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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09 주일 1부 예배

< 주일 1부 예배 >

일시:  2014년 2월 9일

제목 : 하나님의 방법

말씀 : 여호수아 6 : 1-7

설교 : 오승주목사



2014-02-09 주일1부예배.hwp



아래 링크를 통해 음성 파일을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https://db.tt/VnD7eFYk


아래 링크를 통해 영상으로 메시지를 다시 볼 수 있습니다.

http://youtu.be/Hbff5SmkgPA


저는 예수님을 믿고 주일 예배를 22년째 드리고 있다. 두 번 정도 예배를 드리지 못한 것 같다. 한번은 고등학생 때 자격증 시험을 보러 갔을 때였다. 그 때도 엄청 갈등을 했다. 그리고 군대에 가서 자대 배치를 받고 첫 예배를 드리지 못했다. 그리고 22년간 예배를 드리는 데 매번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다. 말씀을 수도 없이 들었는데 말씀을 들을 때마다 새 은혜를 주신다. 그게 저에게는 최고의 축복인 것 같다. 말씀이 힘들다거나 지겹다거나 하지 않고 말씀이 제게 늘 감동으로 온다. 그래서 말씀을 들을 때마다 '아, 그렇지 하나님 앞에 내가 이런 것들을 잘못했구나. 말씀을 붙잡고 다시 시작해야지.'라는 마음을 주셨던 것 같다. 오늘 예배를 드리며 그런 응답이 있기 바란다. 여러분은 오늘 어려운 환경가운데서 예배에 나올 수도 있다. 겉모양을 보면 알 수가 없다. 여러분의 환경과 과거를 알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신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힘을 얻기를 바란다.

Ⅰ. 세상에 축을 두고 살 것인가 하나님께 축을 두고 살 것인가

사실 저는 두려움, 염려, 피해의식, 열등감이 많은 사람이다. 어디에서 나왔나 하고 봤더니 어렸을 때 받았던 상처나 환경에서 각인된 것들에서 나오는 것 같다. 사실 시골에 살 때 친구들을 집에 한번도 초대하지 못했다. 집이 가난하고 좋지 않아서 초대하지 못한 줄 알았다. 그런데 말씀을 준비하면서 보니 아버지, 어머니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늘 술을 드셨고, 못 배운 어머니가 창피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게 어떤 피해의식, 열등감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밖에 나가면 오히려 굉장히 밝았다. 저는 긍정의 사나이였다. 늘 웃고 다녔다. 그런데 속으로는 어두운 것이다. 복음을 받고 예수님을 믿었는데 고등학생 때 정말 열심히 했다. 여러분은 일주일에 두 번 나오면서 힘들다고 한다. 주일날 3시 반이면 예배가 끝난다. 저는 고등학생 때 매일 교회에 갔다. 학교에서 전도는 말할 것도 없다. 왜 열심히 했나 생각해 보니 뭔가를 감추기 위해 그렇게 했을 수도 있다. 잘 보이기 위해 그랬던 것 같다. 누군가 저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까 불안했다. 저 사람이 나를 이렇게 바라보면 어떻게 하지? 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렇게 바라보지 않는대도 오해를 해서 스스로 상처를 받았다.

