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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8-01-28 주일예배

2018-01-28 주일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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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8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신앙생활의 여정

본 문 :

빌립보서 2:12-18

임대영 목사

. 신앙생활의 시작: 무지에서 생명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한 상태를 불신의 상태라고 합니다. 불신이라는 말은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믿는 자를 신자라고 합니다. 신자들은 무엇을 믿습니까? 믿음의 내용은 무엇인가요? 정확히 정답으로 말하자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적인이라는 말이 매우 중요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불신의 상태에 있는 인간들이 알 수 있도록 성경을 통해 자신을 계시 하셨습니다. 계시라는 말은 자신을 나타내다라는 말입니다. 사람의 지혜로 알지 못하는 진리를 가르쳐 알게 하시는 것이 계시입니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성경이 아니었다면 그 누구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가 중요합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목회자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목회자가 성경을 가르치지 않고 자신의 말과 삶, 어떤 세상 풍조와 좋은 말만 가르친다면 반드시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불신의 상태에 있을 때, 우리는 무지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알지 못한 상태는 무지의 상태입니다. 무지라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고 무서운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세상의 이치를 잘 알지 못하고 행동을 하면 얼마나 위험합니까. 아이들이 뜨거운 것 차가운 것 위험한 것 먹어도 되는 것들을 성장하면서 배워가는 것입니다. 건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건강에 도움되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음식만 먹는 다면 반드시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무지하면 아프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사도 찾아가고 어른들의 말도 듣고 음식을 조절하고 운동하여 건강을 지켜 나갑니다. 우리의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살던 불신의 상태는 영적인 무지의 상태입니다. 영적으로 무지한 자들이 하는 우상숭배는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른 다는 것입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_출애굽기20:3-5 ’

 

성경 말씀을 믿는 다면 절대 우상 숭배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상숭배하는 자들과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의 죄를 삼사대까지 물으시겠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믿는 다면 절대 우상숭배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내 몸에 새우를 먹으면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서 호흡 곤란이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절대 새우를 먹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불신의 상태를 무지의 상태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아는 것과 믿는 것이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신앙을 결단 했다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_에베소서4:13’

 

구원은 일시적인 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의 완성을 어느 일시적인 날짜로 강조하는 것이 한국교회 구원파의 구원론입니다. 그들은 구원을 영접하는 순간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이 말하는 신앙의 열심, 성도의 행위에 대한 성경 말씀에는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사람들을 영접시키는 것에만 열중하고 이제 불신의 상태에서 영접한 한 순간만 기억하고 구원받았으니, 편하게 즐기며 살라고 하는 것이 구원파적인 구원론입니다. 우리가 믿기로 작정한 그 순간은 구원의 시작에 불과 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구원 받기로 작정한 자들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래서 성경을 우리에게 말씀으로 주셨습니다. 우리는 무지한 존재이기 때문에 성경의 기준이 없다면 신앙도 스스로 하고 싶고 믿고 싶은 대로 믿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을 말씀으로 계시 하셨습니다. 무지한 인간이 하나님 만날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성경 말씀에 기록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을 통해서 신앙생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의 말과 사람들의 간증은 참고사항일 뿐 그것이 신앙의 기준이 아닙니다. 성경의 기록된 말씀이 하나도 변치 않고 이 땅에서 성취 될 것을 믿는 것이 신앙의 시작이자 기준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_빌립보서2:12’

 

빕립보서에서는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기록합니다. 영어 성경 NIV에서도 ‘continue to work out your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 구원을 계속해서 이루어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기로 작정했다면 이제 하는 일에도 열심을 내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식을 가지셔야 합니다. 신앙은 단순히 믿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아는 일이 더해져야 신앙생활이 성장합니다. 어린아이들이 스스로 자립하여 살아갈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경험이 필요합니까.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지의 상태에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어른의 신앙인이 되려면 시간과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시작되면 우리는 곧 영적인 세계를 알게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성경은 영적인 세계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사탄, 천사의 존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고 있다고 성경은 기록됩니다. 그리고 그 존재들의 영향을 받고 교제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도 영적인 존재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의 영적인 신분이 있다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불신의 상태의 사람들은 영적으로 마귀의 자녀라고 기록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_요한일서3:10’

 

그렇다면 왜 영적인 신분의 구별이 있나요? 그것은 인간에게는 심판날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_히브리서9:27’

 

중요한 것은 우리는 영적인 세계를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무지의 상태에서 알아가는 신앙생활의 시작이 되면 갈등이 되는 것들이 많아지게 됩니다. 아 내가 이렇게 살면 안되는 구나라고 알게 됩니다. 마치 내가 병명을 진단받고 내가 이제 건강관리를 하지 않으면 위험하구나라고 깨닫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내 영적인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알게 된다면 그때부터 영적싸움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성경의 수많은 믿음의 위인들이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죄인임을 고백하고, 배설물같은 존재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_에베소서6:11’

 

신앙생활의 시작은 영적인 세계를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탄의 존재를 인식하고 나 또한 영적인 존재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써 진중한 신앙생활이 시작됩니다. 영적 세계를 알게되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이 중요함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내 행동과 말, 습관, 문제, 상황들에 대한 이해가 생겨납니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의 시작입니다.

