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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8 주일 1부 예배

< 주일 1부 예배 >

일시:  2014년 5월 18일

제목 : 주님의 때

말씀 : 마태복음 4  : 12-25

설교 : 오승주 목사



2014-05-18 주일1부예배.hwp




아래 링크를 통해 음성 메시지를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https://db.tt/eSYz0h03

아래 링크를 통해 영상으로 메시지를 다시 볼 수 있습니다.

http://vimeo.com/95629181


가스펠교회 주일1부예배 20140518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 주님의 복음

 

우리는 축복받는다는 설교를 좋아 합니다. 목회자들 사이에 이야기하기를 고난에 대해 설교하면 교인의 절반이 떠나고, 죄에 대해 설교하면 전부 떠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공생애 첫 메시지는 회개하라였습니다. 회개해야 하는 이유는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이 회개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유일한 조건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말로 회개하라고 하면 회개합니까? 목사님이나 부모님이 여러분에게 회개하라고 하면 회개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려면 누구라도 설득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복음을 전하려면 주님과 같은 삶이어야 합니다. 진리와 삶은 분리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삶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천국이 가까이에 왔으니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느껴지십니까? 왜 이렇게 이야기 하셨을까요? 천국이 가까이 온 것처럼 살라는 말씀입니다. 내일 하나님의 심판앞에 선다면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가요? 천년만년 살 것처럼 돈에 집착하고, 건강에 집착하고, 세상에 집착하면 안 됩니다. 망하는 걸 두려워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천국이 가까이에 왔으니 멋대로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세상 것을 내려놓고 주님의 복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천국에 가면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라 해놓고 불신자보다 더 큰 야망과 욕망에 사로잡혀 살면서 흥청망청 살면 전도는 불가능합니다. 지금 한국교회에 문제가 온 것이 전도와 삶이 분리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천국이 가까이 온 것처럼 살면 될 것입니다. 망해도, 아파도 하나님 때문에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고, 죽으면 천국 간다는 믿음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복음을 가진 자의 삶은 다른 삶입니다.

제 대학교 동기 중에 의대를 다니는 형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분과 기숙사 룸메이트가 되었습니다. 새벽기도를 가기 위해 멀리 있는 기숙사를 신청한 것입니다. 그 형님과 새벽기도를 다니면서 친해졌습니다. 그 형님이 고등학생 때 방황했다고 합니다. 예수 믿는 부모님이 싫어서 교회도 안가고 공부도 안하고 방황했는데 대학에 떨어지고 내가 왜 방황하고 있지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중학교 2학년 이후로 가지 않던 교회를 간 것입니다. 그리고 겨울에 교회에서 인도 단기선교 가게 되었습니다. 인도에 가서 완전히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며 1년간 공부해서 온 곳이 고신대의대였습니다. 자신은 의사되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선교하기 위해 의사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복음전하는 일에 쓰임받기 위해서 시간 내서 예배드린다고 하였습니다. 그 형님은 수석졸업하고 졸업하자마자 인도에 가서 6년을 넘게 의료 선교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방에 병원을 차려 지금은 선교사를 후원하고 지역의 많은 사람들을 돕는 병원으로 응답받고 있습니다. 지역에서 표창장도 받고 보람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자신은 지금 너무 신이 나고 재미있다고 합니다. 복음을 가진 자의 삶은 다릅니다. 무엇이 복된 것이고 축복입니까?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말씀을 통해 주님의 복음으로, 주님의 때, 시간표 속으로 들어가길 원합니다.

 

. 주님의 때

 

예수님의 때를 보면서 우리 인생의 시간표도 봐야하겠습니다.

 

1. 물러설 때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_마태복음4:12’

 

세례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예수님이 물러가셨습니다. 이 말씀을 보고 인간적으로는 도와주지 않고 왜 물러나셨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인본주의와 신본주의 사이에서 인본주의를 버릴 것을 가르치는 책입니다. 인본주의로 보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과 창조주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요한이 잡혀 있는 것은 하나님의 큰 섭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신뢰해야 합니다. 사실 저는 예수 믿고 저희 가정이 더 안 좋아지는 듯했습니다. 사실 더 안 좋아질 것도 없었는데 예수 믿고 사이도 안 좋아지는 것 같고, 아버지도 더 심해지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 치사한 마음도 들었지만 하나님이 저를 더 낮아지게 하셨습니다. 저는 그 때 주님과 가장 깊은 교제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때가 가족들이 천국가게 하는 구원의 때였고, 최고 응답의 때였습니다. 하나님의 때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합니다. 그런데 내가 당하고 있는 동안은 그것이 인정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물러나셨습니다. 우리도 물러서야 하고 기다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무조건 싸우고 이기려고 합니다. 직장생활, 가정에서 핍박을 받아드리고 하나님의 섭리를 믿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_마태복음4:13-14’

