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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04-12 주일 1부 예배

< 주일 1부 예배 >

일시:  2015년 04월 12일

제목 : 영광스러운 신앙의 길

말씀 : 마태복음 16:21-28

설교 : 오승주 목사


2015-04-12 주일1부예배.hwp




음성 다운로드 http://bit.ly/1IEeUnA

영상 다시보기 https://vimeo.com/124730297




2015-04-12 주일 1부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 사람의 일: 베드로의 항변_마태복음16:21-22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_마태복음16:21-22’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기쁨과 감사, 감격이 어디론가 자꾸 사라집니다. 왜 그럴까요? 욥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다. 그런데 그저 구원만 주시는 하나님, 기도만 들으시는 하나님으로만 가버릴 뿐 하나님께서 나에게 구원을 베푸셔서 무엇을 요구하시며 무엇을 만들려고 하시는가라는 전체적이고 종합적인 신앙을 확립하려고는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지 무엇만 합니까? 욥이 실패한 것과 같은 불평만 합니다. 자기의 개인적인 욕심에 불과한 만사형통의 기준으로 삼으면서 하나님이 그것을 이루어주시지 않는 현실에 시비를 겁니다.

그렇다고 또 완전히 하나님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죽은 다음이 문제니까 그렇습니다. 천국은 가야겠고 그러니 아닌 것도 아니고 긴 것도 아닌 상태로 모든 책임은 하나님께 집어던지고 있는 겁니다. 신앙생활은 열심을 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보상심리를 가지지 않아야합니다. 내가 신앙의 열심을 내고, 헌신하고, 소원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그 일을 기뻐하시기 때문에 축복을 주시는 것이지, 내 열심과 헌신에 대한 보상은 아닙니다. 이 부분이 어렵지만 짚고 넘어가야합니다. 베드로가 왜 열심을 내어 예수님을 쫒았을까요? 그가 쫒은 것이 그가 고백한 그리스도였다면 오늘 이렇게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겠다 했을 때 항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겉으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고 고백은 했는지 모르나 그는 열심에 대한, 예수님을 따라다닌 것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는 신앙을 가진 것입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예민하게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는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신앙의 열심을 낼 수조차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함을 얻고 나서야 비로소 하나님을 기뻐하게 되고 신앙적인 소원도 가지게 됩니다. 이것은 모두 구원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열심의 개념은 달라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기뻐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내 진심을 쏟아 붓는 것 자체가 축복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이 부분의 차이점을 찾을 수가 있지요? 우리가 열심을 내는 것은 정당한 신앙의 자세이고 생활입니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그렇지 않은 자가 경멸스럽게 보인다면 조심하셔야 합니다. 이는 교만하다기보다 신앙에 대한 오해 때문입니다. 신앙을 내가 하나님을 향하여 내는 열심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보상하는 싸움이라고 끝없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신앙생활은 한계가 오게 됩니다. 그것이 사람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의 일: 생명의 길

 

1.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_마태복음16:23a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_마태복음16:23’

 

이 말씀을 묵상하며 제 신앙생활이 베드로와 같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성도님들 중에서 열심과 진심으로 사는 인생이 더 많습니까, 후회와 한숨으로 사는 인생이 더 많습니까? 후자가 더 많을 것입니다. 저도 후자에 속합니다. 사실 우리는 죄에 대해 무지하고 또 너무 무력합니다. 몰라서 짓고, 알아도 짓습니다. 그러니 죄의 힘 곧, 사탄의 힘은 우리로 하여금 옳은 것을 못 보게 하며 알아도 지키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가 아닙니까? 그런 우리가 자기를 위해 살고, 자신밖에 모르던 자리에서 하나님과 복음을 위해 진심과 열정을 품는 것은 더없는 축복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신앙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열심과 열정이 신앙의 본질이고 거기에 대하여 보상을 받는 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전부 아브라함을 보라고 외칩니다. 성경에 있는 모든 인물을 보라고 외칩니다. ‘다윗을 봐라. 바울을 봐라이렇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전부 예수 그리스도를 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만드셨습니다. 사울을 바울로 만드셨습니다. 시몬을 베드로로 만드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영웅이었던 다윗은 언약의 전달자로 만드셨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일생을 다해 열심을 내고 진심을 다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 인생 자체가 복이 아닙니까? 베드로가 아직 이를 깨닫기 이전입니다. 그저 열심히 하면 보상해주겠지 하는 인과응보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십자가사건을 이해했을까요? 신앙은 종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은 누구신가_마태복음16:16, 요한복음14: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_마태복음16:1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_요한복음14:6’

 

