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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5 주일 예배


. 예수님의 간절한 부탁[주님을 만나지 못하면]_요한복음5:24-25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얼마만큼 실제적인가요? 아마도 우리가 천국에 가서 예수님을 만나면 이렇게 인사할 듯합니다. ‘예수님 처음 뵙겠습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그만큼 우리는 신앙생활이 실제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그것을 회복하도록 하셨습니다. 17세기에 살았던 쟌느 귀용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쓴 순전한 사랑이란 책을 6월 추천도서로 추천하려고 합니다.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제가 묵상일기를 쓰는데 많은 영감을 준 책이기도 합니다. 쟌느 귀용은 참 어려운 시절에 태어났습니다. 부유한 가정에 태어났지만, 28살에 남편을 읽고 혼자 살았습니다. 그는 온전히 예수님만 따르는 삶을 살다가 참 많이 박해를 받았습니다. 천주교에서 이교도라고 박해를 많이 했습니다. 그가 결혼을 해서 너무 힘들 때 한 수사를 찾아갔습니다. 자기는 너무 힘든 상황과 환경인데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다고, 성경을 읽고 묵상을 해도 예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때 그 수사가 한마디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당신 안에 계십니다그 말에 쟌느 귀용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으로 만족을 못합니다. 우리는 더 나은 생활, 더 나은 조건 등을 제시하는 예수님을 찾든지 그렇지 않으면 아예 예수님을 무시하고 사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것입니다. 제가 예전 교회에서 사역할 때 저를 찾는 분이 계셨습니다. 사실 사람들이 그분을 좀 멀리했습니다. 딸에게도 문제가 있었고 본인도 그랬습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선입견이 생겼던지 저도 자꾸 만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가정에 문제가 생겨버렸습니다. 그때 제가 만나 뵈었는데 진짜 엄청 울었습니다. 힘들 때 아무도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제가 그때 내가 왜 그분을 멀리했을까? 왜 그분을 내가 직접 만나보지 않고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쟌느 귀용은 그 후로 온전히 예수님을 바라보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그때부터 기록한 일기입니다. 그는 그때부터 달라졌습니다. 자신을 비방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사랑하고 축복했습니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도우며 살았습니다. 늘 헛된 것만 바라보고 살다가 주님을 매일 만나니 가능하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가 특별한 사람인가요? 그는 그저 한 가정의 연약한 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부흥의 세대에 쓰임 받은 전도자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력을 끼친 일기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간곡히 부탁을 하는 장면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니라_요한복음5:24-25’

 

바리새인들은 여전히 주님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이 너무 안타까우셔서 간곡히 부탁하시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으면 살텐데 그렇지 못해서 너무 안타까워하시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을까요? 도대체 무엇이 그들의 눈과 귀를 어둡게 했을까요?

 

. 주님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것들

 

1. 말씀을 믿지 않았던 바리새인_요한복음5:37-40,45-47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며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_요한복음5:37-40’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_요한복음5:46-47’

 

평생 말씀을 붙잡고 살았던 바리새인들입니다. 성경 박사들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믿지는 않았습니다. 믿지 않으면 어쩔 수 없습니다. 목사님 그럴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엄청나게 훌륭한 목사님 신학 박사님들이 저렇게 타락하고 하나님을 외면하여 사이비가 되고, 틀린 신학자들이 되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그랬나요? 아니겠지요. 처음에는 은혜도 받고 했겠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 교만이 찾아오고 자신의 경험들이 쌓이면서 말씀에서 멀어집니다. 말씀을 읽고 듣고 다 하면서 멀어집니다. 두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어도 말씀이 들리지 않는 상태에 이릅니다. 그러니 회개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어떤 학생이 저에게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조금 충격적인 내용입니다. 자신이 저에게 그런 메일을 보낸 것도 용기가 있겠지만, 내용을 보니 그게 아닙니다. 자신이 불륜을 저질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들켰다고 합니다. 그래서 난처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메일이 왔습니다. 사실 저는 그 친구를 전혀 모릅니다. 그래서 질문이 틀렸습니다. 난처하다니요? 한 가정을 파탄 나게 해놓고 난처하다니요? 그걸 해결해달라니요. 제가 그렇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당신은 들킨 것이 복인 줄 알아라. 들키지 않았으면 그 달콤한 짓을 계속 했을 것 아니냐.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냐 당장 그 사람에게 가서 무릎 끓고 사죄해라. 그리고 새 인생을 살아라 다시는 그런 일을 저지르지 말아라. 저는 사실 그 친구가 궁금해서 그 친구의 SNS를 보았는데 참 놀랐습니다. 온갖 종류의 믿음의 글들, 온갖 종류의 메시지들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말씀에 순종해서 살아가시나요? 하나님 말씀이 여러분 인생의 기준인가요? 무엇이 신앙생활인가요? 예를 들어,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그 말씀을 순종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우리는 그 말씀을 받아도 여전히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지요. 부모를 미워하거나, 아내와 남편을 미워합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새가족이 오면 왠지 밉고 중직자가 왠지 밉고 그렇지 않습니까? 그것이 마귀가 주는 마음인지도 모르고 그냥 그 마음을 다 내어줍니다. 왜 그렇게 되지요? 말씀을 어떤 책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어떤 강의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말씀이라 믿지 못합니다. 이번 주를 살아가도록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음성이라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딱 그랬다는 것입니다. 필요한 말씀만 듣고, 자기들의 이익에 도움 되는 말씀만 붙잡고 살아갑니다. 그러니 그 말씀에서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은 듣지 못했습니다. 그저 문자적이고, 관념적입니다. 메시지일 뿐이지요. 말씀을 삶으로, 마음으로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으면 성격도 고치게 됩니다. 엉망진창인 내 은밀한 삶이 있잖아요. 그것도 고치십니다. 말씀은 주일에 듣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이잖아요. 엄청난 말씀이잖아요.

