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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7-06-25 주일예배

2017-06-25 주일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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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5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그 은혜 힘입어 다 살겠네

본 문 :

요한일서 5:13-17

오승주 목사

. 신앙의 기준이 무엇일까요?_마가복음10:35-36,37-4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_마가복음10:35-36’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이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_마가복음10:37-45’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자기 목숨을 내주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다른 모든 종교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입니다. 그들의 목적은 모범적으로 사는 것이지만, 예수님의 목적은 희생 제물로 죽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는 제자들이 기도를 합니다. ‘선생님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해주세요.’ 예수님은 엄청 답답했을 것 같았지만, 꾸짖지 아니하시고 다시 물어주십니다.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그런데 그들의 답변은 총리가 되고 참모총장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권력의 자리에 앉을 때 저희들을 내각 수장으로 삼아주세요.’ 다른 제자들이 화를 낸 것은 먼저 말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대답하십니다.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구나. 내가 가는 길이 어떤 길인지 알고 그런 부탁을 하는 것이냐?’ 그러면서 잔과 세례로 자신의 영광을 표현하십니다. 잔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을 상징합니다. 세례는 물에 몸이 완전히 잠긴다는 의미입니다. 압도적이 경험입니다. , ‘내가 너희들의 몸값을 지불할 것이다. 공정하게 지불하고 너희들의 형벌을 대신 감당할 것이다. 내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왔다. 그것을 깨달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마 제자들은 예수님이 자기들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치사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어떤 신앙의 기준을 가지고 계신가요?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을 두고 죽음을 선택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사랑입니다. 나중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제자들이 깨닫게 됩니다. 그때 그들의 인생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그저 감정이 아닙니다. 사랑은 영적인 상태입니다. 신앙의 기준은 오로지 하나님의 사랑이어야 합니다.

. 영혼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

 

1. 죄사함이 쉽냐? 병고침이 쉽냐?_요한일서5:13,마태복음9:1-8,요한일서3:12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_요한일서5:13’

지금 요한사도는 요한일서를 쓴 목적에 대해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영생을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영생이 어떻게 너희에게 있는 줄 아느냐?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야. 예수님의 죽음 때문이야.’ 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_마태복음9:4-5’

 

그러나 바리새인과 같은 종교인들은 중풍병자가 죄 사함을 받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당연히 저주를 받아 멸망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죄 사함이 쉽냐, 병 고침이 쉽냐?’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당연히 답변을 못했습니다. 그들은 단 한 번도 영혼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런 인간은 당해도 싸지, 저런 인간은 병 걸려 죽어도 싸지, 그렇게만 생각했습니다.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_요한일서3:12’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종종 이런 오류에 빠져버립니다. 굉장히 논리적이고 정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세상이 요구하는 것들입니다. 그래야 성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논리적이고 정확해야 합니다. 그것들이 어느 순간부터 교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교회도 논리적이어야 하고, 정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의 결과는 교회를 굉장한 곳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영적부흥이 아닌 화려한 부흥이 시작되었습니다. 문화의 선두주자가 되기도 하였고, 많은 권력자들이 모이기도 했습니다. 수준 높은 사교의 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용서도, 사랑도 사라졌습니다. 무엇보다 구원이 사라졌습니다. 구원을 위해 예수님처럼 낮은 곳에서 섬기는 모습은 사라졌습니다. 사실,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사역의 열매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 낮아져야 하잖아요? 그것이 예수님이 가르쳐준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그 고비를 넘지 못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영생을 놓치게 됩니다. 가인이 딱 그랬습니다. 왜 아우를 죽였습니까? 왜 교회에서 싸우고 다투지요? 다 같은 이유입니다.

