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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6 주일예배

2017-04-16 주일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2017-04-16 주일예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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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6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저부터 회개합니다

본 문 :

요한일서 2:7-17

오승주 목사

. 저부터 회개합니다._누가복음15:17-19,20,29

 

오늘은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의 날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누구에게나 복음을 전할 수 있고 누구나 그 복음을 받아들이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혜택을 받은 사람이 바로 저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앞에서 회개부터 하려고 합니다. 무슨 부활주일에 회개냐 라고 하실 수 있겠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영접도 했습니다. 수도 없이 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얼마나 많이 시인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삶으로 부인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늘 괴로웠던 것 같습니다. 지식으로 이해는 되니 죄를 지어도 다 용서해주실 거야그렇게 생각하고 지나갔습니다. 무슨 죄를 지었냐? 사람들을 제 기준으로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저들과 달라.’ 의로운 척 했습니다. 마음이 병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입으로만 멋진 말을 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저를 포장하기 작했습니다. 사람들의 칭찬에 귀를 기울이면서 하나님의 소리는 듣지 못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에는 민감하면서 하나님의 시선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성경에 보니 저랑 비슷한 사람이 참 많았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돌아온 탕자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 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 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_누가복음15:17-19’

 

철없는 둘째가 아버지에게 자신에게 줄 재산을 미리 달라 하여 집을 나갑니다.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아버지의 품꾼이 되면 밥은 먹을 수 있겠지 그런 마음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아들이 집을 나간 이후로 하루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측은한 마음으로 매일 아침 그가 돌아오길 기다렸습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_누가복음15:20’

 

둘째 아들이 돌아오자 아버지는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큰 잔치를 벌였습니다. 짐승을 잡고 온 동네 사람들을 다 초대해서 우리 아들이 돌아왔다고 너무 기쁜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의 첫째 아들이 등장합니다.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_누가복음15:28-29’

 

형이 동생이 돌아왔다는 소리, 아버지가 잔치를 베풀었다는 소리에 노하였다 합니다. 왜 화를 냈을 까요? 얼마나 화가 났으면 잔치가 벌어지는 집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첫째 아들을 찾아왔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자. 동생이 돌아왔어, 너무 기쁘지 않니? 가서 함께 기쁨을 나누자.’ 그런데 뜻밖의 대답을 듣습니다. ‘아버지 너무 하시네요. 내가 아버지를 얼마나 잘 섬겼는데 내가 아버지의 명을 얼마나 순종했는데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적이 없잖아요.’ 저는 이 말씀을 그렇게 많이 읽었는데 한 번도 첫째 아들이 제 모습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단지 돌아온 탕자가 나겠구나 생각만 했습니다. 5년 전에 이 성경을 읽는데 첫째 아들이 보였습니다. 바로 저였습니다. 저는 예배도 열심이었고 사역도 열심이었습니다. 단 한 번도 못한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누구보다 잘하기 위해 열심이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목회자 동역자라도 마음속으로는 늘 경쟁상대였습니다. 내가 그들보다 떠 뛰어나야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감사도 사라지고, 사랑도 사라졌습니다. 마음은 강퍅해졌고, 병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중요한 사역을 하고 나면 늦은 밤 죄를 탐하기도 했습니다. 이 정도는 괜찮아. 보상심리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빛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 옛 계명과 새 계명

 

1. 옛 계명은 말씀_요한일서2:7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가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_요한일서2:7’

 

옛 계명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요한 사도는 왜 말씀을 옛 계명이라고 했을까요? 말씀이 아무리 위대해도 그걸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빛으로 오셨음에도,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셨음에도 그것을 믿는다 하면서 삶으로 믿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하시는데 난리가 났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열다섯 살 때 구약을 줄줄 외웁니다. 그 말은 메시야에 관한 300개의 예언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다 암송할 줄 안다는 뜻이지요. 그런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몰라봤습니다. 몰라본 것이 이해가 됩니다. 예수님의 말과 행동이 다 이상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전혀 반대로 행동하셨습니다. 산상수훈이 대표적이지 않습니까? ‘심령이 가난하면 복을 받는다고? 애통하는 자가 복을 받는다고? 의의 주리고 목마른 자가 배부르다고? 긍휼히 여기는 자가 긍휼을 받는다고?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본다고?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가 천국에 간다고? 예수님을 위해 박해를 받을 때 상이 크다고?’ 그들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시몬이란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합니다. 초대해놓고 예수님을 무시했습니다. 그 지역은 사막 지대로 초대할 때 전부 하인들이 발을 씻겨주는 것이 예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씻어주지 않았습니다. 무례했습니다. 그 말은 예수님을 초대한 이유가 자신이 얼마나 똑똑하고 잘 먹고 잘사는지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때 한 여인이 나타났는데 그 여인이 향유 한 병을 다 부어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씻어줍니다. 그리고 자신이 창녀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죄를 고백한 것입니다. 향유는 향수입니다. 향수 한 방울 뿌려 남자를 유혹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인데 한 병을 다 쏟았습니다. 그러자 시몬이 난리였습니다. ‘당신은 이 여자가 창녀인 것을 모르십니까? 죄인인 것을 모르십니까?’ 수치스럽다는 것입니다. 창피하지 않냐 이겁니다. 그런데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향유로 예수님의 발을 씻고 죄를 고백한 여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여러분은 시몬이 되겠습니까? 이 여인이 되겠습니까? 제가 꼭 시몬 같았습니다. 복음 좀 들었다고, 훈련 좀 받았다고, 목사가 되었다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말씀이어도 나와 관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예수님과 어떤 관계이신가요?

