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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07 주일 2부 예배

< 주일 2부 예배 >

일시:  2014년 9월 7일

제목 :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있으라

말씀 : 사도행전 14:19-28

설교 : 오승주 목사



2014-09-07 주일2부예배.hwp



음성 다운로드 http://bit.ly/1nHKYsm

영상 다시보기 http://vimeo.com/105474508



가스펠교회 주일2부예배 20140907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만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미 구원을 받았습니다. 복음이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정확히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악용하면서 우리 교단이 문제있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저는 그런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겸손을 잃어버리고 교만할 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끼리 예수그리스도, 복음을 이야기 하는 것은 불신자들이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구원은 이미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고백하고 구주로 내 인생가운데 모셨으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성경은 예수님을 닮아야 하며,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칩니까?

그것은 우리가 받은 주님의 복음을 우리 남은 인생가운데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우리 인생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하기 때문에 인내하고 때로는 담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리스도인의 인생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사도행전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어떤 환경과 어떤 상황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것이 이유여야 하며, 그 발걸음이 최고의 축복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

 

1. 죄인을 살리기 위해

 

당연한 말이지만 이것이 가슴으로 부딪히십니까? 사도 바울은 돌에 맞아서 죽은 줄 알고 사람들이 성 밖으로 질질 끌어 내쳤습니다. 본래 유대인끼리 성 안에서 돌로 칠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를 돕는 사람이 하나 없었습니다. 사람이 한번 그렇게 당하면 겁이 나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들어갔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객기입니까? 고집입니까? 아니면 자신이 인정받으려고 했기 때문입니까? 그런 것들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인생의 말미에 제자인 디모데에게 남긴 유언에 그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_디모데전서1:15’

 

바울이 구원받고 나니 자신이 죄인중의 괴수였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다시 성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 안에 구원 받을자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신이 구원 받은 것이 너무 큰 은혜이기에 모든 사람이 받아야 한다고 디모데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말씀을 전파하라고 당부합니다. 다시 말해 사도바울은 사람들이 죄 가운데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죄인이 유일하게 살길이 이 복음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살 수 있는 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가족과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만남 속에 이 복음을 전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2. 의의 면류관을 위해

 

그런데 그 이유 뿐만은 아니었습니다. 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그토록 모진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 복음을 전한 이유는 믿음을 지키기 위함이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보세요.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_디모데후서4:7-8’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기에 그것을 바라보고 이겨냈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주님의 소원이자 명령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위해 사는 자에게 의의 면류관을 주심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예전에 어쩌다가 이런 설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천국에 가면 누구는 초가집에 누구는 대리석 집에 살고 누구는 주님 옆에 누구는 저 멀리 산다고 했습니다. 그게 천국입니까? 지옥입니다. 천국은 그런 곳이 아닙니다. 천국은 영적인 곳입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곳이기에 우리가 알 수 없는 곳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은 우리가 당연하게 복음을 전하며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의의 면류관을 모든 자에게 주시겠다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삶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다시 말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한 사람만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만나면 주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고 주님을 사랑하면 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복음을 전하고자 애쓰는 모든 자에게 의의 면류관을 예비해 놓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3. 주님의 명령을 위해

 

왜 복음을 전해야 합니까? 왜 우리는 이 복음을 전해야만 합니까? 우리의 주인 되신 아버지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명령이라 함은 어감이 부담스럽습니다. 왠지 거부감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하기에 주님이 부활승천하시기 전 마지막 메시지로 주신 것입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니라_마가복음16:15-16’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나를 위함입니다. 그런데 나뿐만이 아닙니다. 만약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나뿐만이라 생각했다면 우리는 구원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만약 모든 믿는 사람들이 바리새인처럼 생각했다면 이방인에게 이 복음이 전달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3세계 선교현장, 소외계층, 엘리트 현장에 복음을 전하는 것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우리가 먼저 복음을 받았는데 저들이 정죄가운데 죽어가고 있음을 뻔히 알면서 우리가 가만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복음을 주님의 명령으로 다시 말해 명령이 이루어질 때까지 유효한 약속으로 성취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기에 명령하신 것입니다. 내 부모가 죽어 가는데 복음을 전해도 되고 전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까? 죽어가는 중국 땅, 북한 땅에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복음전하기 위해 남은 인생을 가치 있게 준비하길 원합니다. 가스펠교회가 여러분과 함께 그렇게 준비할 것입니다.

