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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6 주일 1부 예배


2015-07-26 주일 1부 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2015년 7월 26일 주일1부예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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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우리의 일상과 신앙의 경계선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세상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에 살아간다는 것은 불신자와 똑같이 일해야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세상에 사는 것을 '힘들다, 어렵다, 죽겠다' 이런 표현을 씁니다. 불신자들이 쓰는 표현을 우리도 똑같이 쓰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과 신앙 사이에 마치 경계선이 쳐 있는 것 같습니다. 나누어진 느낌입니다. 어쩌면 우리 스스로 그렇게 경계선을 치고 싶은 지도 모릅니다. '이때만큼은 하나님이 저쪽에 계셔요. 이때만큼은 하나님은 이 안에 들어오지 마세요.' 마치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손님과 같습니다. 잠시 머물다가 떠날 분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일상이 영원히 변화되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요한계시록 3:20에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_요한계시록3:20’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주님과 동행한다는 것입니다. 그 동행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매일 주님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루 세끼를 먹는 것이 얼마나 평범한 것인가요? 그런데 중요하잖아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으나 가장 중요한지도 모릅니다. 그저 예수님을 영접하고 끝나는 것이 신앙이 아니라 주님과 사귐이 있는, 그것을 위해 하루 한번이상 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과 매일 식사를 할 수 있는 힘이 영성입니다.

육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이 아프거나, 몸이 문제가 있으면 운동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건강한 생각을 가진 사람의 가장 정상적인 자세입니다. 운동을 합니다.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처가 있으면 마음을 치료해야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영성은 영혼을 온전케 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신앙을 제대로 하고자 애쓰는 것이 영성입니다. 우리는 얼굴이나 옷에 신경을 정말 많이 쓰는 나라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가 마음에는 소홀하게 만듭니다. 사람들이 보는 것은 외모이고 보이지 않는 것이 마음이기에 마음은 함부로 생각하고 살피지 않습니다. 어리석지요.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을 위해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음성을 들을 수 있으면 그와 더불어 먹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음성을 매일 듣고 매일 마음에 영접하는 것이 우리가 신앙인으로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불신자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주인삼지 않은 종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바리새인들을 그러합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틀린 질문을 합니다. 성경을 많이 알았지만 계속해서 틀린 적용을 했지요. 왜 그럴까요?

Ⅱ. 틀린 질문과 틀린 적용

1. 잘못된 신앙관_마태복음22:15-16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_마태복음22:15-16’

첫째, 오늘 바리새인들은 잘못된 신앙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잘못된 신앙관을 가지고 있다면 고쳐야 합니다. 부모님에게서 혹은 오래된 전통에서 받은 신앙관이 다 옳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잘 알았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하려고 사무엘상16:7을 인용하였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할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할까?'였습니다.

제가 목회를 하다 보니 이 부분을 정말 많이 봤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자신들은 예수를 믿고, 교회도 다니고 신앙생활도 한다 하는데 단 한 번도 예수님을 위해 살지 않았고, 예수님이 어떻게 될까? 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될까? 내가 잘못되지는 않을까?' 오직 그 생각뿐이고, 그 삶뿐입니다. '예수님이 마음 아파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이용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이 높아지길 원하고, 예수님을 이용해서 성공하길 원합니다. 딱 바리새인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누군가 올무에 걸리게 해서 나만 잘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만 잘되면 되고, 나만 복 받으면 되고, 그러니 사건이 생기거나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불신앙하고, 입에서 원망이 나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거나, 예수님을 좋아하거나, 예수님이 드러나는 일에 신경 쓰며 살지 못합니다.

2. 잘못된 인생관_마태복음22:17-18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_마태복음22:17-18’

두 번째, 인생관도 잘못되었습니다. 신앙관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인생관도 바뀔 수 없겠지요. 인생관이 바뀌지 않으면 계속해서 틀린 사상을 가지고 틀린 질문을 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근본이 바뀌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질문을 보세요. '당신이 그리스도라면, 당신이 하나님이라면 이 세금을 굳이 로마에 낼 필요가 있냐? 그냥 당신이 가져가면 되겠네?' 하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당신은 하나님도 아니고, 그리스도도 아니다 이 말입니다. 그토록 메시아를 기다리던 그들이 예수님을 보고 당신은 아니라고 한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화가 나셨을까요?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으면서 믿는 척, 마치 신앙이 좋은 척 하며 예수님을 시험하려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많이 알고 있었으면서 말씀의 성취이신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는데 믿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신앙이 그런 것입니까? 마치 예수님을 믿어주는 것처럼, 마치 교회에 다녀주는 것처럼 그렇게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인생은 하나님이 없어도 된다 합니다. 기도도 많이 하고, 좋은 일도 많이 하고 그렇게 의롭다 생각했습니다. 의롭다 생각하니 예수님이 보이나요? 안보입니다. 말씀을 들리나요? 절대 안 들립니다. 여러분 교회에 오래 다닌다고 신앙이 좋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옛날에 역사 좀 일어났다고 신앙이 좋은가요? 아닙니다. 오늘, 지금 내 인생의 주인이 예수님인가 그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나는 예수님을 믿고 있는가? 그런 인생관이라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사랑하는 마음, 불쌍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현장과 사람들을 그렇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을 하며 계속해서 그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세상적인 인생관, 다시 말해 교회는 다니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변화되지 못한 인생관을 가졌습니다. 의로운 척하면서 뒤에서는 세상적인 욕심을 가지고 타락했습니다. 그렇게 삐뚤어진 인생관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정죄하며 거룩한 척 살아갑니다. 세상이 재앙과 저주로 병들어 멸망해 가는데도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내 가족과 후대가 병들어 가는데도 말입니다. 예수님이 화가 나실만합니다. '외식하는 자들아!' 우리가 세상의 것을 내려놓는 순간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영혼이 보입니다. 가난하고, 불쌍한 그들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보입니다. 우리 인생관은 그래야 합니다.

