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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2-07-10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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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7월 10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본 문 : 고린도전서 11:17-34

 

 오승주 목사

 

- 성만찬 앞에서의 사회적 우월 의식_고린도전서11:17-22

 

성만찬에 관한 말씀이고 성만찬이 지금 고린도교회에서 어떻게 이해가 되고 행해졌는지 성만찬에 대해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인 것 같습니다. 원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에 떡과 포도주를 나누고 이 말씀을 직접 기념하라고 말씀하셨고 교회가 모일 때마다 성만찬을 계속 했습니다. 원래 성만찬은 지금처럼 분기에 한 번, 일 년에 한두 번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일에 모일 때마다 성만찬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고린도교회나 다른 교회들이 형성이 되고 성만찬이 어떤 모양으로 이해가 되고 행해졌는지 지금처럼 약간의 포도주와 떡을 떼는 것이 아니라 이런 문화인 것 같습니다. 제가 미국에 갔더니 미국 이민교회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점심식사를 하는데 각 가정에서 음식을 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어떤 집은 나물을 해오고 어떤 집은 김치를 해오고 어떤 집은 밥을 해 와서 점심시간에 뷔페처럼 나눠먹었습니다. 보기 좋고 그렇게 먹는 것이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고린도교회에서도 했던 모양입니다. 각 가정에서 음식을 장만하고 교회에 와서 함께 나눠먹고 마시는 교제를 성 만찬으로 받아드린 것입니다. 그냥 예배시간에 약간의 포도주와 떡을 떼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장만해 와서 먹고 마시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만찬을 축제처럼 모였을 때 먹고 마시고. 그래서 밖에 있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의 모습을 보고 오해할 정도로 고발할 정도로 사회적인 문제가 될 정도로 먹고 마시고. 오늘도 사도바울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고 취했느냐. 예배드려야 하는 거룩한 주일인데 취할 정도로 마셨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오늘 성만찬을 이야기하기 전에 너의 논쟁을 칭찬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발전하려면 너희의 예배나 발전을 하려면 약간의 논쟁이 필요하다. 그래야 옳은 사람이 나오기 때문에. 옳은 사람이 나와야.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으면 교회는 의미가 없습니다. 공동체를 이루어갈 때 의견을 내야하고 의견을 내지 않고 다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으면 조직은 발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약간의 논쟁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희들의 약간의 논쟁은 필요한데 논쟁조차 무의미하게 만드는 너희들의 성만찬에 대해서 변질된 성만찬에 대해서 오늘 사도바울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에 들어가기 전에 옳다 그르다 말할 때 최소한 옮고 그름을 지적하려면 그 일에 헌신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 일을 헌신한 사람을 옳고 그름을 지적할 수 있는 자격이 주워 집니다. 나라에 대해서 손가락질하려면 최소한 이 나라에 헌신한 사람이 세금도 내고 이 나라를 사랑한 사람이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없다면 옳다 그르다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참여가 없는 사람은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지금 사도바울이 이야기하는 것도 그런 맥락입니다. 교회는 특이나 그렇습니다. 여러분, 은혜를 받지 않고 교회의 행정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니 교회가 변질됩니다. 은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교회의 방향을 논한다는 것은 웃긴 것입니다.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이야기입니다. 사랑하지 않고 손가락질할 수 있나요? 그것이 문제입니다. 이 사회가. 내가 저 사람을 위해서 사랑하고 희생하고 헌신하기 때문에 손가락질을 해도 책망과 권면이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왜 그것이 문제가 되나요? 사랑하지 않고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내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녀를 향한 훈계가 나이가 들어서 철이 들면 부모의 사랑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매 맞는 순간에는 철이 없으니까 매 맞는 것이 짜증나고 화가 나지만 세월이 지나 엄마 아빠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그것이 그립고 고마운 것입니다. 엄마가 버릇을 잡아주고 아빠가 훈계해주신 것이 고맙고 감사한 이유는 밑바탕에 부모의 헌신과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사랑하지 않고 훈계한다면 상처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상처 받은 분들이 많습니다. 