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2015-11-01 주일 1부 예배


2015-11-01 주일1부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2015-11-01 주일1부예배.hwp




음성 다운로드 http://bit.ly/1N3NViO



Ⅰ.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입니다_사무엘상6:12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해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 가니라_사무엘상6:12’

어미 소가 벧세메스로 향하는 대로로 갑니다. 그런데 가면서 울었다 합니다. 새끼소를 두고 가니까 울었겠지요. 그러면서도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그렇게 갔습니다. 마치 어린양과 같았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죄악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고 언약궤를 블레셋이라는 이방 국가에 빼앗겼습니다. 언약궤를 빼앗아 간 블레셋은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언약궤를 이스라엘에게 돌려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두 마리의 어미소에 언약궤를 실어 보낸 블레셋은 젖먹이 새끼가 있음에도 주저함 없이 벧세메스로 가는 소를 보면서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이 정말 하나님의 손에서 이루어진 일임을 인정합니다. 벧세메스는 그 당시의 레위지파인 제사장이 사는 곳을 말합니다.

언약궤를 이스라엘의 품에 되돌려주심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어그러진 관계를 회복시키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의 백성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 때문에 값없는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은혜를 잘 몰랐습니다. 그렇게 다시 되돌아온 언약궤로 인해 벧세메스 사람들은 기뻐하며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호기심을 견디지 못해 언약궤 안을 들여다 본 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참사가 일어납니다. 이 비극은 언약궤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경솔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문제가 오면 하나님을 찾고, 문제가 해결되면 말씀을 여겨 우상을 섬기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그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눈물을 흘립니다. 가난한데, 힘든데, 어려운데 그래서 눈물을 흘립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눈물을 흘려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많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언약궤를 잃어버려서 말입니다. 그런데 언약궤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언약궤가 없으니 괴롭습니다. 하는 일마다 안 됩니다. 정말 삶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상을 버리고 다시 언약궤를 돌려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언약궤가 왔는데 언약궤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신앙의 목적은 성공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지시기 전에 많이 우셨습니다. 백성들이 못 깨달아서 우셨습니다. 백성들이 어둠에 사로잡혀 빛을 보지 못해서 우셨습니다. 가난해서 우신 것이 아닙니다. 힘들게 살아서 우신 것이 아닙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살지 못해서 우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겨 살고 있는 모습을 보시고 우신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가셨습니다. 그걸 모르니 문제가 오면 기도하고, 문제가 사라지면 다시 세상으로 향하는데 참 대책이 없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마음이 답답합니다. 훈련도 받고, 교육도 받는데 마음이 답답합니다. 뭔가 풀리지 않습니다. 돈도 많이 버는 것 같은데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직접 오셨습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을 의지하는 사람은 항상 아버지를 찾습니다. 잘되고 못 되고의 문제와 상관없습니다. 그게 얼마나 행복한 삶인지 가슴 시원한 삶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을 위해 살기 원하십니다. 우리는 거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거룩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유다와 종교지도자들처럼 살아야 합니다.

Ⅱ. 예수님을 모르는 인생들의 죄

1. 새벽에_마태복음27:1-2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주니라_마태복음27:1-2’

예수님이 누구인지 모르는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새벽에 모였습니다. 어찌 그리 급했을까요? 어찌도 그렇게 부지런할까요? 이 말씀을 보는데 얼마나 눈물이 나는지요. 우리가 세상을 위해 살아가는데 그렇게 급하고, 부지런합니다. 죄를 짓는 일에는 그렇게 급하고 부지런합니다. 남을 미워하고, 정죄하는 일에는 그렇게 머리 회전이 빠릅니다. 적용도 빠릅니다. 마귀에게 속는 일은 속전속결입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속을 때가 많습니다. 목사여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저도 수치심을 느끼는 죄들을 많이 짓습니다. 마음속으로는 더 그렇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그런 일에는 엄청나게 신속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일에는, 그분을 만나는 일에는 얼마나 더딘지 모릅니다. 거룩을 위해서는 얼마나 더딘지 모릅니다. 얼마나 게으른지 모릅니다. 정말 저는 이 말씀에서 멈추어버렸습니다. '내가 저들과 다를 바가 없구나.'

