 정지를 당했습니다. 그때 저는 칼을 생각했습니다. 돈을 어떻게 마련하지? 그래서 교회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교회에 사례비를 앞당겨서 받아도 되겠냐고 부탁을 한 것입니다. 당장 급한 불을 꺼야 했습니다. 그러나 곧 후회했습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 엎드릴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저는 신앙수준이 그것밖에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 기도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결국 한계를 만나고 엎드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엎드리길 원하십니다. 정말 하나님을 믿느냐 이것입니다. 바로 앞에 계신 예수님이 누구인지 몰랐던 베드로와 같습니다. 칼을 꺼내서 귀를 자르면 그들이 물러갈 줄 알았나봅니다. 제 신앙이 그때 엄청 자랐습니다. 그것이 경제문제였을까요? 지나고 보니 절대 경제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인간관계문제, 가정문제, 모든 일상에서 겪는 문제들 속에서 우리는 칼을 먼저 꺼내듭니다. 하나님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말씀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기도할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아직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문제가 하나님의 섭리인데 그것을 우리는 참지 못합니다. 그것이 되면 사실 문제 속에서도 하나님과 대화가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염려가 되지 않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그렇게 됩니다.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니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이라 이르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잇는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_요한복음18:25-27’

 

베드로는 결국 예수님 말씀대로 닭 울기 전에 3번이나 부인합니다. 호언장담했던 그의 신념은 없어지고 완전 실패한 제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베드로와 같은 우리를 그냥 두시지 않으십니다. 그런 신앙의 수준으로 살게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3. 베드로와 같이 연약한 우리_요한복음18:33-37, 사도행전2:37-42

 

우리도 베드로와 같이 연약합니다. 그걸 인정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자랑하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높이는 길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내 자아, 내 모습이 높아지는 것이 자랑인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내 연약함을 자랑하지 못합니다. 부끄럽고, 창피하다고만 생각합니다. 제 연약함을 자랑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제가 연약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우리의 직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정말 온전히 알고 있다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겨우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과 친해진 뒤에야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친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 사람과 가까이 해야 하고 늘 생각해야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하나님을 늘 생각하고 가까이해야 합니다. 우리가 귀히 여기는 곳에 우리의 마음도 있게 된다고 잠언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귀히 여기는 것이 신앙의 시작임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귀히 여겨야 할지 잘 모릅니다. 신앙의 행위나 훈련도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오직 하나님과 연합하기 위한 도구들입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하나님을 귀하게 여기시는 신앙생활을 하시길 바랍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_요한복음18:36-37’

 

그런 베드로가 변화되었습니다. 환경이 두려워서, 붙잡혀 갈까 노심초사하던 베드로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변화 받았습니다. 완전 실패했던 베드로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나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주님을 부인한 그 실패 때문에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그러나 주님은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을 만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승천하시고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 위해 120명의 성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10일이나 기다려야 했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10일입니다. 누군가 그들을 독려했을 것입니다. 아마 베드로가 아닐까요? 사람들이 복음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찔려 회개하여 우리가 어찌 할까 할 때 베드로가 나섭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_사도행전2:38-40’

. 승리하는 삶의 무기_베드로전서1:1-25, 2:9-10

 

우리는 더 이상 칼을 의존해서 사는 삶을 살아선 안 됩니다. 이제는 새로운 무기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작년에 추천해 드렸던 존 오트버그 목사님의 내 영혼이 무엇을 갈망하는가?’ 을 모두 읽어보셨지요? 바로 그것입니다. 진짜 무기는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다고 했습니다. 왜 신앙생활이 어려운가?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이 삶의 무기입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그분을 예배합니다. 그분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듣기 위해 말씀을 묵상하고 기록합니다. 저의 흠이나 연약함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일이라면 모든 것을 다 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제 삶을 승리하게 하는 무기입니다. 영적인 어둠을 물리칠 무기가 됩니다. 죄를 이길 무기가 됩니다.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베드로의 무기를 보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_베드로전서1:3-4’

 

베드로에게는 산 소망이 생겼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천국입니다. 거듭난 자만이 갈 수 있는 천국입니다. 천국이 산 소망이 되면 이 땅의 것으로 싸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_베드로전서1:6-7’

 

베드로에게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세상이 주는 수많은 시험들로 근심할 수 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게 됩니다. 목사님 말이 됩니까? 시험이 오는데 어떻게 기뻐합니까? 천국의 산 소망을 가진 믿음의 사람은 시험이 오면 하나님 앞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가면 연단이 되어집니다. 연단된 믿음은 칭찬을 받게 되고 하나님께 사용되어져 영광이 됩니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_베드로전서1:14-15’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_베드로전서1:18-19’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_베드로전서1:22-23’

 

베드로에게는 영혼을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 비밀이 생겼습니다. 세상에서 살아갈 때 더 이상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처럼 사리사욕으로 살지 않게 됩니다. 거룩하신 주님을 소망하니 어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의 것을 마음에 품을 수가 있을까요? 우리의 힘이 아닙니다. 보배로운 십자가의 피로 된 것입니다. 그래서 형제를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게 됩니다. 같이 신앙생활 하는 형제, 자매가 미우신 분이 계신가요? 아직 천국을 맛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거룩해질 수가 있지요? 오직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됩니다. 베드로처럼 변화된 삶을 살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_베드로전서2:9-10’

 

예수님이 왜 십자가의 길을 가고자 하셨을 까요? 그것은 우리를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삼으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그걸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직분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무기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럴 때 무기가 빛을 발합니다. 아름다운 덕 즉 우리가 만난 예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을 전하지 못합니까? 만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그 무기를 깨달았습니다. 베드로처럼 완전히 실패한 제자였지만, 이제는 가장 쓰임 받는 제자가 되길 원합니다. 신앙이 무엇입니까? 신앙생활은 내가 아닌 하나님, 내 나라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좆아 사는 삶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셨습니다. 거룩은 구별된 삶을 이야기 하는데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삶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수 있는 삶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말씀가운데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가 이번 한 주 여러분에게 있길 기도하겠습니다.

 

주님을 실제로 모시고 살길 원합니다. 주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는 산 신앙인이 되게 하옵소서. 행여 아직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하였을지라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게 하시며, 성령 하나님을 사모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칼로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십자가의 길을 가셔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택하신 백성으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거룩한 나라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며, 빛을 비추며 살아가는 축복된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