한번은 전도사 때 섬기던 목사님이 서울에 있는 수련회를 위해 회의를 하는데 부르셨다. 그래서 날짜와 시간을 기억하고 광주에서 서울로 갔다. 도착을 했는데 건물에 들어가려면 비밀번호를 눌러야 한다. 그런데 그 앞에서 목사님에게 '오늘 모임있죠?'라고 문자를 했다. 목사님이 '힘들면 안와도 된다'라고 하자 내가 올 곳이 아니다 보다 하고 다시 광주로 돌아갔다. 그냥 문을 열고 들어가면 되는데 사람들이 환영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열심히 할 때는 그게 괜찮았다. 대학에 가서 그 열심이 한계에 다다랐었다. 제 어렸을 때 있었던 영적인 문제들이 솟아져 나올 때 한계에 부딪혔다. 가족들과 함께 있지 않고 멀리 떨어져서 생활을 했는데 가장 친한 친구가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그때 학교 운동장에 앉아 있는데 괜히 외롭고 서럽고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제 한계가 느껴지고 가족들에게 좋은 소식이 들려오지 않으니 굉장히 혼자인 것 같고 외로웠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이 찾아와 주셨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 때 성령님이 저를 찾아와 주셨다. '내가 너와 함께 하는데 너는 나를 믿지 않는구나. 너는 왜 두려워하느냐. 무엇이 너를 외롭게 하느냐'고 하셨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고 하는데. 그 때 저는 굉장히 자신감도 없었다. 내가 목사가 될 수 있을까. 밥이라도 제대로 먹고 살 수 있을까 그런 마음이었다. 그 때 하나님의 은혜라는 찬양을 많이 불렀다. 그러면서 많이 울었다. 그 때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감싸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저에게는 그 때가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그 뒤로 하나님이 인도하는 것은 정말 놀라웠다.

그런데 또 한 번의 외로움이 찾아왔다. 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하고 몇 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자꾸 실수를 하고 혼도 났었다. 그 날은 혼이 나고 마음도 좋지 않은데 중학생 청소년을 만나러 학교로 갔다. 그런데 그 날 따라 이 아이들이 저를 바람맞히고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 혼자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내가 설교를 잘 할 수 있을까, 복음은 있는데 이게 내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낙심하고 있는데 그 날도 하나님이 저를 찾아와 주셨다. 은혜를 주셨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내 인생을 돌아보니 내 힘으로 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내가 똑똑하고 잘나서 청소년 사역을 하는 것도 아닌 데 하나님이 지금까지 나를 인도해 주셨는데 내가 왜 두려워하고 떨고 있습니까. 저는 실력도 없고 부족하니 조건 없이 아이들을 사랑해 보겠습니다. 라고 했다. 아이들에게 생명을 걸었다. 잘 못하지만 진짜 사랑해줬다. 진심으로 기도해 주었다. 그 때 결단하고 주신 은혜로 10년 청소년 사역을 했는데 분에 넘치는 응답을 주셨다.

우리는 가끔 이런 두려움과 외로움들이 있을 수 있다. 저는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말씀이나 설교, 정리된 강단 메시지보다는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으면 한다. 우리 힘으로 우리 인생을 성공되게 살 수도 있겠지만 진짜로 하나님이 축복하고 원하시는 삶은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다. 불신자들도 열심히 하고 노력하면 돈은 벌고 남들보다 잘 살 수는 있지만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은 되지 않는다.

무슨 일로 두려워하고 있는가? 상황을 보니 걱정이 되고 문제가 되는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앞에서 자신들 메뚜기 같다고 했다. 가나안에 가니 튼튼한 성이 많았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스스로 보기에 메뚜기와 같다고 했다. 하나님이 그것을 싫어하셨다. 분노하셨다. 너무 창피하게 생각하셨다. 내가 함께 하는 백성, 내가 복음을 줘서 구원한 백성인데 그 구원의 백성이 하나님이 함께한 것을 모르고 세상 앞에서 자신들을 메뚜기와 같다고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많은 교회를 다니는 크리스쳔들이 그렇게 살고 있다. 하나님 께서는 이렇게 물으신다. 언제는 너희 힘으로 왔느냐? 오늘 여리고 앞의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민족은 완전 다른 민족이 되었다. 이 사람들이 전쟁 준비를 잘 한 것이 아니다 광야의 백성들보다 어떤 면에서는 지식과 노하우가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광야의 이스라엘과 완전히 다른 민족이다. 이들은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한 민족이 되었다. 하나님께 인생의 축을 두었다. 세상을 두려워 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씀을 완전히 신뢰했다. 그것이 우리가 소망해야 할 믿음이다. 여러분은 인생의 축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불신자 가정에 두고 있는가. 막연한 미래에 두고 있는가? 직장에 두고 있는가? 제가 그럴 때마다 하나님이 축을 옮기기 위해 흉년의 때로 몰기도 하시고 외로움의 때로 몰기도 하셨던 것 같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민족이 여리고 앞에서 말씀에 순종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_ 여호수아1:8’

