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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9 주일 1부 예배

< 주일 1부 예배 >

일시:  2014년 1월 19일

제목 : 믿음의 시작

말씀 : 여호수아 3 : 1-13

설교 : 오승주목사



2014-01-19 주일1부예배.hwp



아래 링크를 통해 음성 파일을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영상으로 메시지를 다시 볼 수 있습니다.

http://youtu.be/7bSjnaVLZC0?t=1s

 


Ⅰ. 여호수아의 믿음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_잠언18:20-21’

잠언의 말씀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한다. 대학생 때 누군가 제게 학생 때는 시편, 잠언을 읽으라는 말을 해 주었고 그때 읽기 시작한 시편과 잠언은 지금도 지속해서 읽고 있다. 특히, 잠언을 읽으며 내 삶에 있어서 많은 도전들을 한다. 오늘 잠언 말씀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다고 한다. 말하는 것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무슨 이야기 인가. 우리는 환경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환경을 보며 두려워 하지 않고 기뻐하고 즐거워 한다면 그것도 엄청난 힘이 있다. 미국에서 수녀들이 졸업을 할 때 서원식을 할 때 자신들의 삶을 간증문으로 쓰게 하였다. 70년 정도가 지난 후 미국의 한 학교에서 수녀들의 삶을 조사하던 중 이 간증문을 보게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긍정적인 말, 미래에 대한 비전적인 말을 쓴 상위 25%의 수녀들 중 97%가 살아 있었고 반대로 부정적이고 낙심을 하는 말을 쓴 사람들중 25%의 수녀 중 34%만 살아 있었고 나머지는 다 죽었다고 한다. 한다. 우리의 뇌는 말과 연관되어 있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말하는 것의 98%가 우리의 뇌에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그래서 긍정적인 말은 우울증의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 우울증을 치료하는 방법 중 하나가 음악을 틀어 놓고 춤을 추는 것이라고 한다. 긍정적인 말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것이다.

주변에 늘 부정적이고 안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반대로 축복의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 자체가 복을 받은 것이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다는 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이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긍정적인 말이나 생각, 긍정적인 사고방식만으로도 대단한 힘이 있지만, 믿음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을 완전히 뛰어넘는 다른 비밀이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백성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이게 없는 것이다. 오늘 믿음에 관하여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분명한, 엄청난 축복을 주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심에 감사의 고백이 나와야 하는데 말씀 들을 때와 달리 실제 삶에서는 불평, 원망이 나오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그것은 믿지 않는 것이다. 복음을 모른 채 그런 이야기만 하면 잘못 된 것이다. 지금 여호수아와 300만명의 이스라엘은 광야의 이스라엘과 조금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진짜 믿음을 보려고 한다.

오늘 말씀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의 백성들과 다른 믿음이었다. '믿어야지'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했다. 실제 그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고 체험했다. 여호수아는 정탐꾼을 통해서 가나안이 하나님이 주신 땅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우리는 믿음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막연한 미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기뻐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별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고 환경을 바라보고 늘 억압 당해서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지어놓은 사람들이 나중에는 진흙덩어리가 되어서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 성경에 뭐라고 말했는가? 하나님은 우리를 억압당하고 종노릇 하라고 보내시지 않았다. 해와 달과 별을 다스리는 존재로 만드셨다. 그런데 우리의 환경은 늘 부정적이고 너는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태어나고 난 다음 우리 환경이 늘 부정적인 것만 바라보고 부정적인 소리만 듣고 부정적인 것만 접촉한다. 그래서 믿음의 도전을 하지 않고 뒤로 물러서고 패배자가 되어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섭리대로 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누가 그렇게 조정하는 것인가? 그런 대적자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왜 사단이 배후에 그렇게 역사하는가? 결국 그런 것들을 통해 언약을 놓치게 한다. 긍정적인 말과 생각, 사고 방식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도 힘이 있지만 그것과 다른 진짜 믿음을 회복해야 한다.

Ⅱ. 언약궤를 짊어지는 삶

1. 우리의 언약궤는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오늘 언약궤를 메고 요단을 건너라고 명령하고 있다. 한번 가볼래? 가보면 좋을 것이다? 것이 아니다. 명령하셨다. 반드시 가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여호수아는 그 명령을 받기 위해 새벽에 일어났다. 사흘 간 그곳에 머물며 이를 확인했다. 최고의 전략가이자 전쟁 지도자인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하나님은 한 가지만 말씀하셨다. 언약궤를 메고 가라고 하신다. 언약궤가 무엇인가? 언약궤의 핵심은 십계명이다. 언약궤는 언약의 상징이다. 언약궤 안에는 하나님의 증거품이 들어있으며, 십계명이 들어 있었다. 십계명은 10가지 계명으로 앞의 4가지는 ‘나 외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우상을 섬기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인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켜라’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야기 하고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라는 것이다. 뒤의 6가지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세상에서의 인간관계를 이야기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웃을 사랑하라는 메시지이다. 십계명은 예수님께서 오셔서 두가지 새 계명으로 확인해주셨다. 이 계명은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아무리 과학, 문명이 발전하더라도 하나님 떠나서 살 수 없는 존재이다. 많은 엘리트들이 이 복음을 모르고 생을 마감하고 있다. 채워도 채워도 영적인 부분이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마약, 쾌락과 같은 극적인 것들을 추구한다. 그러나 결국은 행복이 없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영적 문제가 올 때 대처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언약궤는 무엇인가? 지금 언약궤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만약 그것이 이 시대에 발견되면 우상이 될 것이다. 지금 시대의 언약궤는 바로 십자가의 복음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이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로운 언약을 세우셨다. 유대민족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 민족과 사이에 하나님은 새로운 언약을 맺은 것이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다. 오늘 성도들은 십자가를 짊어지고 죄악의 허물을 씻고 의와 거룩한 삶을 살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가 언약궤인 십자가를 걸머지면 십자가를 통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_신명기5:10’

