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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8 주일 1부 예배


2016-02-28 주일 1부 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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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_요한복음3:16-17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_요한복음3:16-17’

여러분은 지금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예배의 자리에 오셨습니다. 교회를 다니고, 예배를 드리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전부 예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만 보면 예수님을 믿는 것에 대한 이해를 틀리게 가진 분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 자체도 틀리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기독교인들이 불법을 저지르고, 왜 기독교인들이 문제가 될까? 예수님을 믿는 것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기 때문입니다. 가스펠 교회다, 어디 교회다의 문제도 아니고 이 교단이다, 저 교단이다의 문제도 아닙니다. 시대의 문제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구원의 유일한 본질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이처럼은 무엇이지요? 하나님을 떠난 죄 때문에 우리가 멸망해야 하고, 우리가 고통을 당해야 하고, 우리가 심판을 받아 지옥에 가야 하는데 독생자를 보내주셔서 심판에서 벗어나 구원받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그를 믿어야만 합니다. 예수님을 믿어야만 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인간의 선택입니다. 자유의지를 주셨기에 선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미 십자가의 사랑 즉 복음은 정해져있습니다. 불변합니다.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럼 믿어지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환경 때문에, 상처 때문에, 조건 때문에, 상황 때문에 믿어지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본질, 진리를 바꾸려고 합니다. 그것을 보고 이단이라고 합니다. 믿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십자가의 사랑을 바꾸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바꾸고 말씀을 바꾸려고 합니다. 그것은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바로 종교입니다. 사람에게 맞추려고 하는 것은 종교이지요. 사람이 편해지고, 사람이 즐거워하고, 사람이 이익이 되도록 맞추는 것은 종교입니다. 그렇지요? 이 시대의 타락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기준이 어디에 있어야 합니까? 말씀에 있어야 합니다. 구원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데모하고, 시위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죄인 된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주셨습니다. 그 빛으로 나오라는 것입니다. 나오기만 하면 살겠다, 천국에 갈수 있다,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에 대해 정확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빛으로, 생명으로 나갈 수 있을까요? 바로 연약하다고 고백할 수 있는 자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 앞에서 연약하다고 고백하는 것이 왜 힘들어요? 라고 질문하시겠지만, 그것이 죄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죄를 짓고 있는지 여러분 가늠이 안 되실 것입니다. 우리가 죄라고 하면 눈에 보이는 것, 흔히 말하는 도덕적인 죄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복음서에는 죄에 대한 다른 기준을 제시합니다. 너희가 이 성전의 주인이더냐? 내 삶에서 내가 주인 되는 모든 것이 다 죄입니다. 신앙은 주인을 만나는 것입니다. 신앙은 주인에게 나가는 것입니다. 신앙은 주인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노릇하려 할 때 문제가 오는 것입니다. 교회, 가정에서 주인노릇 할 때 문제가 오는 것입니다.

Ⅱ. 신앙은 빛으로 나오는 것

1. 어둠에 있으니 보이지 않는 것_요한복음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_요한복음3:19’