지금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파당을 지으면서 논쟁을 하고 있는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냐면 음식을 해왔다 그 말은 그 당시에 집이 어느 정도 잘 사는 엘리트, 상류층인 사람들이 음식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그 음식을 해왔는데 가난한 자들은 그 음식을 해 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음식을 해 온 사람은 그들끼리 나눠먹는데 음식을 해 오지 않은 사람들은 민망하고 뻘쭘 하고. 음식해온 사람이 같이 먹어요 라고 말하면 좋은데 성만찬 예식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왜 너희는 준비해오지 않았어? 왜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해오지 않았어? 여기에서 성만찬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신앙을 지적하고 그들의 가난한 삶을 업신여겼습니다.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자기들은 그 음식을 나눠 먹고 가난한 자들 앞에서 취하기까지 하면서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 자기중심적인 태도로 그들의 신앙을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성만찬은 이런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고린도교회의 성만찬이 옳은가요? 맞나요? 과연 가난한 자들이 그 성만찬을 보고, 처음 새신자들이 주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주님이 명령하신 성만찬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 사람들은 성만찬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고린도교회에서 하는 성만찬이 성만찬인 줄 알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적인지 주님이 가르쳐주신 것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제가 작년에 조금 힘들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제가 조금 많이 힘들었었습니다. 제 설교에도 그것이 다 들어나서 장로님, 권사님이 걱정도 많이 해주셨는데 사실 제가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작년에는 사실 제가 의로워서 고치고 개혁하고 새롭게 하고 그런 마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때 제가 들었던 말 중에 가장 힘들었던 말은 이런 것입니다. 너희 교회나 잘해. 너희 교회 부흥했어? 교회의 겉모양을 가지고 성도 몇 명인데? 그런 말할 자격이 있어? 그런 말들을 종종 들었습니다. 많이 쉽지 않았습니다. 마음도 힘들고 그러고 보면 그 사람들의 말을 듣자하니 우리 교회가 한 것이 별 것 없었습니다. 선교사님을 풀타임으로 파송해서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교회가 건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역을 거창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거기다가 제가 올바른 목회 건강한 교회라고 말하니 너나 잘 해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틀린 말이 없습니다. 올해 시작하면서 기도를 다시 해야 겠다 해서 주중에 잃어버렸던 기도시간을 찾고 기도하고 있는데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수도 없이 질문하는 것이 하나님, 목회가 무엇입니까? 교회가 무엇입니까?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입니까? 교회의 건물을 짓는 것입니까? 사역을 거창하게 하는 것입니까? 기도를 하는데 제게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제 마음에 들려주시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너 정말 나를 사랑하고 있냐. 정말 나를 진짜 사랑하고 있냐. 이것이 별거 아닌데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과를 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하셔서 제자들을 찾아오셨는데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3번이나 물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정말로 사랑하느냐. 너 정말 은혜 받고 있느냐. 너 정말 나의 몸 된 교회인 성도들을 사랑하고 있느냐. 전 정말 회개했습니다. 나는 저들과 다르다 저들과 비교해서 건강하다. 비교해서 나는 올바르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전혀 다른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넌 나를 사랑하느냐. 그러니까 고린도교회 엘리트층, 주축 세력들이 음식을 해다 먹으면서 없는 자들의 모습을 보고 비교 우월감, 비교 우위를 가지고 우리는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어. 음식을 먹고 취하면서 주님의 성만찬을 잘 지키고 있어. 음식을 남아서 버리면서 술에 취하면서 그들을 보고 너희들이 성만찬에 참여하지 않고 있니? 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바울의 화남, 분노를 오늘 본문에 느껴지시죠? 24절에 주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성만찬은 이런 것이라고 바울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 주께 받은 예배 공동체의 내용_고린도전서11:23-29, 에베소서2:11-18

 