어떻게 천대까지 은혜를 받을 수 있는가? 저는 가문에서 1대이기 때문에 몸부림치고 노력하지만, 내 대에서는 불가능 할지라도 내 자녀들은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고 민족을 섬기며 세계를 살리는 축복의 가문이 되길 기도한다. 여러분을 위해서는 매일 하지 못하더라도 제 가족들을 위해서는 매일 기도한다. 이기적일지 모르지만 여러분도 그렇게 하기 바란다.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언약궤에서 넘쳐 나오는 성령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다. 그 능력이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세상 사람에서 천국 백성으로 변화시켜주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_고린도후서5:17’

2. 언약궤를 짊어지는 삶

우리는 오늘날 이 십자가의 복음, 언약을 놓치고 살아가고 있다. 유대 민족 뿐 아니라 모든 민족들과 언약을 맺은 것이 십자가의 사건이다. 모든 인류에게 이 언약을 똑같이 맺으셨다. 오늘 십자가를 짊어지고 죄악의 허물을 벗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예수 믿으면 담배도 못피고 다른 것도 못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전혀 상관이 없다. 성령께서 바꾸시는 것이다. 우리는 십자가의 복음으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복음은 모든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는 것이다. 십자가의 복음은 대속의, 은혜의 근원이다. 이것이 우리의 언약궤이다.

하나님은 오늘 언약궤를 메고 가라고 하신다. 그리고 모든 백성이 그것을 보고 따르라고 하신다. 저와 여러분은 십자가의 복음을 짊어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 어떻게 하는 가? 오늘 제사장에게 언약궤를 짊어지라고 하는 것은 강단에서 십자가의 복음을 선포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목회자들도 갱신과 점검이 필요하다. 습관에 젖어 옛날에 깨달은 것, 남이 한 설교를 하는 목회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 강단에서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에 여러분이 따르는 것이 성도들의 삶이다. 그리고 성결하게 하라고 하셨다. 그때 하나님이 우리 삶에 기이한 일을 행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무엇으로 성결케 될 수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할 수 있다. 다른 것으로 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 말씀으로 우리를 성결케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을 내려놓아야 한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삶은 우리 자신을 내려놓는 것이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은 내려놓지 못했다. 옛날 애굽에서의 체질과 사상이 남아있어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자신을 점검하지 못했다. 그래서 몇일이면 지나갈 광야에서 유리방황했다. 오늘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가 똑같이 순종을 했다. 맹목적인 순종이 아닌 십자가의 복음을 지기 위해 우리의 것을 내려 놓은 것이다. 순종을 악용하는 교회도 있다. 이것을 악용한다면 하나님이 막으실 것이다. 우리는 이전에 가보지 못한 길을 간다. 그러나 언약궤를 짊어지고 있다면 문제가 없다. 복음을 소유하고 있는가? 삶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한가? 우리가 가나안을 정복하려면, 엘리트를 살리고 가정과 가문을 살리려면 말씀으로 우리를 성결케 하는 시간들을 회복해야 한다. 아니면 평생 광야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_누가복음9:23’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_갈라디아서6:14’

Ⅲ. 요단을 건너가라.

1. 요단은 우리가 넘어서야 할 현장입니다.

왜 우리는 요단을 건너야 하는가? 그냥 광야에 살면 되지 않은가? 저와 여러분은 가나안을 왜 가야 하는 지 알고 있다. 곧 메시야의 언약을 알고 있다. 사실, 그냥 우리끼리 교회를 재미있게 운영하면서 편하게 살아도 된다. 얼마나 좋은가? 그러면 저 3세계 선교현장, 엘리트 현장에는 누가 가는가? 복음이 없어서 고통당하는 소외계층에는 누가 가는가? 가나안땅에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가지 않으면 이 언약이 누구를 통해 성취되고 이루어 질 수 있는가? 우리는 가나안 땅을 가야만 한다. 서울, 강남 땅에 너무나 많은 사람이 복음이 없어 죽어 가는 데 가야 하는 것이다.

요단은 우리가 반드시 넘어서야 할 우리의 현장이다. 요단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현장이다.

