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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9 주일 1부 예배

< 주일 1부 예배 >

일시:  2015년 04월 19일

제목 :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말씀 : 마태복음 17:1-8

설교 : 오승주 목사


2015-04-19 주일1부예배.hwp




음성 다운로드 http://bit.ly/1OsKJy0

영상 다시보기 https://vimeo.com/125361350



2015-04-19 주일1부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 주님의 끊임없는 사랑_마태복음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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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졋더라_마태복음17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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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제가 아주 어렸을 적에 소고기는 지금보다 훨씬 더 귀했습니다. 아버지가 가끔 소고기를 사오셨는데 어디에 싸서 오신 줄 아십니까? 바로 신문지입니다. 신문지에 돌돌 말아서 들고 오셨습니다. 너무 오래된 여러분이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 지혜가 깊지 못한 비유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복음을 받았는데 우리가 착각하는 것을 깨우치기 위해 비유를 든 것입니다. 제가 한주동안 사역을 하고 나면 저도 착각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일주일에 하루는 반드시 시간을 내서 말씀을 듣고 묵상을 합니다. 그때 착각한 것들이 빠집니다.

목사님도 착각하고 목사님도 말씀 들어야 사나요? 그럼요.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이 자리에 어떻게 앉아계십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셔서 나한테까지 복음이 왔고 내 입술의 고백을 만들어 내셨는가를 기억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답이 나옵니다. 성경에 많은 제자들의 순교나 사도바울의 순교는 기록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착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제자들로 말미암아 완성되거나 제자들의 도움을 받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단지 복음을 담은 그릇에 불과합니다. 중요한 것은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순종, 승리 말입니다. 그러니 역설적이게 여러분 인생도 가볍게 보지 않아야 합니다. 왜 그렇지요? 빛나는 주님, 신비한 주님이 우리 인생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빛이 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마치 내가 빛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신앙생활을 합니다. 이 나라, 이 시대, 이 민족 그런 거창한 것도 중요하지만, 여러분이 우선 잘 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고백하여 그것이 여러분 인생에 작용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아닌 인생이 아닌 것 같지만 그것이 위대한 신앙의 길인 것을 알고 잘 사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 기쁨과 감사, 찬송이 여러분 당사자에게 있지 않다면 힘쓸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야고보, 요한, 베드로를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습니다. 도대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내가 누구인지 확인시키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또 거기에서 잘못된 깨달음을 가집니다. 누가복음에 같은 사건을 기록한 본문에서는 제자들이 졸았다고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 특별한 사건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전히 자기 수준을 벗어내지 못하고, 수준도 없으면서 그 수준으로 판단하고 자기식대로 해석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전하면 믿고 순종하려 하지 않습니다. 어찌 말씀을 한번 듣고 신앙생활이 어렵다하여 포기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그저 신문지로 살면 됩니다. 복음을 신문지로 싸서 다니십시오. 그래야 어딜 가든지 금방 펼쳐 보일 수 있습니다.

다들 이렇게 이야기 합디다. ‘아이고 내가 수준이 이래서 예수님 믿는다는 말도 못한다 합니다. 내가 문제가 많아서 복음을 전하지 못합니다.’ 맞습니까? 그렇다면 누가 복음을 전합니까? 도대체 우리는 누굴 믿고 있습니까? 우리가 연약한줄 압니다.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으니 저는 이미 영광스러운 길을 걷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저는 오늘 제자들과 같습니다. 같은 사람입니다. 그저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과 같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주님을 따릅니다. 주님의 이끌림 속에 있습니다. 어리석지만, 못났지만 주님의 끝없는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이 아닐까요? 비록 신문지 같은 인생이지만 내안에 주님이 있으니 보통 신문지가 아닙니다. 비루하고 보잘것없지만 예수님으로 내 인생이 귀히 쓰임 받는 것입니다. 그것처럼 복된 인생이 또 있을까요? 주님의 끝없는 사랑 안에 있으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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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에 대한 올바른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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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앙의 시작_마태복음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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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_마태복음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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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현실에서 보면, 우리의 신앙이란 전적으로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신앙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인가 원하는 신앙일 뿐입니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결코 올바른 것도 아닙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따릅니다. 사실 그것이 이 시대상인지도 모릅니다. 요즘 젊은이들을 만나면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좋아하는 것만 합니다. 다른 것은 듣기도 싫다 합니다. 그러면 누가 몫을 감당하나요? 그러니 이 나라나 사회가 건강하지 못합니다.

신앙도 그렇게 합니다. 좋아하는 것만 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힘든 일은 누가 합니까? 그래서 제가 자꾸 Elite들에게 부탁합니다. 그에 대한 몫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부자는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합니다. 힘 있는 사람은 힘없는 사람을 도와야 합니다. 실력 있는 사람은 실력 없는 사람을 도와야 합니다. 일제시대 때 신사참배를 강요했습니다. 신기하게도 남북전쟁 때도 신앙생활하는 사람들만 잡아다가 대표적으로 죽였습니다. 신앙생활을 우습게보시면 안 됩니다. 그때 다들 자기들 목숨건지겠다고 목사들, 장로들이 신사참배하고, 공산당에게 예수 안 믿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를 알고 진짜 믿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몫을 했습니다. 신차참배를 하면 우상숭배를 하면 이 나라가 어찌 되겠느냐.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게 순교도 하고 핍박도 받았습니다. 그렇게 신앙인의 몫을 하셔야 합니다.

