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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5-12-20 주일 1부 예배


2015-12-20 주일1부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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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깨달음은 축복_마태복음3:3,11

제가 고등학생 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왜 하나님은 기도를 응답해주시지 않을까? 그렇게 기도했는데 기도응답이 오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때입니다. 왜 하나님은 빨리 응답해주시지 않을까? 이렇게 답답하고, 문제가 계속 되는데? 하나님은 날 사랑하지 않으시나? 그러다가 우연찮게 교회 선교원의 어린 아이가 기도제목을 적어 게시판에 장식해둔 것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남자 아이의 기도제목은 ‘하나님 저 수진이랑 지금 결혼하게 해 주세요’였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그 기도에 응답해주신다면 우리 삶은 아수라장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데 왜 불평하고 원망할까? 그리고 기도응답이 안된다고 신앙생활도 안하고 세상으로 가버린 사람들을 보면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생각해봅니다. 자기 마음대로 안 된다고 말입니다.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하나님이 안 계신다거나, 말씀이 틀렸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이 마지막이야, 이번 기회를 놓치면 끝이야 같은 극단적인 기도제목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래서 금식도 하고, 헌금도 다하고 뜨겁게 신앙생활하는 것 같다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결국 낙심하고, 원망하고 주저앉아 버립니다.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_마태복음3:3’

세례요한은 알고 있었습니다. 다른 것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거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정치가 부패했다고, 종교가 타락했다고, 가정의 문제라고 할 때 세례요한은 답을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_마태복음3:11’

지금 형편이 어려워도 영적으로 깨달음이 있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잘 살 때는 오히려 눈앞의 세상과 풍요밖에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고난을 당하고 있으면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바라보고 됩니다. 천국을 바라보게 되고, 후손들의 축복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런 사람이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마음대로 살려고 발버둥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오히려 축복일 때가 많습니다. 그걸 깨달아야 합니다. 세례요한은 그걸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야 하는 구나.'

우리도 마태복음을 통해 그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 원대로 된다고 그것이 내 자랑이 되거나 의가 되지 않을 수 있구나, 때론 이 상황과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신 계획이 있구나 알게 되었습니다. 만일 제가 영적으로 깨어있지 않을 때 기도했던 것들이 다 응답되었다면 저는 망했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안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기다리시고, 신앙의 철이 들 때까지 기다리셨고, 인내하셨습니다. 무엇을 깨닫도록 하시는 걸까요?

Ⅱ. 죄인을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

1.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_마태복음4:8-11,17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_마태복음4:8-11’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_마태복음4:17’

예수님이 이 땅에 왜 오셨습니까? 마귀가 예수님을 데리고 시험했습니다. '물질을 주겠다, 명예를 주겠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주겠다' 우리는 대부분 그런 시험에 넘어집니다. 저도 그럴지 모릅니다. 누군가 돈을 진짜 많이 주면 넘어질지 모릅니다. 누군가 진짜 멋지고 대단한 자리를 주면 흔들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탄은 저와 여러분에게 그런 것으로 유혹하고 공격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가져야 할 본질을 놓치게 만듭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본질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가도록 안내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런 유혹에 전혀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분명하시기 때문입니다.

2. 죄인이 이렇게 살아도 되나요?_마태복음5:3-12,43-44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 하였으느니라_마태복음5:3-12’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_마태복음5:43-44’

예수님께서 천국을 깨달은 사람들이 살아야 할 말씀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다시 묻습니다. 그 말은 무슨 뜻이지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으니, 원수와 이웃을 사랑하며 살고 싶지 않으니 다른 삶을 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은 저와는 맞지 않습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그런 상황이 되어야 하는 거지요?

구원은 반드시 삶이 동반됩니다. 구원파는 행함과 상관없는 구원의 확신을 강조합니다. 그것이 우리나라에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구원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왕으로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며 사는 것입니다. 그런 자의 삶을 변화시키셔서 예수님을 믿는 자의 삶으로 성화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고 삶은 그대로라면 구원과 상관없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구원은 그냥 확신해라 그렇게 강종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을 통해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저는 처음에 그런 것들이 부담이었습니다. 나 같은 것이 의의 위해 박해를 받고, 나 같은 것이 어떻게 마음이 청결하고, 나 같은 것이 어떻게 모든 사람들이 악한 말할 때 기뻐할 수 있나? 내가 원수를 사랑할 수 있다고? 내가 나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고?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실제로 저의 인격과 삶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천국을 본 자는 가능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자는 가능합니다. 나 같은 죄인이 감히 이렇게 멋지게 살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면 가능합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어 살면 가능합니다. 그런데 그 삶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왜 그렇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내 원수 같은 이웃 다시 말해, 가족, 형제, 친구들을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해야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3. 신앙은 껍데기가 아닌 진실입니다_마태복음7:21,9:13

