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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5-01-05 주일예배

1월 5일 1,2부 예배
본문: 출애굽기 4:18-31
제목: [모세 4] 온전한 순종
찬송: 35장(큰 영화로신 주)


1. 어정쩡한 신앙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 소신 있게 사는 사람입니다. 책 한권 읽은 사람이 행동으로 바로 옮기는 사람, 정신이 이상한 분이 소신을 가지거나 고집을 피우는 사람입니다. 이런 분들은 가정이나 공동체를 어렵게 하죠. 잘못된 신앙인데 열심히 하면 교회에 어려움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가 오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내 소신과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내려놓고 확인 받아야 하고, 십자가 앞에 확인해야 합니다. 즉, 말씀으로 교정받고 또 교정받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걸 쉬면 안됩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으로 사는 것이 신앙생활인데, 주님의 결정과 판단이 내 삶에 살아 움직이도록 해야 합니다. 

저도 목사인데, 제 마음대로 결정하고 싶은 것이 왜 없겠습니까? 그래서 주님께 계속 질문합니다. 치열하게 확인하고 말씀으로 교정받고 그래서 기도하고 또 기도합니다. 심지어 기도도 목적이 분명하거나 욕심이 많으면 그 기도도 잘 못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럴때는 주님의 뜻을 알게 되길 원합니다.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병든 기도를 수십년 하는 것도 훨씬 더 빠릅니다. 어리석은 생각에 소신과 고집을 피우면 삶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겠습니까? 제가 사역을 하면서 진짜 많이 보잖아요. 꼭 끝까지 가봐야 하는 분들이 계셔요. 정말 어리석죠.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서 내가 변화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죠? 

성경은 배웠지만, 성경이 내 안에 없는 사람, 예수님을 안다고 하지만 예수님을 실제 경험하지 못한 사람, 이런 사람들이 기독교를 공격하는 안티기독교입니다. 어정쩡한 신앙인들입니다. 어정쩡한 상태입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어정쩡한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데, 그렇다고 온전히 순종을 하는 상태는 아닙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셨는데, 아직 내 뜻이 더 강하고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교회와서 예배는 드리고 하나님이 은혜 주실 것을 알고 교제나 사역을 하지 않고 갑니다. 그래놓고 어디 가면 이야기하죠? 내가 교회를 다녀봐서 아는데!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명을 감당하고 싶은데 아직 하나님의 온전한 힘으로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내가 내 힘으로 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면서 정확하게 말씀으로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나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내가 잘못된 신앙에 소신을 더해서 살았구나 모세가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 그러지 못합니다. 

‘모세가 그의 장인 이드로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형제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이 아직 살아 있는지 알아보려 하오니 나로 가게 하소서 이드로가 모세에게 평안히 가라 하니라_ 출애굽기 4:18’

모세는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직접 만나고 하나님의 소명을 받았음에도 이드로에게 가서 애굽으로 가는 이유를 내 형제들이 살아있는지 알아보려 간다고 합니다. 어정쩡한 상태입니다. 가서 사명도 감당하고 싶기도 한데, 여전히 애굽이 두렵고 더 크게 느껴지는 상황입니다. 

‘여호와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목숨을 노리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_출애굽기 4:19’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네 목숨을 노리던 자가 다 죽었다. 모세 너를 아는 자가 없다. 40년이나 지났다. 그러니 애굽으로 돌아가라!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그가 백성을 보내 주지 아니하리니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보내 주어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보내 주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_출애굽기 4:20-23’

모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가족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습니다. 이제 조금 하나님을 의지하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손에 붙잡으셔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은 가서 이적을 행하라고 하시면서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고 하십니다. 바로가 그들을 보내주어 여호와를 섬기게 해야 하는데 그것을 거절하면 바로의 아들과 장자를 죽이겠다고 하라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구원에 대한 약속입니다. 누가 구원을 받습니까? 이스라엘 즉,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구원을 받습니다. 그들이 장자이고 아들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 십보라가 돌칼을 가져다가 그의 아들의 포피를 베어 그의 발에 갖다 대며 이르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여호와께서 그를 놓아 주시니라 그 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 때문이었더라_ 출애굽기 4:24-26’

그러면서 24절부터 갑자기 모세를 하나님이 죽이겠다고 하십니다. 아니 죽이려고 하십니다. 이때 그의 아내 십보라가 돌칼을 가지고 아들에게 할례를 행합니다. 급하게 말입니다. 그리고 그 포피를 가지고 모세에게 당신은 참으로 내 피남편입니다. 그 말은, 당신은 이제 언약의 사람입니다. 

