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2014-12-21 주일 1부 예배

< 주일 1부 예배 >

일시:  2014년 12월 21일

제목 : 예수님을 만나세요

말씀 : 마태복음 11:1-6

설교 : 오승주 목사



2014-12-21 주일1부예배.hwp




음성 다운로드 http://bit.ly/1JDOjG1

영상 다시보기 http://vimeo.com/115089354



2014-12-21 주일 1부 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 세례요한의 신앙관

 

사실 세례요한은 대단한 인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의로움으로 인해 옥에 갇힌 그가 예수님에게 제자들을 보낸 장면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통해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_마태복음11:3’

 

세례요한은 아마도 직접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옥에서 들으니 예수님이 대단한 것입니다. 죽은자도 살리고 나병환자도 치유하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오늘 사건이 왜 조명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제자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진짜 인가 가짜인가 타령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질문을 가지고 온 세례요한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중요한 답변을 하여 돌려보내셨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제 생각에 아마도 세례요한이 못 깨달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답변은 두 번째 대지에서 살펴보려 합니다. 그렇게 제자들을 보내고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에게 세례요한에 대해 말씀을 합니다.

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오늘 말씀이지요. 우리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서 우리의 신앙관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신앙관이 틀렸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 의의 신앙_마태복음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_마태복음11:11’

 

많은 목사님들께서 예수님이 세례요한을 칭찬하는 장면이라고 하나 저는 아무리 읽고 또 읽어도 이것은 세례요한을 칭찬하는 듯 하지만 깨닫지 못한 세례요한을 책망하는 것으로 보일뿐입니다. 세례요한은 의를 위해서라면 물, 불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분봉왕 헤롯이 불륜을 저지르는 등 의롭지 못했기에 그를 비판하다가 감옥에 가있으니 그보다 더 의로운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그보다 의로운 사람은 없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의를 위해 생명을 걸었습니다. 예수님도 그를 칭찬하십니다. 여자가 낳은 인물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이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다고 하십니다. 무슨 말씀일까요? 천국이 기준이 된 신앙이 아닌 것입니다.

의로운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성격이 타고나게 의로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불도 지르고, 그래서 데모도 합니다. 틀린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그런 사람들이 있어야 이 사회의 균형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그런 분들이 계십니다. 막 못 참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똑바로 신앙생활하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결국 자기가 그렇게 되는 경우에는 완전 낙심해 버립니다. 신앙생활이 끝나버립니다. 그것이 과연 신앙일까요? 세례요한은 천국을 기준삼아 신앙생활을 했을까요 이 땅을 기준삼아 신앙생활을 했을까요?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신앙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교회는 신앙을 배우는 곳이어야 합니다. 의를 위한 삶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이 내 가정과 내 후대를 살릴 수 있을까요? 사실 세례요한은 굉장히 섭섭했을 것입니다. 능력을 가진 예수님이 불의한 분봉왕에게 대적할 때 함께하지 않고 갈릴리를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제자들을 보내 당신이 진짜가 맞느냐 따지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는 헤롯왕에 대한 분노로 인해 결국 죽임을 당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보다 더 중요한 죽음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세례요한이 알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는 길이 어떤 길인지 보지 못한 것입니다. 진짜 의가 무엇인지는 모른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는 구속사였습니다.

 

2. 율법의 신앙_마태복음11:13-14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사람이니라_마태복음11:13-14’

 

율법이 이제 끝났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율법을 붙잡고 있느냐고 비난하시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율법의 신앙을 가졌습니다. 사실 율법은 참으로 좋은 단어이고 좋은 것입니다. 그것 역시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몽학선생으로 우리가 죄인됨을 깨달아 그리스도께 안내하려 하는 역할을 합니다. 율법이 없으면 죄인인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십계명 같은 율법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율법에 따라 사역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렇게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율법에 따라 사역하지 않으신 예수님이 못마땅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그리스도이심을 몰랐던 것입니다. 우리도 가끔은 그런 실수를 합니다. 우리의 수준에 예수님을 가두려고 합니다. 세례요한은 병도 고치고, 죽은 자도 살리시는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 정도 능력이면 이 갈릴리를 뒤집고도 남을 텐데 왜 도망갔는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3. 슬픔의 신앙_마태복음11:16-18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_마태복음11:16-18’

 

그러면서 예수님은 중요한 비유를 들고 계십니다. 그 세대를 비유하셨습니다.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서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 슬피 울어도 가슴을 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아마 지금 이 시대가 그런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피리를 불어도, 슬피 울어도 반응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무엇에 반응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세례요한은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습니다. 대단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세례요한을 보고 귀신이 들렸다고 했습니다. 비웃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신앙을 잘 몰랐나봅니다. 이 시대는 의로움으로 율법으로 세례요한처럼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며 슬퍼하여도 변화되지 않는 세대입니다. 어쩌면 이 세대뿐만이 아닌듯합니다. 어떻게 해야 그들이 변화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중요한 답을 해주십니다. 예수님이 붙잡으신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구속사입니다. 구원의 역사입니다. 그 관점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의로운 신앙이 아닌, 율법의 신앙이 아닌, 슬픔과 애통의 신앙이 아닌 예수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그 답을 찾으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주신 답을 우리는 붙잡을 것입니다.

