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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8-12-09 주일예배


2018-12-09 주일예배.hwp





20181209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명하신 대로 준행하였더라

본 문 :

창세기 6:9-22

오승주 목사

 

. 개척 5년의 열매, 경외_잠언23:17-19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정녕히 네 장례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내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할지라_잠언23:17-19’

 

가스펠 교회가 벌써 5주년이라 합니다. 5년간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나는 죄인이구나입니다. 교회를 개척해서 5년 동안 겨우 그것 깨달았어요? 라고 물으신다면 아직도 덜 깨달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온전한 경외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으로 태어났습니다. 다시 말해,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줄 너무 잘 아십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왜 죄인이야?’ 우리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음에도 하나님은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 길이 아니면 우리가 살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사건은 그래서 놀라운 은혜이자 사랑이며 공의입니다. 그런데 갈수록 우리는 십자가에서 멀어지려고 합니다. 아니 멀어지고 있습니다. 죄인이라고 고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니 정말 아이러니하지 않습니까? 내가 너보다 낫지 않아? 라고 하고 있으니 하나님 보시기에 웃기는 짬뽕 정도 되겠네요.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어떤 변화를 말할까요? 변화가 아니라 완전한 바뀜입니다. ,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뜻하지요? 지옥에서 천국으로 향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소름이 돋습니다.

그걸 알고 나니 그 어떤 것도 이해가 되고 괜찮습니다. 내 자존심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게 뭐 대수인가요. 완전한 바뀜이 되었다는 표시는 바로 경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깨달아질 때 경외가 시작됩니다. 그분 앞에 설 때 시작됩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상아래 개처럼 부스러기라도 먹겠습니다.’ 그 고백이 바로 경외입니다. 경배의 대상을 깨달은 것이지요.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고 두려움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경외하게 됩니다. 생사화복이 하나님 손에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을 예배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오래전 우리 믿음의 조상들은 십리길 비바람, 눈보라에도 예배를 생명처럼 여겼습니다. 남편 몰래, 부모 몰래 은혜를 받으러, 말씀을 들으러 그렇게 예배하러 가기 위해 몇 배나 더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가족들이 구원받도록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해서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경외했기 때문에 기도한 것입니다. 사랑은 그 사이의 통로입니다. 본질은 하나님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죄인임을 깨달은 것이지요.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축복을 받기 위해 예배한다거나, 내 자녀가 잘되기 위해 예배한다거나, 어떤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해 예배한다거나와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깨달아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가 깨달아진 것입니다. 그러니 그 어떤 것이든 비교하지 않게 됩니다. 아니 비교할 생각조차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경외하는 자를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게 됩니다. 경외하는 자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오로지 하나님만 두렵습니다. 나는 죄인이구나, 하나님만이 나를 살리실 수 있구나, 하나님의 은혜만이 내 인생을 온전하게 하시는구나, 하나님의 말씀만이 올바른 길 가게 하시는구나, 란 마음으로 예배드립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거창한 비전을 가지고 개척했지만 하나님은 지난 5년간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회복하게 하셨습니다. 마음에 경외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알고 보니 그것이 진짜 비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목사가 되고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살길이기 때문입니다.

 

. 부패한 땅은 어디인가요?

 

그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_창세기6:11-12,베드로후서3:3-5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_창세기6:11-12’

 

그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였다고 합니다. 온 땅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든 환경 즉 정치, 경제, 문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자세히 봐야 합니다. 그 땅은 바로 우리들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부패하면 땅까지 저주를 받습니다. 나중에 레위기를 설명할 때 희년제도라는 것을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땅을 쉬게 해주는 제도입니다. 건강한 먹거리를 위하여서도 그렇지만 일하는 사람들도 하나님 앞에서 말씀으로 자기를 돌아보라는 의미입니다.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욕심이 마음에 생기니 번성하기 바쁩니다. 역사는 늘 반복됩니다. 욕심으로 말미암아 죄가 잉태되고 죄는 사망을 낳습니다. 죄는 강력한 프레임으로 되어 우리를 속입니다. 지금은 프레임 전쟁 시대입니다. 특히 정치는 프레임으로 싸웁니다. 그런데 죄가 강력한 프레임으로 교회를 공격합니다.

