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5일 1,2부 예배
본문: 출애굽기 2:1-25
제목: [모세 1]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찬송: 491장(저 높은 곳을 향하여)
1. 비돔 라암셋에서
• 다음 주면 벌써 성탄절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정신이 없어도 성탄의 의미를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교회를 처음 갈때 성탄절은 한달 내내 성극을 준비하고 칸타타를 준비하면서 밤을 새우고 그랬던 기억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권사님들이 떡꾹도 끓여주시고 연습하고 그랬습니다. 성탄절에는 부서별로 모여서 선물교환식을 하기도 하고 즐겁게 교회에서 보낸 기억이 많습니다. 이런 문화가 그립기도 한 요즘입니다. 그런데 이런 문화가 사라져서 단순히 아쉬운 것이 아니라, 성탄의 의미가 사라져가는 것이 아쉬운 것입니다. 이땅에 오신 예수님을 기뻐하고 감사하며 또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간절히 사모하던 성탄절의 의미를 다시금 회복하길 원합니다. 감사한 것은 청년부에서 토닥토닥이란 모임을 합니다. 성탄절을 맞이해서 함께 교제하고 위로하고 모든 청년들에게 주님 다시 오시도록 그런 모임들을 합니다. 우리 성가대도 칸타타를 한다고 합니다. 다른때는 아이들때문에 상황때문에 성가대를 못할지라도 성탄절 만큼은 함께 칸타타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면 좋을 거 같습니다. 우리는 성탄절 당일에는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합니다. 저는 예수님이 우리에게만 오신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소외된 자들에게 오신 예수님임을 믿습니다. 그들을 위한 성탄절이 되도록 매년 콘서트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물론 우리에게도 너무 좋은 시간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셨는데 여전히 그것을 흘려 보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 모습을 회개하고 이웃에게 전달하길 원합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출애굽기, 모세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천국을 향해 가는 우리의 여정 속에서 출애굽기는 어떻게 신앙생활애햐 할지 지혜와 용기를 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신 정도가 아니라 이제 어떻게 이끄시고 인도하시는 지 우리가 보길 원합니다.
주전 1200년대의 이스라엘은 애굽 땅에서 가장 잘 나가던 민족이었습니다. 그들의 리더 요셉은 애굽의 총리였고 그들에게 분배된 고센 땅을 잘 가꾸어 그들은 번영하고 성공하고 있었습니다.
“자, 우리가 그들에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데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_출애굽기 1:10”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_출애굽기 1:11”
그러나 요셉의 존재를 모르는 지도자가 등극하자(오늘 날 다수의 성경학자들은 람세스Ⅲ(1299-1232BC)로 봄), 이스라엘 민족은 준비되지 못한 채로 고통의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들은 축복의 땅 고센에서 오히려 중노동을 하면서 학대를 받는 운명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고통의 시간이 바로 약속의 땅을 향한 위대한 로드맵의 시작이 되리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모세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는 여정을 함께 발견하길 원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단편적인 교회를 다니는 정도가 아니라 내 환경, 상황, 고통속에서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걸 확인하고 믿는 믿음이길 원합니다.
이러한 고통의 시간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가지 관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2. 고통의 시간으로 말미암아
첫째, 소명의 시간입니다. 소명이 전혀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소명을 주셨습니다.
바로의 압제를 인해서 이스라엘은 출애굽의 소명을 발견하게 됩니다. 애굽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 만일 번영의 지속이었다면 그들은 결코 애굽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생이 내 마음대로 안되는 시간, 왠지 내 인생의 현실이 불만족스럽고 고통스러울때 하나님의 어떤 부르심이 있지 않는 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소명의 시간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찾아온 고통은 결코 작은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누가 봐도 이럴 수 있나 싶은 말도 안되는 고통이 갑작스럽게 찾아왔습니다.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주라_출애굽기 1:16”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이들을 살린지라_출애굽기 1:17”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_출애굽기 1:20”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은 번영케 하시고, 그들을 보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개입입니다. 이스라엘은 고통 중에도 오히려 번성하고 오히려 새 역사를 준비하는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번영이 그 보호가 어떤 목적으로 가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우리는 쉽게 하나님을 잃어버립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배하고 성경 읽고 기도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례전을 하고 성탄절을 기념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마저 행사가 되고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버립니다. 하나님께서 왜 하게 하셨는지 그 뜻을 알려고 하지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고통에는 반드시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 소명이 우리 가슴을 뛰게 하고 그 소명이 우리를 온전히 살게 합니다. 제가 목회자로 몇가지 다짐한 것이 있습니다. 제가 뭐 잘하는 것 없다는 거 여러분이 더 잘하시죠. 네 실수 투성이고 또 가금은 바보 같은 결정들을 내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더 기도하고 더 상의하고 혼자 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제가 신앙을 잃어버리면 그건 안되잖아요. 제 개인적으로, 그리고 우리 성도님들에게는 최소한 도덕적인, 윤리적인 면에서 시험은 들지 않게 해야 하겠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진실하고 솔직해야 하겠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저도 여러분도 하나님이 주신 소명으로 함께 교회를 세워가야겠다. 그래야 우리의 노년에 후회가 없지 않을까.
