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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8 주일예배



2016-05-08 주일 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2016-05-08 주일1부예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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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버이주일을 맞이하여 : 가정을 향한 메시지_사도행전16:31

 

제가 청소년 사역을 할 때 많은 분들이 상담을 하셨습니다. 주로 아이가 방황을 한다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그중에 어떤 아버지 한분이 기억에 납니다. 그분은 딸이 가출을 하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습니다. 그전에는 딸에게 문제 있다는 말을 아내가 하면 네가 알아서 하라고 해놓고 나는 사업 때문에 바쁘니까 그렇게만 생각했습니다. 아내가 교회를 가자고 해도 사업 때문에 바쁘니까 너나 잘 다니라고 했답니다. 그분은 직분만 집사였습니다. 그런데 딸이 가출을 해서 집에 들어오지 않자 그때서야 딸을 찾으러 다녔습니다. 찾고 보니 이미 약물에 중독되어 엉망이 되어 있었는데 중요한 것은 딸이 예전의 예쁜 딸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타이르고, 달래고, 부탁을 해도 딸의 눈동자는 이미 변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교회를 나왔습니다. 제가 그때 그런 이야기를 해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사업은 엄청 중요하고, 돈 버는 것도 중요한데 가정과 자녀들은 중요하지 않게 생각되지요? 왜 다른 것은 제대로 하면서 가정은 소홀히 여기에 되는지 아세요? 그것이 마귀의 전략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일은 쉽게 되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혼을 할 때도 다들 그렇게 합니다. ‘나만 사랑해주고, 나만 잘되게 해주고그렇게 생각하고 사람을 만나고 결혼합니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면 힘이 드니 못 살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정을 방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랑하는 일은 힘들지 않습니까? 어떤 분이 결혼을 하고 나서 저에게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결혼생활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제가 결혼을 할 때 정말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랬다고 합니다. 오승주는 누구랑 결혼할까? 그런데 그렇게 결혼하고 보니 참 힘들었습니다. 제 이기심 때문입니다. 결혼에 대한 잘못된 환상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세상에서 말한 기준들 때문입니다.

저는 결혼하고 나서 철이 들었습니다. 인내도 배우고, 기다리는 법도 배우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하기 위해 저를 바꿔야 한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사람들이 신앙생활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교회만 가면 그냥 응답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직장에서는, 학교에서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과 마찬가지로 가정에서도, 가족을 사랑하는 일에도 노력이 필요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를 받는 일을 그냥 되어진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타락하는 마음을 그대로 두고, 불신앙하는 마음도 그대로 둡니다.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나의 이기심도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리고 예배드렸으니 말씀이 들릴 이유가 없고, 은혜를 받을 수도 없었겠지요.

저는 어느 날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영생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구나! 그러니 예배도 준비하지 않고, 내세도 준비하지 않고 살았던 것입니다. 예배를 준비하고 내세를 준비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게 될까요? 우리가 어떻게 하면 가정을 지키고, 자녀를 지킬 수 있을까요? 주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세월도 엄청 빠릅니다. 나중에 가정을 놓쳤다고, 자녀들을 놓쳤다고 후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영생을 놓쳤다고, 구원을 놓쳤다고 후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지금이 은혜 받을 때입니다.

 

. 사랑에 눈이 먼 하나님

 

1. 사랑에 눈이 먼 하나님_요한복음5:19-23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_요한복음5:19-23’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관점이 어디에 있냐에 따라 말씀이 잘 깨달아지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영생이 믿어지고 나서 제 삶의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당장 제 조카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으니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조카들이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해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조카들은 잘 모르겠지요. 삼촌이 왜 저럴까? 어린 자녀들은 부모님이 왜 저렇게 눈물을 흘리며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는지 잘 모릅니다. 영생을 믿는다면 그때부터 진짜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진짜 필요한 줄 아셨습니다. 그래서 독생자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기로 마음먹으시고 처음부터 계획하시고 오랜 세월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기 위해서, 우리가 심판을 받지 않도록 그 이유 때문에 창조주가 피조물의 세계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저는 요즘 깨닫고 있습니다.

제가 얼마나 웃긴지 보세요. 교회를 개척할 때 가진 마음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보세요. ‘교회를 이렇게 만들어보겠다. 저렇게 해서 인정받아보겠다.’ 제가 어젯밤 엉엉 울었습니다. 생각할수록 울었습니다. 찬송을 부르면서 울었습니다. 제가 눈물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얼마나 회개 했는지 모릅니다. 죽은 자들을 일으켜 심판을 받지 않게 하는 것이 목회이고 교회잖아요. 오직 그거잖아요. 하나님이 제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교회가 조금 어수선하면 어떻고, 조금 무질서하면 어떻습니까? 그게 뭐가 문제입니까? 시스템이 잘 갖추어지는 것이 좋겠지요. 그런데 아닙니다. 절대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은혜를 주십니다. 매일 새은혜를 주시길 원해요.

