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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1 주일 2부 예배

< 주일 2부 예배 >

일시:  2014년 5월 11일

제목 : 제자들과 함께 있어

말씀 : 사도행전 9 :23-31

설교 : 오승주 목사


2014-05-11 주일2부예배.hwp




아래 링크를 통해 음성 메시지 파일을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https://db.tt/B2mjQPsk


아래 링크를 통해 영상으로 메시지를 다시 볼 수 있습니다.

http://vimeo.com/94816026


가스펠교회 주일2부예배 20140511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지난주 말씀처럼 사울이 갑자기 예수님을 만나고 제자가 되었습니다. 세상의 배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함께하던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려 하였습니다.

. 세상의 배신자가 된 사울

 

올해 가스펠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비전은 시대를 담는 축복의 그릇입니다. 그릇이란 단어는 참 중요한 단어 같습니다. 저는 요즘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제 그릇은 어떠할까 생각합니다. 큰 그릇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서 제가 많은 것을 양보하고 그냥 포기하는 것이 넓은 그릇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니 중요한 사람에게 실수를 할 때가 많았습니다. 사람이 좋아 보이려고 싫은 소리 못하여 그 사람이 깨닫지 못하고 지나가면 그것은 그릇이 넓은 것이 아니라 자기 의를 위한 욕심일 것입니다. 그릇이라 함은 때로는 작아서 넘치기도 하고 때로는 부딪히고 깨져서 새 그릇을 사야할 때도 있는 법입니다. 또 큰 그릇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작은 그릇도 귀한 것을 담으면 귀한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다이아몬드를 큰 그릇에 담아 놓지는 않습니다. 작은 그릇이지만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릇은 각기 모양이 다릅니다. 요즘 제 그릇에 관해 고민이 참 많습니다. 기도하러 교회에 오면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특별히 잘 하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막막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좋은 예배처소를 주셨고 또 저를 믿고 따르는 좋은 제자를 보내주셨는데 제 그릇은 심히 부족하기만 합니다.

열혈 유대교 선봉자였던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 그분께 사로잡혀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사울이 유대교를 배교한 것을 의미했습니다. 혼자 조용히 배교하면 괜찮았을 텐데 유대교가 공식적으로 부인한 예수가 그리스도이고 하나님이라 외치고 다녔으니 사울은 유대인들에게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더러운 배신자였습니다. 그들은 사울을 죽이기 위해 은밀하게 공모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사울을 붙잡기 위해 다메섹의 군사까지 매수하여 밤낮으로 성문을 지켰지만 믿음의 형제들이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에서 달아 내림으로 그를 피신시켜주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궁금한 것은 과연 누가 그 계교를 사울에게 전달했으며, 누가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피신시켰으며, 누가 그 위험을 무릎 쓰고 사울을 보호하였는가 입니다. 또 그들의 수는 몇 명인지도 궁금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와 관련하여 침묵하고 있습니다. 바로 다메섹의 제자들인 것입니다.

 

. 3년만의 귀환

 

오늘 본문을 보면 사울이 예루살렘에 바로 직행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을 드렸듯이 갈라디아서 117-18절의 증언에 의하면 사울은 예루살렘을 방문하기까지 꼬박 3년이 걸렸습니다. 그것은 사울이 아라비아광야에서 홀로 경건한 시간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3년이면 예루살렘 모든 교회에 소문이 들어가기에 충분한 시간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의 반응을 보아야 합니다.

1. 예루살렘의 반응

 

그가 그리스도를 믿고 변화되었음이 이미 소문이 다 났을 것이기 때문에 그의 귀환을 환영해야 함이 마땅한데 3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의 제자들은 그의 제자됨을 믿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주님께 완전히 붙들림 받아 자신의 삶을 주님을 위해 드렸을 뿐만 아니라 생명의 도구가 되기로 결단까지 한 사울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거룩한 성도가 되어 영광스러운 교회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의 반응은 냉랭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사울은 불신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니 사울의 낙담이 얼마나 컸을까요?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_사도행전9:26’

 

2. 바나바 같은 사역자

 

그런데 그 때 바나바가 나타난 것입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바나바는 직접 사울을 데리고 사도들에게 갔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사울에게 있었던 일을 마치 자신이 그 현장에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사도들에게 소상하게 알려주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사도는 초대교회의 실질적인 지도자였던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와 베드로였습니다. 그 이후 사울에 대한 예루살렘 제자들의 두려움과 불신은 해소되었고 그들과 서로 신뢰하는 동역자의 관계를 맺을 수가 있었습니다. 성경은 이 장면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바나바는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사명자입니다. 바나바는 본명이 요셉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은 그를 바나바라 불렀습니다. 바나바는 위로의 아들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그가 얼마나 주님 안에서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삶을 살았으면 사도들이 그의 본명을 두고 굳이 위로의 아들이라고 불렀을까요? 가스펠교회도 점차 성장을 할 것이고 또 새로운 가족들을 계속해서 하나님이 보내주실 것입니다. 교회가 가족 같은 분위기라면 좋겠지만 반대로 가족 같아서 그들 속에 들어가지 못하는 새가족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입은 옷과 직업의 종류, 살아온 배경에 선입견을 가지고 처음 온 사람들을 쳐다보고 경계하려합니다. 교회 안에서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제가 생각했을 때 참 피곤한 인생 같습니다. 오지랖이 넓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조금 바꾸려고 노력하는데 그전에는 온갖 가정의 일, 교회의 일을 다 챙겼습니다. 이유는 생명입니다. 그 사람들이 구원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보람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역자가 되려 하십니까?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_사도행전9:27’