24.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_고린도전서11:24-25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자신의 육신을 내워주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우리가 놓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가장하는 말이 우상숭배하지마입니다. 우상이 무엇인가요? 우상의 개념도 우리는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우상의 개념을 우리가 받아들이기 싫은 것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우상은 무엇인가요? 우상숭배 하지마 하니까 많은 성도들이 나는 우상숭배 하지 않고 사는데? 예배 잘 드리고 있는데? 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상 숭배하지 말한 말씀은 바알이나 아세라나 애굽의 신을 섬기지 마 이런 것이 우상숭배가 아닙니다.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하자고 하시는 말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리 이렇게 해보자 이렇게 하자 이렇게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해서 살자 라는 말씀을 타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겼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자고 하시는 것을 타협하는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히브리서12장에 모든 자식은 징계를 받는다고 합니다. 남의 자식을 하나님께서는 꾸중하지 않습니다. 내 아들이니까 아들답게 키우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입니다. 자녀들이 이 정도면 충분히 벌어먹고 사는데 무엇을 더 하라고 하는 거야? 왜 대학을 가라고 하는 거야? 내 뜻대로 사는데.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부모들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내 자식이라면 징계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 이정도 되었어요. 이정도면 먹고 살만한데 교회 좀 가고 헌금 좀 하고 적당히 크리스천으로 살면 되는 것 아닌가요? 이것이 타협하는 것입니다. 우상 숭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름주의에 빠져있습니다. 박영선 목사님께서 사용하신 단어입니다. 이름주의가 무엇인가요? 나는 기독교인이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그래서 박영선 목사님께서 성경에는 삼층적인 세계관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는 도덕적인 세계관, 두 번째는 은혜의 세계관, 세 번째는 책임이 따르는 자유의 세계관이다. 그래서 모든 크리스천들은 마지막 단계로 나아가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명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피와 살이 우리가 세상에서 적당히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이유가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우월의식을 갖게 하기 위해서 그런 그리스도인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에게 십자가의 사건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것이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 목적을 상실하고 타협하는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_에베소서2:11-18

 

십자가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되었다는 것은 십자가로 말미암아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어 아버지께 같이 나아갔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십자가로 새로워진다는 것은 성만찬을 한다는 것은 나 이 음식 먹고 나 하나님 자녀야. 나 구원받았어. 라는 우월감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몸과 연합하라는 의미로 성만찬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와 연합하라. 그것은 가난한 자들과 연합하고 이웃들과 연합하고.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예배를 드리려거든. 네가 싸우고 있는 자들과 분쟁 있는 자들과 화해하고 와서 예배를 드려라 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야 합니다. 과연 우리가 진짜 교회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가. 그래서 성경은 가난하고 병든 자들과 연합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냥 돈을 가지고 돕자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십자가의 사건의 본질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공생애 사역하시는 동안 바리새인이 가지 않았던 사마리아 땅에 가셨고 가난한 자들과 병든 자들과 식사하시고 함께 하셨던 사역들. 주님 안에 자유가 있고 주님 안에 죄사함이 있고 주님 안에 구원이 있기 때문에 주님과 연합한다는 것은 우리가 평안을 알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예배가 어떤 예배인가? 우리의 예배가 이웃들에게 공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공해가 되면서까지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아니라고 생각이 듭니다. 

 

-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_고린도전서11:30-34, 에베소서2:1-10,3:14-19,4:1-16,5:1-14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_고린도전서11:30

 

