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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2 주일 1부 예배


2015-07-12 주일1부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2015-07-12 주일1부예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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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안식이 없는 시대

헤롯 대왕은 이스라엘 백성의 환심을 사기 위해 스룹바벨 성전을 증축했습니다. 당시 건축에 사용된 큰 돌 하나의 길이가 무려 12미터, 너비가 3.6미터, 높이가 6미터에 달했습니다. 성전 뜰은 대리석으로 깔았고, 문은 금이나 은으로 장식했습니다. 성전 전체 면적은 예루살렘 성의 6분의 1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화려했고 거대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에 갔던 제자들은 성전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예수님, 저 성전을 보세요. 저 돌들을 보세요. 어떻게 저런 돌들을 쌓을 수 있지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_마가복음13:2’

제자들이나 사람들은 비웃었을 것입니다. 결국 로마의 침공으로 AD70년에 100만 명 이상이 학살되었고, 굶어죽은 사람만 11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끔찍했는지 도처에서 어린아이들을 삶아 먹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 세대’는 단순히 AD70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 예언은 예루살렘 종말에 관한 예언과 동시에 이 세상의 종말과 우주적 종말에 관한 이중적 경고입니다.

‘홍주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_마태복음24:38-39’

여러분, 이 시대는 왜 안식이 없을까요? 다 발전하는 것 같은데, 더 뛰어난 것 같은데, 더 좋은 것들이 많은데 안식이 없어져가고 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안식의 주인공 되신 주님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만나면 안식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비유는 이렇습니다. 집주인이 해외 출장을 떠났습니다. 집에 있는 하인들에게 각자 권한과 책임을 맡겼습니다. 그들은 주인이 올 때 까지 올바른 청지기로 살았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선택받은 민족인 유대인이 곧 오늘 본문에 나온 하인들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왜 청지기의 사명을 놓쳤을까요?

Ⅱ. 죽기를 작정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계획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걸 놓치면 다 놓치게 된다는 것을 모릅니다.

1. 인간의 원래 모습_창세기1:27-28, 2:1-3

원래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어 엄청난 신분과 권세를 가진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_창세기1:27-28’

우리의 존재는 복 자체였습니다. 하나님이 복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셔서 이 땅을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말씀그대로 청지기로 창조하셨습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_창세기2:1-3’

하나님은 6일 동안 우리를 위해 이 세계를 다 지으셨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잘 몰랐습니다. 초등학생 때 수학여행으로 서울에 와서 63빌딩을 보고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나니 석양을 보면서 너무 감동이 되었습니다. 제가 많이 다녀보지는 않았지만, 나이아가라 폭포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인간은 그런 아름다움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런 창조세계를 인간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7일째 되는 날 안식하셨습니다.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셨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 안식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 자체가 복이고 안식입니다. 인간은 그때가 가장 행복하고 복됩니다. 세상적인 것으로 가지는 행복은 잠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고 난 후에는 보는 것도, 느끼는 것도 달라집니다. 기준이 달라집니다. 진짜 안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2. 타락한 인간_마태복음21:38, 요한1서1:5-10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하고_마태복음21:38’

그런데 인간이 타락했습니다. 주인이 떠나자 농부들이 마음대로 살기 시작합니다. 주인이 자기 농장을 살펴보려고 보낸 사람들을 다 죽이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선지자들을 상징합니다. 결국 주인은 아들을 보냈습니다. 보내는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으니 아들을 보내어 확인하려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까지 죽였습니다. 타락한 세상, 곧 사탄이 주는 유혹에 빠져 그들은 정신이 혼미해졌습니다.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도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_요한1서1:5-10’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을 때 하인들이 회개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주인의 아들이 왔을 때 용서를 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러나 그들은 그 주인의 아들까지 죽였습니다. 그들은 주인이 떠날 때 준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왜 사람들이 교회에 안 나올까요? 교회가 타락했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세상에 좋은 것들이 많아서 그런가요? 제가 볼 때 가장 큰 이유는 말씀이 너무 듣기 싫은 것입니다. 회개해야 하고, 말씀에 순종해서 살라 하는데 그것이 듣기 싫어서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죄성입니다.

3. 죽기를 작정한 하나님의 사랑_요한1서2:1-2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저와 여러분을 위해 죽기를 작정하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오늘 이 비유는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는지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시려고 주시는 말씀입니다. 아들을 보낸 이유는 아들을 죽이시려는 것입니다. 아들이 죽어야 저와 여러분이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 내내 선지자를 보내어 아들이 올 것을 예언했습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통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_요한1서2:1-2’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이 되었습니다. 제물은 죽는 것입니다. 죄의 값으로 드려지는 것입니다. 온 세상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죽기를 작정한 사랑입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살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나 여러분이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입니다.

Ⅲ. 청지기 인생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것이 중요합니다. 악한 종처럼 매일 파티나 하고, 먹고 마시는 데 시간을 써버리거나, 어떻게 하면 세상 것을 좇아 성공할까 사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 아닙니다. 또 골방에 들어가 주인이 어떤 부탁을 했건 상관없이 재림의 날만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청지기의 삶이 아닙니다. 청지기의 인생은 어떤 인생일까요?

