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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찬양예배

2016-12-09 금요예배

2016-12-09 금요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2016-12-09 금요예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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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9일 가스펠교회 금요예배

제 목 :

기도의 근거

본 문 :

시편 109:1-13

오승주 목사

 

 

. 다윗의 진실된 기도

 

다윗하면 정말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울왕에게도, 그를 반역한 압살롬에게도 자비를 베푼 너무 좋은 왕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진짜 마음은 오늘 시편에 너무 잘 나와 있습니다. 누구에게 핍박을 당할 때 쓴 시인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기도는 이렇게 진실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대면하는 것이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아름다운 말로 포장하여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의 이미지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진실하지 못합니다. 이중적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여전히 관념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실제로 내 주님으로 내 삶에서 고백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가실 때 보혜사를 보내주시겠다고 한 것은 실제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내 안에 함께 하시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과 친밀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수도 없이 생각해봤습니다. 진실하게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기도할 때 성령은 역사하십니다. 기도할 때 우리 마음에도 역사가 일어납니다. 진실하게 기도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오늘 다윗의 시편을 읽으면서 너무 불편했습니다. 어떻게 그 위대하고 자비로운 다윗이 이런 기도를 할 수 있지? 그렇게 우리는 또 우리 스스로를 의롭게 생각하고 남을 정죄하고 비판합니다. 그 마음이기 때문에 진실하게 기도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진실된 모습을 하나님께 오픈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기도할 수 있는 신분이 맞으신가요?

 

  

. 기도의 근거

 

1. 기도에 대한 오해_시편109:1-4

 

내가 찬양하는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옵소서 그들이 악한 입과 거짓된 입을 열어 나를 치며 속이는 혀로 내게 말하며 또 미워하는 말로 나를 두르고 까닭 없이 나를 공격하였음이니이다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_시편109:1-4’

 

얼마나 우리는 기도에 대해 오해를 많이 하는지 모릅니다. ‘기도할 뿐이라이 말씀은 다윗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다윗이 찬양은 여전히 하고 있었고, 기도도 여전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 말은 정말 인생의 끝자락이지만 찬양과 기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여러분 인생이 정말 끝이라고 생각되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요. 어떤 장로님이 간증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사업을 하시는 아버지가 완전 망했답니다. 집도 빼앗기고 지하방에 살게 되었는데 아버지가 술만 먹었답니다. 어린 나이지만 끝났구나 우리 집은 더 이상 희망이 없구나 생각하고 낙심만 되었는데 어느 날 학교 다녀와서 집의 문을 열었는데 어머니가 설겆지를 하고 있더랍니다. 찬양을 부르면서. 그 모습을 보고 그동안 주일학교에서 들었던 말씀이 갑자기 생각이 나면서 마음이 울컥하여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저희 가정을 살려주세요.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기도하고 나니 마음에 두려움도 사라지고, 낙심도 사라지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어머니는 찬송을 부르지, 아들은 기도를 하고 기쁨이 얼굴에 넘치지 아버지가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이 자신이라고 간증하시는 의사 장로님을 보았습니다. 저는 실존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우리 교회 성도님들에게 있길 기도합니다. 아마도 여러분에게 오는 어려움은 실제로 여러분 때문에 오는 어려움이 대부분입니다. 그 속에서 정말 하나님을 만난다면 여러분 인생은 정말 수지맞은 인생이 될 것입니다.

 

2. 죄의 진실된 모습_시편109:14-18

 

여호와는 그의 조상들의 죄악을 기억하시며 그의 어머니의 죄를 지워 버리지 마시고 그 죄악을 항상 여호와 앞에 있게 하사 그들의 기억을 땅에서 끊으소서 그가 인자를 베풀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와 마음이 상한 자를 핍박하여 죽이려 하였기 때문이니이다 그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더니 복이 그를 멀리 떠났으며 또 저주하기를 옷 입듯 하더니 저주가 물 같이 그의 몸속으로 들어가며 기름 같이 그의 뼈 속으로 들어갔나이다_시편109:14-18’

 

왜 기도해야 하나요? 죄 때문입니다. 더 자세히 말하면 원죄 때문입니다. 죄는 엄청난 파급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을 부패하게 만들고, 병들게 만들며, 중독자로 만듭니다. 그뿐 아닙니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들고, 돈과 세상을 사랑하게 만듭니다. 죄는 보이지 않게 은밀하게 우리와 가까이에 있으면서 기회를 노립니다. 죄의 배후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사탄입니다. 죄는 그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사람들이 죄에 대해 쉽게 생각합니다. 왜 성경은 술 취하지 말라 경고합니까? 성경은 해가 지도록 분을 내지 말라고 합니까? 왜 성경은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하지요. 죄는 연속성이 있습니다. 술 취하면 온전한 정신을 잃게 만듭니다. 폭언도, 폭력도 거기서 나옵니다. 더 큰 죄가 다 거기서 나옵니다. 분도, 미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름답게 포장된 삶을 사는 것 같지만 영혼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모두가 다 죄인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을 떠날 살고 계시다면 전부 죄인입니다. 선악과를 왜 동산 중앙에 두셨나? 그것은 선악과가 동산 중앙에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이 너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이다. 그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우리 삶에 중심에 계신가요? 그걸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것이 없다면 전부 죄인인 것입니다. 중앙, 중립은 없습니다.

 

3. 그러나 나를 건지소서_시편109:21-25

 

그러나 주 여호와여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를 선대하소서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 나를 건지소서_시편109:21’

 

그래서 기도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나 나를 건지소서. 다윗은 정말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 죄에서 건져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을 저주한 것이 아니라 그들 속에서 건져달라고 죄의 모습을 하나님께 아뢴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술친구, 불신친구들에게 벗어나야 합니다. 계속해서 말씀이 아닌 죄의 영향을 받는다면 그 결단부터 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새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우리는 잘 압니다. 가족에게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죄는 그렇게 올가미처럼 우리를 얽어맵니다. 정신 차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 주의 종이 즐거워하리이다_시편109:26-28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구원하소서 이것이 주의 손이 하신 일인 줄을 그들이 알게 하소서 주 여호와께서 이를 행하셨나이다 그들은 내게 저주하여도 주는 내게 복을 주소서 그들은 일어날 때에 수치를 당할지라도 주의 종은 즐거워하리이다_시편109:26-28’

 

그래야 진짜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진짜 상속자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아니면 우리 삶에는 진짜 즐거움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중독도 쾌락도 잠시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질 때 진짜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저와 여러분이, 우리교회가 경건생활을 회복하길 원합니다. 정말 하나님과 화목한지, 은혜를 받고 있는지 살펴봐야합니다. 우리가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어둠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빛으로 갈 때입니다. 저도 집이나 저의 공간에서 기도하고 말씀을 보지만 솔직히 영향을 너무 많이 받습니다. 사람들, 환경들, 상황들, 그리고 제 감정이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면 기도가 안 됩니다. 말씀도 듣지 못하고 지나칩니다. 우리가 그렇게 세월을 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런 상황, 환경, 감정 속에서 지금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너진 감정을 가지고 기도의 자리에 나온 것이지요.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귀의 역사, 공격에 휘들리면 결국 내 자신이 손해이고 내 가족, 내 교회가 손해입니다. 그래서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가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은 금요예배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서로 나누는 것은 묵상일기밖에 없습니다. 그것이라도 서로 권면이 되는 것입니다.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주님 우리의 환경, 상황, 어려움 중이라도 주님을 바라보는 일을 멈추지 않게 해주세요. 다 실패해도 하나님과의 관계만큼은 실패하지 않게 해주세요. 그래서 상속자의 축복을 받아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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