이것이 믿는 자에게 주시는 언약의 말씀이다. 그런데 이것을 여호수아가 놓치지 않았다. 하나님 앞에 늘 그 시간을 가진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다. 믿음에 굳게 서기 바란다. 속지 않기 바란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_ 골로새서2:6-7’

Ⅱ. 나의 여리고성은 무엇입니까

1. 여호수아는 믿음이 관념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관념적이란 것은 무엇인가. 현실적이지 않고 추상적인, 공상적인 것이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관념적으로 하고 있다.. 하나님 말씀은 귀에 듣기 좋고 말씀을 들으니 마음이 시원한 것이 신앙생활이다. 실제 직장에서 가정에서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적용되지 않는다. 지금 흑암이 가정을 몰아치고 있는데 그 사실을 실제로 믿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예배를 드려도 관념적으로 드린다. 쉽게 말해 취미생활인 것이다. 하나님 말씀이 살아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하나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 세상에 좋고 흥미로운 것이 너무 많다. 수천 년 전 이 말씀이, 성령의 역사가 지금 우리의 삶과 상관없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알았다. 믿음은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요단강에 발을 내미는 순간 요단강이 갈라지는 기적을 체험했다. 그리고 여리고 성에 다다르게 되었다.

2.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_여호수아6:1b'

여리고 성은 많은 의미가 있다. 여호수아를 비판하는 학자들도 있다. 사실 여호수아는 굉장히 무서운 말씀이다. 씨를 말리라고 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그런 말씀이 아니다. 이건 단순한 침략전쟁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가 분명히 있다.

우리는 불안을 드러내기 위해서 생색을 내기도 하고 관계를 갖기고 하고 조직을 만들기도 한다.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한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불안을 이기지 못해 낙심해서 인관관계를 맺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각인된 것들이 내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사단이 주는 것들과 결합 되었을 때는 감당할 수 없는 문제가 된다. 도박, 마약, 음란, 중독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그런 것들을 감추고 있다. 하나님이 자녀 삼아 주셨는데 우리 부모님에게 그것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대화도 없고 말씀을 청종하려 하지 않는다.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에 어떤 벽이 있는가? 어떤 막힌 것이 있는가? 그것을 열어야 한다. 그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붙잡고 있는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무엇인지 묵상하기 바란다.

여리고가 언제 무너지는가?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다. 순종했는데도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것이다. 여리고 성에서의 작전 자체가 불안한 것이다. 일곱 바퀴째 돌 때 성이 무너질 거시라는 데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하루 이틀을 돌아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열심히 노력하는데도 이 과정을 참지 못하고 불평, 불만, 불신앙이 이 민족에게 확산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여호수아는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했다. 여호수아는 알았다. 광야에서 조금만 불편해도 하나님 앞에 따지고 불평, 불만 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것 때문에 가나안에 가지 못하게 한 것을 알고 있었다. 여리고를 도는데 말을 하지 못하게 했다. 굉장한 영적인 의미가 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불평 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6일 동안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교회에 나와서 찬양을 하고 소리치면 속이 시원하다. 그런데 6일 동안 세상에 사는 동안은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 치열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이 동행하는 것이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세상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부딪히며 말씀이 들리지 않을 때도 있을 것이다. 매일 기적이 일어나면 좋을 텐데 하나님의 침묵은 참으로 우리를 힘들게 한다. 기적의 순간은 침묵하고 순종한 6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나님의 역사는 오늘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삶을 통해서 오늘 이뤄진다.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것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방법을 통해서 이다. 여러분에게 여리고 성이 그렇게 무섭고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오늘 본문 처음으로 돌아가 보겠다. 1절의 말씀이다.

