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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31 주일 1부 예배


2016-01-31 주일 1부 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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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마음을 빼앗는 어둠_스바냐3:1-7

‘패역하고 더러운 곳, 포학한 그 성읍이 화 있을진저 그가 명령을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의뢰하지 아니하며 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였도다 그 가운데 방백들은 부르짖는 사자요 그의 재판장들은 이튿날까지 남겨 두는 것이 없는 저녁 이리요 그의 선지자들은 경솔하고 간사한 사람들이요 그의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하였도다 그 가운데에 계시는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빠짐없이 자기의 공의를 비추시거늘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여러 나라를 끊어 버렸으므로 그들의 망대가 파괴되었고 내가 그들의 거리를 비게 하여 지나는 자가 없게 하였으므로 그들의 모든 성읍이 황폐하며 사람이 없으며 거주할 자가 없게 되었느니라 내가 이르기를 너는 오직 나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라 그리하면 내가 형벌을 내리기로 정하기는 하였지만 너의 거처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그들이 부지런히 그들의 모든 행위를 더럽게 하였느니라_스바냐3:1-7’

우리네 마음들이 이상합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육신을 던져주고 마음을 빼앗아 갔습니다. 것은 마치 돼지를 우리에 가두고 먹을 것을 많이 주어 살을 찌우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잡아먹으려고 하는 주인의 전략에 놀아나는 것입니다. 당장 먹을 것이 많으니 행복하고, 살이 찌지만 그 결국은 파멸이듯이 영원도 모르고, 내세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그와 같습니다. 우리의 행위와 행동들은 마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행위, 행동처럼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숨길 수가 있습니다.

저는 행위나 행동에 대해 진실하지 못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저의 행동과 행위를 두고 평가를 했지만, 실상 제 마음은 반대가 많았습니다. 전도사가 되고, 목사가 되면서 그것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우리는 내가 깨끗하고, 내가 인도받고 있다고 하면서 남을 거론합니다. ‘저 사람에 비해 나는 잘하고 있지 않아?’ 심지어 예배드리는 것, 기도하는 것, 전도하는 것까지 모든 것들이 그것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과 예수님은 늘 우리에게 마음을 이야기하셨습니다. 마음을 담대히 하라, 마음을 정결케 하라, 마음을 지키라. 그런데 자꾸 하나님의 말씀과 마음이 충돌합니다. 마음이 병들어 있기 때문에 쉽사리 내려놓지 못하고,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행동은 대단한 사람들, 행위가 대단한 사람들이 나중에 견디지 못하고 포기하거나, 떠나거나, 함께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음이 교만하거나, 쉽게 낙심해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성읍입니다. 다시 말해 마음도 하나님의 성읍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행동으로 듣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배하는 것도 행동이 아닙니다. 마음이 그렇게 되느냐가 중요합니다. 마음이 병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어려운 시절에 더 어려운 사람들을 기쁨으로 도울 수 있었을까요? 초대교회 때는 정말 핍박과 환난이 심했는데 어찌 더 핍박받고 환난 당하는 사람을 위로할 수 있었을까요? 성경은 뭐라고 증언하고 있지요? 마음에 기쁨과 찬송이 넘쳤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환경과 상황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그들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로 기쁨과 찬송이 넘쳤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차가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실은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지식이고, 행위중심이기 때문에 마음에 그것이 담겨지지 않는 것입니다. 어둠의 존재들은 그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계속해서 새로운 유혹으로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유혹합니다. 마음을 공격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빼앗겨 버립니다.

제가 아는 선배는 자기도 모르게 도박을 하고 있더랍니다. 처음에는 빈 시간에 심심해서 잠깐씩 게임처럼 했는데 나중에는 계속 그것만 하더랍니다. 예배시간에도, 선교 가는 시간에도 그것이 생각났고 그것을 하려고 거짓말도 하게 되고, 돈도 빌리게 되고 결국, 도둑질을 하다가 잡혔는데 기가 막혔습니다. 그 선배 말이 그동안 예배드리고, 선교를 한 것이 전부 거짓말이었다고 회개했는데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사역을 잘하는데, 멋진데 왜 자꾸 문제가 생기고, 갈등이 생기고 그렇습니까? 마음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만은 예수님께 내어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도박은 그것이 공격이다 라고 느껴지기라도 하지요. 우리의 상처 같은 감정들, 미움, 질투, 원인모를 분노, 짜증, 낙심 같은 것들은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그것들 때문에 마음을 빼앗긴다면 얼마나 억울한가요? 예수님은 우리 마음의 왕으로 주인으로 오셨습니다.