 

2.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던 바리새인_요한복음5:41-42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_요한복음5:41-42’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한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많이 보는 길에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아예 자신들에게 도움이 안 되니 박해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였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메시야가 왔는데 오지 않았으면 했는지도 모릅니다. 주님이 없는 것이 더 편했습니다. 백성들을 속여서 돈도 벌고, 자신의 세력도 확장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예수님이 오셔서 모든 것을 뒤집으시려 하니 너무 불편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불편합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으면 더 불편합니다. 그것이 살 길임을 모르니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들은 받는 것만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지 않나요? 예수님을 믿는 것이 다 받는 것인 줄 압니다. 그래서 좋습니다. 축복도 받고, 응답도 받습니다. 교회를 다녀도 다 받기만 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을 사랑하라니 떠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니 본색을 드러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라니 그때는 피합니다. 신앙이 거기서 멈추게 됩니다. 저는 청소년시절부터 줄곧 교회에서 자랐습니다. 교회가 제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참 많은 일들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싫지 않았던 이유는 받은 사랑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저는 교회를 사랑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교회를 사랑합니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이 왜 신앙생활에 성장이 멈추는가 하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있는데 그걸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술을 즐겨 먹는 분들이 계실 수 있지요. 매일 술에 취해 사는 분들이요. 술이란 것이 적당해야 하고, 또 즐거워야 하는데 술을 먹으면 반드시 죄하고 연결이 됩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그걸 바꿀 수 있는 가입니다. 술을 먹고 먹지 말라의 문제가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해서 그 마음으로 나를 바꿀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세상에서 저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제 아내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제일 무섭기도 합니다. 만일 제 아내가 페이스북 같은 데 저의 일상을 올린다면 큰일 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사람들은 아내에게 함부로 합니다. 제일 사랑하는 사람인데 무시하고, 모자라게 생각합니다. 원래 결혼은 하나님이 만드신 법입니다. 동거와 결혼의 차이가 뭐지요? 동거는 혼인서약이 없습니다. 그냥 좋아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좋은 마음이 사라지면 헤어집니다. 신앙생활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혼은 언약입니다. 그래서 다릅니다. 힘들어도, 서로 미운 마음이 들어도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돕는 베필입니다. 사랑은 책임이 따릅니다. 우리가 지금 신앙생활을 동거를 하고 있는지 결혼을 하고 있는지 보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결혼을 하길 원하십니다. 그것이 임마누엘입니다. 진짜 사랑입니다. 그때서야 열매도 진짜 열매를 맺습니다.

 

