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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찬양예배

2018-10-19 금요찬양예배

2018-10-19 금요찬양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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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9일 가스펠교회 금요찬양예배

제 목 :

(소요리문답강해36) 칭의와 양자와 성화의 유익

본 문 :

베드로후서 1:10

임대영 목사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_베드로후서1:10’

 

36문 이생에서 칭의와 양자와 성화와 공유하거나 혹은 그것에서 넘쳐 나오는 은덕(유익)들이 무엇인가?

: 이생에서 칭의와 양자와 성화와 공유하거나 혹은 그것에서부터 넘쳐 나오는 은덕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 하는 것과 양심의 평화와 성령 안에서의 기쁨과 은혜를 증진하는 것과 끝까지 견디는 것이다.

 

 

. 은덕(恩德)_은혜로운 덕

지금까지 3주간 걸쳐 나눈 칭의, 양자 그리고 성화는 은혜언약의 유일한 은덕들은 아닙니다. 하지만 신앙교육서에서 특별히 주목하고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칭의, 양자, 성화가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은덕은 은혜와 덕, 은혜로운 덕이라는 말입니다. 누구도 이 세가지 은혜가 없이는 구원에 참여 할 수 없습니다. 다른 말로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칭의되고 양자되었고, 성화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확신, 평화, 기쁨과 같은 다른 은혜는 칭의, 양자, 성화에 동반되거나 혹은 이 세가지에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확신, 평화, 기쁨과 같은 은덕은 독자적인 의미를 형성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주된 세가지 은덕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신자가 믿음을 가지기 시작하자마자 필연적으로 확신을 소유하지는 않는다. 첫 믿음을 가진 순간 완전한 믿음을 가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회심한 사람의 경우, 그가 하나님의 선택된 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을 아직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러한 사람에게 확신을 얻도록 도전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설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_베드로후서1:10’

 

비슷하게 요한도 우리에게 영생이 있음을 확신하게하려고 이 편지를 쓴다고 말하였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_요한일서5:13’

 

신자가 믿는 순간 완전한 확신을 반드시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확신을 가지고 있지만 베드로나 다윗을 넘어지에 하는 악을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의심하는 지경에 이른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에는 확신의 결여에 대한 표현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거듭난자, 회심한자, 칭의된자, 양자된자들을 결코 버리지 않기 때문에, 확신을 상실하거나 흔들렸던 사람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르심과 선택을 굳게 하기 위해서 확신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처럼 확신과 평화, 기쁨보다 구원에 더욱더 중요한 요소는 칭의, 양자, 성화라는 점을 볼수 있습니다. 확신과 평화, 기쁨과 같은 은혜들은 늘 우리의 신앙생활속에 흔들리고 회복될 수 있는 요소들입니다. 하지만, 신자들에게 칭의와 양자, 성화는 변하지않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 평안

 

확신과 긴밀하게 연결된 다른 은덕은 양심의 평안입니다. 성령 안에서의 기쁨고 드렇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사랑의 확신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의 증거로써 자신의 양심의 평안과 내면의 기쁨을 설교하였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함은 우리의 양심의 증언이고 자랑이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_고린도후서1:12’

 

신자의 양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믿고, 그리스도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찾기 때문에 평안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신자의 양심은 예수그리스도 안에 거하기 때문에 평안합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양심이 진정한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신자에게 기쁨을 주는 것도 이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의 대가를 이미 지불하셨다는 것을 아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있을까요? 나의 죄, 저주, 사망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만났다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은덕들과의 상호 관계를 고려하지않으면 하나님 은혜의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서 신자들이 모든 일에 부지런하고 신실할 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들을 더욱 풍성하게 경험되고 발견되고 체험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모든 은덕에 대하여 부지런하지 않다면, 이와 함께 다른 은혜들도 한동안 상실하거나 발견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죄에 빠졋을대, 단순히 확신만을 상실한 것이 아니라, 양심의 평화, 성령안에서의 기쁨또한 상실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를 버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당신의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_시편51:11-12’