‘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나아가니라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_여호수아3:14-16

요단은 곡식을 거두는 시기에 차고 넘쳐 있다. 물이 넘실대는 큰 강이고 실제로 그 앞에 서면 두려울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현장이다. 우리 가족을 볼 때 '우리 부모님은 예수님 믿기 힘들어..', '우리 직장은 복음전하기 불가능 할텐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그 요단을 건너야 한다. 사실 환경이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저와 여러분의 마음이 곧 요단이다. 언약궤를 멘 여호수아였기 때문에 강이 갈라진 것이다. 오늘 한강을 건너려고 한다면 아마 갈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늘 말씀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불신앙의 요단을 건너라는 것이다. 무엇을 가지고 건너라는 것인가? 바로 십자가의 복음으로 건너라는 것이다. 그것을 붙잡으라는 것이다. 그것을 체험하면 불안하지 않을 것이다.

2. 다른 방법으로는 건널 수가 없습니다.

여호수아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하나님 말씀을 받고 사흘동안 그곳에 유하며 하나님 말씀을 확인했다. 믿음은 좋은 말,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의로, 열심히는 불가능 하다. 우리 마음의 강을 건너야 하는 데 다른 방법으로는 불가능 하다. 그러나 언약게를 메고 따라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가능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을 건너 가나안땅으로의 믿음의 여정을 시작했다. 여러분의 삶의 응어리, 상처가 있다면 오늘 건너기 바란다.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도전하기 바란다. 옛 사람이 청산되고 새 사람으로 살아가기 바란다. 이것은 수양으로,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만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이 이룰 수 없는 역사를 이루어놓으신 것이다.

3. 십자가의 복음으로만 건널 수가 있습니다.

물을 지나는 것은 현실적인 세상이다. 어려운 고난의 물을 건너는 데 현실이다. 그러나 눈에 안보이는 물을 정복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같이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보통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물을 능히 가로질러 건너갈 수 있고 불같은 시험이 와도 타지 아니하고 거스르지 아니하고 항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감각적으로만 살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책 몇권을 읽고, 대학에서 교수님들에게 배운 것으로 살아가려 하면 안된다. 세상의 배후는 사단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_고린도후서5:7’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_야고보서2:17’

Ⅳ. 믿음의 시작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하나님 앞에 결단하고 응답을 받았다. 오늘 새벽에 기도하며 제가 먼저 하나님 앞에 바로서야 겠다고 고백했다. 이 역사가 바로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믿음이다. 여러분에게 시작되는 복음의 역사가, 믿음의 시작으로 저주의 강을 건너고 실패의 강을 건널 때 가정과 가문이 살아나고 현장이 살아나게 될 것이다. 수많은 영혼들이 주께 돌아오는 것을 꿈꾸기 바란다. 우리가 꿈꾸지 않으면 누가 할 것인가? 언제부터 시작할 수 있는가? 마음속에 있는 요단을 건널 때부터다.

가스펠 교회의 목표는 분명하다. 여호수아,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분명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사실 우리는 아무것도 갖춘 것이 없다. 가슴 아프게도 우리는 현장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어야할 시간표이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지금 당장 엘리트를 이야기 하는데 그들을 만나러 갈 수도 없고 청소년들이 몰려온다면 공간도 없다. 하지만 작은 시작을 해야 한다.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으면 된다고 하셨다. 하나님은 진짜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진짜 하나님을 믿느냐는 것이다.

우리가 작지만, 갖춘 것이 없지만 우리의 믿음은 진짜로 시작해야 한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마음의 불신앙의 강을 넘고 시작해야 한다. 이 세대는 겨자씨만한 믿음이 없다. 우리가 시작하면 된다.

여러분의 가정을 살릴 수 있는가? 여러분의 직장을 살릴 수 있는가? 여러분의 미래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들어 하늘의 별과 같이 사용하실 것을 믿는다. 무엇만 있으면 되는가? 작은 것이다. 믿음만 있으면 된다. 그것만 있으면 됨을 저는 믿었다. 넘어지면 또 일어났다. 제 속에 언약, 즉 십자가의 복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제 실수로 넘어지더라도 또 일어났다. 제 속에 작지만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_마태복음17:20’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는 것이 믿음이므로 믿음으로 요단강으로 걸어 들어가면 된다. 물이 발목까지 찼는 데도 여호수아는 걸어들어가라! 더 걸어들어가라! 강한군데로 저벅저벅 들어가는데 위에서부터 물이 쫘악 갈라지기 시작했다. 요단강으로 들어가라. 오늘 우리 모두 요단강으로 들어가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믿음의 시작을 해야 한다. 마음의 불신앙의 강, 저주의 강을 건너 이제 구원의 축복을 바라봐야 한다. 요단이 갈라질때 불신자들이 보게 될 것이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구나’ ‘아직도 기적을 베풀고 계시는 구나’ 십자가의 복음이 엄청난 것인데, 대부분 지식안에 가두고 있다. 믿는 다면, 십자가의 복음을 짊어지고 요단을 건너가라. 그래서 오늘 이스라엘 백성처럼 말씀을 청종하고, 순종하기 바란다. 뒤로 물러서지 말고 믿음의 시작을 하기 바란다. 우리는 언약의 백성이기에 반드시 응답이 온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_히브리서 10:35-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