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2014-02-16 주일 1부 예배

< 주일 1부 예배 >

일시:  2014년 2월 16일

제목 : 하나님의 위치

말씀 : 여호수아 7 : 1-12

설교 : 오승주목사



2014-02-16 주일1부예배.hwp



아래 링크를 통해 음성 메시지를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https://db.tt/w2kTQxk7


아래 링크를 통해 영상으로 메시지를 다시 볼 수 있습니다.

http://youtu.be/nu2F-R4h478


시대를 담는 축복의 그릇을 준비하는 한해입니다. ‘1부예배 여호수아, 2부예배 사도행전, 금요예배 시편‘을 통해 말씀대로 잘 인도받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변화될 것 입니다. 말씀을 청종하는 삶을 산다면 나 자신이 변화됩니다. 말씀에는 힘이 있습니다.

Ⅰ. 우리의 위치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세상에서 성공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 성공이 언약(하나님과의 관계)안에서 일어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성공도 할 수 없지만 그러한 성공은 미끄러지게 되어있습니다. 결국 하나님 없이 성공한 그것 때문에 수치의 자리에, 조롱의 대상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입니다.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_시편73:18-19’

사람들이 엄청난 성공의 자리에 있는 것 같고, 어마어마하게 높은 자리에 올라가 '하나님 없어도 이렇게 성공할 수 있어'라고 하는데, 한 순간에 파멸의 자리로 간다고 성경은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하심이 없는 목회를 하면 굉장히 두렵습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설교와 사역들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일까?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주실까? 그렇게 생각하면 굉장히 두렵습니다. 다른 두려움과는 조금 다른 것입니다. 어제 밤에도 기도를 하는데 그런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내가 진짜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습니까? 내가 지금까지 배워온 기준, 경험으로 쌓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저는 하나님의 기준에 부합된 삶과 도전하려고 몸부림 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위치가 자연스럽게 정상적인 위치로 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기준에 맞추어서 몸부림을 치다보면 우리의 위치가 자연스럽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위치로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세상에 기준을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정상정인 위치에 있기를 원하십니다.

혹시 여러 가지 문제와 많은 갈등, 고난, 어려움 속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기준을 두고 다시 여러분의 신앙과 삶을 재점검 하셔야겠습니다. 육신의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이 안 좋은데 자꾸 돌팔이 의사나 인터넷을 보고 치료를 하면 몸이 정상적으로 돌아 갈 수 없습니다. 가장 잘 아는 의사의 치료를 받아야 몸이 정상적인 위치로 가는 것입니다. 영적인 것은 더욱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위치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 여호수아서를 보면서 저는 많이 의아해 했습니다. 사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게 작은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의 반응은 실망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저번 주 메시지에서 여호수아는 대단한 믿음을 가졌었습니다. 여리고 앞에서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는 삶을 살았다고 설교를 했는데, 오늘 갑자기 변화가 왔습니다. 작은 문제가 왔는데 옛 체질이 나온 것입니다. '요단을 건너지 않았으면 더 좋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원망을 하는 여호수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도 이럴 수 있겠다’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실 우리의 연약함과 비슷하지요. 뜨겁게 결단하고 주를 위해 살겠다고 해놓고 문제가 올 때면 옛 체질로 돌아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여호수아에게 진짜 문제인 것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 온 고난의 이유를 몰랐던 것입니다. 이유를 모르니 답답함에 하나님께 따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하나님이 그 기도 가운데 여호수아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실 그게 은혜입니다. 문제가 올 때 여호수아처럼 하나님께 따져 묻기라도 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부모, 부부, 자녀와 사이가 안 좋아도 따져서 물어라도 보아야 관계가 유지됩니다. 영원히 대화를 하지 않으면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실패하고 주저앉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따지러 간 것입니다.

Ⅱ. 아간의 범죄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도대체 왜 그런 고난(아이성전투의 패배)이 왔는지 이야기해주십니다. 많은 분들이 여러 해석을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한 가지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간이란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묵상하지 않았고,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물건에 손을 댄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았음을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바로 그것이 범죄입니다.