그래서 신앙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그리스도가 되셔야 합니까? 왜 십자가사건이 중요합니까? 베드로가 바라던대로, 내가 원한대로 신앙생활을 하면 실패 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는 예수님이 의인이거나, 대단한 성인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난 문제가 그렇게 해결 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죄의 문제, 사탄의 문제가 그렇게 쉽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구원받아놓고도 예수님을 지적으로만 이해하고 아멘을 하니 신앙생활이 안 되는 것입니다. 삶에서 아멘이 되어야만 합니다. 삶에서 예수님이 주인이 되고, 삶에서 예수님이 구원자가 되고, 우리 삶에서 죄문제를 해결하신 제사장이 되고, 우리 삶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되셔야 합니다. 삶에서 흑암을 결박하고 이길 수 있는 왕으로 붙잡아져야 합니다.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값어치대로 우리를 대우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이 복음입니다. 만약 우리의 값어치대로 대우하신다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전적으로 사랑해주셨습니다. 우리의 의로움은 도토리 키재기와 같습니다. 종교란 윤리와 도덕이 지닌 이상을 추구하고 고급한 내용으로 이해하여 결국 자신을 채찍질하고, 자신을 높이고, 자신의 자격과 내용을 스스로 가다듬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가치가 있느냐, 남보다 나은가 하는 것으로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성립하려합니다.

신앙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사랑하셔서 은혜로 나를 찾아오시고 죄와 사망의 저주에서 구원하여 자녀 삼으신 것이 근거가 되어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다운 반응을 하게 하는 것이 신앙적인 열심과 실천으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왜 다르냐면 우리는 우리의 인생 속에서 내가 하나님 앞에 간구할 조건과 자격이 없음에도 구할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천국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무엇 때문에 우리에게 그러한 권리가 있습니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면목은 없지만 요구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을 혼동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적인 타락을 하였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완전한 구원을 받았다고 믿습니다.

 

3. 생명의 길, 십자가의 길_마태복음16:24-2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_마태복음16:24-26’

우리의 현실은 전혀 하나님의 자녀답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내 인생에 개입하자 현실은 더욱 악화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잘 살아가고 있는데 하나님이 오셔서 상황이 더 꼬이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모든 성도가 말하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는 의문이 아닐까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믿어 그때 가진 기쁨, 평화, 안심, 그리고 확고한 믿음 안에서의 소망, 이런 것들이 현실 속에서 뜻밖에도 힘을 쓰지 못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세상의 세력 앞에 휘둘림을 받는 약자 같고, 세상의 공격에 속수무책인 현실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결론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시고 복을 주어 하나님의 자녀라는 복된 지위와 내용으로 살도록 의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범죄하였고 세상은 죄악에 빠졌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모두 멸망과 심판을 자초했습니다. 이런 인류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셨고, 그리하여 처음에 계획하셨던 창조와 인류를 만드신 목적을 다시 회복하시고, 이제 승리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분명한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반대하고 있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원대한 뜻대로 살아가는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것을 믿음이라 합니다. 믿음이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무슨 요구할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아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 못난 인생을 통해서 알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이 비밀을 깨닫는 은혜가 있길 기도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그런 우리를 보고 미쳤다하고 바보라하고 이상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옳다는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어떻게 그 아들을 주셨는가라는 놀라운 사건이 개인적인 구원과 감격에만 머무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세상을 바라 볼 수 있어야합니다. 그것에 증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자신의 고통을 면하는 일에 우리의 신앙을 전부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질서와 싸워 하나님의 사람으로 고통과 박해와 손해를 감수하고 우리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이 지금 이 역사를, 이 세상을 간섭하사 그 원래의 창조 목적을 이루시고자 지금도 일하고 계시고, 지금도 죄와 사망에 빠진 자들을 더러움과 악과 부패로부터 구원하신다, 세상이 가는 길이 틀렸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여 보이시는 이 길이 참된 길이며, 내용이며, 목적이라는 싸움을 우리 모두가 삶에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생명의 길이요,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런 길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길인지 우리는 몇 군데의 말씀으로 확인하려 합니다.

 

. 영광스러운 신앙의 길

 

1. 아버지의 영광을 보는 신앙_마태복음16:27-28, 요한복음1:12-14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_마태복음16:27-28’

 

신앙은 형통한가 곤고한가의 싸움일까요? 부유함과 가난함의 싸움일까요? 우리는 그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 있는가, 왕같은 제사장으로 살고 있는가의 싸움이 아닙니까? 형통하면 형통한대로, 곤고하면 곤고한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이 신앙입니다. 세상의 논리가 교회 안에 들어와 성경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었더니 병이 낫더라, 예수를 믿었더니 성공하더라, 심지어는 예수를 믿었더니 쌍꺼풀이 생기더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것 역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리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이요 넘치시는 긍휼과 사랑의 한 간증거리입니다. 그런 간증들이 틀렸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는 가장 낮은 단계의 간증입니다. 하나님을 그저 복채 받고 해결해주는 무당으로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한국교회, 기독교인들이 복음을 가지고 영광스러운 신앙생활을 못하고 있지 않나 생각하여봅니다. 그러는 바람에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보다 큰 차원의 신자된 책임을 감수하는 일이 약화되고, 우리끼리 모여야만 비로소 할 말이 있는 아주 작고 사소하고 하찮은 신앙밖에는 즐길 줄 모르는 기독교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그러니 교회가 선한 영향력을 이웃에게, 지역에 전달하지 못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_요한복음1:12-14’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보며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주님이 누구인지 알고 그 분의 통치로 들어가는 싸움을 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우리 신앙의 최고 유혹과 시험은 우리의 믿음을 내세로 미루어버리는 일입니다. 우리가 죽고 나서 주님이 다시 오시면 천국에 가서 살고, 그저 이 세상에서는 세상과 겨루지 않고, 거스르지 않고, 적당히 타협해서 살려고 하는 이 시험이 가장 큰 시험이지 않습니까? 십자가의 길을 가지 않으려 하는 것이 가장 큰 시험입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의 시대에 우리의 몫을 해야만 합니다. 가정을 복음화 하려면 가정에서 신앙인으로서의 몫을 해야 합니다. 아버지의 영광이 우리가운데 충만하도록, 그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도록, 어둠을 깨우고 삶을 깨우시길 바랍니다.

