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2015-07-19 주일 1부 예배


2015-07-19 주일1부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2015년 7월 19일 주일1부예배.hwp


음성 다운로드 http://bit.ly/1MirLgP




Ⅰ. 왜 사랑하실까_요한복음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_요한복음3:16’

긴 인생의 여정을 살면서 복음을 들을 기회가 있다는 것, 복음을 들어도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믿음을 주셔서 믿게 하셨던 것, 믿음을 가지고도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데 하나님을 사랑할 수 마음을 주셨던 것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이었습니다. 그렇게 긴 인생의 여정이 지나는 동안 수도 없이 하나님을 거부한 것도 많았습니다. 세상을 쫓아 하나님을 마음 아프게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저를 붙잡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사랑을 설명하시기 위해 어머니의 사랑도 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잘못된 길로 갈 때마다 매를 드셨던 어머니가 생각이 났습니다. 사실 오냐 오냐 하면서 잘해주신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되는 것보다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어갈 때마다 어릴 적 잘못된 길로 갈 때마다 마음아파하면서 매를 드셨던 그때가 진짜 사랑하셨던 것이 구나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제 신앙을 이끌어 오시면서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관계가 되게 해주셨습니다. 때론 아플 때도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을 왜 해야 하는지 의문일 때도 있었습니다. 불신앙에 사로잡혀 그저 방황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에게 하나님은 좋은 사람도 붙여주셨고, 그럴 때마다 저에게 하나님은 문제를 주셔서 기도할 수밖에 없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사랑을 알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당신의 사랑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알아야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알아야 그 사랑으로 세상을 사랑하며 섬겨 그들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은 두려움도 이깁니다. 그 사랑은 상처도 이깁니다. 그 사랑은 어둠도 이깁니다. 그 사랑을 깨닫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Ⅱ. 하나님의 사랑_혼인잔치 비유

1. 종들을 보내어_마태복음22:2-3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_마태복음22:2-3’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계속해서 종들을 보내십니다. 다시 말해 항상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교회를 세우시고 선교사를 파송하신 것입니다. 이 복음이 끊기고 천국복음을 들을 수 없는 것이 진짜 재앙이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종들을 세상에 보내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적용하자면 우리가 복음을 계속해서 전하는 종들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천국은 아들을 위한 혼인잔치와 같습니다. 그곳에 사람들을 초청하려고 종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소중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다들 논리적이고, 굉장히 합리적이고, 수준이 높은 것 같습니다. 논리적인 모습, 합리적인 모습, 수준 높은 것에 감동도 하고, 본받고 싶은 마음은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생명을 구원하지는 못합니다. 복음을 전파하지 않으면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전도를 미련하다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천국소식을 그대로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미련한 것이지만, 그 사랑을 전하는 것처럼 귀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종이 되어야 합니다. 종은 주인이 시킨 것만 합니다. 자기 생각, 자기 기준으로 일하지 않습니다. 임금이 천국잔치를 준비하고 종들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혼인잔치에 오라고 청하였습니다. 우리는 천국에 초대하는 복음 선포를 해야만 합니다.

2. 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_마태복음22:5-6

‘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_마태복음22:5-6’

그런데 그들이 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그들의 몫입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그들은 유대인, 백성들의 장로, 바리새인, 종교지도자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왜 종들이 직접 와서 초대한 임금의 혼인잔치를 거부했을까요? 자기 밭 때문입니다. 자기 사업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종들을 잡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아니 혼인잔치에 초대했을 뿐인데 왜 이렇게 강퍅할까요? 밭이 뭐며, 사업이 뭐기에 그런 것일까요? 지금 종교생활하는 기독교인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좋은 것이 너무 많아 초대에 응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이뤄야 할 사업도 많아 응하지 않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우리의 계획에 방해가 되니 예수님을 잡아 죽였고, 수많은 복음을 전한 종들을 핍박했습니다.

3. 임금이 노하여_마태복음22: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_마태복음22:7’

그랬더니 임금이 화가 났습니다. 군대를 보내어 자기 종을 죽인 자들을 진멸하고 심지어 그 동네를 불사릅니다. 이것이 재앙이고 저주입니다. 역사에 일어난 모든 재난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이유 없이 하나님이 어려움을 주실까요? 여러분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동성애를 지지한 국가들은 교회가 무너지고, 신앙이 무너지는 모습을 사실로 확인하였습니다. 교회와 신앙이 무너지면 어떻게 될까요? 그 후손들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은 혼인잔치 곧 천국에 초대했는데 그 초대에 응하지 않고 오히려 핍박하는 개인, 국가, 시대를 단 한 번도 그냥 두신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냥 두면 영원히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후손들은 영원히 복음을 들을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듣고도 거부하고 핍박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두려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가진 밭, 우리의 사업처가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다시 다 빼앗은 것입니다.

4. 네거리 길에 가서_마태복음22:9-10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_마태복음22:9-10’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종들을 보내셨습니다. 이번에는 네거리로 보내셨습니다. 여기서 네거리 곧 사거리는 무엇을 상징할까요? 사거리에 가면 누구를 만날지 모릅니다. 선한자가 지나갈지 악한자가 지나갈지 모릅니다. 거기에는 창녀도 다니고, 세리도 다니고, 정신병자도 다니고, 앉은뱅이도 있지 않습니까? 네거리 길에 가서 혼인잔치에 초대합니다. 만나는 대로 데려오려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판단할 자격은 없습니다. 임금은 종에게 네거리에서 만나는 대로 초대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교회에 초대할 때 우리의 판단으로 초대하고 전합니다. 그것은 틀린 것입니다. 그 어떤 죄인이어도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자들을 위해 십자가에 죽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네거리에 가서 누구든지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인생의 네거리가 항상 있어야 합니다.