1. 영원한 안식을 선물로 받은 자_요한복음1:12-14, 사도행전9:15-16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_요한복음1:12-14’

첫째, 영원한 안식을 선물로 받은 자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 자녀들에게 말씀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가운데 거하여 그의 영광을 보고 사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 영광을 보고 사는 자에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게 됩니다. 이 안식이 없으면 청지기로 살 수 없습니다. 청지기는 이면 계약이 있어야만 살 수 있습니다. 어찌 선교사님들이 순교할 수 있을까요? 아니 가깝게 말하자면 우리가 내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해도 자존심 내려놓고 섬겨야 하는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영광을 봐야만 가능합니다. 큰 것을 본 사람은 작은 것에 매여 있는 사람이 안타깝습니다. 은혜와 진리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모르는 안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_사도행전9:15-16’

안식은 세상적인 안정과는 전혀 다른 말입니다. 때로는 주님의 이름을 위해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 때로는 핍박도 받아야 할 것입니다. 무엇이 안식인가요? 그들에게 안식되신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 청지기의 사명을 깨닫는 것입니다.

2. 주인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자_요한1서2:9-11,2:15-17

둘째, 주인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자입니다. 늘 주인이 맡겨주신 것을 확인해야 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우리에게 맡겨주셨을까요? 행여나 우리가 잊을까 하여 늘 사람들을 보내어 알게 해주셨는데 우리는 그들을 무시하고 심지어 아들까지 죽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고 주인이 보낸 메시지를 받는 다면 달라지겠지요?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_요한1서2:9-11’

청지기는 빛 가운데 거하는 자입니다. 말씀을 듣고 따른다는 것은 어둠에 있지 말고 하나님의 빛 가운데 살아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기 있으면 형제를 미워할 수 없습니다. 말씀으로 회개하고 변화되고 말씀으로 인도받는 자는 형제를 사랑하게 됩니다.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습니다. 형제를 미워하면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고, 따르지 못하게 하는 어둠을 조심해야 합니다.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_요한1서2:15-17’

그런데 그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듣고 따르며 사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세상 속에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안식을 빼앗으려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도록, 하나님과 함께 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주인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말이 아닌 주인의 말을 들어 확인하고 두려움도 이기고, 위로도 받고 그럽니다. 주인이 보낸 사람들, 편지들 그것이 성경입니다.

3. 우리는 청지기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_고린도후서6:4-10

그래서 우리는 청지기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청지기라 함은 주인의 것을 지키는 것입니다. 주인의 농작물도 돌보고, 주인의 동물도 돌보고, 주인의 모든 것을 돌보는 것입니다. 주인이 없으니 주인과 같은 마음으로 악한 짐승과 싸우고, 주인의 심정으로 챙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안식이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_고린도후서6:4-10’

무엇이 여러분을 바꾸지 못하게 합니까? 여러분의 성격도 하나님이 사용하시고, 여러분의 배움과 경험도 하나님이 사용하십니다.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이 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려 하지 않습니다. 그 안에 안식이 있음을 알면서도 외면하려 합니다.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매일 영접하시길 바랍니다. 나를 누르고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를 애쓰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으로 내 삶에 적용하십시오. 작은 것도, 큰 것도 힘들지만 적용하셔서 주인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누십시오. 그렇게 살면 됩니다.

그러면 손해 볼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주님이 다 갚아주십니다. 주님이 오실 때 잘했다 충성된 종아 하십니다. 주님이 청지기들을 그냥 두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누구를 도왔는데 그 사람이 저를 몰라 준다하더라도 괜찮습니다. 주님이 갚아주십니다. 제가 주의 이름으로 헌신했는데 서운하고 섭섭하다 그것은 아직도 어리석은 종입니다. 가스펠 교회를 세워 가는데 고민이 많습니다. 유혹도 많습니다.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하나님이 회개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청지기로 살아봅시다. 우리에게 맡겨진 영혼들을 주님의 심정으로 돌보고, 교회를 주님의 심정으로 세워 가봅시다. 예루살렘성전이 무너지는 것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가정도 무너지고, 영원할 것 같은 세상도 무너집니다. 교회도 무너질지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청지기로 산 제자들과 믿음의 사람들은 영원한 안식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후대들에게 무엇을 물려줄지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청지기는 주인만 바라봅니다. 주인의 음성만 듣습니다. 주인의 것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이 시대, 우리에게 맡겨진 지역, 나에게 맡겨진 가정과 가문, 그리고 우리 교회를 지킵시다.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청지기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 주님 우리가 스스로 주인노릇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주인노릇하며 살면서 왜 이렇게 힘이 들었을까요? 주인 노릇한다면서 세상에 빠져 살았고, 주인 노릇한다면서 제 마음대로 살지 못하였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도록 창조되었는데 그걸 몰랐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 청지기임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어리석게 하나님이 없어도 된다 하며 살았습니다. 멸망할 세상의 왕노릇하는 사탄의 종노릇하며 살았습니다. 이 시간 주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합니다. 주님을 예배하며 주님의 뜻을 깨달아 가장 멋진 하나님의 청지기로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내게 맡겨준 아름다운 몫, 하나님의 나라를 감당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