2.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_출애굽기 2:24b’ 여기서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언약은 무엇일까요?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_창세기 17:9b-10’

바로 할례입니다. 할례를 다 받는 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라 말씀하셨습니다.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_창세기 17: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는 백성 중에 끊어지리니!! 언약을 배반한 자이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로마서 2장 28-29절에는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고 합니다. 예례미야4:4에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고 합니다. 에스겔 36:26에는 또 내가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라고 하십니다. 누가복음 24:45에 이제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라고 합니다. 즉, 할례는 육신의 굳은 마음을 제하고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은혜를 받고 새 영이신 성령을 받아 새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미디안 광야에서 신앙생활을 너무 잘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자녀에게는 할례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애굽에서 고통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러 가는데 정작 자신의 아들들에게는 구원을 상징하는 할례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말일까요? 교회는 다녔는데, 자녀에게 언약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정쩡한 신앙생활을 한 것입니다. 여전히 고집과 신념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 애굽으로 가족들을 데리고 출발하는 데도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모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커다란 사명, 대단한 일을 하고자 하는 뜨거운 마음은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살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어찌 그런 일이 벌어질까? 나도 예전에 해봤는데 안되던데 이런 마음이 모세에게 있었을 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지팡이는 손에 들고 있었지만, 애굽에 가기는 가지만 가서 분위기나 살펴보자 이런 마음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변치 않습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속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면 하나님께서 이 땅 가운데 구별하시는 축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모습을 보시면, 교회도 잘 다니고 헌금도 잘하고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는 소명으로 확신은 없습니다. 하든지 말든지, 지금 내 삶도 힘들어 죽겠는데 이런 상황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3. 온전한 순종이 온전한 믿음이 됩니다. 

1) 영적 성품이 바뀌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신앙의 본질은 변화입니다. 이것을 따져야 합니다. 과거의 나와 비교해야 합니다. 그런데 과거의 나를 드러내는 것을 잘 하지 않습니다. 사실 과거가 드러나는 것이 창피한 것이 아니라 과거와 지금의 내가 달라지지 않았다면 그것이 창피한 것입니다.한 자매가 작년 이 맘때 저에게 자기의 신앙을 성장시키기 위해 저에게 매일 카톡으로 자신의 삶을 보내옵니다. 그래서 제가 왜 저한테 보내냐, 보내지 마라. 제가 잘 보지도 못한다. 그런데도 계속 보냅니다. 1년 넘게 보냅니다. 어제도 보니까 이 분이 바뀐 것이 있는데, 이제는 싸우고 있습니다. 제게 보내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사는 거예요. 이 친구가 다른 사람하고 다른 점은 싸우는 체질이 된 거예요. 자신을 체크하고 점검하지 않으면 그냥 감정대로 자기 뜻대로 살아갑니다. 내가 고기를 좋아하는 것과 고기를 좋아하는 체질은 다릅니다. 그렇죠? 그러나 반대인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상처 때문에 어떤 무엇 때문에 신앙의 싸움에서 떠나는 거예요. 그러면 신앙생활이 평생 어정쩡하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순종입니다. 한번도 시도 안해본 사람은 아무리 수백번 고백을 해도 안한 것과 똑같습니다. 평생 고민만 하다가 맙니다. 한번의 순종이 중요합니다. 한번, 두 번, 세 번 하다보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되면 영적 성품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생각했을 때 모세가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데도 여전히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았잖아요. 이런 사람들 정말 많습니다. 은둔 생활하면서 혼자 신앙생활 잘해보자? 절대 안됩니다. 성품이 없는데 어디가도 실패합니다. 체질이 안되면 실패합니다.  

