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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2 주일 1부 예배

< 주일 1부 예배 >

일시:  2015년 03월 22일

제목 : 부스러기라도

말씀 : 마태복음 15:21-28

설교 : 오승주 목사


2015-03-22 주일1부예배.hwp




음성 다운로드 http://bit.ly/1FohHzH

영상 다시보기 https://vimeo.com/122873790


2015-03-22 주일1부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_마태복음15:21

 

말씀을 준비하며 가나안 여인의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오늘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예배가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_마태복음15:21’

 

두로와 시돈은 항구도시로 우상숭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돈이 많았으며 다양한 종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게다가 그곳은 이방 땅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그 곳에 가신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가장 먼저는 갈릴리에서 많은 기적과 역사가 일어났는데 그곳 사람들이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 했기에 피해서 가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제자들에게 이방사람들에게도 구원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들은 이방 사람, 즉 자신들과 다른 신을 섬기는 사람은 아예 사람취급도 하지 않았고 그들에게 구원이 있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이방으로 들어가시니 많은 무리가 함께 하지 못하였고 제자들만 따랐을 것이 분명합니다. 제자들 역시 마음속으로 왜 도대체 갈릴리를 두고 이런 곳을 오시나 하고 마음의 의문을 품었거나, 불평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제자들인지라 예수님을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그곳에 가신 이유를 찾아보려 합니다.

다음 주는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가지를 길바닥에 깔아 예수님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쳤습니다. 그래서 호산나주일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 못 박힌 주간으로 그 주간을 고난주간이라 부릅니다. 이 예루살렘입성은 곧 죽음을 예고합니다. 죽으러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 ‘가나안 여자 하나

 

1. 귀신들린 딸을 가진 가나안 여자_마태복음15: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_마태복음15:22’

 

거기서 예수님은 가나안 여자 하나를 만납니다. 그가 소리 질러서 예수님을 찾습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메시야라는 소문을 들었음이 분명합니다. 그에게는 큰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딸이 귀신들렸습니다. 정말 큰일입니다. 딸이 흉악한 귀신에 들렸다면 어떻게 될까요? 제가 부산에서 신학교를 다닐 때 저희 교회에 귀신들린 딸을 가진 권사님이 계셨습니다. 한번은 거기에 사역을 가시는 전도사님을 따라 가게 되었습니다. 정말 귀신들린 딸을 가진 부모는 힘이 듭니다. 온 집안이 난리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 권사님은 모든 예배에 그 아이를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어떻게든 살려보려는 것입니다. 보통은 어떻게 할 몰라 그냥 버리던지, 포기해 버립니다. 그런 딸을 가진 여자니 마음이 어떨까요? 그의 간절함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설마 예수님이 이곳에 오실지 몰랐을 것입니다. 설마 했었는데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최고의 기회입니다. 그래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에게 다른 자존심은 사치였습니다. 그 여인에게 다른 시선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2. 예수님의 무대답과 제자들의 반응_마태복음15: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_마태복음15:23’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님의 반응입니다. 예수님은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은 소리를 지르는 그 여자를 보지 못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항상 병든자들을 찾아가셨고 무리중에 먼저 고쳐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여자의 딸도 빨리 고쳐주실만도 한대 왜 가만히 계셨을까요?

 

3. 예수님의 첫 번째 대답_마태복음15: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_마태복음15:24’

예수님의 대답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셨다고 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쉽게 이야기해서 이방인에게는 관심이 없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두로과 시돈에 가셨을까요? 예수님은 지금 우리에게 강한 메시지를 주려고 하십니다. 우리의 사상도 마찬가지가 아닌가요? 어쩌면 우리는 불신자들 속에서 살아가면서 그들을 바라볼 때 이 여인을 바라보는 예수님 같지 않습니까? '저 인간이 어떻게 구원받겠어. 저렇게 악독한 사람은 신앙생활을 하지 못할거야.' 우리는 선입견, 사고, 전통에 가득차 있습니다. 겉모양만 보고 판단하며 안타까워하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정말 냉정하고 무서운 대답입니다.

 

4. 여자의 간절한 기도_마태복음15: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_마태복음15:25’

 

그 대답에 포기할 법도 한데 여인은 예수께 더 가까이 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절하면서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간절하게 부탁했습니다. 예수님이 누군지 알았기 때문에 여인은 포기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았던 여인에게는 당연한 행동입니다. 우리가 이처럼 간절하게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예수님이 우리 문제에 대한 답을 주실 분이 아니어서 그럴 지도 모릅니다. 이 여자는 포기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을 위해서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 누군가 방해 한다면 꿈을 포기하겠습니까? 그건 꿈이 아닐 것입니다. 진짜 꿈이라면 누가 방해하거나 비방해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자존심이 상해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여인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도와주세요 라고 간절히 부르짖습니다.