3. 잘못된 소유관_마태복음22:18-22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_마태복음22:18-22’

세 번째는 그들의 소유관이 잘못되었습니다. 아마 그들은 예수님이 '내가 하나님이니 내게 주거라' 이러면 황제에게 올무가 걸리고, '로마에 주어라' 이러면 유대인들에게 올무가 걸리게 할 모양이었나 봅니다. 이 본문은 세금에 관한 설교를 하게 하시려고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저 타락한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소유관을 보여주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왜 외식을 합니까? 영적인 세계를 믿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했습니다. 남들에게 잘 보이는 것에 집착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소유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것이 이 시대의 문제라 생각합니다. 다 소유하면 되는 줄 압니다.

그런데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까? 내 자식을 소유하려 합니다. 소유가 됩니까? 조금만 커보세요. 맘대로 안 됩니다. 돈이 소유가 됩니까? 어느 날 도박에 빠지면 금방 다 신기루처럼 사라집니다. 불신자들은 다 그렇게 삽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불신자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붙잡고 있는 것이 영원히 가는 줄 알고 예수님이 내려놓으라 하니 하나님을 믿지 않으려 합니다. 헌금도 그런 식으로 합니다. '나는 내가 많이 버니까 이렇게 교회에 도움이 되잖아. 나는 어려워서 미안해 죽겠네.' 그래서 우쭐대고, 그래서 주눅 드는 것이 다 잘못된 사상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전부 하나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의 믿음을 보실 뿐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소유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닙니다. 자꾸 소유하려고 하니 문제가 계속 됩니다. 우리는 어떻게 존재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그렇게 세상에 매여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인생도 변화가 없고, 평생을 소유하려고 살다보니 남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축복도 못 받습니다. 정말 중요하게 존재하며 살아야 하는데 그걸 못하고 죽는 것입니다.

Ⅲ. 주님과 함께

예수님은 제자들이 무엇을 깨닫도록 하셨습니까? 당신과 함께 하길 원하셨습니다. 당신과 동행하길 원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것을 못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고, 주인으로 모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재앙도, 저주도 피하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주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영성입니다.

1. 올바른 영성_마태복음22:21,갈라디아서2:20,이사야55:2-3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_마태복음22:21b'

영성은 무엇일까요? 신앙으로 돌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올바른 생각, 올바른 마음이 필요합니다. 자꾸 깨닫는 것입니다. '아. 하나님이 필요하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사는 구나' 그렇게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신자들에게 인정받으며, 하나님에게도 사랑받고 사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_이사야55:2-3‘

바리새인들처럼 무엇인가를 소유하기 위해 살면 안됩니다. 그들은 은을 좇았습니다. 다시 말해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좇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의 양식으로 배부르길 원하시는 데 우리는 자꾸 영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을 소유하려고 하니 문제가 됩니다. 좋은 것을 먹으면 즐거움을 얻겠지요? 좋은 것이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것을 귀 기울여 들으면 영혼이 산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소유가 아닙니다. 관계입니다. 내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 입니다. 그리고 존재입니다. 돈을 많이 소유했다고 해서 가치 있는 존재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사모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는 다릅니다. 그 사람이 불신자 가정에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의 사랑이 풍성한 사람이 불평과 짜증과 시기 질투가 가득한 직장에 존재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래서 영성은 하나님께 방향을 맞추게 하는 것입니다.