2) 사명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직까지 목적이 없는 거예요. 제가 오래 전에 다른 교회에 강의를 하러 갔는데, 저를 소개해주신 목사님 그냥 가스펠교회 오승주목사님이십니다. 그럼 좋은데 이 시대의 예레미야, 이 시대의 세례요한과 같은 우리 목사님 이러시는 거예요. 제가 얼굴이 화끈 거려서 그날 설교를 완전 이상하게 했습니다. 예레미야나 세례요한은 사명이 분명한 사람들이잖아요. 흔들림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엄청 칭찬하셨잖아요. 그런데 저는 사명을 찾아보기 어려워서 하나님에게 어정쩡합니다. 주님께 목적이 있어야 하는데, 내 기쁨을 위해 살아요. 그러니까 그것은 언약이 아니잖아요. 하나님께 인생을 맡기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준비하면서 기다리며 살지 않는 거예요. 사명이 없으니까 생각이 많고 핑계도 많습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은 심플합니다. 시간이나 삶을 심플하게 씁니다. 예수님께 초점이 맞춰지면 단순합니다.  
미친놈 이론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한 조직이 발전하려면 미친놈을 찾아야 한다고 해요. 사우스웨스트항공사 사람들이 줄을 서서 타는 항공사인데, 여기 회장이신 허브 켈러허는 혁신은 즐거워야 한다라는 마인드가 있는데 승객을 즐겁게 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스튜디어스를 뽑을 때 웃기는 사람을 뽑은 거예요. 그 옛날에 희한한 행동을 많이 하는 거예요. 저 비행기만 타면 즐겁고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사람이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하고 거기에 미치면 되는 거죠. 여러분, 나중에 여호수아 갈렙이 하나님의 약속에 미쳤죠. 예레미야 세례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미쳤죠. 바울 보세요. 예수님께 완전 미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쓰임받았는지 성경과 교회사는 증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왜 예수를 믿는지?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왜 힘들고 일이 잘 안풀린다고 불평하고 살아갈까요? 덜 미쳐서 그렇습니다. 세례 요한처럼 기쁘고 감사할 만큼 하나님께 미쳐야 하나님께 붙들려서 살고, 롱런할 수 있습니다. 한철 신앙, 한철 믿음이 아니라요. 

3) 마지막으로 신앙 훈련이 필요하다. 제가 책 한권을 선물 받아서 읽었는데 ’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이라는 책입니다. 저는 우리교회 성도님들이 성경을 읽고 온전한 믿음을 배우길 바라면서도 또 건강도 하셨으면 좋겠어요. 여러분이 평생 건강하게 살아서 하나님을 잘 섬기길 원해서 이 책 추천을 합니다. 그런데 책 추천하려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고 이 책의 저자이신 아산병원 정희원교수님은 노년 내과시더라고요. 이분이 하시는 강의를 이번 주에 몇 개를 들었습니다. 이분은 우리가 세상에서 파는 영양제...비싼 영영제를 먹지 말고, 그 시간에 운동을 배우라는 거예요. 운동하는 훈련을 만들어서 나이가 들어서 자연스럽게 운동을 하면 그게 성공한 삶이라는 거죠. 젊을 때 운동을 배우지 않으면 나이가 들어서 운동을 할 수 없을 만큼 몸이 연약해져버린다는 거예요. 그래서 쓸데 없는데 돈쓰지 말고 운동을 배우라고 합니다. 그러면 나이가 들어서 운동을 하는 삶을 살고 그렇다면 엄청 힘있는 삶을 산다는 거예요. 자 신앙은요? 그리스도인은 일반인보다 더 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빛과 소금으로 살수 있잖아요. 그게 힘이잖아요. 누군가를 구원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해요. 모세가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심부름을 하러 가는데 저 못가요? 저 못해요? 심지어 자기 아들에게 언약도 가르치지 않을 만큼 확신도 없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네팔이나 인도에 학교를 세우고 아이들 공부도 지원하고 그러는데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그거 하나 갈 여유가 없고 도와줄 여유가 없습니다. 그 말은 우리가 힘이 없다는 말이지요. 여러분이 여러분 이웃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할 수 없는 신앙의 확신도 없다면 그것은 우리가 훈련이 덜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2025년에 훈련합시다. 한달, 두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영적 성품이 바뀌도록 훈련합시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 감사가 넘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말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전도도 하고 하나님의 나라도 확장하는 일에 쓰임 받을 수 있잖아요. 선교적 교회, 선교적 성도로 살 수 있잖아요. 세상이 아무리 타락하고 거대하고 대단해도 하나님의 약속이 훨씬 더 크잖아요. 잘못된 신앙으로 살지 말고, 성경적인 신앙으로 배우고 훈련 받아 완전히 승리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짧은 오늘 본문 이야기를 통해 큰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말씀을 허투루 대충 읽고 적용해서는 안됩니다. 내 생각대로 내 마음대로 신앙생활을 해서도 안됩니다. 순종을 통해 우리의 성품이 바뀌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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