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예배

2017-03-19 주일예배

2017-03-19 주일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2017-03-19 주일예배.hwp


음성다운로드: http://bit.ly/2mI4tYq

가스펠워십: http://bit.ly/2nEYLY6



20170319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본 문 :

요한복음 21:18-25

오승주 목사

 

.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고 계시나요?_요한복음21:18-19

 

작년 한해를 정리하는 시간에 제 마음에 네가 정말 성도들을 사랑하느냐질문을 받았습니다. ‘네 사랑합니다. 당연하지요.’ ‘그런데 왜 성도들을 제대로 돕지 않고 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후로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는데 많은 분들이 예배드리고 이해되지 않은 채로, 말씀이 깨달아지지 않은 채로, 말씀을 뚫어내려는 마음이 없는 채로 돌아가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겨우 예배드린 것으로 만족하고 살아갑니다. 뭔가 찝찝하고 답답하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영적으로 혼탁한 세상에서 살아남지 못합니다, 접시에 받아놓은 물처럼 너무 얕습니다. 대화를 나눠보면 말씀을 꿰뚫지 못하고 이해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가장 좋은 문화가 있다면 표현하는 문화입니다. 자기가 느끼고 깨달은 것을 표현하는 문화가 엄청 발달되어있습니다. 제가 유대인학교에 갔을 때 놀란 것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모세를 그려놓고 기록해놓았는데 표현도 이상하고 정말 못 그렸습니다. 그런데 복도에 딱 전시되어있었습니다. 우리는 잘한 것만, 잘 그린 것만 전시하잖아요. 잘 못한 것은 혼납니다. 이상하지요? 왜 혼날까요? 그러니 절대 표현을 안 합니다. 틀릴까봐, 창피할까봐. 그래서 전부 죽어버립니다. 교회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냥 창피할까봐 몰라도 모른다고 말을 못합니다. 모르는 것이 당연한데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약간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오늘 말씀은 요한복음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베드로와 예수님의 대화입니다. 그런데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내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_요한복음21:18-19’

 

오늘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사명을 맡기시고 그의 미래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사명을 감당하고 나서 순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베드로가 흔들렸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계속해서 고집스럽게 베드로를 훈련하고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을 훈련하고 계십니까?

 

. 주님의 고집스러운 베드로 훈련

 

1. 베드로의 진짜 문제_요한복음21:20-21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_요한복음21:20-21’

 

베드로의 진짜 문제는 주님만을 바라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을 것을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이 사랑했던 요한이 더 궁금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항상 요한을 시기 질투하였습니다. 사실, 요한뿐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갈 것을 예언하셨는데, 베드로가 말하기를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마가복음14:29)’ 고백했습니다. 그냥 저는 안 버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괜찮을 텐데 이 말은 여기 있는 요한은 버려도, 안드레는 버려도, 나는 안 버립니다.’ 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평소에도 다른 제자들에 신경을 많이 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요한에 대하여 그랬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과 베드로가 대화할 때, 베드로의 눈에 요한이 들어왔습니다. 그 요한은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였고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였습니다. 베드로 마음에 예수님께서 나보다 요한을 더 사랑하지는 않을까?’ 은근히 신경이 쓰이던 제자였던 것입니다. 그런데다가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였을 때, 요한은 끝까지 주님을 따랐습니다. 재판정에도 갔으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순간에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그 현장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 요한과 비교할 때 베드로는 자신이 너무 초라해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자신이 순교할 때, 요한은 어떻게 되겠느냐고 물었는지도 모릅니다.

