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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8-11-11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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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1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가인과 아벨을 통해 이해해야 할 믿음

본 문 :

창세기 4:1-15

오승주 목사

 

. 뱀의 후손과 여인의 후손_창세기4:1-15

 

저는 창세기를 공부하고 설교하면서 두 가지 고민이 생겼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믿음이라고 하는 단어를 쓸 때 얼마나 하나님과 상관없는, 하나님 편에서 주시는 믿음이 아닌 단어로 사용하고 있는 가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 믿음에 대한 확신이 성경을 통해서 생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를 들을 때 성령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하고, 그 간절함 또한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택함을 받지 못한 백성들은 그 간절함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기 전에 몇 가지 기본적인 내용을 확인하여야 합니다. 첫째는 아담과 하와가 정말 오래 살았다는 것입니다. 아담은 930세를 살고 죽었다고 창세기 5장에 기록하였습니다. 하와는 더 살았습니다. 그러니 두 사람이 천년 가까이를 살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불과 2천년전에 있었습니다.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짐작이 가시지요. 그렇게 오래 살면서 뭘 했을까요?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때는 다산의 시대입니다. 그래서 수학자들이 노아의 방주시대에만 20억 명의 인구가 있었을 것이다라고 추론을 합니다. 가인과 아벨이 활동하던 때에 그래서 이미 인구가 많았던 것입니다.

성경은 아담의 후손 중에 가인과 아벨을 지목하여 구속사를 설명하시려는 것입니다. 오늘 등장하는 가인은 1절에 보면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상 원어에 보면 말미암아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그러니 제대로 해석을 하면 내가 여호와를 득남하였다입니다. 이것은 원시복음과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라고 했기 때문에 가인이 태어날 때 여인의 후손으로 이해하고 이름을 지었지 않나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인을 보니 아니거든요. 그래서 아벨을 낳았습니다. 아벨이라고 번역이 된 히브리어 하벨nothingnessvanity라는 뜻입니다. 전도서에 나오는 헛되다가 바로 하벨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자라는 뜻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기대 속에서 가인을 낳은 후에 얼마나 실망을 했는지 잘 드러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 아무 것도 아닌 자인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다고 합니다. 아담의 두 아들 곧 장자 가인은 뱀의 후손으로 아벨은 여인의 후손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우리가 직접 말씀을 통해 확인해보아야겠습니다.

 

. 가인과 아벨을 통한 은혜의 교리

 

1. 가인과 아벨의 제사_히브리서11:4,에베소서2:8,요한일서3:12,로마서9:10-16,이사야10:20-23

 

오늘 본문에서도 나타나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여인의 후손의 그림자로 등장하는 아벨이 가인보다 무엇을 대단하게 잘 한 것이 없어 보입니다. 단지 다른 것은 가인은 곡식으로 제사를 드렸다는 것이고 아벨은 양을 죽여 제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목사님들이 아벨은 피가 있는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제사를 받으신 것이고 가인은 피가 없는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다라고 설교하지만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구원은 제사를 드리는 자의 제물에 따라서 결정이 된다는 결론이 나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우리 인간 측에서의 그 어떤 것도 근거나 조건으로 작용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따라서 가인이 유기되고 아벨이 선택을 받은 것은 그들이 드린 제물의 내용 때문은 아닌 것이 확실합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_히브리서11:4’

 

히브리서 기자는 아벨이 의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의인이 된 것은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믿음이 인간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은혜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_에베소서2:8’

아벨은 하나님이 주신 믿음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이지 그의 제물이 특별해서 혹은 그 사람이 뭔가 다른 이들과 달라서 하나님이 그의 제사를 받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은혜로 그렇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_요한일서3:12’

가인은 악한 자에게 속해서 악한 일을 한 것이고 아벨은 선한 분에게 속해서 의로운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제물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아벨을 하나님의 것으로 선택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를 기뻐 받으셨던 것입니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_로마서9:11-16’

 