 

2. 왜 은혜를 소홀히 할까요?_요한복음5:24-2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니라_요한복음5:24-25’

 

우리는 왜 은혜를 소홀히 할까요? 직장 생활하는 것은 죽을힘을 다해 하면서, 연애할 때는 온갖 것을 다 투자하면서, 시험 볼 때는 밤을 세워가며 준비하면서 은혜는 너무 소홀히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심지어 축구경지를 보거나 메이져리그를 보기만 해도 밤을 새우잖아요. 그런데 왜 은혜 받는 것은 소홀히 여길까요? 창세기에 보니까 아담이 죄를 짓고 나서 하나님께 변명을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저 여자가 선악과를 먹고 저에게도 줬어요. 제가 그런 것이 아니에요.’ 원래 아담은 하와를 보고 내 뼈 중의 뼈라고 너무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왜 변했을까요? 너무 이기심만 가득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죄는 그렇게 이기심으로 살아가게 만듭니다.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사회에서도 그렇습니다. 이기심이 죄의 본래 모습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기심은 욕심에서 시작됩니다. 자신도 모르게 생깁니다. 내 사람을 만들어야 하고, 내 것을 먼저 챙겨야 합니다. 당연한 것 이라 생각하시지요?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게 합니다. 영생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영생을 보지 못하니까 당연하게 은혜가 무의미합니다. 은혜가 필요 없습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은혜를 따집니까? 인터넷에, 세상에 얼마나 좋은 방법들이 많고, 얼마나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왔는데 은혜를 받으라고 합니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은혜에서 멀어진 우리의 마음과 영혼 그리고 삶은 하나님에게서도 멀어지게 만듭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과 멀어진 상태로 살아갑니다. 마치 집에 매일 들어가지만 가정에서 멀어진 것처럼, 내 아내, 내 자녀를 사랑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생명까지 소홀히 여깁니다. 영생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3. 왜 생명을 소홀히 할까요?_요한복음5:26-29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_요한복음5:26-29’

 

중세시대에 이런 일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수도원마다 성당마다 유명한 성인들이 있었는데 중요한 것은 그들이 살아 있을 때보다 죽고 나서가 더 유명해졌다고 합니다. 그러니 수도원이나 성당에 사람들이 많이 오고 잘되기 위해서 그런 성인이 죽으면 물에 삶아 유골을 잘 전시하는 것이 유행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유골을 나누어 전시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놀라운 것은 성인이 다른 데 가서 죽으면 안 되니까 성인을 살인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합니다. 기가 막힌 일입니다. 우리 인생이 점차 그렇게 된다면 너무 비참하고 수치스러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렇게 되고 있음을 봅니다. 살이 있지만, 생명이 없는 상태로 살아갑니다. 겉만 멀쩡하지 속은 썩어서 곪아있는 것을 봅니다.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무서운 이기심입니다.

 

결혼하는 사람들이 저에게 오면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사랑에 관한 말씀을 이야기해줍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요즘에도 그런 사랑을 하나요? 이런 말씀을 고리타분하다고 하고 부담스러워합니다. 결혼하는 대부분의 청년들이 사랑은 달콤해야 하고 저절로 되어야 진짜인 줄로 여깁니다. 자신이 변화될 것은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줄 사람을 찾습니다. 자신의 갈망을 성취시켜 줄 배우자만 찾습니다. ‘나 행복하게 해 줘이것이 마귀를 마음에 품고 사는 모습임을 알아야 합니다. 가정생활에 빗대어 신앙생활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팀 켈러 목사님이 결혼을 말하다라는 책에서 위기를 만난 부부들을 상담하다 보면 늘 듣는 말이 있답니다. ‘사랑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요. 정말 천생연분이라면 애정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와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사람을 만날 때마다 되묻는답니다.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만 그럴까요? ‘직장 생활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라고 탄식할 때는 없나요? 학생들은 공부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한탄하지는 않나요? 프로 선수는 운동이 저절로 잘 될까요? 그런데 왜 가정만은 저절로 행복하고 사랑이 되기를 기대하는 것일까요? 마귀가 우리 마음을 그렇게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천생연분이나 운명적인 사랑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운명적인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정을 비유로 들고 있지만,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예배를 소홀히 여길까요? 생명을 소홀히 여길까요? 그렇게 사랑한다고 기도하고 눈물 흘려 놓고 교회에서 다른 성도를 미워할까요? 연약한 지체를 소홀히 여길까요? 어린 아이들을 귀히 여기지 않을까요? 왜 그럴까요?