베드로의 진짜 문제가 무엇입니까? 지금 베드로가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또 옆 사람을 쳐다보는 것입니다. 한눈을 팔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아신 예수님께서 그토록 엄히 베드로를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너는 또 다른 사람을 쳐다보느냐? 그래, 내가 요한은 내가 재림해 올 때까지 편안하게 살게 한다면. 나를 따르기를 그만두겠다는 말이냐? 왜 이 중요한 순간에 다른 사람을 바라보나? 요한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네 사명의 길이 달라지느냐? 그가 네게 무슨 상관이냐?’ 이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중요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의 마지막에서 특히 이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신 것은 이제부터는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눈으로 보이지 않으시는 성령으로 동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눈으로 보면서도 이처럼 마음이 흔들린다면, 눈에 보이지 않을 때는 어떻겠느냐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을 따르고 계신가요?_요한복음21:22-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_요한복음21:22-23’

 

예수님을 따르고 계신가요?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무슨 상관이냐? 도대체 너는 요한이 어떻게 죽는 것이 너랑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면 되는 것 아니냐! 세상은 우리에게 너무 많은 것으로 주님을 따르지 못하게 합니다. 베드로가 가졌던 욕망, 베드로가 가졌던 출신성분, 열등감 같은 것들입니다. 그런 것들은 주님이 내게 찾아오셨음에도 끊임없이 믿지 못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사랑하심을 믿어지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순교할까 봐 두려워하는 이들이 많지만, 예수님만 바라보면 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순교해야 할 때가 온다면 순교할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우리 안에 믿음이 생기고 그 믿음이 온전해 지는 것입니다. 순교를 해야 된다면 순교를 할 수 있는 믿음이 생기고, 내가 고난을 당하면 고난을 이길 믿음이 생기고 내가 정말 살 길을 찾아야 된다면 살길을 보는 눈이 열리게 해주시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한눈을 팔게 되면, 세상을 보고 사람을 보면 반드시 시험에 듭니다.

신앙생활도 그와 같지 않을까요?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불안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선명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그렇게 멋지게 살지 못할까요? 예수님과 나만 생각하면 시험 될 것이 없습니다. 불평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은혜를 적게 받았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부족하게 받았습니까?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십자가 대속의 피를 흘려주신 은혜를 여기 있는 우리 중에 못 받은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독생자까지 내어주신 그 사랑을 못 받은 사람이 여기 누가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는데 바로 데려가시지 않은 것은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에 사명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십자가의 은혜, 성령의 인도하심이 감사할 뿐입니다. 사명까지 주셨으니 찬양할 뿐입니다.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순간이든지 예수님을 따라가는데 문제가 있나 없나만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순간에 갑자기 내 속이 뒤집힙니다. ‘왜 나만하게 됩니다. 감사가 불만이 되고 기쁨이 불평이 됩니다. 남과 비교하는 자는 아무리 가져도 영원히 만족함이 없습니다. 축복을 받아도 누리지를 못합니다. 불필요한 열등감에 계속 고통을 당합니다. 하루 품삯을 다 받은 종이 마지막 한 시간만 일하고 똑같은 품삯을 받은 사람을 보고 속이 뒤집혔습니다. 주인하고 나만 생각하면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그랬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자포자기 한 것은 다른 사람과 비교했기 때문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주님과 자기만 생각하면 문제 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능력대로 주셨다고 했는데. 그런데 두 달란트 받은 종, 다섯 달란트 받은 종하고 비교하는 순간에 속이 뒤집혔습니다.

3.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_느헤미야8:5,8-12,시편4:7-8

 

신앙생활하는 우리의 힘은 어디서 나옵니까? 주님에게서 나옵니다. 그래서 주님을 따르면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따르느냐 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에게 주셨던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꿰뚫지 못했습니다. 대충 듣고, 묵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내면은 별 볼일이 없고 겉만 중요시 여긴 것입니다. 로마에 가면 성 베드로 성당이 있습니다. 제가 보고 압도당했습니다. 정말 아름답구나! 그런데 사실 아무런 힘도, 영향력도 없는 건물입니다. 유명한 관광지여서 돈을 많이 벌겠지만, 사람들을 살리는 구원은 잃어버린 교회건물입니다. 그 건물은 암흑기라고 말하는 중세시대에 지어진 건물입니다. 본질을 잃어버리면 외향이 화려해지기 마련입니다. 신앙생활의 본질이 무엇일까요?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_느헤미야8:5’

