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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2 주일예배



2016-05-22 주일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2016-05-22 주일예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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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어떤 사람인가요?_로마서8: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_로마서8:5’

 

하나님이 누구에게 관심이 많으실까요? 목사님에게? 장로님에게? 다른 사람에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내게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것이 저의 믿음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무엇에 관심이 많으실까요? 당신의 핏값으로 구원하신 백성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관심이 많으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제일 잘 아시고 나에게 선한 계획을 가지고 선별해주셨습니다. 그걸 믿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항상 다른 사람을 바라보며 사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것이 성육신입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믿지 못하면 우리는 항상 주변 탓, 사람 탓을 하며 마치 저주받은 사람처럼 살아가게 됩니다.

초대교회에 이단이 나타났는데 신천지 같은 단체가 아닌 영지주의라는 사상이단이 나타났습니다. 솔직히 신천지나 여호와의 증인 같은 이단은 그들이 이단이구나 알 수 있지만 교회 안에, 믿음의 사람들 안에 은밀하게 퍼지는 사상의 이단은 막을 길이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이 아닌 지식을 우선시하게 만듭니다. 육신적인 것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그래서 내 삶에 불신앙, 비난, 부정적인 생각과 마음, 교만한 말과 행동이 퍼지게 만듭니다. 감사하는 마음, 사랑하는 행동, 하나님의 영광으로 변화되어지는 삶에서 멀어집니다. 얼마나 무서운지 여러분 인식이 되십니까?

사람들은 그런 것에는 경계심이 없습니다. ‘내가 왜 이렇지? 우리 부모님이 무능해서 그래, 우리 집이 가난해서 그래, 내가 멍청해서 그래, 난 원래 안 되는 사람이야 반대로 내가 똑똑하잖아. 재는 저것도 못하나, 나는 재랑 같이 이 일을 못해, 나 아니면 안 되는 거야.’ 그렇게 너무 쉽게 생각하고, 마음에 담아버립니다. 그래서 삶이 점차 이상해져갑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인가요? 마음에 감사가 있는 사람인가요? 그래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문제를 일으키며 상처를 주는 사람인가요? 그런데 우리는 내가 무슨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어. 내가 어떻게 가정을 변화시키겠어. 그렇게 아예 포기합니다. 왜 그럴까요? 아직도 내가 살기 때문이겠지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겠지요.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은 우리를 변화시키셔서 당신의 구원의 역사를 위해 사용하시겠지요? 그런데 우리가 가만있으니 문제입니다. 우리가 믿지 않으니 말이지요.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것을 구하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육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인가요? 우리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보면 알 수 있겠지요.

 

. 우리의 관심은 어디에 있나요?

 

1. 내 중심인가_요한복음6:5-7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_요한복음6:5-7’

 

오늘 본문은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난 현장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오병이어의 기적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지 않고 있습니다. 보리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였는데 중요하지 않다니요? 예수님이 자기를 따라오는 무리 5천명을 보시고 갑자기 빌립에게 질문합니다. ‘얼마면 이들을 다 먹일 수 있겠느냐?’ 빌립을 테스트하시기 위해 오병이어의 일을 벌이신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제자 중에서 가장 계산적이었던, 똑똑했던 빌립은 부정적인 아무런 묵상 없이 곧바로 발언을 합니다. 예수님이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이들을 다 먹이려면 이백 데나리온이 필요합니다. 정말 똑똑한 빌립니다. 여러분은 계산이 되세요? 식당업을 하는 분도 5천명 분을 계산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빌립은 그렇게 머리가 돌아갑니다.