 

5. 예수님의 두 번째 대답_마태복음15: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_마태복음15:26’

 

그 정도면 예수님이 응답해주실만 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중에 병든 자들을 그냥 이유 없이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이방인이라고 냉정하게 하시나요? 정말 차별하시는 걸까요? 예수님은 그렇게 자존심까지 내려놓은 여인의 간절한 기도를 무시합니다. 예수님은 너에게 줄 떡은 없다. 차라리 개에게 주겠다라고 하십니다. 정말 너무 하다 싶을 정도입니다. 우리가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저는 이 장면이 저에게 와 닿았습니다. 저의 가장 친한 친구는 목사님 아들입니다. 저는 그 친구가 너무너무 부러웠습니다. 그 친구는 교회에 가면 늘 예쁨을 받았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그 친구의 인생은 막힘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성도님들이 그를 위해 기도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모든 것이 막힘이었습니다. 무엇 하나 쉽게 통과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예배한번 드리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막힐 때마다 교회에 나와 기도했습니다. 저는 항상 기도해야만 했습니다. 그 친구의 기도와 저의 기도는 질부터 달랐습니다. 그 친구의 기도는 늘 고차원적인 것이지만 저는 늘 '주님 도와주세요. 주님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주님 우리 아빠 엄마 예수 믿게 해주세요. 주님 저의 죄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이런 기도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저는 예수님의 이런 대답을 들은 여인의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저도 주님을 원망했습니다. 실컷 철야예배 때 기도했는데 다음날 가정에 문제가 생기고 수련회가서 은혜 받고 왔는데 제 삶이 원위치 될 때 정말 원망스러웠습니다.

 

6. 여자의 믿음과 예수님의 칭찬_마태복음15:27-28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_마태복음15:27-28’

 

그런데도 여자의 믿음이 어떻습니까? '주님 비록 제가 개같지만 저에게 부스러기라도 주셔서 제 딸을 고쳐주세요. 당신은 주님이 아니십니까? 제 인생이 비록 개같지만 저에게도 부스러기같은 은혜면 충분하오니 그거라도 주시면 이런 인생이 바뀌지 않겠습니까? 저를 살려주세요. 예수님은 우릴 구원하시러 오신 그리스도가 아니십니까?'

그제서야 예수님이 이제 다 확인하셨다는 듯이, 테스트를 통과하였다는 듯이 말씀을 하십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유대인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믿음이었습니다. 과연 세상의 욕망에 사로잡힌 자들이 이런 굴욕을 당하면서도 주님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애초부터 그럴 마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이용하여 좋은 자리, 세상의 좋은 것을 얻으려고 했을 뿐입니다. 헤롯이나 헤로디아같은 자들은 절대 받을 수 없는 은혜입니다.

오늘 이방인에 첫발을 내딛은 예수님께서 유대인들, 제자들에게 '봐라 이방인중에도 이렇게 믿음을 가진 자가 있지 아니하냐?' 이런 장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이 너무나도 마음에 와 닿습니다. 주님이 가장 낮은 자리까지 저를 내려보내셨습니다. 아니 그것은 저를 가장 낮은 자리로 보내시려는 것이 아니고 그곳에서 믿음을 가지도록 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그래야 구원을 받을 수 있고, 그래야 진짜 응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부스러기라도

 

오늘 말씀을 가지고 우리 삶에 몇 가지 적용을 하길 원합니다.

 

1. 상처를 가진 사람들_베드로후서2:13-16,22,3:3-5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즐기고 노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그들의 속임수로 즐기며 놀며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시를 그치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_베드로후서2:13-16’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렇게 사는 것입니다. 세상 왕, 세상 임금을 따르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이 여인은 엄청난 상처를 가진 사람입니다. 여인은 한 사람이지만 두로와 시돈의 대표적인 인물일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버려진 사람들입니다. 온갖 재앙과 저주에도 그것을 어찌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선지자들은 그곳에 가지 않았습니다. 세례요한 같은 사람들 역시 대단한 사역을 했지만 그곳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 여인은 자녀가 귀신에 들렸습니다. 그 상처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하루라도 행복했을까요? 하루라도 평안한 날이 있었을까요?