Ⅱ. 예수님의 첫 표적

1. 가나의 혼례잔치_요한복음2:1-2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_요한복음2:1-2’

지금의 결혼식이야 1시간이면 끝나지만, 그 당시에는 하루 종일 잔치를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그랬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와서 잔치에 참여합니다. 어려운 시절은 그런 것들로 서로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도 초대된 것을 보니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요구였던 것 같습니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이 그 예식에 참여한 것만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선교를 위해 모든 것을 다 투자해야 한다.’ 그래서 몇 달씩 선교를 다니기도 합니다. 직장도, 공부도 중요하지 않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맞는 말이지만,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절대적인 것에는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하지만 상대적인 것에서는 양보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월요일이면 제일 먼저 주일예배 때 안보인 분들이 생각납니다. 그 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문자를 보내고 싶고, 전화를 하고 싶지만 부담이 될까 하여 참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관심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어찌 가스펠 교회에 등록한 교인에게 관심이 없겠습니까? 그들에게 어떤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사람들마다 그들의 잔치가 있습니다. 결혼식이든, 취업이든, 자녀교육이든, 전문성이든, 살아가면서 수많은 잔치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인생의 잔치를 위해 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성공이든, 만족이든, 생존이든 좋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주신 삶입니다. 그래서 소중히 여기고, 최선을 다해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2. 예수의 어머니의 믿음_요한복음2:3-5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_요한복음2:3-5’

그러나 반드시 아셔야 합니다. 모든 잔치에는 문제가 옵니다. 잔치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것도 작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포도주를 찾는데 포도주가 떨어져버렸습니다. 잔치에 먹을 것이 떨어졌습니다. 큰일입니다. ‘최선을 다해 준비했는데,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서 준비했는데 이게 뭐야?’ 그것이 인생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인생임을 아셔야 합니다. 연애도 하고, 결혼식을 성대 하게 치렀는데 당장 살면서 겪는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좋은 대학을 위해 어린 시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공부만 했는데 당장 대학에 가니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렇게 취업을 하면 될 줄 알았습니다. 세상이 녹록치 않습니다. 예쁜 자녀가 태어나면 끝날 줄 알았습니다. 돌잔치도 하고, 있는 모든 것을 다해서 자녀를 교육합니다. 그런데 자녀가 내 마음대로 커주지 않습니다. 이상합니다. 문제가 심각합니다.

그렇게 문제가 심각하게 될 때 마음도 같이 병들어갑니다. 그때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오늘 본문을 추측해서 보건데 예수님은 이미 어머니를 여자라고 부릅니다. 그 말은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면서 인간적인 관계를 정리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절에 보니 그 사실이 더 확인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집에 들렀던 예수님은 아주 잠시 머물고 곧바로 떠납니다. 그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던 어머니의 믿음입니다. 지체 없이 하인을 부릅니다. 예수님이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하인을 부릅니다. 어쩌면 한 번도 예수님이 기적을 보여주신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말씀이면 된다라고 하인들에게 말합니다. 마리아와 같은 믿음의 사람이 우리 인생의 잔치에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사람들은 생각하지도 못합니다. 우리 가족 중에 우리 직장동료 중에 우리 이웃 중에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요. 반대로 그리스도인이 믿음으로 살지 못하면 얼마나 재앙인가요.

3. 항아리에 채워지는 것_요한복음2:7-8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_요한복음2:7-8’

결국 그렇게 해서 항아리에 물을 채웠습니다. 그리고 연회장에 가져다주었더니 맛있는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잔치의 끝에 더 맛있는 포도주가 나왔다고 사람들이 좋아했습니다. 그처럼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주인 삼을 때 우리 인생에 진짜 잔치가 시작됩니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우리의 믿음으로 해결되는 것입니다. 맹물과 같은 인생이지만, 사람을 살리는 포도주 같은 인생이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남을 살리는 포도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인생이 됩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오늘 본문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Ⅲ. 마음의 주인이 누구인가

1. 육체의 잔치가 아닌 영혼의 잔치_스바냐3:17-19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내가 절기로 말미암아 근심하는 자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그들에게 지워진 짐이 치욕이 되었느니라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_스바냐3:17-19’

그러나 오늘 본문이 주는 메시지를 더 깊이 봐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우리는 육신의 잔치가 아닌 영혼의 잔치를 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계속 해서 육신적인 것만 쫓아갑니다. 가서 잘 되도 문제이고, 안 되도 문제입니다. 잘되면 영원히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차라리 문제가 오는 것이 좋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재앙입니다. 내세가 반드시 있는데 그것을 모르고 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잘 안 되도 문제입니다. 왜 문제입니까? 예수님을 만나지 못해 잘 안 되면 고통스럽습니다. 해결책이 없기 때문입니다. 평생 남을 원망하고, 자신을 저주하고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바냐의 말씀처럼 완전 황폐해진 성읍에 여호와 하나님이 임하시니 전세가 역전되어 쫓겨난 자들이 돌아오고, 그들을 괴롭게 했던 자들을 멸하시고, 세상에 칭찬과 명성을 얻는 은혜를 주셨듯이 우리네 인생도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면 다른 사람을 구원할 영혼의 잔치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잔치로 바뀌게 된다는 것입니다.