오늘 예수님은 그런 빌립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주시길 원하셨습니다. 그때 한 어린아이가 들고 있었던 보리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옵니다. 예수님 이것이 전부입니다. 예수님은 축사하시고 떼어 먹입니다. 놀랍게도 5천명을 다 먹이고 또 12광주리나 남깁니다. 사실 예수님은 굳이 어린아이의 것을 사용하시지 않아도, 빌립에게 질문을 하시지 않아도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먹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사건을 만들어 우리에게 교훈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데 내 중심이면 절대 믿음이 자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내 주변에 굶주린 5천명이 있어도 내 중심으로는 그들을 살릴 수 있는 선한 영향력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힘으로, 내 계산으로 늘 생각합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고서도 의심이 많았습니다. 나는 능력 있는 목사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설교를 할 수 있을까? 나는 문제 많은 우리 가정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낙심이 되고, 방황을 했습니다. 포기를 했습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과 가장 많은 대립을 이루는 사람들은 종교적으로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영웅적 노력에만 집착하게 되어 잠시도 생각을 멈추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기도도 짧고, 묵상도 짧습니다. 그런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서 점점 비판적이 되어갑니다. 주변의 사람들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신앙생활이 자기중심적이 되면 그렇게 됩니다. 예수님에게서 점차 멀어집니다. 예배에서도 멀어지고 묵상에서도 멀어집니다. 무엇보다 은혜에서도 사랑에서도 멀어집니다.

 

2. 예수님 중심인가_요한복음6:8-9

 

제자 중 하나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_요한복음8:8-9’

 

우리는 진지하게 질문해봐야 합니다. 정말 예수님 중심인가 말이지요.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통해서 오병이어의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어린아이는 이름도 기록되어있지 않습니다. 여러분 무엇인가 중요한 일을 할 때 똑똑하고 경험 많은 어른과 일하기 편하신가요 어린아이와 일하기 편한가요. 당연히 어른이겠지요. 세상에서는 어린아이와 도저히 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순수하게 예수님을 그대로 믿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드린 어린아이의 것을 사용하셨습니다. 어른들은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길 원하고, 그래서 늘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아무런 계산 없이 드렸기 때문입니다.

5천 명 중에 왜 물고기와 보리떡을 가진 어른들이 없었겠습니까? 예수님을 만나러 그곳까지 올 때 도시락정도는 다 들고 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들 내가 가진 이 작은 것이 도움이나 되겠어?’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내 중심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 순복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 맡기질 못합니다. 뭐든 내가 해야 합니다. 내 계산으로, 내 마음대로 해야 합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니 인생이 늘 갈등이고, 늘 문제투성입니다. 믿음의 삶은 갈등이 없습니다. 문제도 없습니다. 왜 그렇지요?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아니란 말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순복하는 것을 패배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승리에 이르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사실 그것은 신앙뿐만이 아닙니다. 뭐든지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수영을 못합니다. 제 친구 중에 수영선수 출신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와 수영장에 갔는데 그 친구가 자기를 믿고 따르라고 했는데 막상 가다보면 그 친구를 못 믿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내 힘으로 하다가 빠지고 물을 먹게 됩니다. 그래서 평생 수영을 못하고 물에만 가면 지금도 자유가 없고 불안합니다. 뭐든 마찬가지가 아닌가요? 기술도 마찬가지이고, 기능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 나를 맡겼나 잘 살펴봐야 합니다. 예수님 중심인가 질문해봐야 합니다. 그것은 엄청난 고통 같고, 실패 같게 느껴지지만 그것은 엄청난 기쁨을 줍니다. 엄청난 감사를 줍니다. 가장 순복을 잘하신 분이 누구시죠? 예수님이십니다. 부활할 것을 확실히 알고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다윗도, 모세도, 믿음의 사람들은 다 그렇게 순복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내 중심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유함을 누리게 됩니다. 그때부터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3. 우리의 관심은 어디에 있나요?_요한복음6:11-15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찾더라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_요한복음6:11-15’

 