 

. 신앙생활의 끝: 최후 심판

 

하나님 자녀들은 우리의 삶 가운데서 치열한 신앙생활을 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구원의 결론은 하나님께서 아시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완성의 유무는 하나님께 정답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면서 확신만 가지고 살아갈 뿐입니다. 그렇지만 그 확신이 구원의 유무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뤄가는 과정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경에서 신앙생활의 끝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그 신앙생활의 끝을 최후 심판이라고 합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최후 심판이 있습니다. 인간 역사의 종말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최후 심판은 예수님께서 다시 이땅에 재림하시는 날 이뤄집니다. 최후 심판은 모든 사람, 믿는 자들과 믿는 않는 모든 자들이 받게 됩니다. 믿지 않는 자들의 심판은 오직 지옥뿐임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널 모른 다고 하는 사람은 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 믿음의 선조들이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고 전도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무지한 자들은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심판의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의 심판은 어떨까요? 믿는 자들도 심판은 받지만 믿지 않는 자들의 심판과 다릅니다. 신자들은 지옥의 심판은 면하게 됩니다. 하지만 믿는 자들의 각 사람이 받게 될 보상의 정도는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심판이 있습니다. 그것을 성경은 상급이라고 합니다. 상급의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_고린도전서3:10-15’

 

고린도전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위에 집을 세워가는 것을 신앙생활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불의 시험이 있을 때 통과 하지 못한 자들은 해를 받는 다고 기록합니다. 그것은 불타는 건물속에서 자기가 입고 있는 옷을 제외하고 모든 소유물을 잃고 피신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어떤 자들은 불의 시험을 견뎌내고 어떤 자들은 옷만 입고 피신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터 위에 사람이 어떤 재료로 집을 지어가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이 상급과 관련이 있음을 이야기 합니다. 신앙생활의 보상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천국 가는 날 우리는 이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상급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집을 지어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심판의 날은 이처럼 중요합니다. 인간의 구원은 최후심판의 날에 최종적으로 알게 됩니다. 심판의 날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은 무지한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삶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며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심판 날에 믿는 자에 주어질 상급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상급은 이 땅에서의 신앙생활의 삶에 따라 평가받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과 같은 믿음의 선조들이 목숨을 걸고 복음 전도에 인생을 바친것입니다. 이 땅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발견한것입니다. 이방인의 나라에 와서 목숨 바쳐 성경을 전달한 순교자들을 이 사실을 분명히 믿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분명 심판날에 그들의 상급이 클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갈 동안 우리의 상급을 위해 집을 지어가는 과정 중에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 사명: 모든 민족으로

 

하나님 자녀들에게는 사명이 있습니다. 사명이라는 말은 맡겨진 임무라는 말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임무를 부여 하셨습니다.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언약입니다. 하나님과의 이면계약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그 언약이 분명한 사람들은 인생의 길에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두려움과 어려움을 쉽게 극복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할 일을 알기 때문에 늘 기준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명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_마태복음28:18-20‘

 

예수님께서 이 땅의 사역을 마치시고 마지막으로 명령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신학적으로 지상 대명령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분부하신 명령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곧 전도와 선교를 의미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무지한 자들에게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복음을 전달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전도와 선교는 모든 신자들의 공통 사명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전도와 선교에 사용받는 지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모양과 삶에 따라 들어 사용하십니다. 성도의 과거, 현재, 직업, 기능을 들어 전도와 선교에 사용되길 원하십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전도와 선교에 관심있는 교회 공동체를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교회와 인생은 사명이 분명한 교회와 인생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_사도행전1:8’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들을 기억하며 세계복음화라고 칭하고 부르는 것입니다. 지상 대명령은 세계복음화의 언약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계복음화가 무엇입니까? 지상 대명령을 살펴보면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든 민족가운데 복음 전할 제자를 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민족과 나라를 구별하여 사용합니다. 민족은 종족이라는 같은 말입니다. 민족의 구분 단위는 언어, 풍속, 문화 등으로 구분합니다. 전세계 국가수는 203개국입니다. 하지만 유엔에서 파악된 지구상의 언어는 7000개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 말인즉 민족의 수는 7000종족이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복음화는 7000종족가운데 자신들의 말로 성경 말씀을 전달할 제자를 세우고 성경을 번역하는 것이지 않을까요?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_마태복음25:31-32’

 

심판의 날에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을 앞에 모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심판의 때에 민족단위로 심판이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나라, 국가라는 기준으로 볼 때 사실 민족의 구분은 매우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나라와 나라간의 전쟁은 멈추었지만, 아직도 민족과 민족간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적인 눈을 가지고 우리의 사명을 생각한다면 민족의 구분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큰 틀에서 세계복음화입니다. 더 작게 보면 내 삶의 직업적 소명을 갖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있는 그 자리가 세계복음화의 자리입니다. 가스펠교회가 그 세계복음화에 사용받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명에 충실한 자녀들의 상급을 잊지 않고 베푸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신앙생활의 시작부터 끝, 그리고 그 사명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지는 인생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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