‘이스라엘 자손들로 말미암아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

여러분의 여리고성은 무엇인가? 여리고는 달의 여신을 숭배하는 곳이었다. 다양한 신을 섬겼다. 달의 여신은 음탕한 신이었기 때문에 동성연애, 동물과의 교접, 문란한 생활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여리고는 권력과 교만으로 가득찬 곳이었다. 이것을 가만히 둔다면 하나님의 백성이 물드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그래서 철저하게 파멸을 명하신 것이다.

오늘 여리고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는 여리고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살게 하는 여리고는 무엇인가? 아집, 고집, 상처, 세상에서 추구하는 성공인가? 어리석게도 우리는 그런 여리고를 가지고 살아 갈 수도 있다.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을 보호하기 원하신다. 우리는 그런 신분이 되었음에도 여리고를 놓지 못하고 있다. 여리고가 무너지면 손해를 볼 것 같고 허전할 것 같다. 그런 여리고를 무너뜨려야 한다. 제가 목사가 되어서 여리고를 무너뜨리는 시간표가 있었다. 열심히 쌓은 여리고를 붙잡고 있었다. 이것을 무너뜨리면 안될 것 같았다. 이게 있어야 어깨를 으슥거리고 자랑하고 생색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 부서 버리라고 하셨다. 죄악과 가까이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 하나님을 몇 번 경험했다. 다 내려놓았을 때 몰려오는 평안, 은혜를 맛보았으면 좋겠다. 이 말씀과 사건을 통해 우상숭배한 자들에게 진노의 하나님과 택한 자들을 건지시는 자비의 하나님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을 용서하고 사랑하신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공존하는 것이다.

여리고 성을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는가? 내가 내려놓아야지 하면 할 수 있는가? 그 배후에 사단이 있고 영적인 존재가 있다. 그렇게 무너지지 않는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만 상대가 반응이 없다. 가족들의 여리고, 현장의 여리고를 무너뜨리기 위해 노력하는데 반응이 없을 때 힘이 빠지게 된다. 상대가 오히려 더 강해지는 것 같다. 남편을 위해 희생하고 그렇게 기도 했는데, 자녀를 위해 그렇게 노력하고 기도했는데 아무 반응도 없고 미동도 없는 것이다.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실제 여리고 성 안에는 필요한 양식과 재물이 있었다. 여리고 성 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작은 성이지만 그 때 당시에는 견고한 성이었다. 세상은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인다.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나는 아직 젊어, 나는 배운 것이 있어. 나는 친구들도 많고 괜찮아'라고 한다. 여리고 안에 다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마음을 열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다.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도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능력이다.

이 시대에 새로운 여호수아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따라갈 기적의 사람이 필요하다. 직장, 가정, 마음의 여리고를 무너뜨릴 여호수아가 필요하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_역대하 16:9’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신 것이다. 남에게 말 못할 사정을 감찰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지켜보고 계신다.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_ 골로새서1:6’

아무 역사도 없는 것 같은데 복음을 깨닫고 잇는데 온 천하에 열매를 맺어 자라게 하심을 믿기 바란다. 반드시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다.

Ⅲ. 하나님의 방법이 최고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전략을 보면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보시는지 알 수 있다. 왜 이 방법을 쓰셨는가? 그냥 앞으로 가자라고 할 수도 있다. 미리 여리고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방법을 쓰셨는가? 이 방법 속에 하나님의 계획을 볼 수 있다.