우리의 관심은 어디에 있나요? 어제 어떤 분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주일예배를 빼먹으면 벌을 받나요?’ ‘어떤 벌을 받나요?’ 그런데 참 대답하기 어려웠습니다. 성경대로 벌을 받는다고 하면 쉬운 대답인데 어떤 벌일까? 번개를 맞나? 암에 걸리나? 교통사고를 당하나? 차라리 그럼 모두 열심히 예배를 드릴 텐데 그런 벌을 주시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예배를 쉽게 빼먹는 거 아닌 가? 그럼 어떤 벌인가? 하루 종일 그 저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루가 끝나가는 시간에 생각이 났습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 저는 당연히 교회에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무려 3개월 가까이를 예배드리러 가지 못했습니다. 그때 얼마나 예배드리고 싶던지 예배 때마다 주시는 은혜가 얼마나 소중하던지, 이번 주에 내게 주신 말씀이 무엇일까 그렇게 예배드리게 해달라고 얼마나 울면서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매일 밥을 먹는 것이 소중한지 모르잖아요. 그런데 안 먹으면 알지요. 매일 내 사랑하는 부인과 남편을 보는 것이 정말 소중한데 못 보면 그날의 사랑은 그냥 지나치는 거지요. 한빈이를 매일 봐야 하는데 매일 다르거든요 그런데 못 보면 그날 크는 것은 못 보는 거예요. 그렇구나. 하나님이 예배 때마다 주시는 은혜를 못 받는 것이 벌이구나,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벌이구나, 내가 하나님께 응당 드려야 할 경배와 찬양을 드리지 못하는 것이 벌이구나. 어떤 벌이지요? 하나님의 사랑에서 멀어지는 벌, 은혜에서 멀어지는 벌입니다.

우리는 가끔 우리의 모습을 확인해야 합니다. 빌립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모시고 있으면서 마음이나 생각은 여전히 변화받기 전의 모습 즉, 육신적인 것으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의 관심은 육신적인 것에 있습니다. 그러니 늘 내 계산으로 살아갑니다. 그것을 오늘 깨달아야 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기 전에 얼마나 많은 책을 보고, 연구를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막상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몇 달이 지나기 전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 저분은 정말 제자가 될 수 있겠다. 함께 하면 우리 교회에 유익하겠다라고 마음을 먹는 순간 문제가 생겼습니다. 말씀을 잘 깨달은 것 같았는데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런데 거기에 저의 계산이 깔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후로 저는 제가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진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은혜 받아야겠구나. 내 경험, 내 계산, 내 중심을 내려놓고 예수님 중심을 회복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관심이 바뀌었습니다. 그전에는 사람이 얼마나 모이나, 예산은 충분한가, 시스템은 어떤가,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이 보시는 것,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주님 우리 예배에 함께 해주세요. 우리 교회에 오시는 분들이 예수님을 만나게 도와주세요. 주님 저는 이 교회의 담임목사지만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오로지 기도 뿐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점차 기도시간이 길어지고, 주님을 의지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관심이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영광스러운 삶을 살라_요한복음11:41-42,에베소서2:10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_요한복음11:41-42’

 

관심이 바뀌니 삶의 목표도 바뀝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각자의 삶에 거룩한 목표가 생기면 좋겠습니다. 거룩한 관심이 생겨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영광스러운 삶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걸 말씀 안에서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그저 허황된 꿈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를 통해 이루시는 거룩한 변화들을 열망하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엄청나게 큰 세계복음화인가요? 그럴 수도 있지요.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삶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았습니다. 불신가정에서, 가난한 삶에서, 주어진 환경에서 주님을 바라봤습니다. 마더 테레사가 고아원을 세운다 할 때 사람들이 비난했습니다. 돈도 없고, 능력도 없는 작은 여자가 뭘 할 수 있다고 저렇게 설치는지 비난했습니다. 그때 마더 테레사가 그랬습니다. 이 작은 돈, 작은 마음을 주님께 드리면 주님이 하신다고. 결국 마더 테레사는 세상 모든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되었고 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남과 비교하지 마시고, 남의 것을 의식하지 마시고 내 안에 주님을 보셔야 합니다. 가정 복음화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사랑하라는데 어떻게 사랑하면 될까요? 너무 어렵게 느껴지지요. 너무 힘들게만 느껴집니까? 저는 저희 어머니의 인생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낍니다. 사실 글도 모르시고 지식이나 기술이 있으신 것도 아닙니다. 하루 종일 남의 집에서 일하시면 제가 어릴 때는 2만원, 3만원 조금 커서는 5만원 이렇게 일당을 받으셨습니다. 그것이 부족하니 새벽에 밭에 농작물을 가져다 파시기도 했습니다. 어머니에게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돈을 다 가져다가 술을 드셨고, 너무 가난했지만 자녀들에게 건강한 엄마가 되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한 번도 힘들다, 죽겠다, 못 살겠다 그런 적이 없으셨고, 뭐를 해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러면 다들 실패하고 가난하게만 살아야 하겠잖아요. 아닙니다. 그 많은 조카들 대학갈 때마다 100만원씩 내어놓으신 것을 보고, 이 교회를 개척할 때 어머니는 천만 원이나 내어놓으셨습니다. 저는 그날 펑펑 울었습니다.