 

. 은혜인가요?_로마서6:15-23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_로마서6:15-23’

 

여러분 은혜가 여러분에게 얼마나 소중한가요? 잘 이해가 되지 않으신가요? 그러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영생에 관해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는지 질문부터 해보시길 바랍니다.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이 천국갈 수 있는 삶인지 질문해보셔야 합니다. 그걸 믿는다면 천국을 믿고 사는 삶인지도 질문해보셔야 합니다. 세월이 얼마나 빠른지 모릅니다. 우리가 너무 안일하게 살아가고 있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교회에 모임을 많이 만들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목사로써 왜 그런 욕심이 없겠습니까? 저도 캠프도 하고 싶고 요즘 진짜 많이 하는 집중훈련도 하고 싶습니다. 중직자 훈련도 제대로 하고 싶습니다. 제자훈련도 제대로 해서 저를 잘 따르는 무리도 만들고 싶습니다. 다른 교회들을 보면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것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모든 것들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영생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구원받고 구원받은 자의 삶을 살도록 해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는 영생을 선물로 주는 놀라운 축복입니다. 은혜는 영생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만드는 변화를 선물로 줍니다. 내 이기심이 사라지고, 교만과 의가 사라지고 온전한 삶으로 변화되도록 합니다. 그것이 오래 걸리겠지만 저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원래 교회는 정말 아름다운 곳입니다. 이상한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그래서 더욱 질서가 없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변화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두고 늘 은혜를 구했습니다. 서로 기도해주고 섬겼습니다. 그런 은혜를 받으면 직장에서, 가정에서 놀랍도록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세상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교회를 변화시키려고 합니다. 교회에서도 세상의 것들을 이야기 합니다. 마치 중세교회처럼 말이지요. 여러분, 가정을 위하여 진짜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 다 포기해도 영생은 포기 하지 마셔야 합니다. 마귀가 아무리 우리 삶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도 소망이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아이가 병으로 죽은 한 여성분이 쓴 글을 읽었습니다.

아이가 백혈병 진단을 받는 순간부터 나는 삶의 의미를 상실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통곡소리와 함께 아이가 세상을 떠나던 날, 나는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을 치다 입술이 터지고 온몸에 피멍이 들었습니다. 그때 내겐 이대로 한줌 재가 되어 아들 곁에 뿌려지리라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고 새벽 즈음에 언제 오셨는지 아버지께서 내 앞에 서 계셨고, 누워있는 나를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이슬이 채 걷히기도 전에 친정집에 도착했습니다. 아버지는 나를 방에 들게 하고 잠시 나가시더니 약사발을 들고 들어오셨습니다. ‘보약이다. 너 오면 먹이려고 밤새 다려 놓은기여어여 마셔라.’ 죽은 자식을 가슴에 묻고 어찌 보약을 먹으라는지 아버지가 야속하기만 했습니다. 나는 앞뒤 생각도 않고 약사발을 거세게 밀어냈습니다. 약사발은 방바닥에 나뒹굴었습니다. 아버지는 버럭 역정을 내셨습니다. ‘왜 이러는 거여, 너도 니 아들 따라 죽을 기여? 니한테 그놈이 가슴 애리고 기막힌 자식이면, 이 애비한테는 니가 그런 자식이란 말이여! 이 애비 마음을 그렇게도 모르겠는기여?’ 아버지의 목소리는 젖어들고 있었습니다. ‘, 자식이 짊어진 고통의 무게만큼 당신도 함께 그 고통을 겪고 계셨구나!’ 나는 아버지 앞에서 오랫동안 목 놓아 울었습니다. 그날부터 나는 얼마간 잠을 잤는데 잠결에도 군불을 지피는 아버지의 손길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또 아버지는 몸도 가누지 못하는 나를 일으켜 벽에 기대 앉혀 놓고 때마다 정성껏 다린 보약과 밥을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내 입에 밥술을 떠 넣으실 때마다 마치 주문이라도 외듯 똑같은 말씀을 중얼거리셨습니다. ‘너무 애달파 말그라. 시상엔 사람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게 있는 기여! 그간 자식 살리겠다고 얼매나 애간장이 탔겄냐? 얼렁 세월이 흘러야 니 마음이 편해질 건데얼렁얼렁 세월이 흘러야, 얼렁얼렁 세월이 흘러야.’ 아버지는 그렇게 슬픔 속으로만 빠져드는 나를 붙들어 주셨습니다. 따뜻이 보듬어 주셨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마음이 생각났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그렇게 수고하고 힘들어서 무엇인가 빼앗기고, 쫓기고 살아서 포기하고 낙심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여전히 그 은혜를 주시려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는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은혜를 받길 바랍니다. 은혜를 사모하길 바랍니다. 그뿐입니다. 아니 그것이 전부입니다.

 

주님 주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는데 우리는 영생이 아닌 세상의 것을 위해 신앙생활을 하고 있네요.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받아 축복을 받아놓고 그것이 마치 내 노력인양, 내 의인 양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가 없어도 된다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마치 가족들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가족을 소홀히 여겨 자녀문제, 가정의 문제가 왔을 때 후회하는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주님 우리의 눈을 열어 우리의 이기심을 보게 해주세요. 마귀의 역사를 보게 해주세요. 더 이상 속지 않게 해주세요. 매일 우리는 은혜 없이 살 수 없습니다. 매일 주님의 은혜로 새롭게 되길 원합니다. 더 이상 은밀한 죄가, 마귀의 속삭임이 내 삶에 침투하지 않도록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머무르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