성경은 그것이 죄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모두 죄의 삯으로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저희 가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누굴 원망하고, 누굴 탓하겠습니까? 이유도 모르고, 원인도 몰랐습니다. 그저 이런 가정에 태어난 것이 원망스러웠을 뿐입니다.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복음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상태에 대해 들었습니다. 영적으로 황폐해졌지만 그런 나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희망이 보이고, 소망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_베드로후서2:22’

 

유대인들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 여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내 체질, 습관, 영적인 문제는 늘 반복됩니다.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지만 예전의 것이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돼지나 개같았습니다. 그러니 귀한 복음을 듣고도 늘 넘어지고 늘 포기하였습니다. 늘 제자리 같았습니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_베드로후서3:3-5’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상하리만큼 모든 정황들이 예배만 못 드리게 하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면 살겠는데 그것을 방해합니다. 친구들이 놀러가자 하는 것도, 가정에 문제가 생기는 것도, 심지어 저의 게으른 삶까지도 쑥대밭처럼 망한 내 가정과 내 상태를 잊어버리고 '예배 그까짓 것'이라 생각하게 만듭니다. 영적인 사실을 완전히 까먹게 만드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방법_베드로후서3:8-9,야고보서1:6-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서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_베드로후서3:8-9’

 

저는 예수님을 놓칠 때가 많았는데 예수님은 저를 놓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방법을 깨달았습니다. 꼭 오늘 가나안 여인에게 하신 것처럼 저에게도 그런 방법으로 믿음을 훈련시켜주셨습니다. 저는 제가 오래 참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제까지 기도해야 하나? 언제까지 이렇게 훈련받아야 하나?' 생각했습니다. 어떤 목표가 있어서 그것에 도달해야만 끝나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저를 참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저를 기다리셨습니다. 무엇을 기다리셨을까요? 제가 회개하기를 기다리셨습니다. 깨닫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완전히 다 내려놓고 오직 예수님만 믿도록 하셨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합숙훈련에 갔는데 한참 예민할 나이였습니다. 옷도 좋은 것 입고 가고 그럴 나이였습니다. 수백명이 모였습니다. 저는 그날 밤에 죄인으로 하나님 앞에서 가장 먼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이 후부터 친구들에게, 목사님에게 제 가정문제, 저의 영적인 문제를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운 것이 아니구나. 알게 되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_야고보서1:6-8’

 

주님은 완전한 믿음을 요구하셨습니다. 저는 그 이후로 원망, 불평보다 감사가 먼저 되어졌습니다. 그전에는 금요예배가서 기도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주일날 예배에 가는 것이 문제 해결을 위해 참았던 것인데 그 이후로는 은혜였습니다. 너무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두 마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이 날 사랑하셔서 우리 가정을 사랑하시는구나. 예수님을 믿을 때라야 살 수 있구나.' 그런 믿음이 생겼습니다.

 

3. 큰 믿음의 사람_요한15:3-4,히브리서4:14-16

 

신기한 것은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제 힘으로 했으면 가능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다른 것은 조금 열심히 하며 될지 모르나 구원은 불가능합니다. 영적인 문제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보이지 않는 흑암세력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신기한 방법으로 가정복음화를 이루셨습니다. 실수할 때도 넘어질 때도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다 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방향만 맞췄습니다. 주님을 예배할 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_요한15:3-4’

 

주님은 우리가 믿음을 갖길 원하셨습니다. 여자의 딸에게 있는 귀신이 떠나는 것이 중요했을까요? 사실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중요했다면 예수님이 처음부터 해결해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상처 많은, 버려진 여인이 새 인생을 살길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귀신들린 딸이 해결되어도 또 찾아올 문제들을 이기고 살 비밀을 주시길 원하셨습니다. 그것이 곧 믿음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임금으로 모시고 살 허황된 믿음이 아닙니다. 이 여인처럼 부스러기같은 은혜면 된다는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_히브리서4:14-16’

어떤 믿음이 큰 믿음인가요? 헌금을 많이 하는 것입니까? 일을 많이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큰 소리로 떠드는 것입니까? 히브리서 저자는 믿음에 대해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굳게 하십시오. 우리는 연약하지만 그 연약을 똑같이 경험하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감당해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은혜를 받으면 됩니다. 여러분의 때마다 돕는 은혜를 주십니다. 한 주간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앞으로 나가는 여러분 되시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깊게 묵상하여 미션홈에서 나누길 간절히 바랍니다.

 

 

주님 우리는 이 여인처럼 주님을 믿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이 땅의 것을 바라보는 제자들처럼 허황되고 헛된 믿음을 가지고 있나요. 날마다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고, 예수님의 나의 힘이 되고, 예수님이 나의 생명이 되길 원합니다. 비록 내 모습이 보잘 것 없지만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세상의 빛이 되게 해주세요. 주님을 의지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사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