이번에도 어머니 아프셔서 집에 가니 저를 따로 부르셨습니다. 내가 얼마가 있는데 아직 대학에 못간 조카들 학비 주고 나머지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사용하거라. 심지어 큰 조카 배속에 있는 아이까지 챙기셨습니다.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올까요? 하나님이 어머니에게 선한 마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한번 계산해보세요. 계산했으면 집 나가야지요. 가출하거나 자살하거나 해야지요. 평생 원망만 하고 살아야지요. 어머니는 새벽마다 그 멀고 먼 교회까지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지금도 감사하다고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그런 그리스도인이 되길 기도합니다. 세상이 어둡다고만, 남 탓만 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교회가 문제 있다고 불평만 하는 성도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었으면 그 사랑을 받았으면 이제 우리 입에서 예수님이면 가능하다고, 믿음으로 가능하다고, 내 마음이 살아난다고, 기도하면 되겠다고 말씀으로 살겠다고 감사하다고 사랑한다고 주님이 함께 하면 할 수 있다고 그런 믿음의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가정, 삶을 영광스럽게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_에베소서2:10’

 

우리는 선한 일에 관심이 많아야 합니다. 선한 일은 하나님이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입니다. 곧 살리는 일입니다. 이 일은 아무에게나 맡기시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 받은 자만이, 예수님에게 내 인생을 맡긴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주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이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그래서 선한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우리는 병이 듭니다. 선한 목표는 매일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믿음입니다. 믿는 것입니다. 규칙이 아닙니다. 율법도 아닙니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마음에 은혜가 넘치게 하십시오. 그래야 여러분 가정에 은혜를 넘치게 할 수 있습니다. 은혜가 넘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행하십니다. 그것이 기적입니다. 우리가 바보라 불려도 상관없습니다. 사람들이 우리보고 멍청하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왜 다 포기하고, 양보하느냐 할 만큼 우리는 육신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야 합니다. 그럼 승리하게 됩니다. 그런 마음이 곧 오병이어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오병이어입니다. 그 작은 믿음이면 5천명도 먹일 수 있습니다. 주님께 믿음을 드리면 주님이 그 믿음을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포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인생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일에 쓰임 받는 선한 목표를 내려놓지 않기 바랍니다. 불신자 가정이 변화되고, 은밀한 죄에서 해방되고, 불신앙과 불평하는 마음이 변화되고, 미움이 사랑으로 바뀌는 일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이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아름다운 인생이 되길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는 예수님을 모시고 살면서도 늘 내가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내 계산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니 마음이 늘 갈등이고, 불안과 낙심이 끊임이 없습니다. 분명 하나님은 내게 당신의 계획을 가지셨다 했는데 나는 여전히 그 계획을 믿지 못하고 세상의 방법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남을 탓하고 있네요.

이제 내 안에 계시는 주님께 내 인생을 맡기렵니다. 믿음을 주옵소서. 그리하여 주님이 나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영광스런 계획이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이제 나의 온전한 관심이 그 일을 이루시는 주님에게 있게 하옵소서. 육신적인 일에 관심을 두고 힘겹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이루실 복음의 아름다운 역사에 관심을 두고 믿음의 도전을 하게 하옵소서. 내 인생이 주님과 함께 하여 주님의 영광이 선한 영향력으로 드러나는 복된 인생이 되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