 

나사렛, 스불론, 납달리, 가버나움, 갈리리 지명 하나하나마다 말씀을 이루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내가 떠나야 할 곳, 내가 살아야 할 곳이 모두 말씀을 이루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어떤 영성을 가져야 합니까? 변하지 않는 타인과 환경 때문에 내가 변화되는 것이 영성입니다.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는 것이 영성이 아닙니다. 나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과 맞아 떨어지는 것이 영성입니다. ‘, 우리 가정이 이렇게 가난해도 나 때문에 살 수 있겠구나.’라는 자신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눈만 뜨면 가정의 이런, 저런 문제들이 계속 들렸지만 상처받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영성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이 영성을 주시기 위해 훈련의 때를 주신 것입니다. 다윗은 10년을 광야에서 훈련받았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말씀을 이루려는 하나님의 계획 때문입니다. 우리는 물러설 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자존심, 인본주의, 지식을 내세워서는 현장을 복음화 시킬 수 없습니다.

 

2. 비로소 전파할 때

 

이때부터 비로소전파하셨습니다. 마태복음은 세례요한이 잡히고 나서 예수님의 본격적인 사역이 시작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실 언제든지 사역을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이 잡히고 그의 사역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신 것입니다. ‘내가 할테니 이제 너는 물러가라라고 하실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주의 일에는 때가 있습니다. 그 때가 될 때까지 내게 능력이 있어도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때를 아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그 때를 분별하기 위해 인간적인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인본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많은 것을 놓칩니다. 복음을 알았다고 흥분하여 불신자 가족들을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어쩔 때는 흥분해서 싸우기도 합니다. 그래서 영원히 문을 닫아버리기도 합니다. 사실, 그런 환경이라면 그들을 섬기면서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 상황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싸워서 이기고, 논리적으로 꺾어야 속이 시원합니다. 주님의 복음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구원이 목적이 되면 내가 잡혀 있어야 할 때인지 나가서 전파해야 할 때인지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내 의가 목적이기 때문에 주님의 때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가 전도해서 역사를 일으키려 하면 하나님의 때를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알기 위해 우리는 예배가 필요하고 묵상이 필요합니다. 날마다 말씀을 통해 확인해야 합니다. 비로소 복음을 전하는 축복이 있기 바랍니다.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_마태복음4:17’

 

3. 제자를 부르신 때

 

예수님을 믿는 내게는 어딘가를 다니는 것도 누구를 만나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회개의 메시지를 하면서 우리가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은 만남의 축복입니다. 무엇이 만남의 축복일까요? 안드레, 베드로 같은 제자들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 중에 바다에 그물을 던지는 어부, 즉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셨습니다. 성경에서 쓰임 받은 사람들은 다들 자신의 일에 열심인 사람들이었습니다. 마태도 세리로서 세관에 앉았을 때 부르셨습니다. 다윗도 양치기로 양을 치고 있을 때, 엘리사도 농부로 밭을 갈고 있을 때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직업들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은 아니었습니다. 직업이 무엇인지는 상관이 없습니다. 주님은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은 물질이 있고 없음에 따라서 인간의 권리와 가치를 다르게 평가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우리의 전공은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배우자를 고를 때도, 직원을 뽑을 때도, 심지어 교회에서도, 더 심지어는 자식에게도 외적인 조건을 갖다 댑니다. 그런 관점으로는 제자를 찾을 수 없고 만날 수도 없습니다. 우리도 제자가 되기 위해 우리 삶에 충실해야겠지만 우리도 제자를 보는 눈을 열어야합니다.