무장한 자, 일곱 나팔, 언약궤, 맨 뒤에 이스라엘 군대가 섰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 계획이다. 우리의 인생이다. 행진하는 중심에 언약궤가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이다. 여러분 앞에 있는 여리고를 무너뜨리기 위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해야 한다. 그게 여호수아가 한 일이다. 왜 길갈에 진을 치고 하나님을 경험하게 했는가?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여리고를 절대 무너뜨릴 수 없다. 하나님의 방법은 당신의 자녀들이 은혜를 입는 것이다. 하나님이 여러분, 저의 삶에 우선순위로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싸움의 최고 사령관이 되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6일간 인내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이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혈기가 왕성했겠는가. 요단을 건너고 그들이 보기에 여리고를 한방에 끝낼 수 있을 것 같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침묵, 순종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하심을 기다리라고 하셨다. 성에 들어가 물건을 탐하지 않고 순종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이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여리고성이 무너진 것은 7일째 성을 돌며 나팔을 불었을 때다. 이것은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드린 예배였다. 승리의 선포였다. 이미 여리고는 끝난 것이다. 이미 십자가에서 죄 문제를 해결하고 부활하셨다. 우리는 이미 승리한 싸움을 싸우는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이 그런 신앙이 되어야 하나. 나와 함께하는 하나님이 부족해서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 할 것 같은가? 무엇인가가 불안한가? 직장, 가족이 대단해 보이고 위축되고 불안한가. 그것을 내려놓으라고 하신다. 당신의 백성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겠다고 하시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 믿음이다. 저는 가진 것이 없고, 겸손해야 하지만 이 확신은 최고의 확신을 갖기를 원한다.

아직 불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7일을 기다리고 기도하기 바란다. 말씀의 성취는 우리가 정한 날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획하신 날에 이루어진다. 결국,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어떤 방법인가?

1. 하나님과 동행

첫 번째 하나님의 방법은 동행하는 것이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이다. 내 판단, 고집을 내려놓고 모든 순간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과 동행했다. 창조주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운행하는 하나님이 동행하는데 우리가 위축되어 보인다는 것은 겸손이 아니고 불신앙이다. 모세는 자신들에 메뚜기와 같다고 했다. 그것은 겸손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불신자가 모르는 비밀이다. 저는 그것을 확신하고 있다. 우리의 미래를 걱정하지 말기 바란다. 이 교회의 수장은 하나님이시다. 염려하지 않기 바란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임마누엘이다. 직장에서 가장 필요한 믿음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당하지 아니하느니라_잠언19:23’

하나님을 신뢰하고 살면 우리를 실패의 길로 내모시지 않는다.

2.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성령의 인도를 받는 유일한 방법은 말씀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역사하고 계신다. 전부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시대에 하나님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은 특별한 삶이다. 거룩한 삶이다. 그러나 잘 되지 않는다. 당장 월요일이 되고 문제가 오면 되지 않는다. 2014년 한 가지 응답이 있다면 이것이 되기 바란다. 그래서 가스펠 미션홈을 해야 한다. 말씀을 따라가고 듣고 묵상하고 깨달음과 은혜가 하찮게 여겨지지 않기 바란다. 그것이 위대한 믿음이다. 모든 선택에 앞서 말씀을 따르는 것이 하찮게 여겨지지 않기 바란다. 그것이 하찮다면 여리고가 무너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한 나라를 살리신다. 주정뱅이, 죄와 저주로 가득한 영국을 신사의 나라로 바꾸셨다. 변화되지 않을 것 같은 미국을 복음으로 변화시키셨다. 5천년 동안 우상을 섬기고 죄, 저주가 가득했던 것이 우리 민족이다. 5천년 동안 가난하고 침략만 당한 민족이다. 그런데 복음, 말씀이 들어왔다. 믿음의 선조들은 말씀에 순종했다. 말씀을 묵상하고 의지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는가? 세계 선교를 하는 축복의 나라로 바꾸셨다. 그런데 지금 이것을 또 하나님의 백성들이 놓치고 있다. 새로운 여리고가 세워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영적 문제는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 말씀으로만 해결 할 수 있는 것이다. 말씀 안에 있는 복음의 메시지이다. 하나님이 아니면 변화될 수가 없다. 저들의 여리고가 무너지지 않는다. 하나님이 주신 유일한 생명의 말씀을 순종해야 한다. 이것은 강제가 아니다. 길이 이것 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회개이다. 말씀을 들으면 반드시 회개가 있다. 찔림이 있다. 그것이 은혜의 시작이다. 그 은혜를 받을 때 기적이 시작된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_ 신명기5:10’