우리가 기도할때 오늘 서 있는 고통의 시간은 오히려 하나님의 부르심을 경험하고 약속의 땅을 향하여 출발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둘째, 기도의 시간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 가려 하노라_출애굽기 3:7-8”
고통의 시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고통이 없었다면 그들은 간절히 부르짖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연유에서든지 그들은 기도해야만 했습니다. 사내 아이를 죽이라고 하는 바로왕의 명령 앞에 기도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고통의 시간은 기도의 시간이어야 합니다. 걱정하고 염려한다고 나아질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_예레미야 33:3”
부르짖어 기도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부모에게 부르짖어 도움을 청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달려가지 않으시겠습니까? 손을 내밀지 않으시겠습니까? 구원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평범한 시간에는 평번한 기도를 합니다. 비상한 기도를 하면 비상한 응답을 가져옵니다. 다윗이 아비멜렉 왕 앞에서 체포될 위기를 맞이했을 때 그는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이 바로 시편 34: 6입니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_시편 34:6”
어떤 분은 그럽니다. 왜 예수님 믿는데 왜 교회다닌데 이렇게 힘드냐고? 여러분 힘들줄 모르고 예수님 믿으셨습니까? 여러분 이 길이 좁은 길이고 고난의 길인줄 모르고 오셨나요? 마귀가 불화살을 쏘아대고 우리를 무너뜨리는 줄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거 모르셨나요? 우리가 이 믿음의 길을 가는 것이 기도 없이, 눈물 없이 가능하다고 성경 어디에 써 있나요?
이렇게 주의 백성들이 고통 속에서 기도하니 마침내 모세가 등장하고 출애굽이라는 구원의 드라마가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억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시도록 기도하길 원합니다.
3.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저는 2022-23년이 제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개척때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사실 외적으로는 고통스러울 일이 없어보였을지도 모릅니다. 제 나이가 40대 후반에 꾸준하게 교회는 성장하고 있었고, 또 한단계 도약하기 위해 많은 도전을 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평안이 없었고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이 제 가슴을 옥죄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제 양심에 계속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올바른 길로 가야 한다고 말입니다. 성도들을 위한 목회를 하라고 말입니다. 내 몸된 교회를 위해 믿음의 길을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동안 어쩌면 편하게 제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다 해봤고 또 다 잘되었기 때문에 그 음성에 순종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어떤 환경이 되더라도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사람들이 말하는 최악의 상황이 되더라도 순종하겠습니다. 친하다 생각하는 친구들도 떠나갔습니다. 그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지만, 저는 기도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위해 성경과 좋은 목회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저는 여러분에게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교회를 기억하신 시간입니다.
저는 올해가 가장 행복한 한해입니다. 목회자가 주의 종으로 낮아져 성도들과 호흡하면서 함께 기도하고 섬기는 것이 이렇게 좋을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가슴 뛰는 소명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_출애굽기 2:24”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시도록 목회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끄시도록 기도할 것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그렇게 할 것입니다. 우리가 매월 마지막 주에 심야기도회를 합니다. 단 2시간 정도 기도하는 시간이지만, 그것이 별거 아닌 거 같이 보이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이 듣고 계신다. 그렇다면 기도해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지 교회의 리더들이 장로님 권사님들이 기도하도록 기도의 자리를 가지도록 해야겠다. 신앙의 허수는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사역은 조금 못할지 모르지만, 다른 사역은 조금 늦어질 수 있을 지 모르지만, 기도는 늦어지면 안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도록 우리가 다시 하나님앞에 나아가야겠다.
여러분, 믿음으로 살아가면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믿음을 선택하면 환경과 상황보다 하나님이 먼저 보이게 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보이면 우리는 담대하게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으로 가는 여행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모세처럼 말입니다.
찬송 저 높은 곳을 향하여를 한주 내내 부르고 묵상했습니다. 원래 다른 찬양을 끝나고 부르려고 했는데 오늘 이 찬송으로 우리의 믿음을 고백합시다. 지금 우리교회가 어렵고 또 우리의 삶들이 녹록치 않지만, 우리의 마음이 천국에 있다면 우리의 삶은 분명 승리하는 신앙생활이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교회가 좋은 시스템과 좋은 시설 언젠가는 있으면 좋겠다 생각을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 우리의 소명을 보시고 기억하시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시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놓치 않으시는데 그 누가 우리를 어찌 하겠습니까.
'주일예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5-01-05 주일예배 (1) | 2025.01.05 |
---|---|
2024-12-22 주일예배 (0) | 2024.12.22 |
2024-12-08 주일예배 (0) | 2024.12.08 |
2024-12-01 주일예배 (0) | 2024.12.01 |
2024-11-24 주일예배 (0) | 2024.1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