 

. 예루살렘의 갱신

 

바나바 한 사람으로 인해 예루살렘이 갱신하게 됩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본문을 보면서 놀랐습니다. 그 짧은 바나바의 사역으로 인해 갑자기 제자들이 사울과 함께 하게 됩니다. 우리는 함께 하면 다 똑같은 사람들인데 서로 비난하고 서로 잘났다고 견제하고 함께 하지 않으려 합니다.

 

1. 제자들과 함께 있어

 

바나바 한사람의 소중한 사역으로 인해 사울은 드디어 예루살렘 공동체의 일원으로 사역을 하게 됩니다. 대반전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경에 제자들과 함께 있어,’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고 역사가 많아도 혼자서는 사역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달란트가 있고 개성도 있습니다. 그런데 나보다 못한 사람을 비난하는 악한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제자들은 원래 그랬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바나바가 그것을 깨우쳐준 것입니다.

사울은 전도자였습니다. 누구보다 증인으로 예수님을 전하는 일에 생명을 걸기로 결단한 사람입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사울과 같은 제자를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교회가 어떤 그릇을 갖춰야 할까요? 저는 제 그릇, 가스펠교회의 그릇이 사울과 같은 제자를 담기를 원합니다. 곧 바나바 같기를 원합니다. 가스펠 교회는 제자들과 함께하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병든 자, 사회적으로 문제 있는 자도 하나님 앞에서는 다 똑같은 죄인이고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구원받은 자녀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우월감을 내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있는 선입견을 내버리시기 바랍니다. 찬양을 잘하니 찬양을 못하는 저 같은 사람을 비웃지 않기 바랍니다. 행정을 잘하니 행정에 둔한 사람을 비웃지 않기 바랍니다. 봉사를 잘 한다고 봉사를 못하는 사람을 비웃지 않기 바랍니다. 저도 한때는 그랬습니다. ‘저것도 못하나?’ 그런데 저는 혼자서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저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심지어 저희 아버지 같은 분이 계셔서 제가 기도라도 했습니다. 교회 안에 필요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울과 같이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이 오더라도 공동체를 누려야 할 것입니다.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_사도행전9:28-29a'

 

2. 형제들이 알고

 

복음을 담대히 전하니 유대인들에게 위험을 당했습니다. 그러니 형제들이 사울의 상황을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 다소로 보냅니다. 신기합니다. 형제들이 알고 그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이 알고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가 미션홈을 합니다. 그런데 만약 미션홈이 형식을 갖추고 틀도 갖추었는데 그 안에서 형제들의 기도제목과 형제들의 상황을 모른다면 교회 안에 필요 없는 미션홈이 될 것입니다. 모이기가 쉽지 않더라도 항상 기도가 통하고 서로 어떤 상황 속에 있는지 알고 말씀으로 힘을 주고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미션홈이 될 것입니다. 조금 벅차지만 생방송을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단 한명이 듣더라도 서로 말씀으로 힘을 얻길 바라는 것입니다. 단순히 사역적인 측면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교회공동체로 서로를 존중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의 위험을 알고 우리는 왜 그러냐’ ‘가만히 좀 있어라’ ‘너 때문에 우리까지 위험해졌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너만 전도하냐’ ‘너 때문에 우리 교회 수준이 떨어졌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형제들은, 다시 말해 제자들은 그를 다소로 보내어 더욱 사역을 잘 할 수 있도록 보호해주고 안내해줍니다. 우리는 조금만 실수하면 견제합니다. 영원히 매장시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교회의 형제들은 사울을 더 잘 할 수 있는 곳으로 보냈습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우리는 함께 보듬어주고 위로해 주는 바나바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 다소로 보내니라_사도행전9:30’



. 교회의 응답

 

사도행전9:31. 이런 교회는 평안할 수밖에 없으며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되어 수가 더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는 여러 가지 그릇을 갖추어야 하겠지만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 바나바와 같은 더 나아가 제자들과 함께 하고 형제들이 알아 각자의 자리에서 복음 사역에 더욱 잘 하도록 안내해줄 수 있는 그런 교회공동체의 그릇을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진짜 영성입니다. 교회는 그럴 때 주의 손이 함께 합니다. 가정에서 손해 보는 것 같은데 그 때에 주의 손이 함께 합니다. 사실,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저의 고민에 대한 답을 찾았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외로운 사람이 없길 바랍니다. 주님을 만나니 외롭지 않고, 하나님을 예배하니 외롭지 않고, 그런 믿음의 가족들과 말씀으로 서로 위로하고, 기도로 통하니 외롭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혼자일 때는 평생 소외계층, 3세계 선교현장, 엘리트 현장의 근처에도 못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스펠 공동체가 함께 할 때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사울과 같은 제자들이 올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바나바 같은 제자로, 형제로 믿음의 그릇을 갖춰 교회가 받아야 할 참된 응답을 받길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_사도행전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