어둠에 있으니 보이지 않습니다. 어둠에서 나오지 않으면 거기가 어둠인지도 모릅니다. 자기 행위가 악하면서도 악한 줄 모릅니다. 모두가 자기가 의롭다 하고, 자기가 잘났다하고, 자기가 최고라고 합니다. 대학교 다닐 때 제 선배 한명이 있었는데 후배들이 그 선배만 피해 다녔습니다. 피해 다닌 이유가 있습니다. 말을 하는데 자꾸 상처를 줍니다. '너는 왜 그러냐? 왜 옷을 그렇게 입느냐? 왜 얼굴이 그 모양이냐?' 늘 지적을 합니다. 악의가 없습니다. 알고 그러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습관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그런다는 것을 전혀 모릅니다. 친구들이 지적하면 화부터 냅니다. 자기가 뭘 잘못했냐고 합니다. 지금은 진짜 어렵게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다 떠납니다. 아직도 모를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죄성이라 생각합니다. 누구나 그런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과 반대적인 것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별 말 하지 않았는데 상처를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나한테만 어려움이 있냐? 왜 나한테만 이런 말을 하냐? 아닙니다. 모두 다 어려움이 있고 모두 다 똑같이 듣는 이야기인데 스스로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마음을 닫고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둠에 있으면 어둠의 지배 속에서 살아갑니다. 어둠의 영향에 있습니다. 자신들은 갱신도 하고, 도전도 한다고 하는데 내가 왜 이럴까? 라고 생각조차 못하는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찌 인간관계뿐이겠습니까?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심지어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분노나 짜증, 미워하는 마음, 시기하는 마음, 이기적인 마음, 독선적인 마음, 뿐만 아닌 은밀한 모든 죄가 다 어둠의 영향입니다. 그러니 보이지 않습니다. 빛이 보이지 않습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예배가 보이지 않고, 사랑이 보이지 않고, 기쁨과 감사가 보이지 않습니다. 영혼도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계획도 보이지 않습니다.

2. 빛으로 오신 예수님_요한복음3:17-18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_요한복음3:17-18’

그것 때문에 예수님께서 빛으로 오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결정입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논리로도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어둠에 살면 빛을 이해 못합니다. 왜 빛이지? 왜 빛으로 가야 하지? 빛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둠에 있으면 그 자체를 이해 못합니다. 상상도 못합니다. 그래서 은혜라 합니다. 그래서 감사라 합니다. 빛을 본 순간, 빛을 만난 순간 아 내가 완전히 죄인이구나, 내가 완전히 벌레만도 못한 사람이구나, 나는 먼지와 같구나 그렇게 됩니다. 다윗, 바울,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의 고백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게 놀라운 것입니다. 그냥 밥 한 끼 사주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냥 병을 고치는 정도가 아닙니다. 영원한 어둠에서, 지옥과 저주에서 완전히 벗어나 천국백성으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빛을 갈 수 있는 길을 완전히 열어주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말입니다.

3. 삶이 아닌 마음으로_이사야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_이사야53:2’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마음이 바뀝니다. 삶이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삶은 따라오는 것입니다. 마음이 바뀐 것입니다. 하는 척 하는 것이 아니라, 되는 척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리새인, 종교인들처럼 거룩하게 살아야지, 저들과 다르게 깨끗하게 살아야지 그러면서 마음은 어둠에 속해 살아갑니다. 삶을 변화시킨다고 애쓰고 노력하는 것은 위선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 하셨습니다. 진짜 은혜를 받으면 마음이 바뀝니다.

저는 신앙생활을 제가 신앙생활을 참 많이 오해하고 틀리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구원받고, 급할 때 문제가 생겼을 때 기도할 수 있고 그냥 그렇게 물건처럼, 어떤 도구처럼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제가 죄를 지을 때, 누군가를 미워할 때는, 제 마음대로 살 때는 그분이 없어도 된다고, 필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배 때마다 생명의 말씀을 들어 우리 마음이 변화되어 빛으로 나가는 것은 힘든 일인지도 모릅니다.

저희 집에서 먼저 신앙을 가졌던 큰 누나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정말 고달프더랍니다. 배운 것은 없지, 남편은 문제가 왔지, 동생들은 문제투성이지 그래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아이들을 키우면서 예수님을 믿고 새벽기도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새벽마다 얼마나 일어나기 힘든지 울면서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렇게 교회를 가서 엎드려 기도하면 얼마나 눈물만 나오던지 그렇게 신앙생활을 처음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가정의 문제는 그대로 인데 그것이 진행되는 동안 마음에 있던 어둠은 점차 사라지더랍니다. 미워하는 마음, 억울한 마음, 죽도록 원망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하나님이 붙잡아지더랍니다. 어느 날 말씀이 들리기 시작했고, 어느 날 마음에 믿음이 생기더랍니다. 그래서 일요일에 먹고 살려고 했던 일도 그만두고 예배드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는 동안 빛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사건 사고 때마다 기도하게 하셔서 그 사건 사고들이 동생들을 구원할 시간표가 되었고, 가족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오는 발판이 된 것입니다. 나중에 돌아보니 전부 축복이고 사랑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간증했습니다. 그 기도 속에 제가 목회자가 되었고 우리 가문에 목회자가 3명이나 나오고 온 가족이 예수를 믿게 된 것입니다.