 

2. 새 계명은 빛 가운데 거하는 것_요한일서2:8-11, 요한복음15:15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그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둠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침이니라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_요한일서2:8-11’

 

예수님과 관계를 맺는 것이 새 계명입니다. 요한 사도는 새 계명을 빛 가운데 거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빛 가운데 거하는 것이 무엇이냐? 바로 형제를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못하면 빛 가운데 거한다고 말하는 것이 거짓이다. 저는 사실 요한일서에서 이 부분을 거의 그냥 건너 띄었습니다.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몰랐고, 이렇게 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어?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부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 그렇죠? 바로 예수님이 그러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용서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말씀을 암송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예수님입니다. 구약은 오실 메시야를 설명하는 성경입니다. 우리가 영접기도를 엄청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사실 영접기도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릴 구원합니다. 복음메시지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용서하지 않습니다. 왜 용서하지 못하지요? 아직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빛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_요한복음15:15’

 

주님은 이제 우리보고 종이 아니라 친구가 되라 하셨습니다. 이제 주님의 마음을 알고, 주님의 뜻을 함께 아는 빛 가운데 거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복음을 심어줄 수 있을까요? 그것이 우리의 목적이라면 우리는 몇 가지 매우 주의를 해야 합니다. 보통 교회가 잘되도록 옳고 그름을 따지기도 합니다. 그것은 분명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지켜야할 기준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옳고 그름을 따졌다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실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옳고 그름으로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정말 빛 가운데 있는 사람은 섬기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자신에도 도움 되고 편한 사람을 위해 섬긴 것이 아닙니다. 불편하고, 싫어하고, 무엇보다 박해하는 사람들을 섬기셨습니다. 그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학벌, 사회적 지휘가 높을수록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돌보셔야 합니다. 그것이 건강한 삶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감각을 깨워야 합니다. 누가 지금 어린아이 같은지, 청년인지, 아니면 성숙한 사람인지. 어린아이 같은 신앙은 돌봐줘야 합니다. 안내해주고 가르쳐줘야 합니다. 유치부, 초등부여서 어린아이 같은 신앙이 아닙니다. 그래서 직분을 맡은 자들은 달라야 합니다. 늘 신앙생활을 이제 시작하는 분들을 살피고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단지 교회에서뿐만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어린아이인가요? 여러분의 시어머니일 수 있고, 말 듣지 않는 아들일수도 있습니다. 말씀이 옛 계명이라면 새 계명은 그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3. 때마다 주시는 고난과 승리_요한일서2:12-14, 욥기38:1-3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리라_요한일서2:12-14’

 

그런데 왜 그렇게 살아야 하냐고 질문합니다. 그냥 내가 손해보고 용서하는 것이 억울하지 않아요? 꼭 그렇게 해야 해요? 제가 그것이 사실 너무 힘들었습니다. 착하게 살긴 했는데 마음은 어둠에 있었기 때문에 두고 봐이런 마음이 너무 많았습니다. 내 힘으로 그런 척하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그 빛을 경험하고 제가 틀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섬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용서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의롭고 경건해서 동전이나 먹을 것을 주면서 하나님 보셨죠? 저 오늘도 의로운 일 했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으로는 얼마나 교만했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빛 가운데 거하는 삶이 전혀 아닙니다. 낮아지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낮아지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빛을 만나면 그렇게 됩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_욥기38:1-3’