 

. 예수님을 만나세요.

 

1. 보게 하시는 예수님_마태복음11:5a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_마태복음11:5’

 

실제로 보지 못하는 사람은 참으로 답답할 것입니다. 답답한 정도가 아니라 힘이 들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일 앞을 보지 못한 다면 매우 낙심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들은 세상 방식에 찌들어서 성공과 이익을 바라볼 뿐, 허황된 꿈과 세상행복을 바라볼 뿐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맹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한줄기 빛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는 예수님을 만나고 빛을 보았습니다. 내 인생을 비추고 계시는 예수님을 만나니 죄인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저를 사랑하셔서 구원해주러 오신 예수님이 보였습니다. 그 예수님이 빛이 되셔서 우리 가정도 비추고 내 인생도 비춰주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니 드디어 보고 있습니다. 그때는 잘 몰랐는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주님은 항상 제 인생길을 비추고 계셨습니다. 이제는 그것이 보입니다. 그것이 보이니 세상것이 보이지 않고 귀하지 않습니다.

더러운 곳에 빛을 비추면 깨끗해지나요? 아닙니다. 청소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청소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둠으로 돌아가면 다시 더러워집니다. 그래서 매일 예수님을 봐야 합니다. 예수님을 우리가 빛 되어 세상을 비추길 원하십니다. 영적인 눈을 뜨셔서 세상의 더러운 것을 보지 마시고 천국을 보시기 바랍니다.

 

2. 걷게 하시는 예수님_마태복음11:5b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_마태복음11:5’

 

예수님은 우리를 걷게 하셨습니다. 그전에는 못 걸었습니다. ‘목사님 우리가 이렇게 튼튼한 다리로 걷고 있는데 왜 못 걸었다 하십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영적으로 앉은뱅이처럼 살았지 않습니까? 사단에게 억눌려서, 죄와 저주에 억눌려서 앉은뱅이로 살았습니다. 주님을 만나고 드디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고, 순례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일류라 하면서 얼굴 예쁘고, 스펙 좋고, 배경 좋으나 그들은 자기 인생을 걸어본 적이 없습니다. 운명, 사주, 팔자에 얽매여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그들은 하나님과 상관없으니 막 사는 것입니다.

 

3. 치유하시는 예수님_마태복음11:5c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_마태복음11:5’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습니다. 우리는 치유할 수 없는 영적 문둥병자로 살아왔습니다. 병이 들었기에 늘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작은 병도 힘들텐데 성경은 가장 고통스러운 문둥병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문둥병은 저주받은 병이라 하였습니다. 고칠 수 없는 병이고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그런 병에 걸려있다고 하십니다. 우리 인생은 그런 병에 걸려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재물의 병에, 어떤 사람들은 명예의 병에, 어떤 사람들은 인기의 병에 걸린 것입니다. 그런 병은 다른 병을 만들어냅니다. 보이지 않는 정신병도, 보이는 수많은 질병들도 만들어냅니다.

잘될 것 같은데,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정도면 됐어, 성공하면 되지.’라고 하나 그 병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살도 하고, 그래서 포기하고 살기도 하고, 그래서 쾌락이 유일한 답으로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세례요한은 싸우면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치유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치유 받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세상을 버릴 수 있습니다.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예수님을 만나면 모든 것을 초월하게 됩니다. 실제 육신의 병이 와도 괜찮습니다. 병이 오면 병원에 가면 됩니다. 그러나 아셔야 할 것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 길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

 

4. 듣게 하시는 예수님_마태복음11:5d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_마태복음11:5’

 

사람들은 듣지를 않습니다. 아마 우리교회 성도님들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다 듣지 않습니까? 성공하기 위해 교수님 이야기를 듣고, 병 낫기 위해 의사선생님 이야기도 듣고, 돈 벌기 위해 상사이야기도 듣습니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인생의 창조주이신 예수님 말씀은 듣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있습니까? 주일날 예배시간에 나와서도 내 일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저는 설교 준비를 할 때 무릎을 꿇습니다. 하나님 앞에 다 내려놓습니다. 제가 아는 것들을 먼저 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여러분이 말씀에 귀 기울이지 못하게 합니까? 그게 사단의 전략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왜 사단이 그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걸까요? 그 것이면 끝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들리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복음, 즉 생명의 말씀을 들어야 살 수 있습니다. 말씀 안에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5. 살리시는 예수님_마태복음11:5e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_마태복음11:5’

 