교회의 모습입니다. 교회 안에 약한 자도 있고 병든 자도 있고 잠자는 자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먹고 마시는 것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성만찬을 하라고 했습니다. 성만찬의 의미가 단지 포도주를 먹고 떡을 먹는 것이냐. 육신적으로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성만찬은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은혜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오늘 날에 이르러서는. 그런데 그 은혜를 받는데 너희 중에 약한 자가 있고 병든 자가 있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살피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살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징계를 받지 않는 예배가 되고 교회가 되려면 세상에 정죄를 받지 않으려면 그런 우리의 공동체 모습을 살피라는 것입니다. 잠자는 자가 있는지 병든 자가 있는지 약한 자가 있는지. 그래서 음식을 먹으려거든 기다려서 같이 먹으라는 것입니다. 기다려라. 그렇게 배가 고프면 집에서 먹고 와라. 그렇게까지 사도바울이 이야기합니다. 교회 밥 먹으려야 왔냐. 술 마시려 왔냐. 배고파서 성만찬을 하는 것이냐. 라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와서 먹고 마셔야 하느냐. 그 음식을 가난한 자에게 병든 자에게 잠자는 자에게 나눠줄 수 없느냐.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유가 아니냐.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_에베소서2:1-10

 

14.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_에베소서3:14-19

 

교회가 무슨 공동체인 것 같습니까?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해야 교회가 세상에 복음이 될 수 있나요? 사도바울은 우리가 은혜를 받아야 하고 그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만찬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 안에 뿌리를 내리시고 그분과 교제하고 그 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신 신령한 복을 먹고 믿음이 강하여지고 은혜를 받고 강해지고 그래서 오는 여러 세대에 모든 성도와 함께. 지금 이 이야기를 계속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스캇 솔즈 목사님께서 ‘선에 갇힌 인간, 선 밖에 예수’ 라는 책에서 우리가 전도하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보고 예수님처럼 되라. 그러면서 예수님이 되는 것이 1번이고 그 다음은 죄인들과 같이 어울리고 그들과 진실된 관계를 맺으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들과 진실된 관계를 맺으면서 이 사람을 전도해야지 하고 관계를 맺지 말라는 것입니다. 박영선 목사님도 인격의 제자훈련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전도가 폭력이 되어버렸다. 이 사람 전도해야지 해서 가식적으로 선을 행하고 전도 해야지 해서 없는 표정을 짓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처럼 해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은혜를 받고 변화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과 어울리라는 것입니다. 진실 되게.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하는 동안 이렇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가식적으로 죄인들과 식사를 하셨나요? 가식적으로 사마리아 땅에 가셔서 죄인들을 구원하셨습니까? 우리는 이중적인 우월감을 가지고 세상을 정죄하고 있지 않는가. 고린도교회 성도들처럼.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8.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9.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_에베소서4:1-16

 

1.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5.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6.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7.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12.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_에베소서5:1-21

 