 

.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1.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_사도행전14:19-20

본문 말씀을 깊이 보아야 합니다. 말씀에는 전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냥 인간이 대충 기록한 것을 하나님의 영감있는 말씀으로 성취되어지게 하신 것이 절대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_사도행전14:19-20’

 

지난 주 말씀에 루스드라에서 중요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 이어 루스드라까지 와서 방해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을 방해는 것이 어느 정도여야 하는데 생을 걸고 방해를 합니다. 이 지역은 유대인들이 사는 지역도 아니었고 자신들의 이익에 문제가 생기는 곳도 아니었기에 왜 방해를 했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전부 이유가 있었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 이미 제자들이 세워져간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바울이 떠난 후에도 역사 일어나니 그 분노와 그것을 막기 위해 보낸 것이 아닐까 합니다. 마귀는 다른 것에 흥분하지 않습니다. 수천 년간 이 일을 해 왔습니다. 마귀가 흥분하는 것은 딱 한가지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것에만 흥분하고 방해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아는데 왜 다른 것에 속습니까?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음에도 사도바울은 속지 않았습니다.

 

2. 주님의 사랑으로_로마서8:35-39

 

오늘 본문은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돌에 맞았을 때 바나바는 무엇을 했을까요? 그리고 제자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아마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환경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돌에 맞는 동안 아무도 막아주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때로는 외로울 때가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면 그럴 때가 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으며,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것 같아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아무렇지 않게 다시 돌에 맞았던 그 현장으로 힘든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도대체 왜 그랬을 까요? 그 이유가 로마서에 나와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_로마서8:35-39’

 

바울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주님께 받은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몸소 죄인 중에 괴수였던 자신을 위해 십자가사랑을 베풀어주심에 그 남은 인생은 온전히 그 일을 알리려 함에 드리고자 한 것입니다.

 

3.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_시편57:7

 

그렇게 더베에서 복음을 전하여 많은 제자들을 세우고 바울은 다시 루스드라와 이고니온 안디옥을 방문하여 제자들의 믿음을 확인합니다. 복음을 전하여 그리스도인이 된 제자들에게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고 이야기합니다. 중요한 것은 환난이 올 것을 예상한 것입니다. 우리가 제자가 맞습니까? 그렇다면 복음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면 우리는 마음에 믿음을 굳게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굳게 하지 않고 살다보면 나도 모르게 죄가 스며드는 것이 세상입니다. 우리 마음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니 굳은 마음으로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제가 가스펠 교회를 인도하면서 굳게 마음먹은 것이 있습니다. 진짜 교회다운 교회, 주님 앞에 올바른 교회로 인도받겠다. 사람들이 뭐라고 이야기하던 성경대로 하겠다. 많은 교회처럼 하지 않겠다. 주님이 주인 되어 주님이 마음껏 사용하시는 교회가 되겠다. 그것이 많은 교회들의 모양을 따라가지 않아 힘들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 하겠다는 믿음입니다. 혹 핍박 같은 것이 올수 있겠고, 혹 외로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상관없습니다. 오전에 나누었던 말씀처럼 저에게 주님의 사랑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제 남은 인생 그 은혜, 그 사랑을 다 갚을 길도 없습니다.

오늘 합숙훈련에 가시는 집사님들에게 부탁드립니다. 합숙훈련 가면 별 사람들이 다 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 떠나 살다가 이제 주님 만나려고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보지 않기 바랍니다. 짧은 기간 말씀에 집중하고 오랜만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말씀 듣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나는 가스펠 교회구나.’ 라고 생각하고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여러 사건, 환경, 무엇보다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저런 사람, 저런 환경이지 라고 생각합니다. 가스펠 가족들은 복음 전하기 위해 주신 것이라는 마음을 갖고 살아가기 바랍니다. 그러하기 위해 우리의 마음을 확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 고백으로 이번한 주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_시편57:7’

 

주님 복음을 전해야 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은데 환경탓, 상처탓, 사람탓만 하고 살았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사랑을 날마다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주님을 만나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이 내 삶에 드러나 나의 모든 발걸음 속에 주님이 증거되길 원합니다. 어떤 환경과 상황 속에서 주님의 복음이 전해져서 이 땅에 영적으로 소외된 그들이 주님 만나길 원합니다. 그 일에 나를 사용하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