그렇게 말씀이 들리면 살게 됩니다. 죽은 자가 살아납니다. 무덤에 가서 아버지도 살리고, 어머니도 살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살아있지만, 예수님을 만나지 못해 영적으로 죽어있는 자를 살리라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에게 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로 인해 감옥에 가버려 가족도 살리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지 못함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새생명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살 수 있는 자녀가 됩니다. 영적으로 우리는 완전히 죽은 상태였습니다. 죄 때문입니다. 그 죄를 담당하시려고 예수님이 오셨는데 세례요한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셔서 완전히 해결하시려고 했는데 세례요한은 의를 위해, 율법을 지키기 위해, 먹지도 않고 싸우길 원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교회가 뭐하는 곳이야? 왜 예수를 믿어? 그곳에 가면 좋은 사람들이 있으니까? 목사님이 훌륭하데? 교회가 멋져, 분위기도 있고?’ 잘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를 살리신 예수님을 만나는 곳이 교회이며, 예배입니다.

 

6.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되신 예수님_마태복음11:5f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_마태복음11:5’

 

예수님은 유난히 가난한 자를 많이 언급하셨고, 또 직접 찾아다니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복음을 듣지 않습니다. 귀가 열리지 않고 보이지도 않습니다. 교회를 취미생활하는 곳으로 여기며 내 의를 위해 다니는 것으로 여깁니다. 여기서 부자는 돈 많은 사람일까요? 그럴 수도 있지만 지식의 부자, 명예의 부자, 세례요한처럼 자신의 의를 많이 가진 사람, 자신의 율법을 가진 사람, 자신의 방법을 가진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매일 예수님을 만나며 살 수 없습니다. 여러분 영적으로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사는 길입니다. 그것이 행복한 길입니다. 영적으로 가난해져야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도 영적으로 가난한 자들에게 베푸는 인생되길 바랍니다.

 

. 가스펠 교회의 신앙

 

1. 예수님을 만나는 신앙_마태복음11:6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_마태복음11:6’

 

반대로 이야기하면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실족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자신의 뜻대로, 자신의 생각한대로 하지 않으셔서 실족했습니다. 왜 신앙생활에 실족이 있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실족하지 않으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실족하십니까? 세례요한처럼 다른 것을 붙잡고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을 믿는다 해도 그러면 실족합니다. 내 의를 위해서, 내 기준을 위해서, 내 감정으로 하다 안 되면 실족하는 것입니다. 자기 뜻대로 사는 자, 자신의 의를 위해서 사는 자가 아닌 예수님을 위해 사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2. 천국이 기준이 되는 신앙_마태복음11:7-8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_마태복음7-8’

 

천국, 하나님의 나라가 기준이 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런 영적인 부유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을 쫓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영원에 접속되어 사는 영적인 부유함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저는 그런 축복을 누리고 싶습니다. 저는 영적으로 더 부드러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세례요한은 거친 사람이었습니다. 싸우고, 전투하고, 대립하였습니다. 그래서 헤롯왕을 저주했습니다. 그러나 헤롯도 구원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강도를 보고도 구원하시려 하셨습니다.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은 왕궁에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다 양보하고 다 나누어주시기 바랍니다. 마음껏 주어도 좋습니다. 하나님이 우릴 책임지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제자가 아닙니까?

 

3.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는 신앙_마태복음11:19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_마태복음11:19’

 

우리는 어떤 신앙관을 가져야 할까요? 세례요한은 먹지도 않았지만 예수님은 오셔서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라 하셨습니다. 그냥 잘 먹고 잘 살라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 말씀을 듣고 오늘을 누리라는 말입니다. 영적으로 평안하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입니다. 말씀대로 완벽하게 살 수 없지만 주님을 의지해서 오늘을 행복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세리와 죄인은 모두 소외된 자들입니다. 모두 버려진 자들입니다. 그들을 위해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우리가 선입견을 버리면 됩니다. 부모님께 잘하려거든, 자녀에게 잘하려거든 어려운 사람에게 잘하셔야 합니다. 진짜 수준 높은 것이 무엇일까요? 세례요한입니까? 죄인, 세리와 상종도 하지 않고 자신의 의와 율법과 평생 싸워온 것을 지키는 것이 수준 높은 것입니까? 진짜 수준 있는 신앙인은 세리, 죄인과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천국을 기준삼아 사니 그것이 가능합니다. 저는 가스펠 교회가 그런 그릇, 그런 수준을 준비하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인생도 그런 가치 있는 인생되길 바랍니다.

 

주님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고 사는 신앙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내 것, 내 의가, 내 기준이 내 안에 자리잡고 있네요. 예수님을 만나면 다 살아날 텐데 어리석게도 세상을 보고 있네요. 오늘 말씀이 답이 되어 내안에 잘못된 체질과 잘못된 사상, 잘못된 각인이 바뀌어 예수님을 만나고 사는 신앙인이 되게 해주세요. 세상이 기준이 아닌 천국이 기준이 되고, 내 수준이 아닌 예수님의 수준으로 사람을 섬기는 제자가 되게 해주세요. 그것이 인생의 최고 축복임을 깨닫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