 

2. 그를 향하는 담대함_요한일서5:14-15,로마서8:26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_요한일서5:14-15’

 

하나님의 사랑의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는 것이 우리가 살 길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향한다는 말의 뜻을 아시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본다는 의미를 이해하시겠습니까? 사실 우리는 그럴 자격조차 없습니다. 그럴 힘조차 지혜조차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에게 담대함을 주셨습니다. 어떤 담대함인가요? 기도하면 들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의 뜻대로 기도하면 들으신다는 놀라운 담대함입니다. 우리의 신분과 권세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제대로 된 우리의 신분을 발견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 증거가 제자들처럼 주님 우리에게 총리가 되고 참모총장이 되게 해주세요. 주님 우리도 병을 고쳐주세요.’ 그렇게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_로마서8:26’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담대할 때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다는 말은 우리 인생이 구원을 향한다는 말입니다.

 

3. 사망에 이르지 않도록_요한일서5:16-17,디모데전서4:1-2,베드로전서4:6-8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_요한일서5:16-17’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누구든지 사망에 이르지 않게 되었는데, 해결되지 못하는 죄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가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입니다.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큰 죄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죄라도 믿기만 하면, 바라보기만 하면 해결될 텐데 믿지 못하고 바라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_디모데전서4:1-2’

 

그 정도가 아니고 믿었는데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는 사람들을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에 관해 들었는데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강팍해지는 것을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그 은혜를 받지 못하면 그 다음에는 용서받을 길조차 사라지지 않습니까. 대표적인 인물이 가룟 유다 같은 인물입니다. 가인 같은 인물입니다. 그들도 처음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점차 미혹을 받아 마음이 강팍해져서 사랑과 용서가 아닌 사람들을 정죄를 하는 율법주의자가 되어버립니다. 손양원목사님은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사람을 양아들로 삼았습니다. 그 양아들이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교회가 배척했습니다. 아버지인 손양원 목사님은 용서했지만 교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상하죠?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함이라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_베드로전서4:6-8’

 

그들이 돌아오길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제발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라고 요한사도도, 베드로도 간절히 부탁하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기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사랑을 위해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놓치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전도사일 때 저를 찾아온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가정도 너무 어렵고, 환경도 너무 어려웠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다들 불쌍하다고만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하러 온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전도사님 우리 가정이 구원받게 도와주세요. 그게 어려운 환경, 상황에서 제가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힘이에요. 아빠, 엄마, 동생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다 할 마음이 있어요.’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 아이가 주님을 만나도록, 바라보도록 돕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은 주님만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말씀을 사모하는 그 아이를 위해 수년 동안 말씀을 전해준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은 온 가족이 다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 그 은혜를 힘입어 다 살겠네_에베소서4:13-14, 디모데후서3:1-5,14-15,히브리서5:13-14

 

어떻게 하면 주님을 향할 수 있나요? 어떻게 하면 그 사랑을 경험할 수 있나요?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힘입어 다 살 수 있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살게 되고 살리게 됩니다. 그런데 왜 은혜 받기가 그렇게 힘이 들까요? 제가 대학교를 졸업할 때 쯤 여러 문제들이 겹쳐서 찾아왔습니다. 그때 저희 목사님께 기도를 부탁하려고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는 '승주야 너 말씀의 은혜를 받고 있니?'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모든 예배를 다 참석했고, 물론 신학생이기도 했지만 다른 대학생들과 달리 훈련이며 집회며 열심이었기 때문에 그 질문에 매우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 '그런데 목사님이 볼 때는 너무 정신이 없어 보여. 분주해보이고. 말씀이 마음에 담겨있지 않아 보여.' 그리고 성경구절을 하나 보여주셨습니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_사도행전17:11’

 

'지금 문제가 많은 것 같은데 사실 중요한 문제는 그런 것들이 아니야. 영적인 눈을 열어야 해. 말씀이 들려야 해. 그래야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어.' 처음엔 이해를 전혀 못했습니다. 은혜를 받는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말씀을 들어도 깨달음이 없고 또 그런 상태로 그냥 지나쳐버립니다. 당연히 마음에 말씀이 담기지 않습니다. 그러니 기도할 때나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 말씀이 생각나지 않아 중언부언하게 됩니다. 그리고 내 마음대로 선택하게 됩니다. 당연히 삶은 말씀과 전혀 상관없이 살아가게 됩니다. 아무리 예배를 많이 드려도 말이지요.