왜 술 취하지 말라는 말이 나오죠? 교회 안에 성만찬으로 술 취했기 때문에. 너무 중요합니다. 어떤 교회를 이루라고 하나요?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데 교회가 같이 힘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여 너희의 마음으로 노래하며 찬송하며 그 마음으로 서로 화답하고 서로 대화하고 권면하고 도와주고 섬기라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음식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성만찬이라고 가르쳤는데 그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카스테라 빵과 포도주를 마시며 기념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기념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런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러나 진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 육신 그 살을 먹는 것은 말씀을 먹는 것이고 피를 먹는 것은 기도해서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정말 은혜를 받고 있는가. 항상 먼저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 삶이 증명된다면 우리의 말과 행동은 우리의 이웃들에게 진심이 되고 복음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우리가 변화된 말과 행동을 하게 될 때 주님과 진짜 동행하고 주님을 모시고 산다면 우리의 그들과 하는 모든 교제는 그 속에 주님이 드러나고 향기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나는 변화되지 않았는데 주님과 친밀하지 않는데 복음 메시지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박영선 목사님께서는 폭력이라고 했습니다. 전도의 폭력. 얼마나 많은 전도 훈련을 받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교회에 끌어들이기 위해서 메시지를 전하고 영접을 시키고. 그래서 한국교회가 지금 어떻게 되었나요? 우리 자녀들은 어떤 상태인가요? 교회는 치열하게 성장해야 합니다. 성숙해야 합니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성만찬이 멈춰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거룩한 자녀가 되어야 하고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에 타협이 없어야 합니다. 이름주의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됐어요. 주님. 저 이 정도만 하면 될 것 같아요. 이 정도하면 저 하나님 자녀다운 것 같아요. 이름 주의에 빠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는 것이 우리가 타협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환경과 상황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고린도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고린도교회의 성만찬을 보면서 새신자들이나 가난한 자들이 저것이 성만찬이고 저것이 은혜 받는 것이고 저것이 구원받은 거라면 구원 못 받을 것 같아. 이랬을 것입니다. 나는 저 음식을 해올 수 없고 나눠 먹을 형편도 안 되고 얼마나 교회가 복음을 막고 있는지 그릇된 전통이, 그릇된 관습이, 그릇된 오만함들이 자기들은 성만찬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환경과 상황이 아니라 말씀에 따라서 신앙생활을 해야 하고 성경에서 가르쳐준 내용을 가지고 예수님을 믿어야 하고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래서 은혜 받는 일에 환경과 상황을 따지면 거듭날 수가 없습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처럼 타락한 관습을 만들어 내거나 타락한 성도가 되거나 타락한 교회가 될 수 있다는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제가 이번 여름에 말씀사경회를 준비하고 있는데 환경, 상황이 쉽지 않습니다. 아이들 개학이 있기도 하고 휴가철이 아니기도 하고 이런 저런 부담스런 상황들이 있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번은 은혜를 목적삼아서 은혜 받는 것을 목적 삼아서 상황과 환경의 이유들이 아닌 은혜를 목적 삼아서 이 상황과 환경을 한번은 극복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들고 어떤 분들은 은혜 받고 싶은데 회비가 비싼 것입니다. 저는 그런 생각도 듭니다. 혹시 여유가 되시는 분들은 한두 명을 지원해서 같이 은혜를 받으면 어떨까. 이럴 때 후원도 해주시고 섬겨주시고 그것이 우리의 성만찬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어찌하든지 약한 자와 병든 자와 잠자는 자를 기다리고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 성만찬입니다. 교회는 속도전이 아닙니다. 빠르게 교회가 성장하고 부흥하고 교회가 빠르게 가야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깨닫는 것입니다. 이제 해야 할 일을 올바르게 해야 하는 것이 교회다. 이웃을 돌보고 교회 안의 연약한 자와 병든 자를 위해서 기도하고 잠자는 자를 기다려서 같이 은혜를 먹는 것. 같이 말씀을 먹는 것. 같이 주님의 몸과 피를 그 의미를 은혜를 나누는 것. 그것이 믿음의 선배들이 가져야할. 그것이 건강한 교회이고 우리가 감당해야 할 거룩의 방향이 아닌가.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 아닌가. 교회가 그렇게 될 때 서로 다른 모습이지만 에베소서 말씀처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화답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제가 작년에 힘들었을 때 장로님들, 권사님들이 위로해주시고 그 위로가 진짜 위로가 되었습니다. 제가 목사라는 이름을 가지고 산다면 목사인데 다 잘 할 수 있어. 나는 완벽하게 목회를 할 수 있어. 이것이 아닙니다. 수도 없이 괴롭고 힘들고 무너지는 상황들이 많고 여러분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여러분들이 같이 기도해준다는 것이 위로가 되고 저는 강단에 올라왔을 때에 주의 종이라는 타이틀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지만 내려갔을 때에는 같은 성도로 같이 교회를 섬기고 성도들을 살피고  하는 사역들을 같이 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도 그릇된 목사가 될 수 있고 그릇된 교회를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경계하고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말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되고 무언가를 고집 피워서 타협해서도 안 됩니다. 이름주의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교훈 받아야 하는 것은 주님이 명령하신 성만찬의 의미, 하늘의 신령한 복을 주시려고 그 은혜로 거룩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은혜로 어려운 땅에 천국을 소망하고 살 수 있게 하시는 모든 구원의 은혜들을 먹고 마시고. 어떻게 먹고 마시라고요? 가난한 자들과 약한 자들, 잠자는 자들을 기다려서 함께 먹고 마시고 그것이 교회의 모습이고 예배의 모습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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