인간 측에서의 어떠한 공로나 노력이나 열심도 하나님께 구원의 근거로 드려질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들이 타락을 하고 저주의 지옥을 향해 달음박질하고 있을 때에 그 들 중 어떤 자들을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은혜로 끌어올리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들을 남은 자(Remnant)’라고도 표현을 합니다.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음이라 이미 작정된 파멸을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_이사야10:20-23’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저주의 땅인 동쪽으로 쫓겨난 자들 중에 그룹들과 불 칼을 통과하여 다시 생명나무열매로 돌아오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아담 이후에 그 남은 자의 첫 번째 모델로 바로 오늘 본문의 아벨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아담 이후의 모든 인간들은 전부 저주받은 가인이어야 합니다. 모든 인간들은 하나같이 다 저주의 땅 동쪽으로 쫓겨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으로 대표되는 그 저주받은 인간들이 드리는 어떤 것도 받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받지 않으셨다는 단어는 쳐다보지도 않으셨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고 자신들이 왕이 되어 살아가고자 하는 자들을 쳐다보지도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과 하늘을 소망하는 자들이 아니고 땅을 섬기고 땅에 노예가 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가인을 농사짓는 자라고 표현을 했는데 그 단어를 원어로 보면 아바드’ ‘땅을 섬기는 자’ ‘땅의 노예가 된 자라는 의미입니다. 이 땅에 목매고 있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거들떠보지도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아벨이라는 남은 자가 생명나무열매를 먹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을 하자마자 즉시 당신의 백성들을 건져 올리시기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남은 자의 이야기를 이렇게 창세기부터 시작하셔서 요한계시록의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까지 점진적으로 설명해 가시는 것입니다.

 

2. 생명나무열매를 따먹은 아벨_역대상5:1-2,고린도전서1:26-29,출애굽기22:29-30,23:19,34:26

창세기를 잘 보시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여인의 후손, 즉 남은 자들을 남겨 가시는 방법이 조금 특이하다는 것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 쪽에서 기대하고 내어놓는 장자들을 모두 물리시고 기대치 않던 자들을 택해서 남겨 가십니다. 왜 가인은 생명나무열매를 따먹지 않고 기대하지도 않았던 아벨이 생명나무열매를 따먹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도 아담과 하와의 기대를 잔뜩 안고 태어난 장남인 가인을 유기 시키시고 그 부모가 아무것도 아닌 자’ ‘헛된 자라는 이름을 지을 만큼 기대와는 거리가 먼 아벨이 여인의 후손의 라인으로 등장을 하지요? 뿐만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서도 장자인 이스마엘이 유기 되고 차자인 이삭이 선택을 받습니다. 이삭의 자손은 어떻습니까? 장자인 에서가 유기 되고 차자인 야곱이 선택을 받습니다. 야곱과 에서를 비교할 할 때 야곱은 에서에 비해 훨씬 유약하고 사기성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야곱을 뱃속에서부터 선택을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르우벤은 장자라도 그의 아버지의 침상을 더렵혔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서 족보에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되지 못하였느니라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에게서 났으나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_역대상5:1-2’

 

장자권은 요셉에게 넘어갔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유다와 레위, 그리고 요셉에게 장자권이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다윗은 어떤가요? 이스라엘의 왕 다윗이 장자입니까? 이새의 막내입니다. 워낙 어리고 볼품없어서 전쟁터에도 못 나가고 형들 도시락 배달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솔로몬에게는 형이 없었나요? 나단과 압살롬이라는 형이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여인의 후손의 라인에 장자들이 선택되지 않고 마치 의도적인 것처럼 기대치 않던 사람들이 선택이 될까요?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에게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인간이 생각하는 방법을 깨는 모습으로 온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인간들은 구원에 관한 한 절대 기여할 수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다는 것을 교회에게 확실하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_고린도전서1:26-29’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못난 사람들만 당신의 백성으로 택하신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은 인간 측에서의 어떠한 열심이나 공로도 구원의 근거로 택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강조해서 표현한 것입니다. 이러한 선택과 유기의 교리가 오늘 본문인 창세기에 벌써 이렇게 확실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장자들은 유기해 가시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첫 것들을 당신께 바치라고 명령하십니다.