‘너희는 온전히 바치고 그 바친 것 중에서 어떤 것이든지 취하여 너희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바치는 것이 되게 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_여호수아6:18’

분명히 하나님께서 여리고 전투를 하기 전에 미리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고 없이 갑자기 범죄에 흥분하신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말씀을 미리 주셨습니다. 그런데 아간이 그것을 어긴 것입니다.

1. 아간과 라합의 비교

성경은 아간이라는 인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합니다. 여호수아서에 나온 인물 중에 가장 많은 분량으로 조명하고 있습니다. 아간은 유다지파입니다. 12지파 중 으뜸지파입니다. 그리고 계보가 4대째 제공되는 것으로 보아 유력한 집안 출신이었음이 거의 확실합니다. 성경에 나오지 않은 유태인의 전승에 따르면 그는 다말과 유다 사이에 태어난 쌍둥이 세라의 후손이었습니다. 즉 진정한 이스라엘 전통의 계보에 나오는 사람이 아간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공동체의 핵심, 내부의 사람인 것입니다. 언약궤를 중심으로 가나안을 정복해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 중 핵심, 측근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범죄가 가문을 멸절시키게 됩니다. 그뿐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게 되었습니다. 신앙은 그런 것입니다. 불신앙하는 한 사람이 통로가 되어 가문이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지는 것을 저는 수도 없이 보았습니다. 배경이나 위치나 모든 것에서 비교할 수 없는 아간이었는데, 하나님의 역사를 본 핵심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시편 78편의 말씀과도 같습니다. 한 순간에 바람처럼 사라지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보잘것없는 집안에, 가진 것 없는 기생 라합은 그의 믿음으로 가문을 살리고, 장차 언약의 축복을 이어받는 축복의 가문이 되었습니다.

‘유다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_여호수아7:1b'

2. 잘못된 지도자(여호수아7:2-5)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지도자 여호수아입니다. 분명 여호수아는 잘못된 행동을 했습니다. 다른 성경에는 여호수아가 전략을 짜거나 전쟁을 하기 전에 항상 여호와 앞에 섰습니다. 그러나 오늘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사람들의 말을 듣고 전략을 짜서 아이성을 쳐들어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중요 한 것은 아간의 작은 범죄가 공동체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것은 그런 것입니다. 영적인 것은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습니다.

큰 성인 여리고성 전투 때에는 사상자가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싸우지 않았으니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 성 전투 때는 무려 36명의 전사자를 냈습니다. 그러니 충격이 매우 컸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너무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그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패배를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교훈입니다.

보통은 그런 작은 일들이 일어나고 고난이 오는데, 기도생활을 예배 생활을 하지 않아 그런 것들이 왜 오는지도 모르고 지나갑니다. 그러니 쌓이고 쌓여 그 잘못된 행동이 영원히 각인되어 실패의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불신앙의 가문으로 가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가문을 너무 많이 보았습니다. 장로님, 권사님 가문인데, 예전에는 하나님께 쓰임 받았는데 어느 순간에 자녀들은 예수를 믿지 않고 어느 순간에 불신자의 가문보다 더 하게 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또 반대의 가문도 보았습니다. 정말 열악하고 불쌍한데 그 속에서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그 가문이 바뀌고 변화되어 축복의 가문으로 가는 것을 너무나 많이 보았습니다.