2. 올바른 시간관리_고린도전서9:25-27,이사야58:13-14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_고린도전서9:25-27’

그런 사람들은 올바른 시간관리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좇아 살고,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삽니다. 우리의 시간이 하나님 것임을 알고 은혜를 좇아 삽니다. 생명의 양식인 말씀을 좇아 살게 됩니다. 구원을 좇아 살게 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규모입니다. 당연하게 은혜를 좇아 살면 은혜를 힘입어 변화되고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관이 술을 좇아 산다면, 재물을 좇아 산다면, 무엇인가를 소유하기 위해 산다면 어떻게 될까요? 세상을 좇아 살면 인생의 결국은 세상처럼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허공을 치는 것입니다. 버림을 받게 됩니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_이사야58:13-14’

우리의 시간관리의 키가 뭘까요? 바로 예배입니다. 여러분 저는 예배에 생명을 걸었습니다. 제 인생관은 예배입니다. 제가 존재하는 이유도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도 예배를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모든 인생의 답을 예배 때 얻습니다. 사람들에게 조언도 구해야 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 답을 얻습니다.

저는 실패한 사람인가요? 아닙니다. 제 인생이 이렇게 행복할 줄 몰랐습니다. 만일 제가 예배드리지 않는 인생으로 저희 가정에 존재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제가 예배드리지 않고 술과 쾌락을 좇아 사는 사람으로 여러분 속에 존재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예배가 되어지는 시간관리가 된다면 여러분의 인생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삶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가 회복되어진다면 여러분의 시간은 놀라운 일의 연속이 될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3. 올바른 계획 : 묵상일기를 시작해보세요_이사야62:10-12

‘성문으로 나아가라 나아가라 백성이 올 길을 닦으라 큰 길을 수축하고 수축하라 돌을 제하라 만민을 위하여 기치를 들라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선포하시되 너희는 딸 시온에게 이르라 보라 네 구원이 이르렀느니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느니라 하셨느니라 사람들이 너를 일컬어 거룩한 백성이라 여호와께서 구속하신 자라 하겠고 또 너를 일컬어 찾은 바 된 자요 버림 받지 아니한 성읍이라 하리라_이사야62:10-12’

그래서 오늘 여러분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고 싶습니다. 주님과 동행하기 위해 제가 항상 실천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바로 묵상일기입니다. 사실 그냥 일기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가는 모든 삶의 느낌들을 적다보니 묵상일기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연초에 묵상노트를 선물한 것입니다. 단지 설교를 적으라고 드린 것이 아닙니다. 묵상일기를 적다보니 제일 좋은 것은 하나님 앞에서 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건강한 영적상태라 생각했습니다. 또 올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묵상일기를 쓰다 보니 제가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들이 얼마나 주님과 상관없는 것이 많은지 몰랐습니다. 일기를 기록하면서 그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론보다는 실천에 강해야 합니다. 묵상일기를 써보세요. 그리고 그 내용을 미션홈에서 지교회에서 또 새가족과 또 불신자들과 나누어보기 바랍니다. 일기는 진실합니다. 기도수첩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프로그램이 아니어야 합니다. 3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느냐 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느냐입니다. 은혜를 좇아, 구원을 좇아, 말씀을 좇아 사느냐입니다. 내가 무엇을 사랑한다면 그것을 좇아 살면 우리도 어느 날 그렇게 변화되어 있을 것입니다.

저는 묵상일기를 쓰면서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세상을 더 사랑했습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재물을 더 사랑했습니다. 남에게 잘 보이려고 살았습니다. 묵상일기를 쓰면서 예수님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세상과 단절해야 하냐? 아닙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니 예수님이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그전에는 세상을 좇았지만, 이제는 그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재물을 좇았지만, 이제는 재물이 어떻게 쓰임 받아야 가치 있는지를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우리보고 거룩한 백성이라, 가스펠 성도님들을 두고 거룩한 백성이라 버림받지 아니한 성읍이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은혜를 좇아 살길 바랍니다. 말씀을 좇아 살길 바랍니다. 구원을 좇아 살길 바랍니다. 그래서 그 삶을 위해 구체적인 시간관리를 하십시오. 저의 방법을 소개해드렸습니다. 묵상일기를 매일 쓰시기 바랍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저만의 식사시간입니다. 이 계획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항상 잘 안되더라도 이 계획을 세워야 현장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절대 이 금식만큼은 하지 않기 바랍니다.

 ✔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은 나와 함께 하시려고 하시는 데 우리는 주님을 손님처럼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주일에 교회한번 가주는 것이 신앙생활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니 제대로 된 신앙을 가져볼 수 없었고, 내 인생이 변화될 경험도 하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주님과 동행 해 본적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주님은 나와 함께 하실 원하시는데 어리석게도 세상을 좇아 살았습니다. 은혜를 좇아 살면 엄청날 텐데, 생명의 말씀을 좇아 살면 다 살아날 텐데, 구원을 좇아 살면 내 인생이 귀할 텐데 그걸 몰랐습니다. 주님 예배를 회복하게 하여주세요. 주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예배를 회복하여 날마다 주님의 임재를 맛보게 해주세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살게 해주세요. 그래서 내 묵상일기에 그것들을 기록하여 나누어 내 신앙이 성숙하게 해주세요. 변화되게 해주세요. 그래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인생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