오늘 제자들의 모습을 보세요. 하나님은 내 소원과 기대의 대상일 뿐, 하나님 앞에 순종하고 무릎 꿇어야 하는 신앙은 아직 아닌 것입니다. 어느 시대나 기독교는 이런 유혹을 받습니다. 어느 시대나 기독교는 이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중요한 싸움에서 실패한 역사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항상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을 틀리게 했는데 성공하면 그것은 사랑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 심판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거기에서 끝났다면 우리 인생에도 희망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늘 실패합니다.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품으신 목적과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가진 목적의 무게가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능력만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의 부유함을 원합니다. 제 고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함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온전한 신앙인으로 사는 것은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항상 신앙생활이 고단하게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소원하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문제만이 가장 중요한 소원이 되는 자리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우리 안에 허다한 우상의 뿌리, 상처 같은 것을 뽑으려 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광야가 그랬고, 다메섹에서의 바울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정금같이 단련시키십니다. 완전히 실패한 이스라엘, 그리고 그와 같은 우리에게 결국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사랑입니다. 십자가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십시오. 그 두렵고 떨림은 공포가 아닙니다. 무게라 이해하셔야 합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신앙을 제대로 시작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 하지만 신앙을 잘 모릅니다. 그저 주님이 좋다 합니다. 감정적으로, 응답을 주시니, 교회에 오면 마음이 편안해서 좋습니까? 다른 데 가면 이해 못해주는 데 교회 사람들이 우리 마음 이해해주시니 좋습니까? 그래서 그 좋은 것들이 사라지면 바로 배신 때리는 것이 우리 아닙니까? 제 모습이 그랬습니다.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으면 행복하고 기쁘고 평안한 신앙생활을 한다는 약속을 우리는 말씀에서 받습니다. 세상에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화가 되었을 때 얻는 평화와 기쁨보다 세상과의 관계가 평화롭고 기쁘기를 요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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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나님의 음성_마태복음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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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_마태복음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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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말씀하셔도 듣지 않는 제자들에게 하늘에서 직접 하나님께서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이제 좀 깨달아라. 예수가 누구인지 깨달아라. 그때서야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합니다. 과연 하나님의 음성이라 생각하여 두려웠을까요?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열왕기서에 보면 이스라엘이 솔로몬의 영광스러운 성전을 짓고 좋아하며 때를 따라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 할 도리를 다한 것처럼, 그러나 실제로는 생활에서 우상을 섬기고, 음란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절대 이유 없는 책망은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목숨을 겁니다. 갑자기 좀 은혜를 받으면 깨달았다 합니다.

우리 인생은 제법 길어 보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기로 하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으면 그 고백으로 우리 인생의 방향과 내용을 전면적으로 점차 바꾸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거의 갈등조차 하지 않습니다. 늘 현상만 보기 때문입니다. 응답이 오나 안오나, 축복이 오나 안오나 눈에 보이는 현상만 보니 신앙생활이 제대로 될리 만무합니다. 제자들의 모습이 곧 제 모습이기도 합니다. 부끄럽지만 사실입니다. 이번 주에 저는 한 청년을 만났습니다. 암에 걸렸습니다. 시간을 내어 병원을 가고 또 시간을 내어 교회에 초대하여 만났습니다. 책한 권 사서 주고 싶어서 서점도 갔습니다. 그러면서 부끄럽게도 제 마음에 우리 성도들 챙겨야 하는데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제자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듯합니다. 세상과의 관계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안 중요합니까? 평소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으니 심히 두려워할 것이 아닐 텐데 어찌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니 그제야 두려운 것입니까?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은 믿지 않으면서도 문제가 오거나 사건이 생기거나 현상을 보면 그때서야 믿습니다. 그것이 저의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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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직 예수의 신앙_마태복음1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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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나와야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_마태복음1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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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수준조차 다 아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손을 잡아 일으켜주십니다. 이 말씀을 두고 많은 목사님들이 모세도 사라지고, 엘리야도 사라지고 예수만 보였다고 설교합니다. 그런데 원래 예수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이 본 것은 영적인 세계를 본 것입니다. 구름이 그들을 덮었으니 어두웠을 것입니다. 그것이 사라졌습니다. 다시 말해 다시금 원래의 우리 상태로 돌아온 것입니다. 다시 허름한 옷을 입고 늘 함께 하시는 예수님만 남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현실을 살아가야 합니다. 일도 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합니다. 저축도 해서 자녀교육도 시켜야 하고, 여러 사람들과 관계도 해야 합니다. 벅찰 때가 참 많습니다. 그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우리는 불신자들과 무엇이 다릅니까? 저들과 어떤 차별이 있습니까?