2. 진짜 표적은 예수 그리스도_마태복음26:27-28

‘또 잔을 가지사 감사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_마태복음26:27-28’

그래서 물이 포도주가 된 것은 진짜 표적이 아닙니다. 그런 표적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교회들이 그런 표적에 속습니다. 진짜 표적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의 보혈의 피가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가 죄사함을 받을 수 있었고, 천국의 백성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이 포도주가 된 것은 상징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받은 응답들, 곧 잔치들은 상징적인 것입니다. 그것들의 완성은 천국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천국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세상의 유혹 앞에 좌절하거나 빠져 살게 됩니다. 인간관계도, 업도, 교육도 모든 삶에서 천국이 개입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천국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피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3. 마음의 규례_신명기10:12-13, 요한계시록3:20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_신명기10:12-13’

그래서 우리는 마음의 규례를 가져야 합니다.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제 마음의 규례를 말씀에서 찾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다시 보는 것은 지겨운 일입니다. 그러나 해야 합니다. 당연하겠지요. 그 당연한 것이 잘 안됩니다. 가장 어렵습니다. 그래서 묵상일기를 쓰는 것입니다. 묵상일기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입니까? 일기를 쓰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면서 은혜를 받는 시간입니다. 그 은혜를 기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 본질을 다시금 붙잡는 시간입니다.

구원받은 인간은 하나님을 예배하며 사는 것이 본질입니다. 경외하고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우리네 인간의 행복의 조건입니다. 저는 그것을 잘 받아드리지 못했습니다. 내 행복이 물질에 있는 줄 알고, 내 행복이 명예와 자리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좇았더니 재앙이 찾아왔습니다. 마음을 빼앗겨버렸습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정말 연약한 피조물입니다. 그걸 깨달아야 합니다. 죄인입니다. 그래서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영광 중에 영광입니다. 그것이 못내 싫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공부하러 가고, 일하러 가시면 됩니다. 인생의 잔치를 하러 가시면 됩니다. 그러나 영혼의 잔치를 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예배 시간이, 여러분의 삶속에서 마음으로 드리는 은혜의 시간이 하찮게 느껴진다면 말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_요한계시록3:20’

마음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함께 하시길 원하십니다. 그 속에서 평안이 있습니다. 사역을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행동과 행위의 변화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주님을 사랑하세요. 주님을 매일 마음에 모시세요. 여러분 삶이 어떻게 변하는지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한분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남편이 미웠다고 합니다. 남편이 함부로 대하니 미웠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도 미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죽었으면 했고, 사라졌으면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말입니다. 그저 교회에서 직분을 가지고 있어서 남편을 전도해야겠는데 전도해서 교회가도 싫었다고 합니다. 남편이 변화되지 않았는데 마귀 역사 같고 그래서 마귀결박기도를 하고 돌아서서 미워했습니다. 남편이 출장이라도 가면 혼자 있어서 성경 읽고 기도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합니다. 그게 성령충만인 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저희 교회 설교를 듣기 시작했는데 회개를 했다고 합니다. 남편에게 잘못했다고, 처음으로 사과를 했답니다. 예전에는 남편의 잘못인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예수님을 잘못 만난 내 잘못이구나 그래서 펑펑 울었답니다. 똑같이 밥을 해주고, 똑같이 생활을 하는데 남편이 우리 아내가 뭔가 바뀌었다고 합니다. 사랑이 느껴집니다. 아이들에게도 아빠에 대해 늘 안 좋게 이야기하니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교회 열심히 다니는 광신도처럼 보이지. 그러나 이제는 여유가 생깁니다. 시간을 따로 내어 기도하는 시간이 더 줄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여러분, 진짜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인생의 잔치를 하며 살아갑니다. 사람들에게 좋은 포도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나누어 진짜 영혼의 잔치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날마다 마음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주인으로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우리의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됩니다. 직분도 중요하지 않고, 위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그것이 무슨 소용입니까? 목사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맹물 같던 인생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의 포도주로 바뀐 것 보다 감사한 일이 뭐가 있습니까. 그것을 모르고 여전히 내 마음의 불안이 주인노릇을 하면 안되겠습니다.

✔ 주님 우리 하나님의 성읍인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황폐하여 상처, 분노, 미음, 원망, 불신앙에 빼앗겨버렸습니다. 그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게 마음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래서 영혼을 살리는 잔치가 되어야 할 우리네 인생이 환경에 넘어지고, 상황에 주저앉아버리는 육신의 잔치가 되었습니다. 이제 다시 예수님을 내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언제 어디서나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 되게 해주세요. 그래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마음으로 말씀에 순종하여 내 인생이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생명의 잔칫날이 되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