욥이 주님을 듣기만 하다가 눈으로 뵈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욥에게 너 정신 똑바로 차리고 대답해라. 너 누구냐?’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누가 너를 창조했냐? 누가 너를 사랑했냐? 누가 너를 죄에서 건졌느냐? 누가 너를 지켜주었느냐? 묻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살기가 등등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최고인줄 알던 사람입니다. 그런 바울이 주님을 만나고 완전 변했습니다. ‘내가 죄인 중에 괴수로구나’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다 나를 이 사망에서 건질 자가 누구랴여러분 정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셨습니까? 그런데 왜 여전히 미워하고 계십니까? 왜 그렇게 강퍅하시나요? 그런데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고 계시냔 말입니다. 서로 비교하고, 경쟁하고 그러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냥 그렇게 두길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고난을 주십니다. 우리 편에서 고난이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사랑입니다. 우리를 빛으로 인도하기 위한 사랑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성숙하길 원하시는 사랑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그러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고아, 과부, 세리, 창녀, 강도 같은 분이 있습니까? . 있고 말구요. 제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런 분들을 사랑하길 원합니다.

 

. 어둠을 지나가는 부활신앙_요한일서2:15-17, 마태복음22:37-38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_요한일서2:15-17’

 

빛 가운데 거하면 세상을 사랑하지 않게 됩니다. 신기한 일입니다. 제가 경험한 것 중에 가장 놀라운 경험입니다. 사람들이 이 말씀을 가지고 좋은 집 사지 말라, 좋은 옷 입지 말라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데 그 뜻이 아니지 않습니까? 세상의 뜻대로 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은 서로 비난합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신이 빛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인들을 보세요. 그리고 우리 자신을 보세요. 똑같지 않습니까? 나보다 못한다고 생각하면 무시합니다. 나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면 굽신거립니다. 그것이 얼마나 비참한 인생인가요? 그런데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왜 그렇죠? 빛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할 때는 성령인도라면서 다른 사람이 하면 성령인도가 아니어서 함께 하지 않으려 합니다. 가만 보면 정말 이기적입니다. 회개하시길 바랍니다.

대구에서 목회를 하는 선배목사님이 해주신 이야기입니다. 교회가 어려울 때 부임을 했습니다. 그런데 장로님들이 그렇게 싸우더랍니다. 장로님들이 하도 싸우길래 왜 싸우냐고 물어봤더니 잘해 보려고 싸운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신경 쓰지 마세요. 이게 다 잘해 보려고 그런 것 아닙니까?’ 그래서 가만 살펴보니까 정말 잘못되자고 싸우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배목사님이 설교시간에 말했습니다. ‘우리 잘하지 맙시다. 잘하려고 싸울 거면 싸우지 말고 그냥 보통만 하는 게 더 나을 거 같습니다.’ 그러자 지금은 그 교회가 얼마나 부흥했는지 모릅니다. 교회에 청년들이 정말 많고 칭찬 듣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엄청 힘들었습니다. 저는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잘못하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떻게 하지? 비교의식에 사로잡혔습니다. 제가 그 선배에게 물어봤습니다. 어떻게 했냐고? 그랬더니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승주야 하나님 사랑하면 된다. 은혜 받으면 된다. 그러면 미운 사람들이 다 사라진다. 실제로 미운 사람이 사라지냐? 아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니까 저 사람들도 다 사랑스럽게 보이더라우리 안에 부활하신 주님이 계십니까? 네 라고 대답하면서 여전히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빨리 십자가로 돌아가야 합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주님과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주님과 관계가 뜨거워지고 사랑에 빠지면 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_마태복음22:37-39’

 

여러분이 살아가는 세상은 여러분의 사명지입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세상을 떠나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거하는 이유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지금 이 세상은 참 문제가 많습니다. 우리가 그저 세상을 사랑하여 잘 먹고 잘 살기만을 바라면 정말 보아야 할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사랑하면, 그 빛 가운데 거하면 보입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죽이고 싶었던 이방인이 구원의 대상으로 보였습니다. 욥을 보세요. 늘 파티만 하는 자식들이 미웠습니다. 자식들 때문에 자신의 의가 흠이 날까 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딸들의 이름을 사랑이란 뜻으로 지었습니다.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너무 어려운 일처럼 느껴지십니까? 그렇게 살기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주님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그냥 바라보시지 말고 완전히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부활신앙은 어둠을 지나가게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면 그렇게 됩니다.

 

주님이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참 빛이 되어주시니 감사합니다. 더 이상 어둠에 거하지 않고 주님의 빛 가운데 거하길 원합니다. 그러나 빛 가운데 거한다고 기도는 하면서 실질적으로는 빛 가운데 거하지 않고 살 때가 많습니다. 형제를 미워하고 용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처럼 지식적이고, 관념적인 신앙생활만 하기 때문에 내면의 변화가 없습니다. 주님 회개합니다. 삶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믿길 원합니다. 우리의 삶도 부활신앙으로 살게 하옵소서.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또 사랑하는 신앙인이 되어 어둠이 우리 삶에서 지나가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