한주동안 생각해봤습니다. 비루한 내 인생, 주님을 만나 복음을 전하는 인생이 되었는데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오늘 저희 어머니가 오셨습니다. 우리 집이 어떤 집인지 어머니는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저에게 오직이 되도록 하나님은 저를 사랑해주셨습니다. 그 사랑이 가난이었고, 그 사랑이 곤고였습니다. 되돌아보니 그걸 깨닫습니다. 예수님이 손을 제자들에게 대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믿는다면 여러분 담대하십시오. 우리 인생이 예수님이 손잡아 일으켜준 인생인데 당당하십시오. 주님이 손대어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이 우리 인생에 손을 대어 우리가 천국의 백성이 되지 않았습니까? 오직 예수의 신앙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이면 충분합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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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어나서 두려워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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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적인 눈_빌립보서1: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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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_빌립보서1: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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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일어나서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위해 영적인 눈을 떠야 합니다. 영적인 세계를 통합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반드시 한쪽으로 치우치게 됩니다. 그러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왜 이상한 교리를 믿는 이단이 나올까요? 신기하거든요. 딱딱 들어맞습니다. 내 상처, 내 수준과 맞아서 그것이 진리인줄 알고 따라갑니다. 내가 바뀌고 갱신하려하지 않습니다. 원래 우리 부모님은 그대로입니다. 아직도 글을 못 읽으시는 우리 어머니는 그대로이십니다.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안변하니 다른 엄마 찾으러 가는 격입니다.

영적인 눈을 열라는 말은 기도를 빡시게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선한 것을 분별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진실하고 허물이 없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는 데는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는 쉽게 진실하지 못합니다.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허물도 없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가능한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과연 의로울 수 있습니까? 우리가 십자가의 길을 스스로 갈 수 있습니까?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을 때 의의 열매가 우리 삶에 가득하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됩니다. 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평안이요, 감사요, 찬송입니다. 그것들이 사람을 살리게 됩니다. 나를 살립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열매입니다. 주님이 누군지 보셨다면 그리고 내 모습을 보셨다면 주님의 손을 붙잡기 바랍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신앙은 내가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잘하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이 손대어주시면 그걸 붙잡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날까지 주님의 손을 붙잡으면 우리 인생에 의의 열매가 가득하게 됩니다. 신문지 같은 인생이지만 반짝반짝 빛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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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앙의 로드맵_빌립보서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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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_빌립보서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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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올림픽에선가 본적이 있습니다. 마라톤선수 중 한명이 마라톤경기가 끝나고도 2시간이 훨씬 지나서 비틀거리면서 들어오는데, 모든 관중이 기다렸다 일어나서 다 같이 박수치는 장면이 텔레비전에 나왔습니다. 이런 모습이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의 현실이 아닐까 합니다. 일등을 해서 단상에 올라가 국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면류관을 받고 서있는 인생만이 최고의 인생이 아닙니다. 저에게 주어진 길, 못나고 할 말 없는 그 길을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으로 사는 것이 최고의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마라톤 선수처럼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결승점에 도달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천국입니다. 그 천국을 소망하며 주어진 삶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의 몫을 다하고 살면 됩니다.

교회에 나와서 내가 누구라고 말할 자격도 기대도 없는 삶이, 교회에 숨어 들어와서 예배만 드리고 가야만 하는 삶이 보잘것없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믿는 예수님에 대한 가치입니다. 정말 그분이 누구신 것을 알고 믿었다면 여러분 인생에 그 믿음을 적용하십시오. 작은 삶이어도, 비록 보잘 것 없는 삶이어도 믿음으로 살면 됩니다. 만일 우리가 세상의 논리와 방정식으로 살아가는 저네들 속에서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산다면 그것이 깨닫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까? 겉만 신앙인으로 살면서 늘 주저앉아 두려워하고 있지 마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신앙의 로드맵을 가지십시오. 우리가 가는 길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길인지 안다면 그 길을 묵묵히 가십시다. 그러면서 가스펠 성도의 몫을 하십시다. 이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가운데 하나님의 흠이 없는 자녀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는 한사람으로 생명의 말씀을 밝혀 달려가는 한사람으로 서봅시다. 우리가 어찌 흠이 없겠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흠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그렇게 말씀 하시는 겁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끝까지 계시면 됩니다. 제자들처럼요. 그 안에서 주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말은 무서워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무게를 이야기합니다. 구원의 무게입니다. 영혼의 무게입니다. 주님의 영광과 주님께 올려드리는 우리 삶의 무게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 자랑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오직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간 그 길이 모두 자랑거리가 아니겠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일어나라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으로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잘못된 신앙관을 벗고 올바른 신앙을 시작하시는 한주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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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우리 인생에 찾아와주셔서 그저 이 땅의 것만 바라보고 살았을 우리 인생을 바꿔주셔서 주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인생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신앙인으로 최고가 아니어도 주어진 작은 삶에서 믿음의 몫을 감당하여 주님을 증거하는 복된 신앙인이 되게 해주세요. 주님이 내 인생에 손을 대시니 이제 일어나길 원합니다. 일어나 주님의 길, 영광스러운 신앙의 길을 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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