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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5-02-23 주일예배

2월 23일 1,2부 예배
본문: 출애굽기 12:1-14
제목: [모세 10] 사탄은 왜 예배를 방해하는가?
찬송: 9장(하늘에 가득 찬 영광의 하나님)
찬양: 나는 주를 섬기는 것에 후회가 없습니다.(손경민)

1. 출애굽의 목적은 제사입니다.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_이사야32:8’

하나님은 항상 존귀한 목적을 가지고 계시고, 우리로 하여금 존귀한 일을 하게 하십니다. 그 일은 사필귀정(事必歸正),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께서 그간 버텨주시고, 또 올바른 신앙의 길로 가고자 애써 주신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말씀의 중요한 내용 처럼 하나님의 목적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종, 백성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섬긴다라는 단어는 아바드라고 하는데 희생을 드린다, 경배를 드린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섬기다는 곧 제사를 뜻합니다. 예배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예배가 섬김입니다. 

제사하기 위해 애굽에서 나가야 하는데
바로의 첫 번째 반응은 도대체 여호와가 누구냐?였습니다.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4번째 파리 재앙 이후에는 애굽에서 섬겨라, 여기서 제사를 드리라고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제사하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8번째 메꾸기 재앙 때는 처자들은 나두고 가서 예배하라고 합니다. 아닙니다. 모든 언약의 백성이 다 가서 예배해야 합니다.
9번째 흑암의 재앙 당하고 남녀노소 가서 예배 해라 그러나 가축은 안된다. 아닙니다. 하나님께 제사할 번제물을 주셔야 합니다. 왕이라도 주셔야 합니다. 단 한마리도 남김없이 가져다가 여호와를 섬길 것입니다. 
10번째 마지막 재앙까지 당하고 그때서야 다 나가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시죠? 이스라엘 백성이 제사하러 가는데 또 바로가 마병을 동원해서 이스라엘을 죽이려고 쫓아옵니다. 

바로는 사탄의 하수인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예배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걸 알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공예배는 무엇인가? 우리가 이렇게 예배하는 예배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살펴봐야 합니다. 성도들이 함께 회집해서 예배하는 예배입니다. 나눔터가 예배하면 소그룹예배가 되고, 가족들끼리 예배하면 가족예배, 개인이 예배하면 개인예배 혹은 묵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예배를 삶의 예배라고 합니다. 삶의 예배를 가지고 악의적으로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세력들은 공예배를 부정하기도 합니다.  

시대가 어떻다, 상황이 어떻다, 이런 이야기들을 계속합니다. 상황도 시대도 이해가 됩니다. 거기에 이견이 없습니다. 그런데 논점은 공예배가 흐트러지는 것입니다. 그들이 주로 인용하는 성경 구절이 요한복음 4장 23-24절에 보면 사마리아 연인 보고 이 산도 아니고 저 산도 아니고 영과 진리로 드리라고 하시죠. 그래서 온전한 심령으로 온전한 마음으로 예배하면 된다고 주장하는데 요한복음 4장에 대한 오해와 무지에서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참 예배가 뭐죠? 여기서 참은 가짜와 반대가 아닙니다. 경건한 예배가 아닙니다. 온전한 예배가 아닙니다. 여기서 참은 그림자와 반대입니다. 구약의 그리심산, 시온산, 성전에서 하는 양을 잡아서 드리는 제사의 반대인 참입니다. 그래서 참은 실체입니다. 곧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참 성전이고, 참 제물이잖아요. 그래서 약속의 실체이신 예수님 안에서 드리는 예배를 참 예배라는 것입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성령이고, 진리는 참 곧 예수님입니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예배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림자예배는 끝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본문이 공예배를 반대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참예배의 방법은 공예배라는 것입니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는 주님의 몸된 교회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영은 성령이고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영과 진리는 주님과 연합을 뜻합니다. 우리가 연합하여 예배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어떻게 예배했습니까? 각자 알아서 예배하라고 했습니까? 참예배를 위해서 교회가 모였습니다. 나 혼자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도시마다 모여서 성찬을 행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기도하고 구제하고 문안하고 축복하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대로 교회가 형성된 것입니다. 

하나님 어디나 계시니까? 어디서나 예배하는 것은 개인예배죠. 삶의 예배죠. 당연히 해야죠. 그러나 공예배는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자라고 한다면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예배입니다. 왜요? 구원의 목적이 예배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사역도 예배로 평가합니다. 예배가 안되는 성도가 있다면 심방을 가고, 사역을 해야 합니다. 권면하고 도움을 줘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신실한 사역자들이 준비되어지고, 예배를 통해 구원의 열매가 드러납니다. 이 예배는 결코 한시간짜리 행사가 아닙니다. 

출애굽의 목적이 제사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에 속하여 드리는 참 예배입니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다니엘 보세요? 예배를 드릴 수 없는 포로였잖아요. 그럼 포기했습니까? 느헤미야 보세요. 그 예배 회복하기 위한 성경이잖아요. 그러니까 예배가 구원의 목적입니다. 성경 전체를 보셔도 그렇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2. 유월절을 통해 평생 기억하라!