여호수아가 귀한 것은 하나님께 예배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아 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목회자로써 영적인 지도자로써 깊은 묵상을 하였습니다. 여호수아가 왜 그랬는지 저는 이유를 몰랐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저에게 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영적인 지도자로써 성도들의 삶을 챙겨야겠다. 성도들이 예배생활, 기도생활을 놓치고 있다면 책망 해야겠다. 말씀을 듣는데 순종하지 않는 성도가 있다면 권면 해야겠다.'라고 다짐했습니다. ‘그 성도가 기분 나빠해서 교회를 옮기더라도 그렇게 해야겠다.’라고 다짐했습니다. 왜입니까? 아간처럼 그 잘못된 신앙생활 때문에 온 가문이 하나님과 상관없게 되어 실패의 가문이 되길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3. 잘못된 기도(여호수아7:6-10)

여호수아가 잘못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참 놀랍지요? 그의 기도를 보고 소름이 돋았습니다. 저도 가끔 이런 기도를 할 때가 있습니다. 원망의 기도, 불신앙의 기도입니다. 하나님 도대체 뭐하고 계십니까? 성경을 자세히 보는데 저도 그런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차라리 우리가 요단 강 동쪽에서 그대로 살았더라면 좋을 뻔 하였습니다._여호수아7:7b'

누가 이런 기도를 했습니까? 모세입니까? 여호수아입니다. 이것은 사실 기도가 아니라 따지는 것입니다. 오늘 여호수아는 자신의 실패가 수치스러웠나봅니다. 자신의 실패가 부끄럽고 수치스러워 하나님께 물은 것 같습니다. 도대체 여호수아가 왜 그랬는지 몇 번을 묵상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자신의 전략이 실패로 돌아가자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막 따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을 귀히 여긴 여호수아가 어느 순간 슈퍼스타처럼 되어서 아이성 앞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쉽게 말하면 여호수아에게 교만한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성공도 하나님께, 실패도 하나님께 있는 것을 믿으십니까? 오늘 여호수아는 그것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 따졌습니까? 하나님의 일인데. 하나님이 인도하신 여정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여호수아가 왜 하나님께 원망을 했습니까? 본인의 수치, 부끄러움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럴 때가 많지 않습니까? 누구의 자리로 가려는 것입니까? 자꾸 하나님의 자리로 가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어두워 지지 않고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주인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어떤 위기 속에서도 신앙을 놓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아간의 사건도 모르는 여호수아의 모습에서 우리는 공동체를 깨달아야 합니다. 분명 사단이 공동체에 역사하는 데 지도자가 영적으로 어두워지면 여러 가지의 것들이 복합적으로 문제가 되어 찾아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은 고난입니다. 가스펠 교회에 반드시 이런 상황이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뛰어 넘는 것은 우리의 그릇일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에 대한 우리의 자세가 너무 중요합니다.

Ⅲ. 거룩한 정복 전쟁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여정은 단순한 여정이 아닙니다. 거룩한 정복전쟁입니다. 우리가문과 이 지역, 그리고 제 3세계를 향해 복음으로 저들을 살리고 천국 백성이 되게 하는 가는 거룩한 도전과 같습니다. 만약 그냥 정복하는 거라면 열심만으로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열심히 하는 것이 더 빠를 수도 있습니다. 온갖 정보를 가지고 와서 교회 회의 때 늘어놓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될 것 같지요? 더 빠를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코 하나님의 방법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말씀과 공동체에 있습니다. 그러니 아간의 실수를 하나님께서 그냥 넘어가지 않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만 책망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데 왜 아이 성 전투를 실패하게 하셨습니까? 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깨닫고 가게 하셨습니까? 우리는 그렇게 가야 합니다. 조금 더디더라도 우리 공동체는 함께 가야 합니다. 지도자가 교회의 부흥, 성공을 위해서 건물을 위해 관심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관심은 성도들이, 언약의 백성들이 함께 가는 것입니다. 조금 더디 가더라도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언약을 놓쳐서는 안되겠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그 음성을 듣고 가야겠습니다.