‘나더라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_마태복음7:21’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_마태복음9:13’

그래서 신앙은 껍데기가 아닙니다. 신앙은 진실입니다. 절대 흉내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다 주여 주여 했습니다. 모두 자기의 죄 문제를 해결 받고, 천국 간다 하니까 주여 주여 했습니다. 가난도 해결 받고, 문제도 해결 받아 잘 먹고 잘살 수 있다 하니까 주여 주여 했습니다. 집회 가보십시오. 다 주여 주여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다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은 군중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6.25 전쟁 때 공산당이 쳐들어왔습니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으면 삶의 문제가 해결될까 하여 부흥회도 가고, 새벽예배도 갔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을 다 죽이겠다고 하니 전부 돌변합니다. 먼저 나와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고, 예수님 액자에 침을 뱉고 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때 어린 주일학교 학생이 총을 겨누고 있는데 침 뭍은 액자를 들고 닦습니다. 그랬더니 공산당들이 어린아이가 진짜 예수님을 믿네 하면서 그냥 갔다고 합니다. 신앙은 진실함입니다. 응답이 왔다고 흥분하고, 응답이 없다고 예배도 안 드리고 그러는 법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사를 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바리새인들은 제사 전문가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완벽하게 제사를 지냈지만 결국 구원과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우리도 잘못하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무엇을 알려주고 계십니까? 우리가 진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우리가 하는 척, 잘난 척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은 지나가는 사람이 누구든지 간에 살려달라고 해야지, '저 사람은 옷을 이상하게 입었어, 저 사람은 나보다 머리가 나쁜 사람이야, 자존심 상해' 이러면 됩니까? 마치 우리가 그렇게 신앙 생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그럴 이유가 전혀 없잖아요. 그저 진실해야 합니다. 내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 그렇게 사는 것이 가장 귀한 삶 아닌가요?

4. 죄인이 변화되어 믿음의 사람이 되면_마태복음13:23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_마태복음13:23’

예수님은 죄인이 변화되어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세상의 것들을 걷어내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보길 원하셨습니다. 그것을 본 사람은 이 세상에서 나그네처럼 살지만, 믿음으로 삽니다. 가진 것 없어도 믿음으로 삽니다. 가진 것이 있어도 믿음으로 삽니다. 믿음으로 살면 사는 모양이 달라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으로 살지 않으려 합니다. 가만 보니 육신적인 선택을 계속합니다. 조금 나누어주면 좋을 텐데 육신적인 욕심으로 나누지 않습니다. 그래서 죽습니다. 죽는 것이 나와 상관없다 합니다. 내 삶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어리석지요? 오늘 이 말씀이 육신적인 이야기인가요? 헌금을 100만원하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다는 말씀인가요? 예수님은 그 정도 말씀하실 분이 아닙니다. 영적인 것을 위해 뿌리면 반드시 결실을 맺습니다. 내 가정이 구원받고, 내 후대가 구원받습니다. 나의 때가 아니면 내 후손이 100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가지랍니다. 믿음은 좋은 땅입니다. 좋은 땅에 말씀을 뿌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말씀을 믿음 위에 뿌리면 열매를 맺습니다. 살아가면서 세상이 줄 수 없는 열매들입니다. 예수님이 그 모범이 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는 선택 곧 믿음의 선택을 했지만, 온 인류를 살리는 열매를 맺으셨습니다. 그 열매는 누구에게 맺을 수 있나요? 종교인인가요 신앙인인가요 마태복음의 큰 줄기입니다.

Ⅲ. 종교인인가 신앙인인가

1. 예수님의 질문_마태복음16:13-16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_마태복음16:13-16’

예수님이 마태복음을 통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종교인인가? 신앙인인가? 예수님은 종교인들에게 신앙인으로 살도록 조르시지 않았습니다. 말로 그렇게 살라고 말한들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가능성이 있는 제자들에게는 깨닫도록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믿음은 작지만, 문을 여는 것이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종교는 예수님을 만나는 것을 원천봉쇄해버립니다. 그렇다면 종교인과 신앙인의 경계선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깨닫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핵심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이 왜 오셨는지 무엇을 하러 오셨는지 아는 것입니다. 종교인과 신앙인의 차이는 그것을 아느냐 모르느냐에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 합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예수님이 누군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세례요한 같은 분인가? 엘리야 같은 분인가? 예레미야 같은 분인가? 내가 원하는 대로 믿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신앙생활 하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그렇게 믿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내 입맛대로, 내 상처대로 믿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종교의 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죄 문제와 그로 인한 죽음과 저주를 해결하신 그리스도이십니다. 믿음으로 살아야 이 답이 내 것이 됩니다.