 

신앙생활의 본질은 말씀을 꿰뚫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꿰뚫지 못하고 살기 때문에 이 길이 맞는 길인지, 틀린 길인지 분간이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예배시간이면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합니다. 일주일동안 전혀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내 것으로 소화하지 못하고 세상에 나가기 때문입니다. 해돈 로빈슨교수님은 머리에 채우지 않으면 입으로 나올 것이 없다. 마음에 채우지 않으면 삶으로 나올 것이 없다. 성경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믿는 사람들에게 거룩한 삶을 촉구하는 말씀이다. 영혼을 변화시키는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옵니다.’ 느헤미야에 보면 성벽이 복구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백성들의 내면이었습니다. 그것이 너무 시급했습니다. 건물이 화려하면 뭐합니까?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레위 사람들도 모든 백성을 정숙하게 하여 이르기를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히 조용하고 근심하지 말라 하니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_느헤미야8:8-12’

 

백성들이 현명한 선택을 했습니다. 에스라에게 찾아온 것입니다. ‘우리에게 말씀을 주옵소서.’ 말씀에 대한 갈급함입니다.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것이 사라졌습니다. 얼마나 다른 것들이 우리 욕심에 있습니까? 탐심, 탐욕이 가득하니 말씀에 욕심을 내지 않습니다. 그것은 잘 나가는 것 같으나 저주 아닙니까? 재앙입니다. 자녀가 좋은 대학가고, 좋은 직장 가는 것이 행복하십니까? 영원을 아신다면, 영적인 눈을 뜨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보신다면 하나님 말씀을 듣지 못하는 내 자녀들은 땅을 치며 통곡할 일 아닌가요? 예수님은 지금 베드로에게 엄청난 훈련을 하고 계십니다.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너를 살리고, 너의 나라를 살리는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구원의 말씀입니다. 지금 전도나 기도나 봉사나 헌금이나 이런 외향적인 행위가 중요한가요? 주님을 따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면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꿰뚫어 사는 것입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_시편4:7-8’

우리는 중요한 회복을 함께 해야 하겠습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이 있습니까? 제 수준이나 힘으로 할 수 없지만, 마음을 담아 하려고 하는 한 가지는 여러분이 대충대충 신앙생활하지 않도록, 주일 설교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일주일을 살지 않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 성경을 읽으시도록 드리기 시작했고, 미션홈이나 지교회마다 모여서 말씀을 포럼하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제가 설교한 설교라 생각하면 제 설교를 다시 들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다시 듣고, 또 들어서 이해하고 깨달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려고 하신 주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하려고 노력합니다. 그 도구가 묵상일기입니다. 저희 장인어른이 요즘 은혜를 받으시는데 저에게 전화가 오셨습니다. ‘사위목사님 묵상은 알겠는데 묵상일기는 무슨 말이야?’ 말씀을 기록하고 깨닫고 받은 은혜를 기록합니다. 그리고 내 삶을 기록합니다. 잘못된 것들, 잘 된 것들을 기록하는 것이 묵상일기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내 영을 들여다보고 살리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런 신앙생활을 하길 원하셨습니다.