2. 유다의 잘못된 돌이킴_마태복음27:3,5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_마태복음27:3’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_마태복음27:5’

오늘 말씀에 나온 유다를 보려 합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엄청난 죄입니다. 죽을죄입니다. 생각해보세요. 그가 은 삼십을 받고 그의 스승인 예수님을 팔아버렸습니다. 온갖 계략을 다 세워 완벽하게 일처리를 했습니다. 제자 중에 가장 머리 회전이 빠릅니다. 그러나 그런 머리는 영적인 것과 다르다는 것을 여러분이 아셔야 합니다. 똑똑해서 말씀이 잘 이해가 된다고 은혜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적으로 지식이 많다고, 경험이 많다고 예수님을 잘 믿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전부 지식인으로 가득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유다가 뭔가 잘못되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래도 3년이나 예수님을 모셨잖아요. 이건 아니다 싶은 거예요. 그래서 오늘 말씀에 보니 스스로 뉘우쳤다 합니다. 그리고 받았던 돈을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줍니다. 유다가 여기에서 한 가지를 놓칩니다. 그렇게 하면 되는 줄 알았겠지요.

우리는 잘못하면 유다처럼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뉘우치고 삶을 깨끗하게 하면 회개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유다는 예수님께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유다는 예수님과 상관이 없이 자신의 의를 위해 뉘우쳤습니다. 그러니 그에게 있던 죄책감, 그리고 마귀의 영이 그를 자살로 이끌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만나는 신앙생활을 하셔야 합니다. 저는 이 말씀이 조금 이해가 됩니다. 엄청나게 자존심이 상해서 열등감이 바닥을 칠 때 저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너무 쪽팔리고, 너무 화가 나고 그럴 때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내가 죽으면 사람들이 알아주겠지.'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그런데 저는 예수님을 만났었잖아요. 그래도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앞에 갈 수 있었습니다. 십자가 앞에 간 것입니다. 펑펑 울고 회개하니 쪽팔림도 사라지고, 분노도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실상 저를 그렇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탄의 전략이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셔야 합니다. 회개는 예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배하는 것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이 다시 들리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을 모르는 종교인들의 죄_마태복음27:4,6-8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_마태복음27:4’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이르되 이것은 핏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하고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표지를 삼았으니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_마태복음27:6-8’

유다가 돈을 들고 다시 찾아왔더니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그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고 합니다. 나중에 유다가 돈을 버리고 자살을 하니 그 돈을 더럽다고 성전고에 다시 넣지 않습니다. 자기들이 성전에서 꺼내서 쓴 돈인데 유다를 거쳐서 더럽다고 한 것입니다. 자기들이 그렇게 만들어놓고 말입니다. 너무 영악하지요. 하나님의 은혜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목회자로써 저는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우리교회에 앞으로 장로님, 집사님, 권사님이 세워지십니다. 여러분은 어떤 중직자가 되려고 하십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모르면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않으면 저렇게 불쌍한 자들이 찾아와도 사랑해줄 수 없고 울어주지도 못하고, 품어주지도 못합니다. 필리핀에 가면 제니퍼라는 렘넌트가 있습니다. 처음 그 친구를 본 것이 5-6년 전인가 합니다. 한국 선교사님이 돌아가시고 그 교회를 책임져 지켰던 렘넌트입니다. 그래서 한국에도 초대해 함께 훈련도 받았습니다. 이번에 갔더니 그 친구가 결혼을 해서 쌍둥이를 임신했는데 7개월 만에 아이가 나왔다 합니다. 한 아이는 낳자마자 죽고, 한 아이는 현재 인큐베이터에 있는데 1킬로그램도 안 된다 합니다. 그래서 제가 선교총국에 건의를 했습니다. 도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필리핀은 병원비가 엄청 비쌉니다. 그래서 임신을 해도 병원에 한 번도 못 가본다 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마음 아픈지 모릅니다.

저는 비브릿지를 제대로 할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가졌다면 저들을 외면하면 안 됩니다. 저 기득권의 종교인처럼 이익이 되면 가까이 하고 손해가 된다 하니 유다를 버릴 것입니까? 우리는 그러면 안 됩니다. 교회 안에서도 사랑해주세요. 새신자들을 품어주세요. 그것이 중직자가 할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매일 만나지 못하면 그걸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묵상일기를 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매일 만나라는 것입니다. 매일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지 않으면 금방 교만, 열등감이 찾아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만나는 신앙생활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Ⅲ. 신앙생활은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1. 무엇이 죄인가요?_이사야29:13,15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_이사야29:13’

‘자기의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이 일이 어두운 데에서 행하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니_이사야29:15’