2. 신앙인이 살아가는 멋진 인생_마태복음19:29-30,22:37-40,

28:18-20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_마태복음19:29-30’

신앙인으로 살면 멋있게 살아갑니다. 그걸 아는 자는 영생을 알기 때문에 다 버릴 수 있습니다. 부모도, 형제도, 자매도, 자식도 버릴 수 있습니다. 재산도 버릴 수 있습니다. 이걸 잘못 깨달으면 오해가 됩니다. 주님을 만나야 형제도 자매도 부모도 자식도 살릴 수 있습니다. 어설프게 타협해서는 신앙생활이 되지 않습니다. 무슨 말이지요? 육신적인 이유로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면 의미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_마태복음22:37-40’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지요? 목숨도 다하고, 뜻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게 완전 뚫어야 그 다음에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내 형제, 부모, 자식을 사랑하게 됩니다. 다 버리고 예수님을 만나면 그렇게 됩니다. 그 사랑은 집착이 아닙니다. 그 사랑은 육신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효도나 형제간의 우애나 내 자녀를 사랑해야지가 아닙니다. 진짜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릴 사랑하셔서 죽으셨던 그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어야만 저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 그것을 말씀하시기 위해 온 율법을 쓰셨고, 수많은 선지자를 보내셔서 깨닫게 하셨습니다. 다 버리라는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_마태복음28:18-20’

그것을 위해서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신앙인으로 살면 때론 외롭습니다. 바보 같아야 하니까 더 외롭습니다. 원수도 사랑해야 하니까 사람들이 바보같이 생각합니다. 깨끗하고 정직하게 살아야 하니까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신앙인으로 살면서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기준으로 사니 소외되는 것 같고, 뒤처지는 것 같습니다. 다들 잘 먹고 잘사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데 우리는 그와 반대로 가니 그렇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제자로 삽니다. 그리고 또 제자를 삼기 위해서 삽니다.

3. 결론은 임마누엘_마태복음28:9,1:23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_마태복음28:9’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_마태복음1:23’

그래서 신앙인의 결론은 임마누엘입니다. 거기에서 모든 것을 다 얻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길이, 그래서 천국백성으로 멋지게 사는 길이,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하는 길이 정말 힘들고 고독합니다. 그런데 그 길을 갈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지신 것과 같은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고난의 길입니다. 그런데 갈 수 있는 은혜가 있습니다. 바로 임마누엘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평안하냐고 물어보셨습니다. 당연히 제자들은 평안하지 않았습니다. 평안했다면 도망가겠습니까? 예수님이 평안하냐고 물어 봤을 때는 그 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주님이 완벽하게 구원을 다 이루시고 평안으로 우리 안에 오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을 매일 만나고, 매일 바라보고, 매일 사모하고 살면 평안이 있습니다. 다른 것들이 보일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주님을 바라보고, 사모하고 만나고 사는 것이 쉽냐? 그렇지 않습니다. 종교인으로 살면 절대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종교인과 신앙인이 육신적으로 보면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처럼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신앙인은 임마누엘을 늘 추구합니다. 그것이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 중심입니다. 사람중심이 아닙니다. 사람중심은 시험이 들고, 싸우고, 마음이 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중심은 늘 평안이 있고, 감사가 있습니다. 섬김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건강검진을 하면 백내장도 발견되고, 심하면 암도 발견되고 그렇습니다. 그러면 건강검진해서 죽으려고 합니까? 아니지요. 치료하려고 받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말씀을 왜 듣습니까? 영적인 건강검진을 받는 것입니다. 사람중심으로 살다보니 짜증나고 분노가 있고 사람이 싫습니다. 내 모습은 보지 않고 자꾸 다른 사람의 죄만 보입니다. 종교인입니다. 그렇게 살면 안되기에 말씀을 듣고 회개합니다. 그것이 교회의 역할입니다. 회개하고 돌이켜서 다시 예수님 중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다시 임마누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살게 됩니다. 마태복음에서 그걸 알려주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정말 2015년에 가장 최고의 축복을 찾길 바랍니다. 바로 예수님을 만난 신앙인의 삶입니다.

✔ 주님 감사합니다. 마태복음을 통해 죄인에게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착각을 하고 살았습니다. 바리새인과 같은 종교생활을 하면서 실제 삶에서는 예수님이 없었습니다. 사람중심으로 살면서 세상의 성공기준을 적용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주여 주여’ 했습니다. 그러니 산상수훈도 들리지 않았고, 천국비유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죽도록 사랑하고 이웃과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아예 외면하였습니다. 이제 마태복음을 통해 주신 말씀을 듣고 돌이키렵니다. 예수님을 내 삶의 중심에 모시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진짜 신앙생활을 하게 해주세요. 그래서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을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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