1. 하나님과 맺은 언약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 안에서 가길 원하십니다. 그것 때문에 광야에서 40년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아이성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니, 바로 다시 고난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그것은 고난이 아닙니다. 진짜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가스펠교회에 이런 고난, 실패를 주시길 원하십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에 이런 실패를 주세요. 하나님 원하시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면 그 때 실패를 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오죽 답답하시면 하나님이 직접 그 방법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제비를 뽑으면 알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제비를 뽑았는데 누가 걸렸습니까? 아간이었습니다. 깜작 놀랐을 것입니다. 측근이자 공동체의 핵심이었습니다. 다들 이렇게 이야기 할 수도 있습니다. '목사님 물건을 훔친 것이 어때서요?' 오늘 말씀은 그 말씀이 아닙니다. 물건을 훔친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삶이 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할 정도로 병들었습니다. 그래서 불신자와 같은 삶을 소망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나안의 모든 것을 주실 계획으로 그들을 끌고 가시는데, 아간이 작은 물질에 마음을 빼앗긴 것입니다.

말씀이 듣고 청종하며 살기 시작하면, 하나님 기준에 맞추어 살고자 하는 열망이 생깁니다. 다른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목적을 두게 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삶은 그런 것입니다. 언약의 삶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했을 때 나머지 삶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과만 함께 하길 원하십니다. 아간은 주인되신 하나님을 놓친 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어느 성중에서든지 너희 가운데에 어떤 남자나 여자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그 언약을 어기고_신명기17:2’

하나님이 함께 하겠다고 하셨는데 그 언약을 어긴 것입니다. 아간이 물건을 훔친 것에 화나신 것이 아닙니다. 언약을 어긴 것입니다.

2. 언약 백성의 삶(신명기6:1-19)

언약 백성의 삶은 어떤 삶입니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는 삶입니다. (신명기 6:16-18)하나님은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아간은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기뻐하는 삶이 무엇일까요? 그 답을 말씀에서 찾아야 합니다.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습니다. 악한 영이 계속 하나님의 백성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어느 삶이라도 중간상태는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차갑든지 뜨겁든지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의 신앙생활의 기준은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고난이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실패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으로 돌아간다면 그것이 축복입니다.

기준이 세상에 있거나, 주변의 똑똑한 지인들에게 있거나, 혹은 다른 무엇인가에 있다면, 철저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정말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은 다른 것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기준을 두고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오직 그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경에 저 사람은 저런 죄를 지었는데 하나님이 왜 구원하시지? 라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천국 백성을 하나님은 천국백성답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모든 삶의 기준, 신앙생활의 기준은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너무 무서운 것은 그 말씀이 변질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도자가 중요합니다.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음을 받고 그 땅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쫒아내시겠다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아름다운 땅을 차지하리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니라_신명기6:18-19’

3.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다른 말씀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삶이 회복되고 치유될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만 참 성공을 할 수 있습니다. 록펠러를 아시지요?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사모했는지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가진 말씀에 대한 집착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중요한 것은 여호수아가 그것을 깨닫고 다시금 말씀을 청종하는 갱신을 합니다. 다시금 말씀을 청종하시길 바랍니다. 말씀이 우리를 살리는 것입니다.

‘너는 일어나 백성을 거룩하게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일을 위하여 스스로 거룩하게 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_여호수아7:13a'

Ⅳ.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위치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위치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것을 묵상하고, 또 묵상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의롭게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도덕적으로 살고 갑자기 술, 담배를 끊고 착하게, 검소하게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삶 속에 하나님의 위치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의 기준이 여기에 있습니다. 부모님들은 언제 가장 기뻐하십니까? 부모님의 위치를 인정해 줄 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십니다. 원래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그런데 사단 마귀가 주인노릇하고 사니 답답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 구원해주셨는데도 우리가 구원 받았는데 계속 구원받지 못한자의 삶을 살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답답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주는 것입니다. 인생의 알파와 오메가 이신 하나님을, 창조주 하나님을 모른척 하니 하나님께서 답답하신 것입니다. 답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모하는 삶으로 돌아오면 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게 될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사는 공동체 안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인의 위치에 있을 때, 비로써 모든 문제가 풀리고 모든 것이 살아나게 됩니다.

‘이스라엘에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_신명기6: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