죄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쉽게 남을 정죄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나와 다르거나, 사회적인 죄를 말합니다. 죄는 남을 정죄하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남을 정죄하는 것 자체가 죄입니다. 내 모습을 보지 못해서 생긴 것이 죄입니다. 유다가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내 모습을 절대 볼 수 없는 이유가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진짜 좋은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보통은 시골에서 가정방문하는 것이 쉽지 않잖아요. 여자 분이셨던 그 선생님이 모든 아이들 가정을 다 방문한 것입니다. 저희 집에도 오셨는데 저희 집에는 사람이 없었어요. 어머니는 항상 일을 해야 하니까 당연히 빈집이라고 말씀드렸는데도 오셨어요. ‘나는 승주가 사는 곳을 가보고 싶을 뿐이야’ 사실 집에 사람이 없어서 오지 말라고 한 것은 아니에요. 저희 집이 진짜 창피할 만큼 이상했거든요. 그래서 사실 창피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저희 집에 다녀가셨는데 그 이후로 그 선생님은 저에게 편지도 자주 써주시고, 저를 정말 잘 챙겨주셨습니다. 저도 저희 집이 오픈되고 나니 선생님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도 좋은 사람을 만나면 좋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죄입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계획을 숨기는 것이 죄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그렇게 살면 대제사장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유다처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을 만나면 죄에서 돌이킬 수 있습니다_이사야55:1-3,6-7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 이니라_이사야55:1-3’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면 죄에서 돌이킬 수 있습니다. 돈 없이, 값없이 사먹으라 하십니다. 원래는 사먹어야 합니다.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데 예수님이 그 대가를 다 지불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말이지요. 중요한 것은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왜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들어야 하는지 모릅니다. 왜 회개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왜 말씀을 듣고 돌이켜야 하는지 모릅니다. 은, 금을 위해서 살아야지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이해를 못합니다. 필리핀의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해야지 교회 갈 시간이 어디 있냐고 질문합니다. 기도할 시간이 어디 있냐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그렇게 열심히 은, 금을 위해 살면 저주와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영혼을 살리기 위해 그렇게 하랍니다. 우리 영혼이 살면 다 살게 되는데 그걸 모르는 거예요.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_이사야55:6-7’

여러분 예수님을 만나셔야 합니다. 거룩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께 돌아가시면 됩니다. 그때 은혜를 주십니다. 용서하십니다.

3.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세요_이사야33:6,누가복음4:18-19

‘네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배니라_이사야33:6’

우리가 그걸 너무 잘 알지요. 죄를 회개해야하는 것도 잘 알고, 예수님께 돌아가서 영혼이 살아야 하는 것도 잘 압니다. 그런데 잘 안 됩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대학생 때 제가 신학생이었는데 자꾸 은밀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아니, 가정에 문제도 많고 미래를 답답하고 그래서 뭔가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데 이상하게 더 어둠으로 가는 것입니다. 수련회나 집회 가서 은혜 받고 오면 더 그러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유다가 뉘우쳤다 했는데 왜 자살을 했을까요? 왜 예수님이 아닌 대제사장을 찾아갔을까요?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것에는 머리가 잘 돌아가면서 영이 사는 일에는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말씀은 그 지혜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드려야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보배라 하셨습니다. 제가 연락을 잘 안 합니다. 사실 미안해서 못합니다. 괜히 제가 연락하면 부담될까봐 그냥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만 합니다. 그래도 조금 편한 분들에게는 이야기합니다. 왜 예배에 안 나오니? 그러면 대부분 가겠다고, 가야한다고 큰 결단 같은 것을 저에게 합니다. 그런데 안 오더라구요. 아니 못 오는 것이겠지요. 물론 이유들은 기가 막혀도 제가 감히 답할 수가 없을 만큼 완벽합니다. 그런데 은혜를 못 받고 사는데 저리 돈 잘 벌고, 잘되는 것이 두렵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듭니다. 유다가 종교인들이 자신들의 계략이 맞아떨어질 때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럴 수 있습니다. 잘못하면 현상이나 상황에 모든 것이 맞춰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을까요? 그분의 말씀을 들어, 그 말씀이 성취되며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나요? 아는 것과 그렇게 사는 것은 다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_누가복음4:18-19’

오늘부터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예배 때마다 말씀을 주셨으면 그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할 때마다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살아가면 우리 인생이 주의 은혜를 전하는 인생이 됩니다. 유다 같은 인생이 아니요, 종교인들 같은 신앙생활도 아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이 임하셔서 예수님을 만나고, 또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는 인생. 그렇게 사는 것이 정말 멋진 인생 아닌가요. 저는 그런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그런 축복을 함께 누리길 기도합니다.

 ✔ 주님 우리의 관심은 성공과 실패에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세상의 기준에 있네요. 그래서 그런 일에는 무척이나 부지런하고, 지혜롭습니다. 그런일에는 어찌 연합도 잘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나의 영혼을 살리는, 생명을 살리는 십자가에는 얼마나 게으르고, 핑계도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모든 관심인 예수님을 만나 거룩을 회복하는 일에는 얼마나 무관심한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알기 원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신앙생활을 회복하길 원합니다. 그저 불신자처럼 성공에 웃고, 실패에 슬퍼하는 인생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 내 인생 예수님을 자랑하는 인생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