왜 이런 간증을 하는 것입니까. 힘든 가정생활을 극복할 지혜가 생기고, 힘든 인간관계를 이겨낼 영적인 힘도 생겼습니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마음도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빛으로 가셔야 합니다. 힘드셔도 빛으로 가셔야 합니다.

Ⅲ. 빛으로 갈 수 있는 길

1. 약함을 고백하면_요한복음3:20-21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_요한복음3:20-21’

가장 먼저, 연약함을 고백하면 됩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교만을 줍니다. 하나님이 없어도 된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필요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물질도 주고, 명예도 주고, 세상의 것들에 빠져 살게 합니다. 인간은 연약한데 자꾸 연약하지 않다고 유혹합니다. 가만 보세요. 우리가 자랑은 쉽게 하지요. 성공한 것, 응답받은 것은 늘 말해줍니다. 그러나 연약함은 쉽게 자랑할 수 없습니다. 특히,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문화적인 요소이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유교적인 문화에서 나오는 것들이 컸습니다. 양반은 못 먹어도 체면이 중요하고, 있는 척해야 하고,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돈을 주고서라도 양반이 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신앙생활하면서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걸 원하시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이, 바리새인들이 그랬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우리가 어둠에 있기 때문에 건져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어둠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방법으로 우리를 사랑하셨고 구원하셨습니까? 만일 예수님이 강력한 왕으로 오셔서 심판하시고 벌을 주고 겁을 줘서 우리의 삶을 하나, 하나 따지고 그렇게 구원하셨다면 과연 누가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이 땅에 구원받을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연약함을 선택하셨습니다. 누구도 가지 않을 길을 가셨습니다. 소외된 자들을 만나셨고, 버려지고 고통당하는 자들을 섬기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잘 생각해봐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많은 영혼들이 주께 돌아올 수 있을까요? 프로그램입니까? 시스템입니까? 목사가 설교를 잘해야 하나요? 물론 그런 것들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약함을 고백하는 자리에 간다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방법이셨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얼마나 약합니까? 그것이 땅에 떨어져 수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 어둠에 있으면 절대 연약함을 자랑할 수가 없습니다. 어둠은 그렇게 만들지 않습니다. 너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유혹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빛에 속해 있다면 연약함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2. 사랑하면_고린도후서6:4-10

사랑은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도 덮습니다. 예수님이 사랑하셨기에 우리의 죄와 허물을 덮어질 수 있음을 아십시오. 제가 아는 어떤 누나가 있었습니다. 그 누나는 엄마에 대해 상처가 많았습니다. 엄마가 아빠 때문에 늘 고생하는 것을 봐서 절대 자기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도 연애도 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예쁘고 실력 있는 누나였는데 관심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럴 만도 하지요. 그런데 진짜 어느 날 갑자기 시집가겠다고 권사님께 말했답니다. 그렇게 싫다고 하던 시집을 왜 갑자기 간다고 했을까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서 엄마처럼 사는 것도 불사하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아 열심히 믿어야지' 이것이 아니었습니다. 불교를 믿는 것처럼, 무당의 말을 믿는 것처럼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니 주님을 위해 핍박도 받고, 내 가족을 살리기 위해 어려움도 감당하는 것입니다. 나라와 민족의 구원을 위해 고통도 당할 수 있습니다. 왜 수많은 선교사님들이 그토록 수고를 다하십니까? 그 일을 하면 편합니까? 아닙니다. 진짜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면 마음이 바뀌고, 인생도 바뀝니다. 자기의 영광을 다 버리게 됩니다. 자기의 유익도 버리게 됩니다.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_고린도후서6:4-10’