너는 네가 추수한 것과 네가 짜낸 즙을 바치기를 더디하지 말지며 네 처음 난 아들들을 내게 줄지며 네 소와 양도 그와 같이 하되 이레 동안 어미와 함께 있게 하다가 여드레 만에 내게 줄지니라_출애굽기22:29-30’

 

네 토지에서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_출애굽기23:19’

 

네 토지 소산의 처음 익은 것을 가져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며 너는 염소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_출애굽기34:26’

이 말씀들은 모두 하나님은 식물이건 동물이건 사람이건 간에 첫 것들을 제물로 받으신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물이라는 것은 어떤 것을 대신해서 죽는 희생을 그 내용으로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하나님께 드려지는 점도 없고 흠도 없는 거룩한 것의 의미도 그 내용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해 보세요. 그 분은 하나님께 드려진 희생의 제물이었지만 유일하게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는 거룩하고 흠이 없는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바쳐지는 제물은 예수님처럼 단순히 희생만을 그 내용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고 점도 없고 흠도 없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첫 것을 내게 제물로 바치라고 하신 것은 단순히 죽여서 태우라는 명령이 아니라 그것들만 내가 받으시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예수님처럼 점도 없고 흠도 없어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수 있는 자들이 또 생겨났다고 사도 바울은 이야기합니다. 로마서 12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우리 성도들에게 너희의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고 권면을 합니다. 그 말은 우리도 이제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는 제물로 거룩하고 새롭게 창조가 되었다는 말인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우리가 그렇게 거룩하고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되었지요? 생명나무열매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흠도 없는 거룩한 자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은 우리가 첫 것이 되는 것입니다.

 

3. 은혜: 영원한 장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_민수기3:12-13, 마태복음23:34-35, 로마서3:21-22, 이사야53:2-3, 누가복음18:11-12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살아 난 자들임과 동시에 그렇게 새롭게 살아남으로 해서 점도 없고 흠도 없는 하나님의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바쳐질 수 있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받으시겠다는 첫 것들,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함과 동시에 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제물의 자격을 갖추게 된 성도들을 함께 상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 태를 열어 태어난 모든 맏이를 대신하게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 처음 태어난 자는 다 내 것임은 내가 애굽 땅에서 처음 태어난 자를 다 죽이던 날에 이스라엘의 처음 태어난 자는 사람이나 짐승을 다 거룩하게 구별하였음이니 그들은 내 것이 될 것임이니라 나는 여호와이니라_민수기3:12-13’

지금 민수기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장자들을 모두 내게 바치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장자를 모두 바치라는 명령을 하신 것은 나는 점도 없고 흠도 없는 나의 진정한 장자 예수 그리스도만을 받을 것이다. 오직 나의 장자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를 기쁘게 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장자에 의해 그 장자 속에서 새롭게 살아난 또 다른 장자들이 있을 것인데 그들이 바로 창세전에 내가 택한 교회이다. 그들도 내 아들 예수로 말미암아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장자들이 되었으므로 나는 나의 택한 백성들인 교회는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건질 것이다라는 하나님의 의지가 담긴 명령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나님께서 첫 것들, 장자들을 자기 것으로 받으실 것이라면 애초부터 첫 것들을 유기시키실 것이 아니라 다른 것들을 유기시키시고 첫 것들을 받으셨어야지요. 그 첫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고 성도를 상징하는 것이라면 애초부터 첫 것들을 유기하지 마시고 받으시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살펴보았지만 하나님은 인간 측의 장자를 안 받으셨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인간 측에서 준비하여 내어놓는, 인간의 기대가 걸린 장자가 아닌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장자를 받으시겠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인간의 노력으로는 하나님을 흡족하게 만족시킬 수 있는 제사를 드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족하게 할 장자는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예수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해 새롭게 창조되어 하나님께 드려지게 될 하나님의 백성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하나님이 믿음을 주신 의인으로 등장하는 아벨이 바친 제물이 양의 첫 새끼인 것입니다. 여기서도 한 가지 주의하셔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아벨이 양의 첫 새끼를 드렸기 때문에 의인이 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께 믿음을 선물 받은 의인이었기에 하나님의 구속사 속에서 하나님께 드려져야 하는 진정한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장자를 이해하고 있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벨이 첫 새끼를 드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벨이 드린 양의 첫 새끼는 구원의 조건이나 근거가 아니라 구원의 결과로 이해를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_마태복음23:34-35’