미국 오하이오주의 부호인 테일러라는 사람의 농장에 17살의 제임스라는 청년이 찾아와 자신은 창고에 자도 좋으니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창고에서 먹고 자면서 최선을 다해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성실하게 3년을 일하고 제임스는 테일러의 외동딸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테일러는 돈도 없고 가문도 비천한 주제에 감히 내 딸을 넘보다니. 절대 허락할 수 없어라고 하며 화를 내고 마구 때리고 빈손으로 내쫒았습니다. 그 후 30여년이 지난 어느 날, 제임스가 먹고 자던 그 창고를 헐던 일꾼들이 제임스가 미쳐 챙겨가지 못한 보따리를 발견했습니다. 그의 보따리 속에는 한 권의 책이 있었습니다. 그 책에 제임스 아브라함 가필드라고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제임스 아브라함 가필드그는 그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습니다. 35년 후 대통령이 될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겉모양만 보고 쫒아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환경이 아니라 사람을 보셨습니다. 힘들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바르고 훌륭하게 자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환경이 목적이 되고 사람이 수단이 되면 성공하는 것 같아도 결국 실패하게 됩니다. 세상의 물질문화는 우리 인생의 목적을 환경에 두도록 유혹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에게 목적을 두어야 합니다.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낚는 어부라 되는 것은 최고의 축복된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르실 때 모든 것을 다 버려두고 제자로 따른 것이 아닙니다. 내 일이 하기 싫어서 그만 둔 것이 아니라 내 일이 소중하나 예수님의 부르심이기 때문에, 영혼구원을 위한 일이기 때문에 가치관이 변화되어 따른 것입니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_마태복음4:18-19’

 

4. 치유의 때

 

예수님은 제자를 찾으시고 본격적으로 가르치고, 전파하고, 고치는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면 우리는 , 배우겠습니다.’ 예수님이 전파하시면 , 듣겠습니다.’ 예수님이 고치시면 , 고침받겠습니다.’ 이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맨날 똑같은 설교 또 들어야 해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소홀히 여깁니다. 그런 분들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 네 배우겠습니다.’ 하고 쫓아갔습니까? 바로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왜 말씀을 청종할까요? 간절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완전하십니까? 단순히 육신의 병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병도 셀 수 없지만 마음의 병도 많습니다. 열등감, 피해의식, 비교의식, 수많은 중독들, 병적인 게으름, 병적인 교양, 병적인 열심도 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모습이 끔직 할 만큼 온 몸에 수포가 덮혀서 괴로워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가족들이 너 때문에 우리 가족들도 고통을 당한다고 너 때문에 저주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 아이가 병든 것입니까? 아니면 그 가족이 병든 것입니까?

병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한 집안에 문제가 있으면 그 집의 흑암에 빛을 비추라고 허락하신 사건입니다. 우리 집안에 재앙과 저주가 물러가게 하려고 하나님이 주신 특권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주인이라고 하면서 내 인생, 내가 주인이기 때문에 인정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치유를 받지 못합니다. 유명한 교회 다니는 집사님이 자기교회를 자랑합니다. ‘우리교회는 부자들이 많고, 엘리트가 많아요. 목사님은 설교가 세련되어서...’라고 합니다. 어찌 보면 그것은 병든 교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각종 병자들이 모이는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의 자랑이어야 합니다. 모든 문제를 영적으로 보지 못하고 말씀이 없기 때문에 큰 교회를 아무리 멋지게 다녀도 결정적일 때 응답을 놓치게 됩니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문제를 통해 하나님을 만났다면 그것이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그것을 믿으면 치유가 시작됩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이고 성장하는 교회입니다. 나는 병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나는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모두가 죄와 중독의 병에 걸렸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복음이 필요합니다. 그런 주님의 때를 사모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_마태복음4:23-25’

 

이것이 우리가 평생 해야 할 사역입니다. 우리는 평생 이 사역을 해야 하는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우리의 수준과 관계없이 이 사역을 해야 합니다.

 

. 나의 때는 어디쯤인가요?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언제 제자를 만나게 할지, 언제 물러나야 할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준비해야 합니다. 언제라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준비가 말과 생각이 아닌 우리의 삶으로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형식과 지식 아니라 주님을 진짜 주님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때를 생각하지 않고 우리의 때를 생각하며 삽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체질과 습성, 삶들을 바꾸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지나고서 , 주님의 은혜였구나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이 멈추라고 할 때는 멈추고 선포하라고 할 때는 선포하며 어려운 자들이 몰려 올 때는 도울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다윗은 격정의 광야생활을 마치고 어떤 상태가 되었습니까? ‘내가 주님을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그것 하나뿐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들의 적들도 용서 했고 그들의 영혼도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광야에서 훈련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원망만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시고 하나님으로 만족하며 바라보는 신앙생활로 치유되기 바랍니다. 그것이 은혜의 삶이고 신앙생활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때 안에서 머물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