저는 그때부터 묵상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말씀묵상입니다. 그걸 쓰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저의 예배는 달라졌습니다. 일단, 자리부터 옮겼습니다. 가능하면 가까이에서 말씀을 들어야했습니다. 그리고 들은 말씀은 꼭 정리해서 메모해두었고 한주를 시작하기 전에 저의 기도제목으로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습관이 되지 않아 늘 원위치 되었지만 계속해서 해내야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항상 말씀이 마음에 담겨져 있고, 그 말씀으로 기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기하게도 문제는 문제가 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저 지나가기도 하고 또 지나고 보니 훈련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_에베소서4:13-14’

 

보통 은혜를 받는다 생각하는데 사실 은혜가 지속되거나 성숙한 은혜와 거리가 멉니다. 분위기에 함께 마음이 동요되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제시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시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_디모데후서3:1-5’

 

첫째, 돌아서시길 바랍니다. 돌아서란 명령이 현재형입니다. 말씀을 듣고 있는 지금 돌아서야 합니다. 뭐에서 돌아서라는 것입니까? 왜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지요?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고통입니다.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심각한 고통이 계속 찾아옵니다. 그래서 쾌락도, 교만도, 돈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자기를 사랑하게 됩니다. 거기서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게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_디모데후서3:14-15’

 

두 번째, 말씀 안에 거하시길 바랍니다. 돌아서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진리의 말씀에는 거하라고 합니다. 은혜 받기 위해 지속적으로 배우고 굳게 믿는 그 진리 안에 머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영향력아래 있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의 영향 아래 있으라는 것입니다. 은혜는 분위기로 받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받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이 도전을 해야만 합니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_히브리서5:13-14’

 

예전에 있던 교회에서 아직 철이 들지 않은 초등학생이 이런 시를 적었습니다. ‘목사님이 있어서 좋다 나를 예뻐해 주셔서. 장로님이 있어서 좋다 맛있는 것을 자주 사주어서. 선생님이 있어서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그런데 하나님은 왜 있는지 모르겠다.’ 육신의 눈에 보이는 목사가 설교하고 눈에 보이는 장로가 교회를 운영하고 눈에 보이는 선생님이 아이들을 양육하니 오늘 날 교회는 전부 인간들의 잔치로 전락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왜 계신지도 모르고 안보이셔도 불편하지 않는 상태가 바로 교회의 변질이 아닌가요.

영적으로 철이 들어 하나님의 존재가 느껴져야 합니다. 교회에 하나님의 자리가 생겨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말씀의 공급, 은혜의 공급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의 자리로 복귀시켜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은혜를 받기 시작하면 하나님의 목적지가 생깁니다. 바로 영혼구원을 위한 사랑입니다. ‘저 죽어가는 자 예수를 믿어 그 은혜 힘입어 다 살겠네크로스비의 고백처럼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기준이 될 때 우리가 비로소 온전해집니다. 비로소 존귀한 인생이 됩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으로 신앙의 기준을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영생을 향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영생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까?

 

주님 우리의 신앙의 기준이 틀렸음을 고백합니다. 성공하는 것, 잘 먹고 잘 사는 것, 그래서 나를 사랑하고 내가 높아지는 것이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예수님이 필요했는데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시네요. 그래서 제자들처럼 도망치기 바빴고, 내 현실에서 주님을 외면하였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우리를 살리는 생명의 길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을 향할 때 우리가 비로소 온전해짐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사랑만이 우리가 이 땅에서 존귀해지는 길임을 깨닫습니다. 내 인생이 구원을 향하길 원합니다. 그 일을 위해 깨어 기도하길 원합니다. 내 힘과 지혜로 할 수 없기에 오늘도 은혜를 간구합니다. 그 은혜 힘입어 다 살겠다는 믿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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