천국과 지옥이 없다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맨날 똑같은 이야기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용사를 얻고, 명성을 얻으라고 합니다. 당시에도 노아는 심판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프레임에 갇힌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함이로다_베드로후서3:3-5’

 

심판이 온다는데 프레임에 갇혀서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한다고 합니다. 제가 어릴 때 듣던 말이 있었습니다. ‘너는 절대 안 된다. 너희 아버지를 봐라. 너는 절대 이 가난과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였습니다. 나중에는 젊은이들을 살리는 전도사가 되고 목사가 되니까 뭐라고 사람들이 이야기한 줄 아십니까? ‘지금 청년들은 절대 안된다고 합니다. 이미 틀렸다고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청년들을 만나니까 정말 그런 줄 알았습니다. 목사인데도 성경을 안보고 세상 사람들의 말을 들은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프레임에 갇힐 뻔 했습니다.

 

2.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_창세기6:13,베드로후서3:6-9,요나3:4,4:10-11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과 함께 멸하리라_창세기6:13’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홍수는 어떤 의미인지 아시죠? 하나님의 진노를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감정적으로 화가 나셔서 멸망시켜버리겠다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선하시기 때문에 죄악을 멸망시키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의 상태로 영원히 사는 것을 막기 위해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쫓아내셨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죄의 상태로 영원히 사는 것을 막기 위해 홍수심판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끝장이 아니라 회복시키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시적인 형태를 심판이라고 생각하는데 실

상은 하나님이 인간을 떠나시는 상태가 바로 심판입니다. 하나님이 떠나시면 자연스럽게 심판과 멸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이 그렇지 않습니까? 성경을 읽지 않고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죄에 대해 관대해지지 않습니까?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_베드로후서3:6-9’

 

그래서 하나님은 땅과 함께 멸하신다고 하십니다. 땅이 새롭게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프레임을 바꾸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만들어낸 프레임을 하나님께서 다른 프레임으로 바꾸시겠다고 하시는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제시하신 것은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그것은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_요나3:4’

 

하나님께서 멸하시겠다고 하셨지만 진짜 계획하고 계신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구원의 은혜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_요나4:10-11’

 

세상이 강력한 프레임으로 우리를 가두려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나면 진리가 됩니다. 프레임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진솔한 삶이 됩니다. 미국이 되게 어려울 때가 있었습니다. 영적으로 엄청나게 위기였습니다. 사회 곳곳에 교회가 필요 없다. 국가적으로도 우리가 왜 다른 나라를 도와야 하느냐? 왜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야 하느냐? 그런 식으로 프레임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때 레이건 대통령이란 분이 나왔습니다. 보수주의 대통령이었지만 진보주의에서 더욱 좋아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신앙이 진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단지 교회를 다니는 대통령이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업적을 남겼는데 그렇기 때문에 그를 암살하려는 위기도 경험했습니다. 그가 암살의 위기를 벗어나고 돌아와서 했던 말입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같은 미래, 모두 살얼음판 위를 걷듯 조심조심 길을 찾아보지만, 전문가들에게도 길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건 우리 수준에서 그렇다는 이야기지, 전능하신 하나님의 수준으로 올라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일입니다. 주의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도 두렵지 않습니다.’

 

신앙은 이렇게 강력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걸 잘 모릅니다.

 

3.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_창세기6:14-21,로마서3:21-24,베드로전서2:6-8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내가 홍수를 땅에서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_창세기6:14-21’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러나를 꺼내드십니다. 그게 바로 언약입니다. 원래 언약은 양측의 합의하에 세워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 언약을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언약을 감당할 자격이 없으니 일방적으로 하나님 당신의 언약을 세웁니다. 노아의 방주를 누가 설계하시죠? 하나님께 직접 전부 설계해주십니다. 단 한 가지도 세상의 것이 들어가지 않고 단 한 가지도 노아의 의견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문을 어떻게 만들 것이다, 사이즈는 어떻게 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설계하셨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방주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언약 곧 구원의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방주 언약에 대해서는 다음 주에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노아가 이 언약을 받았고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_로마서3:21-14’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_베드로전서2:6-8‘

 

여기 보시면 예수를 믿지 않는 자를 가리켜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세계관과 가치관과 행동양식의 변화를 반드시 수반하게 되어 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못하던 자들이 너는 죽고 하나님과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로 변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 믿는 자의 행위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물론 실수나 실패는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삶의 전 영역에서 세상의 세계관과 가치관과 행동양식에 머물러 있으면서 나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다라고 우기는 것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그저 예수는 하나님이고 그 분이 실제로 존재하셨으며, 우리를 위해 갈보리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에 대한 지적 동의에 불과하다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천국에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 경외: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_창세기6:22,야고보서2:19,골로새서3:1-3,베드로후서3:10-14,2:5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_창세기6:22’