 

신앙생활은 단순한것입니다. 이 구원의 감사와 은혜가운데 열심을 내는 사람은 하나님의 풍성한 은덕을 모두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하찮게 가볍게 생각하고 세상에 관심을 둘 때 하나님의 은혜를 놓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윗처럼 주님 앞에 무릎꿇고 부르짖을 때 그 은혜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금새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합니다. 신앙생활은 그리스도안에 거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사는 인생은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를 모두 누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의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 견인

 

교회사 가운데도 가장 혼란스러웠던 질문이 있습니다. 바로 진정한 신자도 타락 할 수 있는 가라는 질문입니다. 소요리문답에서는 진정한 신자로 하나님을 향한 열심히나 신실함에서 타락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에서 진정한 신자는 결코 타락 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합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이렇게 배에 타고 있는 사람의 비유로 설명하였습니다. 배에 타 있는 사람은 누구라도 조심해야 합니다. 만약 배의 갑판에 미끌어 넘어진다면 상처를 입고 다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배는 결코 사람이 쉽게 배의 바깥으로 떨어지지않을 만큼 크고 안전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에 있어서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신자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그 놀랍고 크신 은혜를 받았지만 우리는 연약해서 넘어지고 다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은혜를 받았다면 결코 배에서 탈락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신자들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_요한복음10:28’

 

그래서 모든 진정한 신자들은 삶속에서 은혜 안에서 끝까지 견뎌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도의 견인의 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도의 견인은 훌륭한 유망주 달리기 선수가 훌륭한 스승인 코치님에게 지도를 받는데, 그 격려로 인해서 그가 하는 훈련이 쉽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선수가 대충 훈련을 한다면 결코 우승할 수 없습니다. 그가 부지런히 노력하고 감독의 지도를 성실히 임한다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교회의 모든 성도가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의 지체이지만 견인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유다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은혜안에서 진짜 신자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은혜안에 없는 이들도 교회안에 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_요한일서2:19’

 

성도의 견인이 의미하지 않는 또 하나의 사실은 진정한 신자가 무슨 짓을 하든지 다 구원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원받았으니 끝이야라고 하는 사람들은 사실 견인 교리를 잘못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의 견인은 칭의, 양자, 성화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견인은 마음으로 회심하지 않는 사람, 성령이 그 안에 거주하지 않는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변화 된 사람이 전에 하던 일을 계속 행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마음이 변하면 행동이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담배를 피는 사람들이 어떻게 금연을 할수 있을가요? 몸에 헤롭다는 신호를 받고 마음이 변하면 단번에 끊을 수 있습니다. 마음이 변하면 행동도 변합니다. 성령이 거주하는 사람이 죄와 더불어 화평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본질상 죄와 더불어 싸우는 삶이 정상적인 것입니다. 죄로 복귀 하는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싸우는 자가 회심한 사람입니다.

 

또한 성도의 견인은 신자가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분명 성도의 견인이 신자의 노력이라는 요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분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 안에서 견인 할때, 온전한 찬양을 받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요한은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_요한일서5:16’

 

죽음에 이르는 죄가 무엇일까요? 죽음에 이르는 죄는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을 고백하고 다시 그리스도에게서 떠나가는 사람들의 죄입니다. 이것은 사실 진정한 구원받은 신자가 결코 범할 수 없는 죄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는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께서 지키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실 외식하는자, 스스로 경건하는자, 스스로 믿는다고 하는자 인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이 아니라, 그저 자신들이 믿고 싶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외식에 불과 한자들입니다.

 

칭의, 양자, 성화는 결코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은혜가 아닙니다. 이러한 은혜를 받은 하나님 자녀는 반드시 자신의 소명과 선택을 굳게 하기 위해서 열심을 내야 합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은혜 받기를 간구해야합니다. 또한 이러한 은혜를 발견하기를 추구해야합니다. 진짜 신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여금 이 중요한 하나님의 은덕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시간표에따라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는 은혜또한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_베드로후서1:10’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_고린도전서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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