출애굽기 12:14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킬지니라’

신명기 16:3 ‘유교병을 그것과 함께 먹지 말고 이레 동안은 무교병 곧 고난의 떡을 그것과 함께 먹으라 이는 네가 애굽 땅에서 급히 나왔음이니 이같이 행하여 네 평생에 항상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이니라’

유월절의 내용을 살펴보면 첫 달 10일에 어린양을 준비하라(1년 된 숫양, 숫염소)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14일에 잡아서 좌우문설주, 인방에 피를 바르라고 하셨습니다. 왜 어린양의 피를 바르게 하셨습니까? 유월절 희생된 어린 양은 이스라엘에서 죽어야 할 장자를 대신해서 죽은 제물입니다. 이것이 바로 대속의 원리입니다. 너희가 출애굽한 이유는 유월절 제물로 인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피를 바르니까 죽이는 사자가 피를 보고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 의미를 passover 유월절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는 죽음을 이기는 피입니다. 그래서 어린 양은 예수그리스도의 예표! 하나님께서 친히 유월절 어린양이 되셨습니다. 우리도 다 죽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우리가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시 살게 된 것입니다. 

어린 양을 먹으라!!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됩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 되고 그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됩니다. 어린 양의 피 안에 있을 때만 안전합니다. 그래서 집 밖에 나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의 은혜 항상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잊어버리면 사탄의 밥이 됩니다. 

또 18절에 보면 무교병을 14일 저녁부터 22일까지 7일 동안 먹으라고 했습니다. 무교병은 발효시키지 않는 빵입니다. 출애굽하면서 급하게 나온 것을 기념한 것입니다. 급하게 나와서 떡 반죽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그냥 반죽만 들고 나왔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급하게 나온 의미? 왜 기억해야 합니까? 그날 그때 나갈 줄 알았더라면 준비했겠죠? 그 믿음이 있으면 다 짐 싸고 했겠죠? 전혀 예상도 못했습니다. 준비하지도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구원이 우리가 계획하고 준비하고 작정해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되어지는 일이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천로역정에 보니까 급하게 갑니다. 신앙생활을 준비해서 하겠다는 없습니다. 누가 계획을 세우고 갑니까? 우리 교회요? 개척해서 지금까지 이런 경험들 할줄 상상이나 했습니까? 앞으로 우리교회가 어떤 교회가 될까요? 계획 못세웁니다. 그런데 소망을 가지는 거예요. 모세처럼. 말씀하셨기 때문에,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걸 믿는 자가 복을 받는 거예요. 고난? 어려움? 수많은 고초를 겪을 수 있겠죠. 안디옥교회처럼, 사데교처럼요. 가면서 준비하고 가면서 깨닫고 연단받아 가는 거예요. 그래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힘들면 엎드리고 기도하고, 감사할 일이 있으면 나누고 영광돌리고, 우리가 행여 실수하면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그래서 교회는 예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로 가야 합니다. 그걸 아신다면 여러분에게 가스펠교회는 그냥 다니는 교회가 아니라 주님의 몸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와 함께 여러분 인생도 변화되고 성장하고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길 축복합니다.  

또 고기를 불에 구워서 먹으라고 했습니다. 보통 고기는 삶아 먹어서 요리를 해서 먹을텐데 구워서 먹으라 다 출애굽의 급박함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뼈를 꺽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뼈라는 것은 존재의 본질을 상징합니다. 성경의 저주가 뼈를 꺽는 것, 가루를 만드는 것은 회복할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는 저주입니다. 유월절 제물이 자신의 죄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속의 죽음입니다. 영원히 저주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죽으실 때 뼈가 꺽이지 않으셨습니다. 

고기를 먹을 때도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고 밤에 다 먹으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밤에 다 이루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쓴 나물의 의미는 애굽에서의 쓴 인생을 기억하고 회상하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이 예식을 행하고, 이 사실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12:27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

3. 예배는 그래서 감사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제사는 그냥 제사가 아니라 희생제사입니다. 희생하는 제물이 있는 제사라는 것입니다. 그냥 예배가 아닙니다. 희생하는 제물이 있는 예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제물이 되셔서 오늘 드리는 이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그래서 감사로 드리라고 신약성경을 가리치고 있습니다. 구원의 감사입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_시편 50:14-15’

서원을 갚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서원(약속을 기억)하고 예배하면 내가 너를 건지겠다, 건져서 네가 다시 나를 영화롭게 할 만큼 축복하겠다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시편 50:8에 ‘나는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는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고 하셨습니다.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가 항상 내 앞에 있어야 합니다.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제물 되셨으니 이제 번제는 매일 작은 문제가 있을 때 마다 제물을 태워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 사실을 기억하고 예배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족한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이제 그걸 기억하는 시간이 예배입니다. 

감사로 예배하면 우리는 우리 삶에서 완전히 승리할 것입니다. 감사는 예수 그리스도가 제물이 되셨다는 대속의 의미를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그걸 알지 못하게 합니다. 감사로 예배하면 승리하니까 그걸 못하게 공예배 가지 말아라, 처자식 데리고 가지 말아라, 가축은 두고 가라, 계속 예배를 방해합니다. 예배는 다 갖추고 정리하고 드리는 것이 아니라 급하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하면서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준비가 되고 그리고 결국 축복을 받습니다. 예배로 신앙이 세워집니다. 예배로 교회가 세워집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감사로 드리는 예배가 되면 저는 약속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근거로 말입니다. 여러분 인생이 정말 놀랍도록 축복될 것입니다.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 드러낼 전도자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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