 

그런 노아의 삶을 성경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사실 이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온 땅이 부패한 그들이 볼 때 바보 같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살아? 어떻게 그런 가치관으로 살아?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살아?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 우리도 영광을 받고 우리도 기뻐야하지?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노아의 이름이 안식이잖아요. 안식.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다고 합니다. 방주를 자기 마음대로 짓지 않고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지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전도를 우리가 하려고 합니다. 교회도 우리가 하려고 합니다. 뭐든지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 바로 구원이고 바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명하신대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렇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경외의 삶입니다. 경외의 삶은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 마음그릇입니다. 둘째, 그릇에 담을 말씀의 은혜입니다. 셋째, 은혜로 회복된 거룩한 목표입니다. 그래서 적용을 해보면 죄인이다는 것을 우리는 종종 까먹습니다. 사실 까먹는 것이 아니고 죄가 숨는 것입니다. 죄가 숨으면 은혜를 멀리하게 됩니다. 은혜를 받으면 죄가 드러납니다. 마음이 은혜로 새롭게 되길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온 힘을 다해 회개해야 합니다. 그때라야 내 마음이 삽니다. 마음이 살면 보이는 것도 다르고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도 달라집니다. 변화가 시작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마지막으로 거룩한 목표입니다. 비전입니다. 꿈입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이 있나요?

저는 앞으로 우리 교회가 함께 꿈꾸어야 할 비전을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주실 것이라 확신합니다. 창세기 강해를 하면서는 어떤 비전을 지금 받고 있습니까? 방주가 곧 교회입니다. 교회가 소망이고 희망입니다. 그런데 제가 꿈꾸는 교회는 단지 교회의 건물, 시스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방주가 아닙니다. 사람입니다. 아벨, 에녹, 노아입니다. 교회를 섬겨야 할 분들이 많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주차도 관리해주면 좋을 것 같고, 교사도 더 필요하고, 주일점심 시간에 소그룹모임도 섬겨주면 좋겠다 합니다. 그런데 제가 그걸 시스템으로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 죄송하고 미안하지만 아직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것들을 하면서 말씀을 또 놓칠까 목사의 걱정이 아직 남아있는 것입니다. 지난주에도 제자훈련을 하는데 다들 커피마신다고 없습니다. 다른 일 한다고 없습니다. 제자훈련 이런 거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못 들으면 죽는대요? 노아시대의 사람들이 그런 것입니다. 점차 또 어떤 프레임이 공격해옵니다. ‘우리 교회가 이런 것은 해야 하지 않을까?’ 정말 생각해보세요. 진짜 무엇이 필요한가요? 노아가 필요합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_야고보서2:19’

 

노아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한분이라고 믿느냐 귀신들도 믿고 떠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여전히 귀신이 역사하죠?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_골로새서3:1-3’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_베드로후서3:8-13’

 

주의 날을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그때는 다 드러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질문합니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노아가 그랬습니다. 존 파이퍼 목사님께서 우리가 단지 무엇을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존재냐가 문제입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내가 바로 문제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떠난 존재는 심판과 멸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다시 모시라는 것입니다. 죄의 상태로 영원히 살지 말고 다시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새 마음을 주고 새 영을 부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거듭나라는 것입니다. 거듭남의 열매가 무엇입니까? 바로 경외입니다. 은혜가 주는 선물이 경외입니다. 은혜가 주는 축복이 경외입니다. 은혜가 주는 행복이 경외입니다. 하나님이 내 삶에서 완전하게 주인 노릇하는 것입니다. 명하신대로 준행하는 삶은 명하신 대로 늘 말씀을 듣고 상고하고 살았던 것이고, 준행했다는 것은 그 말씀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간 것입니다. 우리가 건물도 새롭고 새해도 되어가서 설레이고 그렇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실까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이 은혜로 새롭게 되길 힘써야 하고, 온 힘을 다해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하며, 온 마음을 다해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여전히 우리는 정성을 다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경외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온 땅에 죄악이 가득하였습니다. 단순히 정치, 경제, 문화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들 마음이 죄악이 가득한 온 땅 임을 깨닫습니다. 은혜가 아니면, 은혜의 말씀이 아니면 우리들 마음이 회복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심판을 통해 은혜를 깨닫게 하시며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맺으신 영원한 언약,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받아 우리 마음이 새롭게 되길 원합니다. 그래서 주의 날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을 사모하는 노아와 같은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이제 노아가 되어 방주언약을 따라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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