Ⅲ. 믿는 자여 어이 할꼬

1. 믿긴 하나 사랑하지 않는 우리_마태복음22:11-14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_마태복음22:11-14’

그렇게 초대되어 혼인잔치에 갑니다. 저는 오늘 말씀 중 가장 중요한 말씀이 이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그들의 모습 그대로를 향해 다가갔지만, 예수님의 사랑은 그들이 그대로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게 사랑입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자에게서 최선의 것을 바랍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변화되고 치유 받아 달라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창녀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셨고, 세리도 그렇게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적은 그들이 변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어둠에서 계속 살도록 두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혼인잔치에 초대되었는데 예복을 입지 않았다는 것은 세상 모습 그대로 나아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모습으로 오길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사귐으로, 하나님이 주신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가 변화되어 하나님의 자녀로 빛을 발하며 살길 원하십니다. 예복을 입지 않고 혼인잔치에 들어갈 수 없듯이 우리가 복음을 받아 구원받았다고 하나 우리 인생 전체를 통해 그 복음이 확인되고 녹아져서 결국 천국에 갈 때는 사모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그저 믿기는 하나 사랑하지 않는 지금 기독교인들을 볼 때 저는 이 본문이 많이 생각이 납니다. 천국에는 들어가려 하나 천국에 들어갈 예복은 입지 않으려 하는구나! 복음은 필요해서 듣지만, 복음을 사랑하지는 않는구나! 그래서 복음과 삶이 동떨어졌구나!

2. 믿음은 사랑입니다_요한복음5:24, 요한1서3:14-1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_요한복음5:24’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습니다. 믿음은 사랑에서 나옵니다. 사랑한다면 믿음이라는 행위를 감당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그분을 위해 나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사랑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에 걸쳐 우리가 살아야 할 신앙생활의 여정입니다. 믿어야 영생을 얻습니다. 믿어야 심판에서 벗어나는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을 믿어야 구원받을 수가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말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다는 것인데, 우리는 부분만 믿거나 내게 듣기 좋은 말씀만 믿습니다. 그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우리 삶의 변화를 이야기합니다. 왜 하나님이 그 믿음을 주셨을까요? 하나님이 우릴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축복의 자녀로 살길 바라시기 때문에 믿음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_요한1서 3:14-15’

그런데 성경은 그 사랑을 표현하는 데 형제를 사랑하라고 표현합니다. 왜 이것이 중요한 줄 아십니까?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사망에 머물러 있다 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하든 훈련을 많이 받든 형제를 아직까지 미워하면 사망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형제를 미워하면 살인하는 자라고 무섭게 이야기합니다. 왜 그렇지요? 미워하면 절대 천국에 초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영혼을 구원할 기회를 차단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사랑하는 세상도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형제도 사랑할 수 있어야합니다. 요즘 기독교에서 데모하고 그러는데 저도 죄에 대해서는 단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미워하는 것은 안 됩니다. 저주하고 그러는 모습을 보면서 무섭단 생각을 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타락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데 우리는 사랑하지 못하고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이 타락입니다.

3. 믿는 자여 어이 할꼬_요한복음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_요한복음15:6’

어쩌면 우리가 걱정할 것은 세상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을 주셨는데 그 핵심이 뭔가 생각해봅니다. 타락한 세상이 아닙니다. 주인의 관심은 혼인잔치입니다. 그 혼인잔치가 중요한 것입니다. 혼인잔치는 무엇을 이야기하지요? 천국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가기로 예약된 우리가 믿음이 없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걱정할 것은 천국백성으로 살아야 할 우리 자신입니다. 아무리 세상 걱정을 많이 해도 세상은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변화되어 저들을 초대하는 힘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면 세상은 바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으로 회복한다면 세상은 바뀔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에 문제가 많더라도 한 사람이 변화되어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가정도 바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꾸 벗어나려고 하니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를 당신의 잔치에 초대하시는데 우리는 자꾸 가지 않으려 합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가도 예복을 입지 않고 가려고 합니다. 세상 옷이 더 화려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자꾸 스스로 살수 있다하고 스스로 지혜 있다 하고 스스로 주인 노릇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그렇게 살면 망하기 때문에 붙어있으라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늘 우리 자신을 보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는 자여 어이할꼬. 그것이 우리의 회개이고 신앙고백이며 살 길입니다.

 ✔ 주님 우리가 믿는 자로 살면서도 우리 인생에 사람들을 천국으로 초대하는 내 인생의 네거리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천국복음을 전파하길 원하시는데 우리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며, 높은 수준을 이야기합니다. 종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종으로 살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천국에 초대되었는데 여전히 변화되지 못하고, 세상의 옷을 입고 살고 있다면 이제 주님의 말씀을 들어 회개하고, 주님과 사귐이 있는 신앙생활을 하여 천국에 들어갈 예복을 입게 해주세요. 그렇게 제 삶이 조금씩 변화되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종으로, 천국을 초대하는 종으로 살 수 있도록 축복해주세요. 그 삶이 가장 복되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