3.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았던 바리새인_요한복음5:43-44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_요한복음5:43-44’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왜 구하지 않았을까?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보이면 당연하게 구하겠지요. 그런데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반대로 세상의 영광은 딱 보입니다. 저를 신앙으로 키워주신 원로목사님이 계십니다. 저는 그분을 보면서 배웠습니다. 목사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계시는구나! 전혀 세상의 영광에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저는 처음에 목회를 30년이나 하셨는데 목사님이 왜 저러실까 생각도 했습니다. 저의 무지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니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믿지 못하면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면 삶이 달라집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삶의 모양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의 삶은 정말 완벽하게 보였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 말씀을 암송하고, 기도를 하는 것은 정말 완벽하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예배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가?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몰랐을 수도 있겠네요.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셨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도, 병든 자도 찾아가셨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진짜 영광을 아셨기 때문에 죄인인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부활의 영광을 알았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_로마서8:18’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몰랐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나라를 자기들 개념으로 이해했습니다. 거대한 성전을 세우고,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 했습니다. 신천지에 가면 그렇게 말합니다. 요한 계시록에 기록된 144천명을 찾으면 과천에 천국이 열릴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학교도 안가고, 직장도 버리고, 가족과 원수가 되어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다닙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스런 나라입니까? 예수님은 여러분의 학교, 직장, 원수 같은 가족에게 진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본 사람은 반대로 진짜 사랑하겠지요. 목사님 그것이 가능한가요? , 가능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길 매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면 제 삶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교만한 마음도, 미워하는 마음도 바뀝니다. 저는 연약하기 때문에 매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합니다. 이 예배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예배가 되도록 기도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 전쟁은 종교전쟁입니다. 그때 한 어린 여인이 나타납니다. 너무 어렸습니다. 신앙이 꼭 나이가 들어야 성숙하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쟌다르크입니다. 그녀는 괜찮은 가문에서 신앙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이름이라는 서적을 통해서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매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교제하다가 이 전쟁에 많은 사람들이 죽고, 고난을 당하는 것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주시면 제가 이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겠습니다. 그가 18세의 나이로 이단자로 찍혀 처형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살렸으며, 무엇보다 전쟁을 종식시킨 인물로 평가를 받습니다. 그러나 진짜 그의 평가는 그가 남긴 일기들입니다. 매일 전쟁 속에서도, 박해 속에서도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속에 살았습니다. 미운 마음이 들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저들을 미워하십니까? 그럼 저도 저들을 미워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들은 믿음이 달라집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을 아십니까? 그렇다면 구하고 살아가십니까?

 

. 매일 주님을 만나는 신앙생활_로마서10:9-15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_로마서10:9-15’

 

믿음이 왜 필요할까요? 매일 보이지 않는 주님을 만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매일 주님을 만나지 않으면 반드시 바리새인처럼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님을 만나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사이비처럼 되거나 마귀의 종노릇 할 수도 있게 됩니다. 예전에 신문에 어떤 사람이 자신이 서울대 학생이라고 착각해서 실제 수업도 듣고, 동아리도 가입하고, 졸업사진도 찍었다는 이야기나 나왔습니다. 그리고 가짜 졸업장을 만들어 취직을 했습니다. 그것이 들통 나서 한동안 이슈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 제가 했던 신앙생활을 들먹이거나, 누군가에게 들었던 메시지를 들먹일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오늘, 지금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매일 깨닫고, 매일 새로운 은혜를 받고 살 수 있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허황된 미래를 바라보는 것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불신자에게 주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전통 때문에 주를 시인하지 못했고, 이방인들은 자신들이 구원받지 못할 거라는 상처와 원망 때문에 주를 시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주를 시인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주님을 부르는 모든 자는 부요하게 됩니다. 그런데 왜 부르지 못합니까?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안에 계시는 주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떤 사람들은 과거에 사로잡혀 아직도 이기심에서 교만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믿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상처와 원망에서 벗어나지 못해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 전부 자기 테두리 안에서 살아갑니다. 자기감정, 자기 연민, 자기 습관, 자기 지식, 자기 것으로 살아갑니다. 예수님을 만나려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도록 우리의 눈을 열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 즉 여러분의 모든 삶에서 예수님을 보길 원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길 원합니다.

이것이 어렵습니까? 쟌 다르크가 어디서 하나님을 만난 줄 아십니까? 늘 밭을 갈면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거기서 늘 말씀을 묵상하고 늘 주님과 교제했습니다. 무디 목사님은 구두 방에서 일하면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양을 치는 들판에서 만났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살고 있는 그곳에서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내 침실에서, 주방에서, 출퇴근길에서, 가정에서 만나면 됩니다. 내가 세상 주인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면 주님이 만나주십니다. 그것을 너무 잊어버리고 하지 않으니 체크하기 위해 묵상일기를 씁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만나지 않으면 세상의 것들이, 마귀가 주는 것들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고 이끌지 않습니까? 여러분 주님을 만나는 신앙생활을 바랍니다. 주님이 내안에 계십니다. 내안에 계십니다. 그것이 진심이라면 반드시 은혜를 주십니다.

 

주님 우리는 바리새인처럼 말씀을 수도 없이 읽고 암송하고 순종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믿지 않아서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주님을 가장 많이 사랑한다고 고백은 하지만 실제로는 세상을 더 사랑하여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무엇보다 세상의 영광을 바라보느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지 못하여 우리의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어둠이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서 멀어지게 하네요. 그리고 재앙과 저주, 죄에 종노릇하게 하네요. 오늘 우리의 눈을 어둡게 하는 것들에서 벗어나길 원합니다. 내 안에 지금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주세요. 매일 예수님을 만나 내 영혼을 변화시키는 말씀이 믿어지게 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생활이 되어 내 마음이 변화되게 해주세요.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해주셔서 내 삶이 변화되어 영생의 축복을 누리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게 해주세요.