3. 영적인 싸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말씀으로 성령 인도를 받는 삶이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는 삶이다. 다들 영적 싸움을 오해하고 있다. 우리는 여리고 앞에 와서 싸우자고 한다. 남편과 치고 박고 싸우려고 한다. 자녀들과 그렇게 싸운다. 친구들과도 그렇게 한다. 말은 예수님 믿어야지라고 하지만 속으로는 생색을 낸다.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라고 한다. 우리는 그렇게 싸우려 한다. 영적 싸움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가난에서 이를 악물고 벗어나려 하는 것이 아니다.

영적 싸움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삶을 덮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 은혜를 받은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방법에 자신을 내어 드린 것이다. 그 때 남편, 자녀, 세상이 돌아오는 것이 보이시는가? 우리가 이 은혜가 있었으면 한다. 여러분이 은혜를 받고 가스펠 미션홈이 은혜의 미션홈이 된다면 돌아올 것이다. 우리의 힘으로 사단과 영적 싸움을 이길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저를 공격하고 어렵게 하는 것이 환경이나 사람이 아니었다. 제 안의 여리고였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 환경을 신경을 쓴다. 내가 이렇게 하면 되지, 이렇게 바꾸면 되지. 그런데 저는 제 힘으로 안되는 것을 알았다. 인정하고 하나님을 완전히 의지했다. 그 때 기적이 일어났다. 가정이 바뀌고 인생도 바뀌고 여리고가 무너졌다. 제가 머물고 있는, 밟고 있는 땅이 변하기 시작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치리라_ 역대하7:14’

Ⅳ. 뜨겁게 행하라

이스라엘 백성은 세상방법으로 싸우지 않았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세상의 방법으로 바라보았기에 답이 없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말씀을 가지고 있었다. 여리고를 도는데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했다. 그러면서 지난날이 생각이 나고 내 여리고가 무엇인지 생각이 났을 것이다. 처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되새겼을 것이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_여호수아1:8-9’

여러분의 6일간의 삶이 그런 삶이되기 바란다. 이제 우리는 뜨겁게 행해야 한다. 사실은 약간 미친 전략이다. 매일 말씀을 가지고 질서 정연하게 돌았다. 그것이 뜨겁게 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말씀을 순종하되 질서 정연하게 규모를 갖추고 세상에 뜨겁게 행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본질을 놓치고 있다. 책에 보니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한 교회의 집사님이 중동에 일을 하러 갔다. 배를 타고 가는데 지금처럼 좋지 않아 여러 나라를 들렀다. 일본에 들렸는데 시골에서 이렇게 이야기 했다. 일본에 가면 돈가스를 꼭 먹으라고 했다. 그래서 자장면도 못 먹어본 집사님이 일본의 작은 항구에 들러서 돈가스가게에 갔다. 그 가게에서 제일 먼저 스프를 주었다. 그런데 그것을 먹고 나왔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돈가스를 먹었다고 자랑했다. 시골사람들이 돈가스가 어땠냐고 묻자 그는 국물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이렇게 될 수 있다. 본질을 놓치고 껍데기만 붙잡고 끝날 수도 있다.

돈,돈,돈 하면 돈의 노예, 건강, 건강, 건강하면 건강의 노예가 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그래서 마지못해 반석에 샘물을 주시는 것이다. 그래도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평생을 광야에서 지내게 되는 것이다. 가스펠 교회 가족들의 인생이 이런 인생이 되지 않기 바란다.

세상에 축을 두면 당장 무엇인가 이루어 질 것 같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것은 복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흉년으로 내몰아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는 것이 복이다. 어리석어 보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할 것이다. 하나님께 축을 두고 살아가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되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들고 나아가기 원한다. 뜨겁게 무엇을 행하라는 것인가? 말씀을 청종하고 예배드리는 것을 뜨겁게 해야 한다.

‘나의 의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기꺼이 노래부르고 즐거워하게 하시며_ 시편35:27a'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_디모데전서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