성경은 아벨이 믿음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린 사람일 뿐 아니라 의인이었으며 선지자였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아벨은 선지자입니다. 그러면 선지자는 무엇을 증거 하던 사람입니까?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_로마서3:21-22’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로 받아서 죄인들의 죄를 지적하고 죄인들에게는 구원자가 필요함을 선포하던 사람들을 말합니다. 다른 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필연성을 선포하던 이들을 선지자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성경이 아담의 둘째 아들 아벨을 가리켜 선지자라고 합니다. 그 말은 하나님은 이미 아담 때부터 당신의 백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고 계셨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벨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는 삶을 살았는지 봐야 합니다. 먼저 아벨의 이름처럼 성경에서 아무 것도 아닌 사람처럼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분이 계시지요?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_이사야53:2-4’

 

이 모습이 바로 아벨의 모습입니다. 그렇게 하벨의 모습을 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에게 살해를 당했습니까? 자기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자처하던 유대인들에게 살해를 당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열심히 드리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의지해서 하나님께 다가가려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죄를 드러내시는 의인이신 주님을 살해해 버린 것입니다. 가인이 어떤 사람입니까? 가인은 자신이 드리는 제사의 행위와 제물로 다른 말로 이 세상의 것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혹시 이 중에 그게 뭐 나쁜 일인가? ‘하고 의구심을 품으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인간의 어떤 행위나 인간이 드리는 어떤 제물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절대 잊으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마치 자신이 어떤 것을 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자기 의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 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_누가복음18:11-12’

 

. 믿음: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_창세기4:25-26,누가복음18:13-14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_창세기4:25-26’

 

하나님께서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 다른 씨를 주셨습니다. 바로 셋입니다. 셋의 후손들이 태어나고 그때 비로소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여인의 후손되신, 생명나무 열매되신, 참 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받은 자들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 놀랍게도 부흥의 시대마다 한 가지 특징은 회개라는 것입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_누가복음18:13-14’

 

산상수훈에도 그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지금 진짜 가난, 진짜 미련하게 살라는 말인가요?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헌금 좀 하면, 내가 헌신 좀 하면 이상하게 그때부터 무엇인가 마음에 채워져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목사도, 중직자도 그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목사도 제때 물러날 줄 알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성경은 계속 해서 우리에게 올바른 믿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행위가 믿음인줄 압니다. 그러나 그 믿음을 하나님이 주셨다는 의미조차 이해를 못합니다. 선택과 유기 교리를 모르기 때문이고 예정교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을 자에게 당신을 사랑하게 하셨습니다. 충성하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살도록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높아지는 것,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되는 것,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존귀함을 받으시는 것이면 그것으로 가장 기쁘고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믿음을 가진 자들을 남겨두셨습니다. 그런 믿음을 가진 자를 교회를 통해 찾고 계십니다.

 

주님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 가인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멸망하고 죽어 마땅한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은혜의 복음을 주셨습니다. 영원한 멸망과 죽음에서 건짐을 받도록 생명나무의 열매가 되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바리새인처럼 교만하고 오만하려고 합니다. 구원의 결과로 살아가야 할 축복된 삶에 자꾸만 내 의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 멀어지려고 합니다. 그것이 엄청난 사단의 유혹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높임을 받길 원하고, 예수 그리스도만 증거되길 원합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살게 하옵소서. 그래서 우리가 감히 생각하지도 못하는 그 놀라운 은혜의 삶이 시작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인생에 비로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교회가 세워지고 또 참된 부흥을 맛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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