 

2. 어떻게 시작할 수 있는가_요한복음3:3,12-15,19-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_요한복음3:3’

 

어떻게 시작할 수 있습니까? 거듭남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때라야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늘에게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_요한복음3:12-15’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믿으십니까? 베드로가 이를 믿지 못한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삶을 바꾸지 못한 것입니다. 내 삶은 세상 방식으로 살아가며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두렵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세우신 여러분의 처지와 위치에서 하나님의 자녀만이 가지는, 하나님의 뜻을 따른 사람으로서 이 세상의 죄악된 질서와 맞대결하시길 바랍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_요한복음3:19-21’

 

베드로가 인정하기 싫었던 것입니다.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천국이 믿어지고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이 붙잡아져야 주의 길을 갈 수 있는데 주의 길로 들어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살며, 신실하게 살며, 자비롭게 살며, 이기심을 버리고 살며, 더러운 이익을 위해 타협하지 않는 가스펠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들을 정죄하고 손가락질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자리, 곧 신앙인의 자리를 지켜서 여러분의 존재를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여러분을 지나 다음 사람에게 넘어가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생활 아닙니까? 그것이 전도입니다. 그저 천국가는 보험하나 들어놓고 살면서는 모든 세상적인 방법을 동원해 이익을 보고 이러지 말자는 것입니다. 신앙은 우리 살아생전에 라는 존재를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가의 증거가 되고, 그분이 이 세상과 역사의 주인이시고, 이 역사가 어디로 가는가를 증언하는 것입니다.

 

3. 각 사람이 행한 대로_마태복음16:27, 마태복음16:18-19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_마태복음16:27’

 

예수님을 믿는 것은 자기의 자존심과 권세를 확보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잘못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모두에게 자신을 내어줄 수 있고 질 수 있고 낮출 수 있고 그래서 상대방의 처분에 나를 맡길 수 있어서 십자가의 죽는 자리까지 갈 수 있는 길 위에 우리를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세상은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은혜를 구하지 않고는 그 길을 갈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해야 합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_마태복음16:18-19’

 

저는 이를 믿습니다. 저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오늘 하루를 충성할 믿음과 은혜를 베푸소서. 그 길을 갈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이런 기도가 반복되는 인생이 되길 바랍니다. 그 삶을 확인하는 것이 말씀입니다. 말씀으로 날이 서있으셔야 합니다. 예배와 설교로 그 정당한 길에 들어서야 합니다. 신앙의 길, 주께서 열어놓으신 길을 따라가면 됩니다. 당장은 변하지 않는 것 같지만 어느새 뒤돌아보면 시야가 확보될 것입니다. 마치 등산과 같습니다. 열심히 쫒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시야가 확보되는 것과 같습니다. ', 하나님이 이렇게 인도하셨구나.'

이 길을 가는 신앙의 길이 어찌 영광스럽지 않겠습니까? 가스펠 성도님들이 이 어두운 세상에 보내졌고, 살리신 우리 믿음의 주인이시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자리와 인생을 충성으로 바치는 귀한 일이 일어나기 바랍니다. 예수를 믿는 자랑과 축복과 영광이 우리를 지켜보는 이 세상과 저 어두움과 저 거스르는 세대 속에서 빛을 발하길 바랍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결국 그의 인생에 반전이 일어났고, 빛이 있게 되었으며, 살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 신앙의 길, 영광스러운 길에 들어서기 바랍니다. 세상은 절대 이런 길을 갈 수도 없고 창출할 수도 없습니다. 생명을 가진 자,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을 가지고 사는 자인 우리의 존재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크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요구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은 거룩한 길이요, 영광의 길임을 말씀으로 깨닫게 하옵소서. 그 길은 속일 수 없는 길이요, 겉치레만 할 수 없고 핑계 댈 수 없는 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고백을 가졌기에 우리 인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습니다. 그러니 무슨 길로 가든지 어떤 형편에 처했든지 주와 함께 하는 줄 아는 깊은 믿음과 말씀에 순종함으로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