 

. 요한복음의 메시지_요한복음20:30-31, 시편1:1-6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_요한복음20:30-31’

마지막 베드로와 예수님의 대화가 아무것도 아닐까요? 요한복음은 예수님과 관련된 내용이라면 아무것이나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정말 그리스도이시고 또 예수님을 믿어서 우리가 영생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믿게 하려고 요한복음을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_시편1:1-4’

 

우리가 주님을 따르면 됩니다. 제가 아는 어떤 여자 집사님은 남편에게 매일 시달리고 매 맞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서도 잘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교회를 다녔지만 자신의 영혼은 변화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늘 남편 핑계만 하고 살았습니다. 정작 그 집사님도 예배를 늘 실패했습니다. 제가 그 집에 심방을 가보니 정말 난장판이었습니다. 그런데 또 남편이야기입니다. 자기 이야기는 안합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집사님 예수님 믿으세요?’ ‘? 믿지요.’ ‘제가 보니까 안 믿으시는 것 같아요. 이번 주 설교에 어떤 은혜를 받으셨어요?’ ‘네 기억이 안나요.’ 다들 이렇게 신앙생활을 합니다. 뿌리를 옮겨 심어야 합니다. 그 집사님에게 제가 새벽예배를 나오시라고 권면했습니다. 혼자 할 수 있는 힘이 없으니까, 말씀과 기도에 집중할 자리에 나오라고 한 것입니다. 어느 날 새벽기도를 끝내고 나오신 집사님에게 남편이 어떠냐고 물어봤습니다. 요즘은 남편과 싸움에서 이긴다고 했습니다. 새벽기도 하고 나서 능력 받아 남편이 때리면 너 죽고 나 죽자고 하면서 달려들어 남편을 이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맞습니까?

그런 집사님을 도와줘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진짜 십자가 복음을 깨닫고 '내가 이미 죽었구나! 예수님께서 내 생명이시구나!’ 은혜를 받고 눈물을 흘리면서 생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죽으니까 자유가 오고 마음에 평화가 오고 위로가 되는 겁니다. 하루는 남편이 또 술 먹고 와서 시비를 걸며 때리는데 여느 때 같으면 눈을 똑바로 뜨고 나 죽여! 나 죽여!’ 할 텐데 주님 주님!’ 하게 되더랍니다. 아내의 음성이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남편이 생각했답니다. ‘내가 지금 때리는 것이 내 아내냐, 주님이냐?’ 주님 때리다가는 벼락 맞겠다는 마음의 생각이 떠오르면서 손을 놓고 너가 미쳤냐?’ 했더니. ‘여보, 나 안 미쳤어. 당신이 나를 때리는데 불쌍한 생각이 들어. 여보, 나를 때려서 마음이 편하다면 더 때려.’ 완전히 이전 여자가 아닌 것입니다. 아내 얼굴에서 살기도 빠졌고. 원망도 빠졌습니다. 남편이 자기도 모르게 아내에게 미안해.’ 했답니다. 그렇게 하고는 한 달 후에 부인을 따라 교회에 나왔습니다.

우리의 관심이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의 기쁨이 우리 안에 있습니까? 그 기쁨의 원천이 무엇입니까? 말씀입니다. 우리의 타락은 기쁨의 원천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을 묵상하시길 바랍니다. 단지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잘나고 똑똑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닙니다. 내 뒤에서 일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묵상하라는 것입니다.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분을 붙잡고 한눈 팔지 말라는 것입니다. 불평, 원망, 시기, 낙심, 시험이 오면 주님의 책망을 들어야 합니다. ‘그가 너와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주님 이 시간 다시 주님만을 바라보길 원합니다. 다시 주님을 따르길 원합니다. 한눈팔고 사는 베드로와 같은 우리에게 오직 주님만이 생명이시요, 소망이심을 깨닫게 해주세요. 내면을 놓치고 외적인 것을 추구하고 살았다면 오늘 영적인 눈을 열어주셔서 내면에 주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채우길 원합니다. 신앙생활을 대충대충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꿰뚫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좇아 살아 하나님의 축복을 맛보길 원합니다.

 

'주일예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7-03-26 주일예배  (0) 2017.03.26
2017-03-19 주일예배(전체영상)  (0) 2017.03.19
2017-03-12 주일예배(전체영상)  (0) 2017.03.12
2017-03-12 주일예배  (0) 2017.03.12
2017-03-05 주일 2부예배  (0) 2017.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