저는 제가 예수님을 믿는 것을 오해했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정말 영혼을 사랑합니까? 네, 사랑하면 다 포기 할 수 있습니다. 제 아내가 매일 두 시간마다 아이에게 젖을 물립니다.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절대 다른 것으로 불가능합니다. 남의 아이를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못합니다. 사랑하면 됩니다. 여러분의 가족 중에 불신자가 있다면 정말 저 말씀을 묵상해보시길 바랍니다. 직장에서도, 문제 많은 여러분의 환경에서도 말입니다. 예수님의 빛을 소유했다면 우리는 다 가진 자입니다. 그래서 무명한자로도 살 수 있고, 바보같이 살수도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러셨잖아요. 바보같이 십자가 지셨잖아요.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3. 집중하면_에베소서3:16-19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를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_에베소서3:16-19’

어둠에서 빛으로 가는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집중입니다. 그리스도가 너희 마음에 계시도록 집중해야 합니다. 각인은 무서운 것입니다. 습관과도 같습니다. 저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완전 습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걸 고치려고 매일 묵상일기를 썼습니다.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일기를 쓰면서 바꾸려고 했습니다. 말씀을 붙잡고 사람들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편견을 없애게 해달라고 노력하고 집중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죄는 습관처럼 우리 마음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어둠으로 가게 만듭니다. 그것에 집중하지 못하여 완전히 바꾸지 못하면 금방 원 위치됩니다. 보통 신앙생활 불같이 하다가 확 식어버리는 분들 계시지요. 식을 때 보면 대부분 시험이 들어서 식습니다. 시험 든 것도 보면 정말 별것 아닙니다. 혼자 시험 들어서 혼자 주저 앉아버립니다. 왜 그렇지요? 그런 분들은 겉모양에 신경을 써서 그렇습니다. 마음을 바꾸려고 집중해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빛이 여러분 인생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 가를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이 내 마음에 충만이 되도록 집중해보시길 바랍니다.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굉장히 많은 유혹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흘러 알게 될 것입니다. 내 가족이 변화되었고, 내 자녀들이 은혜로 성장하고 있고, 내 힘으로 그렇게 노력해도 안 되던 가문의 영적인 문제가, 어둠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여러분 늦지 않았습니다. 이미 그런 어려움에 있더라도, 이미 그런 고통을 겪고 있더라도, 혹시 말할 수 없는 어둠의 지배를 받고 있더라도 이제 시작임을 깨닫고 시작하시면 됩니다. 예수님은 두 팔을 벌려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심각한 문제가 있어도 괜찮습니다.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교회 나오셔야 합니다. 예배의 자리에 나오셔야 합니다. 어둠에서 벗어나 빛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예수 믿는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이 강함이 되십니다.

✔ 주님 우리가 어둠에 살면서 빛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외면하고 살았네요. 어둠의 지배를 받아 어둠을 쫓아 살면서 그것이 성공인 줄 알았고, 그것이 행복인 줄 알았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강함인 줄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에 마음을 빼앗겨 영적인 세계가 있는 줄도 몰랐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생명의 빛이 되어주신 줄도 몰랐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예수님을 하찮게 생각하고, 연약하다 생각했습니다. 주님 이제 우리가 어둠에서 벗어나 빛으로 가도록 힘을 주세요.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빛 되신 예수님께 가는 것이 살길임을, 구원의 길임을 깨닫게 해주세요.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의지하며 사는 것이 이 땅에서 강함 됨을 깨달아 빛의 자녀로, 빛으로 살아가는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